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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공이산의 미학, 호쾌함 토하다

배일동 명창의 완창 판소리 ‘심청가’. 한옥에서 녹음해 자연의 소리까지 담았다.

배일동 명창의 완창 판소리 ‘심청가’. 한옥에서 녹음해 자연의 소리까지 담았다.

 
WITH 樂: 배일동의 ‘심청가’  
 
호쾌하다. 배일동 명창의 완창 ‘심청가’ 이야기다. 그는 2010년 ‘심청가’ 후반부만 녹음한 적이 있다. 담양 소쇄원에서 녹음된 첫 음반은 새로운 판소리 예인의 등장과 주변의 자연음까지 그대로 담은 ‘퓨어 레코딩(pure recording)’으로 세간의 관심을 끌었다. 무소의 뿔처럼 묵묵히 국악음반을 만들어내는 김영일 대표의 ‘악당이반’과의 작업이었다. ‘심청가’ 완창 녹음 역시 아름다운 두 고집쟁이들이 만든 결과물이다. 

 
이번 녹음에서는 첫 음반과 달리 악기 편성에 변화를 주었다. 첫 번째 것이 북, 대금, 아쟁 반주였다면 이번에는 북만 사용했다. 판소리에는 단출한 북 반주가 제격이라고 생각한다. 막사발로 막걸리 한 잔 마시는데 두부김치 하나면 족하기 때문이다. 이번 녹음은 지난 5월 경주 종오정에서 이루어졌다. 새소리, 바람소리, 한옥이 내는 소리까지 모두 들어 있다. 눈을 감고 들으면 아파트 콘크리트 벽이 사라지고 한옥 들창 사이로 들어오는 햇살이 느껴진다.
 
배일동의 ‘심청가’는 서편제와 동편제 소리가 잘 섞여 있다는 강산제 소리다. 구한말 명창 박유전으로부터 유래해 전남 보성의 정씨 가문과 배일동의 스승인 성우향 명창등에게로 이어진 소리다. 보성소리의 정씨가문 명창 정응민은 일제 시대 판소리가 계면조의 사용이 늘고 애상적으로 변해가는 것을 품위 없는 것이라고 보았다. 그래서 웅장한 동편의 소리를 많이 가미해 품격 있는 소리를 유지하고자 했다. 그래서 강산제 ‘심청가’는 선율과 성음이 풍부하고 남성적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당연히 현재 공연되는 ‘심청가’ 중에서도 강산제가 인기가 많다. 
 
‘심청가’는 눈물의 엘레지다. 완창은 서너 시간 걸리는데, 중간에 잠시 졸다가 깨도 손수건 필요한 장면과 마주치게 된다. 곡이 시작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곽씨 부인의 죽음 장면이 나온다. 첫 번째 눈물이 쏟아지는 대목이다. 상상해보라. 강보에 싸인 갓난 아이를 두고 아내는 긴 유언을 한다. 그런데 남자는 앞이 보이지 않으니 부인이 죽었는지 살았는지도 몰라 더듬거린다. 그러다 사실을 알게 된다.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꺼질 일이다. 앞도 보이지 않는 이 남자와 아기는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 수 있을까? 
 
세월이 흘러 슬픔도 잠잠해질 무렵 젖동냥하며 어렵게 키운 착한 딸은 아비를 고쳐보겠다고 검푸른 바다에 몸을 던진다. 눈 먼 아비의 죄책감은 어찌 감당해야 할 것인가? ‘심청가’의 주제는 효심이지만 살아남은 심 봉사의 슬픔을 표현해 내는 것 역시 중요한 포인트이다. 배일동 명창은 애간장 끊어지는 목소리로 심 봉사의 심경을 사실적으로 그려낸다. 
 
이번 완창 녹음에서 ‘추월만정에서 타루비’까지 이어지는 부분을 들어 보자. 곡 전체로 보면 후반부다. 초반에서 배일동 명창의 소리는 조금 불안한 부분이 있었다. 컨디션 난조였는데도 불구하고 녹음을 강행했다는 후일담이 있다. 
 
다행히 후반부는 소리가 집중되고 단단한 느낌이 든다. 소리꾼 스스로 훨씬 더 몰입해 소리를 이리저리로 변화시키고 있는 느낌이 강하다. 첫 음반에서는 세 가지 악기 소리가 전면에 드러나는 느낌이 있었다. 그래서인지 감정의 몰입이라는 측면에서 과잉되거나 또는 분산되는 느낌이 있었다. 반면 이번 녹음은 소리의 맨얼굴을 그대로 만날 수 있어서 좋다. 특히 고수 김동원의 북소리는 젊고 에너지가 흘러넘친다. 축구 선수들이 일대일 패스를 하듯 소리와 북이 서로의 공간을 채운다. 야외에서의 완창 녹음에 이런 기운 넘치는 북과 추임새가 있다는 것은 소리의 완성을 높여주는 일임에 틀림없다.
 
배일동 명창은 판소리계의 야인이다. 씨름으로 비유하자면 시작 신호와 함께 배지기로 상대를 번쩍 들어 올리는 스타일이다. 그의 소리는 동굴 속을 헤치고 돌아오는 커다란 울림이고 바위를 뚫고 쏟아져 내리는 폭포다. 피할 수 없는 산사태이며 아스라이 사라져가는 노을이다. 그는 제도권의 흐름에 몸을 의탁하지 않고 전통적인 방식으로 스스로의 소리를 얻었다. 그에게서는 자기완결성을 위한 ‘혼(魂)’이 느껴져서 무엇보다 좋다. 천재의 빠른 행보와는 다른 평범한 사람의 지치지 않는 열 걸음. 그가 보여주는 ‘우공이산(愚公移山)’의 미학이다. 조계산과 지리산에서 7년간 이루어진 ‘독공(獨功)’ 과정 때문만은 아니다. 
 
그는 고독한 산공부조차 절반의 공부밖에 되지 않는다고 말한다. “소리공부는 세상과 더불어 이루어져야 하며 사람들 속에서 자신의 소리를 얻기 위한 진짜 공부가 시작된다”고 말한다. 좋은 집안에서 태어나 이력서에 외국학교 이름 몇 줄 달고 허세 부리는 예술가들과는 격이 다른 행보다. 온전한 삶이 온전한 소리를 만든다는 동양의 윤리적 미학은 표리가 다른 전문가들이 판치는 우리 예술계에서 반드시 필요한 덕목이다.
 
 
글 엄상준 TV PD 90emperor@naver.com 

포함의 아픔을 아직도 그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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