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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지능에 밀려 실직할 그들 칼바람 버틸 ‘외투’는 있는가

[경영, 인문학에 길을 묻다] 고골의 『외투』
파티 뒤에 귀가하는 아카키-쿠스토디에프 그림(1905).

파티 뒤에 귀가하는 아카키-쿠스토디에프 그림(1905).

니콜라이 바실리예비치 고골(Nikolai Vasilievich Gogol, 1809~1852)의 대표적 단편소설 『외투(Shinel)』는 오늘날도 세계적으로 널리 애독되고 있는 걸작이다. 이 작품은 러시아 단편소설 전통의 토대를 이룬 작품으로서 사실성과 창의성이 결합한 수작으로 평가된다. 1809년 우크라이나의 소르친츠이에서 태어난 고골은 고등중학교 시절 연극이나 문학에 재능을 발휘하기 시작하였고 잡지에 몇 편의 습작을 싣기도 했다. 그가 22살이 되는 해에 작가로서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으며, 32살이던 1841년에 『외투』를 출간하면서 일약 유명작가의 반열에 올랐다. 러시아의 비판적 리얼리즘 시대를 연 작품으로 꼽히는 『외투』의 줄거리를 간략히 소개한다.

외투 빼앗겨 혹한 속 죽은 아카키
제정 러시아 소외된 하층민 상징
4차 산업혁명 몰아치는 지금
단순·반복작업 노동자 실직 위기
고루 혜택 누리는 공동체 숙제로

 
 
뼈 깎는 노력 덕에 외투 장만했지만 …
러시아 제국의 수도 상트페테르부르크에 아카키 아카키예비치라는 50대의 말단 9급 문관이 있었다. 그는 관청에서 서류를 필사하는 일을 했는데, 승진이나 부서이동도 없이 30년 가까이 한자리에서 같은 일을 담당하고 있다. 키가 작고 외모도 볼품이 없는 그를 관청의 동료 공무원들은 비웃고, 조롱하기 일쑤였다. 쥐꼬리만 한 봉급을 받고 살아가는 그를 힘들게 하는 것은 상트페테르부르크의 혹독한 겨울 추위였다. 그에게는 해진 외투밖에 없었기 때문이었다. 매일 한 끼를 굶는 등 뼈를 깎는 절약 노력 덕분에 그는 어렵게 새 외투를 장만하는 데 성공한다.
 
새 외투는 가격에 비해서 제법 훌륭한 것이어서 동료들은 모두 한턱내라고 성화였다. ‘착복식’을 마냥 거절하는 그에게 과장은 자신의 집에 와서 차를 마시는 것으로 새 외투 축하를 대신하자는 제안을 했고 그는 마지못해 받아들였다.
 
과장 집에서 개최된 파티는 자정이 넘어서 끝이 났고 아카키는 귀가를 위해서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춥고 어두운 거리로 나섰다. 깜깜한 광장을 거의 다 지날 무렵, 콧수염을 기른 건장한 사내들이 갑자기 달려들어 그의 외투를 벗기고 밀어서 쓰러뜨렸고 그는 눈 속에 내동댕이쳐졌다.
 
모스크바에 있는 고골의 동상

모스크바에 있는 고골의 동상

의식을 차린 다음 그는 재산 1호 새 외투가 없어졌다는 것을 뒤늦게 깨닫고 고함을 쳤고 광장을 가로질러 곧장 경찰 초소로 달려갔다. 경찰은 별것 아니라는 반응을 보이면서 내일 파출소장을 만나 이야기하면 외투를 찾아 줄 거라고 퉁명스럽게 말했다. 집으로 돌아온 아카키는 정말 미칠 것만 같았다. 어떻게 마련한 새 외투인데 산 지 며칠 만에 강탈을 당하다니. 경찰서장을 직접 만나 이야기해야 효과가 있다는 주위의 충고를 받아들여 그는 여러 번 시도한 끝에 서장을 어렵게 만날 수 있었다. 그런데 서장이 혹시 공무원으로서 불미스러운 어떤 곳을 출입한 것이 아니냐는 등 엉뚱한 질문을 늘어놓는 바람에 결국 아카키는 쫓기듯 서장실을 나오고 말았다.
 
아카키가 외투를 강탈당했다는 얘기는 관청 내 동료들의 동정을 샀다. 이들은 즉석에서 그를 위해 돈을 모으기로 했지만 정작 모여진 금액은 얼마 되지 않았다. 누군가가 유력인사한테 부탁하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조언하였다. 타 부서에 근무하는 그 유력인사는 권력 실세와 가까운 것으로 알려져 있었는데 그래서 그런지 거드름이 대단하였다. 자기가 출근할 때마다 부하 관리들로 하여금 굳이 현관까지 마중 나오게 할 정도였다.
 
그의 배경이 실제로는 그리 대단하지 않다는 설도 있었지만 관리들은 혹시나 하는 마음에 그를 특별대우하고 있었다. 여러 번의 시도 끝에 아카키는 그를 접견할 수가 있었다. 그의 용건을 다 듣고 난 그 유력인사는 갑자기 화를 버럭 내면서 고함을 질렀다. “당신은 사무절차라는 걸 모르나? 대체 어딜 찾아온 거요. 내가 그리 한가한 사람인 줄 아시오? 도대체 내가 누군지 알고 이러는 거요?” 오십 평생 처음으로 엄청난 질책을 받은 아카키는 거의 쓰러질 정도로 충격을 받았고 비서관의 부축을 받고서야 겨우 접견실을 나올 수 있었다. 집으로 돌아온 그는 며칠을 고열에 시달리며 헛소리를 하는 등 시름시름 앓다가 결국 숨을 거두고 만다.
 
아카키의 유해는 쓸쓸히 묘지에 매장되었다. 그의 자리는 금방 다른 필경사로 대체되었고 관청은 그가 없이도 아무 문제 없이 잘 돌아가고 있었다. 그런데 얼마 후 사람들은 추운 겨울밤에 광장을 배회하는 아카키의 유령을 보았다는 소문을 듣게 되었다. 그 유령은 광장을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갑자기 나타나 외투를 빼앗아 간다는 것이다.
 
아카키에게 독설을 퍼부어 쓰러지게 한 그 유력인사의 집에도 유령이 나타나 그의 호화스런 외투를 강제로 벗겨 갔다는 소문도 돌았다. 그런데 희한한 것은, 그 고관의 외투가 강탈당한 이후에는 아카키의 유령은 더 이상 나타나지 않는다고 한다. 아마도 그 유력인사의 외투가 유령한테 꼭 맞았기 때문인 것 같다는 의견이 지배적이었다. 아무튼 그 후로 누군가 외투를 강탈당했다는 소리는 상트페테르부르크 어디서도 들을 수 없게 되었다.
 
『외투』에는 소외된 사회의 하층민에 대한 작가의 동정과 인도주의 정신, 그리고 억압자에 대한 항의가 담겨 있다. 고골은 젊은 시절 한때 관리가 되려는 꿈을 안고 상트페테르부르크로 갔으나 돈과 연줄 없이는 살기 힘들다는 사실을 곧 깨닫고 좌절했던 경험을 가지고 있어 당시 부패하고 위선적인 제정 러시아 관료사회의 분위기를 잘 알고 있었다. 작가는 아카키를 고통받던 당시 말단관리들을 상징하는 인물로 등장시켰다고 볼 수 있다.
 
 
미국 시애틀 최저임금 1만7000원으로 인상  
고골의 단편 『외투』 표지

고골의 단편 『외투』 표지

필자는 얼마 전 상트페테르부르크를 다녀왔다. 10월이었지만 네바강에서 불어닥치는 칼바람은 참으로 매서웠다. 눈이 내리는 겨울에 변변한 외투 없이 살아가야 했던 아카키의 고단한 삶을 떠올렸고 광장을 지날 때면 혹시 여기서 외투 강탈사건이 일어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해 보았다. 오랜 세월이 지난 오늘날도 우리 주위를 돌아보면 소득이 최저생계비에도 못 미치는 도시 빈민들의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는 생각을 『외투』의 현장에서 느끼고 돌아왔다.
 
미국 시애틀에 사는 억만장자 닉 하나우어는 IT 투자로 자수성가한 벤처자본가이다. 그의 1년 수입은 1000만~3000만 달러 정도다. 거부인 그가 시애틀의 최저임금 인상안을 주도하여 최근 이 도시는 미국 최초로 시간당 최저 임금을 15달러(약 1만7000원)까지 올리기로 결정했다. 이 결정은 샌프란시스코, 로스앤젤레스 등 다른 도시의 최저임금 인상에도 영향을 미쳤다. 이런 분위기에 영향을 받아서인지, 대한민국의 최저임금위원회는 2018년 최저임금을 일 년 새 무려 16.4%를 인상한 7530원으로 책정하여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최저임금의 급격한 인상을 찬성하는 측에서는 닉 하나우어의 주장에 동조하여 다음과 같은 논리를 펴고 있다. 중산층과 서민의 소득이 오르는 것이 부자들에게도 도움이 된다. 그들의 소득이 늘면 기업이 생산한 제품을 하나라도 더 소비하게 되어 결국 기업은 이윤을 얻게 되고 기업이 일자리를 더 만들어 중산층 이하에게 그 혜택이 돌아온다는 설명이다.
 
그러나 최저임금의 파격적 인상을 반대하는 사람들의 반론도 만만치 않다. 최저임금 미만 근로자의 68.2%가 소상공인·영세중소기업(10인 미만)인 우리나라의 현실에서 최저임금 인상 시 이들의 어려움이 가중된다는 것이다. 최저임금 인상에 따른 소상공인·영세중소기업의 부담 증가는 고용감소를 가져온다는 것을 이들은 지적한다. 실제로 최저임금을 인상한 미국의 일부 주에서 고용감소가 현실화하자, 최저임금을 오히려 감축하고 있다는 사실도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최부잣집 유훈 ‘밥 굶는 사람 없게 하라’
‘사방 백 리 안에 밥 굶는 사람이 없게 하라.’ 이것은 300년 이상 부를 유지해 온 경주 최부잣집의 유훈 중 하나이다. 최저임금 인상 논쟁의 결론이 어떻게 나더라도 지금 우리의 주변에 변변한 외투 하나 없이 영하의 겨울을 나야 하는 아카키와 같은 서민이 없도록 한다는 최소한의 사회적 합의는 있었으면 한다. 서민 아카키의 하나뿐인 외투마저 지켜주지 못했던 제정 러시아는 결국 그 화려한 궁궐들과 온통 금으로 치장된 수많은 교회에도 불구하고 망하고 말았다는 역사의 교훈을 되새겨 본다.
 
4차 산업혁명이라는 파괴적 혁신의 바람이 불어닥치고 있는 지금 인공지능, 로봇 그리고 사물인터넷과 같은 새로운 기술이 인간의 노동을 빠른 속도로 대체하여 우리의 일자리를 심각하게 위협하고 있다. 이제는 아카키처럼 단순, 반복적인 일을 수행하는 대다수의 중산층과 서민들이 대량실직의 직격탄을 맞을 가능성이 점점 더 커지고 있다.
 
마르틴 루터의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이하는 올해 필자는 루터가 이상으로 추구하던 노동관을 되새겨 본다. “노동이란 공동체가 공동선을 향해 나아갈 수 있도록 개인이 노동을 통해 이웃을 섬기는 데 그 의미가 있다.” 일을 통해 집권계층이 아니라 사회 구성원들이 혜택을 고루 누리는 공동체 건설을 간절히 바랐던 비텐베르크의 한 젊은 개혁가의 꿈이 4차 산업혁명의 칼바람이 몰아치는 오늘날 우리에게 주어진 숙제가 아닐까 한다.
 
 
김성국 이화여자대학교 경영대학장
서울대 인문대 졸업, 독일 만하임대 경영학박사, 베를린 자유대 등 객원교수 역임. 대한리더십학회 초대 회장, 한독경상학회·한국인사조직학회 및 아시아-유럽미래학회 회장, 한국경영대학·대학원협의회 이사장. 『인적자원관리 5.0』『모멘트 리더십』등의 저서가 있다.

포함의 아픔을 아직도 그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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