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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도시의 고독 담긴 누아르 분위기에 SF의 전설 ‘블레이드 러너’도 반하다

영화·광고 감독들은 왜 에드워드 호퍼의 그림을 좋아할까 
에드워드 호퍼의 ‘나이트호크’(1942)

에드워드 호퍼의 ‘나이트호크’(1942)

최근 개봉한 영화 ‘블레이드 러너 2049’의 한 장면

최근 개봉한 영화 ‘블레이드 러너 2049’의 한 장면

 
“난 이 그림 복사본을 끊임없이 제작팀의 코앞에 흔들었습니다. 내가 추구하는 모습과 분위기를 만들어낼 수 있도록 말이죠.”
 
35년 만에 후속편이 나와 화제를 모은 ‘블레이드 러너’의 1982년 원작에 대해 감독 리들리 스콧(80)이 한 이야기다. 이 영화는 개봉 당시에는 흥행에 참패했지만 훗날 ‘공각기동대’ 등 수많은 사이버펑크 영화·만화·애니메이션에 영향을 끼쳤고 리들리 스콧을 ‘비주얼 스펙터클의 거장’으로 떠오르게 한 SF영화사의 전설이다. 그런 영화의 분위기를 결정지은 그림은 어떤 작품일까. 놀랍게도 전혀 SF적으로 보이지 않는 1942년 작 미국 그림이다. 바로 에드워드 호퍼(Edward Hopper·1882~1967)의 ‘나이트호크(밤을 새우는 사람들)’다.
 
물끄러미 이 그림을 보고 있으면, 스콧 감독의 의중이 조금 느껴지는 것 같다. 어둡고 텅 빈 거리와 대조를 이루며 노란 불을 환하게 밝힌 카페 겸 식당. 하지만 그 안에 있는 사람들은 밤거리만큼이나 어둡고 텅 비어 보인다. 대화할 거리가 없어 보이는 혹은 그럴 기분이 아닌 남녀, 그들과 동떨어져 홀로 앉아 자기만의 생각에 빠져있는 듯한 남자, 늘 하던 일과 하던 말을 하는 카페 직원. 당시 유행하던 필름 누아르의 분위기가 스며 있다. 무심한 대도시에서 벌어지는 냉혹한 사건들, 그에 연루된 비관적이고 고독한 탐정 혹은 범죄자들, 그리고 좌절된 로맨스의 영화들 말이다.
 
실제로 호퍼는 그런 영화들을 좋아했고, 그가 그린 그림은 다시 필름 누아르에 영향을 주었다. 그리고 세월이 흘러 ‘네오 누아르’라고 불리는 ‘블레이드 러너’에까지 영감을 준 것이다. 인간으로 살고 싶어 도망친 리플리컨트(유기체 로봇)를 추적해 ‘처리’하는 일을 하는 ‘블레이드 러너’ 데커드(해리슨 포드)가 스시 바에 앉아 있는 장면은 이 그림과 닮았다. 그리고 그 장면은 이번에 후속편으로 개봉된 드니 빌뇌브의 ‘블레이드 러너 2049’에서 자신이 리플리컨트이면서도 블레이드 러너의 일을 해야 하는 K(라이언 고슬링)가 카페테리아에 서 있는 장면으로 이어진다.
 
호퍼는 ‘나이트호크’에 대해 “나는 장면을 극도로 단순화했으며 식당을 넓게 그렸다. 무의식적으로 대도시에서의 고독을 그리고 싶었던 것 같다”고 말한 바 있다. 호퍼의 그림은 햇빛 가득한 아침이나 오후가 배경이라 해도 ‘대도시에서의 고독’이라는 정서가 흐른다. 하얗게 빛나는 벽면과 텅 빈 도로, 드문드문 보이는 인물들이 햇살의 찬란함과 뜨거움만큼이나 강렬한 고독과 우수를 역설적으로 자아낸다.
 
어떤 이들은 호퍼의 그림이 두 차례의 세계대전과 그 사이 급격한 산업화와 대공황에서 오는 미국 도시인의 절망감을 나타낸다고 한다. 하지만 호퍼가 자신의 그림은 ‘미국적 장면’이 아니라고 했듯, 그의 그림에는 시대와 사회를 초월하는 무언가가 있다. 바로 개인의 자아에 눈뜬 근대 이후의 인간이 필연적으로 갖게 되는 깊은 고독의 정서다.    
 
자아에 눈뜬 현대인이 갖는 근원적인 고독
호퍼의 ‘브루클린 방’(1932)

호퍼의 ‘브루클린 방’(1932)

‘브루클린 방’의 이미지를 차용한 SSG 광고

‘브루클린 방’의 이미지를 차용한 SSG 광고

근대 이전 사람들은 숙명적 신분 구조에서 태어나 집단의 일부로서 주어진 역할을 별 의문 없이 하다가 죽었다. 그에 반발하는 시민혁명과 산업혁명이 이뤄지면서 개개인은 자유와 독립성을 얻었지만, 대신 정체성에 대한 새로운 고민이 생겼다. 자신의 자유와 독립이 과연 실질적인 것인지 끝없이 묻게 된 것이다. 다른 인간과 교류해도 쉽사리 답을 발견하지 못하니, 거기서 인간의 근원적인 고독이 발생한다.
 
게다가 그의 작품은 시각적으로 어렵지 않고 은근 극적이기도 하기에 대중의 인기가 높다. 영화에도 곧잘 차용된다. 심지어 우수의 감정과는 담을 쌓은 분야인 광고에도! 지난해 크게 히트한 신세계 쇼핑몰 SSG의 광고가 대표적이다.
 
사실 그의 그림은 사실주의적 장면, 심플하면서도 드라마틱한 구도, 명쾌한 색면 분할에서 오는 강렬한 시각적 효과 때문에 광고로 인용하기에 수월하다. 광고 일러스트레이터로 일한 경력도 녹아있을 것이다. 본래 상업 미술을 공부했고 사회 생활도 뉴욕의 한 광고회사에서 시작했지만, 호퍼는 늘 순수 회화에 대한 갈망이 있었다. 그가 전환기를 맞은 것은 마흔이 넘어 전업 화가로 나선 1924년이었다.
 
호퍼의 ‘철로 옆의 집’(1925)

호퍼의 ‘철로 옆의 집’(1925)

히치콕 감독의 영화 ‘싸이코’(1960)

히치콕 감독의 영화 ‘싸이코’(1960)

테렌스 맬릭 감독의 영화 ‘천국의 나날들’(1978)

테렌스 맬릭 감독의 영화 ‘천국의 나날들’(1978)

호퍼의 첫 주요작으로 1925년 그린 ‘철길 옆의 집’이 꼽힌다. 이것이 앨프리드 히치콕 감독의 기념비적 스릴러 ‘싸이코’(1960)에 나오는 노먼 베이츠의 집에 영감을 주었다는 것은 유명한 이야기다. 그만큼 이 그림 속의 집은 평범하면서도 스산하고 불길하며 서글프다. 황량한 배경에 이웃도 없이 고독하게 서서 기울어진 햇빛을 받고 있는 모습. 현대를 상징하는 철로 옆에서 낡은 빅토리아 풍의 외관은 내부로부터 허물어지고 있는 구시대의 전형이다. 그런 상징적 외관 때문에 이 집은 영상이 아름답기로 유명한 영화 테렌스 맬릭의 ‘천국의 나날들’(1978)에도 등장했다.    
 
그림 속에는 누군가 읽어주길 기다리는 이야기가
사실주의적이면서 상징주의적인 호퍼의 그림에 대해 문학·미술평론가 롤프 G. 레너는 이렇게 말했다. “얼핏 리얼리즘에 충실한 듯한 호퍼의 회화는…눈에 보이는 현실을 복제하는 대신 빈 공간을 창조한다. 호퍼 작품의 심연은 서술 텍스트가 갑자기 끊길 때 느끼는 감정과 비슷하다. 이럴 때 비평가와 관람객들은 그 공백을 메우고자 노력한다.”
 
17명의 유명 소설가가 호퍼의 서로 다른 그림 17점에서 영감을 받아 쓴 단편 17점을 모은 『빛 혹은 그림자』(2016) 역시 같은 맥락이다(국문 번역판이 최근 나왔다). 이 책의 묘미는 호퍼의 그림들이 예측할 수 없는 방향으로 풀려나간다는 것이다.
 
‘뉴욕의 방’은 멜로 드라마가 연상되지만 ‘공포소설의 제왕’ 스티븐 킹은 전혀 다른 분위기로 해석했다. 반면 사실주의적이면서도 초현실주의적인 ‘바다 옆 방’은 그에 걸맞는 보르헤스적이고 칼비노적이기도 한 마술적 리얼리즘의 시적인 이야기로 니콜라스 크리스토퍼에 의해 풀려나간다.
 
이 책을 엮은 로런스 블록은 이렇게 말한다. “호퍼의 작품들은 이야기를 들려주지 않는다. 다만 그 그림들 속에 누군가가 읽어주기를 기다리는 이야기들이 들어 있음을 강렬하고도 거부할 수 없는 방식으로-암시할 뿐이다.” ●
 
 
글 문소영 기자 symo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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