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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 프런티어 도달한 나라들은 2~3% 성장도 높은 것

[김환영의 지식 톡톡톡] 글로벌 혁신 전도사 제프 멀건 NESTA 대표
제프 멀건 NESTA 대표는 어떻게 하면 인공지능(AI) 같은 신기술이 우리 삶을 개선할지를 고민하는 세계적 혁신 전문가다. 최승식 기자

제프 멀건 NESTA 대표는 어떻게 하면 인공지능(AI) 같은 신기술이 우리 삶을 개선할지를 고민하는 세계적 혁신 전문가다. 최승식 기자

영국은 ‘둥근 사각형’이 예시하는 형용모순(形容矛盾, oxymoron)으로 부강해진 나라다. 한때 ‘일몰(日沒) 없는 제국’을 구가한 영국은, 지난 수백 년 동안 종교적·정치적·경제적으로 상충(相沖)하는 세력들을 통폐합하는 ‘극단적인 중립’, 즉 ‘극중(極中)’이 실천적·실용적으로 가능하다는 것을 실증했다. ‘프로테스탄트이지만 가톨릭’을 지향하는 영국 성공회(聖公會)는 가톨릭·개신교·정교회에 이어 세계 4대 그리스도교 교단이다. 영국은 또한 사회주의와 민주주의를 결합한 사회민주주의, 마르크스주의 경제와 시장경제의 장점을 취합한 혼합경제의 전개에 핵심적 구실을 했다. 영국이 제시한 통합적·종합적·실용적 제3의 길은 오늘의 세계를 움직이는 주류다. 대영제국은 사라졌으나 세계를 사상적으로 지배하는 것은 영국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AI 등 과학과 예술이 만나는
창조경제 부문 GDP 10% 차지

경제의 미래 여는 열쇠는 새 지식
산업에 어떻게 심을지가 관건

콘텐트 분배 회사로 권력 이동
독과점 체제 깰 사회적 합의 필요

국가 혁신 순위 상층부는
사회민주주의 강한 나라가 차지


 
21세기 최고 화두인 혁신에 대해 영국은 어떤 새로운 종합의 길을 내놓고 있을까. 이 문제를 두고 고심하는 조직이 있다. 영국 국가과학기술예술기금(NESTA)이다. 1998년 설립된 이 ‘혁신 재단’은 마치 영화 007 시리즈의 제임스 본드처럼 혁신의 난제가 있는 현장에 모습을 드러낸다. 최근 아트센터 나비(관장 노소영)가 마련한 행사에서 강연하기 위해 NESTA 최고경영자(CEO) 제프 멀건이 방한했다. 그는 세계적인 혁신 전문가·운동가다. 12월에는 『빅 마인드: 집단지성은 어떻게 우리 세계를 바꿔놓을 것인가(Big Mind: How Collective Intelligence Can Change Our Mind·작은 사진)』가 프린스턴대 출판부에서 발간된다. 혁신에 대한 영국식 해법이 궁금해 그를 중앙SUNDAY 대회의실에서 지난달 23일 인터뷰했다.
 
당신은 혁신을 어떻게 정의하는가.
“아주 간단하게는 현실 세계에서 ‘작동하는 새로운 아이디어(new ideas that work)’다.”
 
혁신의 원천은 무엇인가.
“20~30년 전이라면 혁신은 대기업 연구소, 명문 대학, 정부에서 나왔다. 이제 수많은 사람이 창조자·발명가로 활동할 수 있는 세상이 도래했다. 오직 능력, 아이디어의 품질만 보는 개방적 시대가 개막했다.”
 
NESTA가 하는 일은 뭔가.
“우리는 다양한 방식으로 혁신을 후원한다. 우리는 공공의 이익에 도움이 되는 모든 혁신 활동을 후원하고 실제 행동에 나선다. 스타트업에 투자하는가 하면 민주주의·의료·교육·기술의 혁신이 필요한 연구를 수행한다. 우리는 이탈리아·독일·미국 등 40여 개국에서 활동하고 있다.”
 
혁신을 위해 어떤 국가 정책이 필요한가.
“과거 정부들은 대부분 국방·항공·제약 등의 분야에서 하드웨어 혁신 정책에 집중했다. 이제 서비스 부문 혁신, 예술 부문 혁신 그리고 정부 자체의 혁신이 필요하다. 특히 과학과 예술 사이의 경계가 혁신에 미칠 영향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고 있다.”
 
한국 정부는 ‘창조경제(creative economy)’에서 ‘혁신성장(innovation-led growth)’으로 경제정책의 테마를 바꿨다.
“우리들은 창조경제에 대해 많은 연구를 했다. 우리가 개발한 창조경제 측정 방법에 따르면 창조경제 부문은 국내총생산(GDP)의 10%를 차지한다. 인공지능(AI)이나 가상현실(VR) 등 과학적 지식과 예술이 만나는 장소이기도 한 창조경제 부문은 그 어떤 부문보다 빨리 성장한다. 이제 과학은 예술에서 큰 자리를 차지한다. 동시에 과학자들은 과학적 사고를 위해 예술에서 나오는 창의적인 생각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민주주의와 혁신은 어떤 관계인가.
“이 문제에는 두 가지 측면이 있다. 첫째, 사회가 ‘어떻게 집단지성을 동원할 것인가’의 문제다. 내 개인적인 관심사이기도 하다. 민주적이건 비민주적이건, 그 어떤 사회도 집단지성을 활용하지 않고서는 성공할 수 없다. 둘째, 현재 민주주의의 작동 방식 자체를 혁신해야 한다. 4년, 5년에 한 번 하는 선거라든가 의회·정당 정치는 19세기 발명품이다. 이제 서울을 비롯해 세계 곳곳에서 다양한 민주주의 실험이 진행되고 있다. 관료나 정치인들뿐만 아니라 일반 대중이 그들의 전문성을 살려 정책 결정 과정에 기여하고 있다. NESTA는 여러 나라에서 활용되고 있는 다양한 민주주의의 도구를 개발하고 있다.”
 
어떤 도구인가.
“예컨대 바르셀로나에서는 모든 시민이 새로운 아이디어를 제안하고 다른 시민의 아이디어에 대해 평가할 수 있는 디지털 플랫폼을 만들었다. 시 정부 지출의 우선순위를 정하는 것을 포함해 시정(市政)의 모든 측면에 이 플랫폼을 활용할 수 있다.”
 
한국은 두 자릿수로 경제가 성장하는 시대가 끝나 성장률이 2%, 3%로 떨어졌다. 선진국들도 마찬가지다. 혁신을 위해 아무리 노력해도 성장 측면에서 미래는 암울한 것 아닌가.
“성장의 속도가 느려진 것은 사실이지만 역사적으로 보면 기술의 프런티어에 도달한 나라들은 2%, 3% 이상 성장할 수 없다. 프런티어에서는 그게 정상이다. 선진국을 따라잡는 시대에는 6~8%가 가능하지만 프런티어에서는 2%, 3%도 상당히 높은 것이다. 일본처럼 성장률이 0%라면 걱정해야겠지만 2%, 3%는 건강한 성장률이다.”
 
영국은 제조업보다 서비스업에 더 치중하는 것 같다. 뭔가 잘못된 선택은 아닌가.
“영국·미국·프랑스의 제조업은 GDP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엇비슷하다. 10~11% 정도다. 독일이나 한국의 제조업 비중은 더 높다. 부문별 비중보다는 생산성이 중요하다. 창조경제가 중요한 이유다. 한 세대 전에는 경제의 생산성을 이끄는 진정으로 중요한 부문이 제조업이라고 생각했다. 18세기 경제학자들은 제조업이 아니라 농업이 경제를 이끈다고 믿었다. 20세기 후반부에는 제조업이 진정한 성장의 견인차이며 나머지는 모두 다 ‘가짜’라는 견해가 등장했다. 이제 중요한 것은 보건이건 영화건 디자인이건 건축이건 ‘새로운 지식, 새로운 아이디어를 어떻게 산업의 여러 분야에 심을 것인가’다. 이제 제조업은 중심에 놓여 있지 않다.”
 
서비스 산업이 중심이라는 이야기인가.
“아니다. 지식이 열쇠라는 말이다. 지식이 경제의 미래를 여는 열쇠다.”
 
지식산업의 미래는 밝지만 신문산업이나 출판산업의 미래는 암울한 것 같다.
“지난 20여 년 동안 영화·소설·음악 등의 분야에서 콘텐트 부문의 권력은 생산자에서 콘텐트를 분배하는 구글·페이스북·텐센트 같은 회사로 이동했다. 이들 회사는 콘텐트 산업이 만든 가치를 빨아들였다. 어떤 나라들은 이러한 현실을 불운의 소산으로 받아들인다. 에마뉘엘 마크롱의 프랑스나 앙겔라 메르켈의 독일 등 다른 나라들은 세금 징수와 같은 도구를 활용해 콘텐트의 생산과 배분을 둘러싼 독과점 체제를 타파할 수 있는 새로운 사회적 합의를 모색한다.”
 
브렉시트(Brexit·영국의 유럽연합 탈퇴)에 대해서는 어떤 입장인가.
“지난 수십 년 동안 우리는 벽을 허물었다. 경계는 덜 중요하게 됐다. 세상은 더 개방적이고 연결성이 보다 심화된 곳으로 바뀌었다. 오늘날 우리는 그러한 추세의 역류 현상을 목격하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장벽을 세우고 싶어 하고 영국은 브렉시트를 선택했다. 곳곳에서 민족주의가 발흥한다. 개인적으로는 그 누구에게도 좋은 결과를 안겨 줄 수 없는 건강하지 않은 추세라고 본다.”
 
영국은 유럽연합(EU)으로 다시 돌아갈 것인가.
“모르겠다. 그렇지만 그러길 개인적으로 희망한다. 브렉시트에도 불구하고 NESTA는 오히려 EU 국가에서 활동 영역을 넓히고 있다.”
 
보수적인 정당과 진보적인 정당 중에서 어느 쪽이 더 ‘혁신 친화적’인가.
“각종 국가 혁신 순위를 보면 상층부를 차지하는 것은 대체적으로 핀란드·스웨덴·스위스·캐나다 등 사회민주주의가 강한 나라들이다. 이들 나라는 사회적으로는 진보적, 경제적으로는 개방적이다. 독재적이거나 폐쇄적이거나 불평등한 나라들은 혁신이 굉장히 힘들다고 본다.”
 
세계 대부분의 나라가 꿈꾸는 정치·경제 체제는 어떤 모습인가.
“세계은행에서 유행하는 조크는 아프리카건 라틴아메리카건 아시아건 ‘모든 나라가 덴마크처럼 되기를 바란다’다. 이 말은 ‘농담 반, 진담 반’이다. 대부분의  민주주의 정치의 틀 안에서 성공적인 시장경제, 강력한 복지국가, 강한 사회제도를 열망한다. 순수한 형태의 시장경제는 유토피아가 아니라 지옥이다. 마찬가지로 공산주의는 그 누구에게도 유토피아가 아니다. 자본주의·공산주의 이분법은 우리가 극복해야 할 희망 없는 20세기형 담론이다.”
 
최근 유럽에서 포퓰리즘이 득세하며 사회민주주의를 위협하고 있다.
“10여 년에 걸친 긴 경제위기에 대한 응답으로 좌파·우파 포퓰리즘이 부상했다. 많은 이가 진보나 세계화에 대한 믿음을 상실했다. 포퓰리즘이 좋은 질문을 제기한다고 본다. 하지만 그들은 좋은 대답은 내놓지 못하고 있다. 그들은 과거 회귀를 주장한다. 그 어떤 나라도 퇴행은 힘들다. 현실적으로는 캐나다·핀란드에서 추구하는 ‘개혁적 사회민주주의’가 답이다. 양국은 리더십이 강력하고, 경제성장률과 사회지표가 양호하고 포퓰리즘이 약하다.”
 
 
김환영 논설위원
kim.whanyung@joongang.co.kr

포함의 아픔을 아직도 그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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