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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담과 트럼프 장벽

삶과 믿음
나는 돌담을 좋아한다. 높은 시멘트 담이 아니라 울퉁불퉁한 돌들로 나지막하게 쌓은 시골 돌담. 찬 서리를 맞아 붉게 물든 담쟁이 잎으로 덮인 돌담. 옆집의 가죽나무 잎들도 날아와 쌓이면서 마치 적비단(赤緋緞)으로 온몸을 두른 듯한 돌담. 길을 지나가던 꼬부랑 할머니들이 힐끔힐끔 돌담 너머로 넘겨다볼 때 눈인사를 나누는 것도 좋아하지만, 몰래 돌담을 넘어오는 어린 도둑괭이들의 정겨운 눈빛도 난 사랑하지. 며칠 전부터 날씨가 쌀쌀해져 돌담 옆 장독대에 기대어 자주 가을볕을 즐기곤 하는데, 그날따라 문득 까마득히 잊고 있던 김영랑 시인의 동요 몇 구절이 절로 입에서 흘러나왔어. “돌담에 속삭이는 햇발같이∼풀 아래 웃음 짓는 샘물같이∼내 마음 고요히……오늘 하루 하늘을 우러르고∼.”
 
이처럼 돌담이 좋아 10여 년 전 나는 이 낡은 한옥으로 솔가했지. 뒤란 쪽 돌담 위로는 해마다 호박 넝쿨을 올렸는데, 어느 늦가을 날 마른 넝쿨을 걷어 내다 허술한 돌담이 우르르 무너져 버렸어. 돌들은 주변 밭 가나개울에 지천인지라 손수레로 실어다 손수 돌담을 쌓았지. 주워 온 돌들로 한 칸 한 칸 돌담 올리는 재미가 얼마나 쏠쏠하던지! 돌담을 쌓을 때는 나름의 원칙이 있지. 오순도순 살아가는 이웃집 살림을 서로 넘겨다볼 수 있도록 높게 쌓지 않기. 돌담을 사이로 마주 서서 즐거운 얘기도 나누고 시난고난 힘들게 살아가는 얘기도 나눌 수 있도록 쌓기. 무엇보다 봄철의 앵두나 여름철의 애호박이라도 따면 돌담 너머로 이웃집 아낙을 소리쳐 불러 싱싱한 풋열매도 나눠 먹는 데 방해되지 않도록 쌓기….
 
하여간 오늘 아침에도 마당에 나와 볕을 즐기며 ‘돌담에 속삭이는 햇발같이∼’소리쳐 부르는데, 뒷집 이장 부인이 돌담 위로 빼꼼 얼굴을 내밀었어. 갑자기 머쓱해진 나는 노래를 멈추었지. “좀 시끄러웠죠. 히히, 오늘 볕이 너무 좋아서요!” “다름 아니구유, 우리 집 고추밭 추수가 끝났는데, 풋고추가 아직 쫌 달려있시유. 잡수시려면 따 가시유.” 충청도 사투리가 구수한 이장 부인. “네, 고마워요.” 문득 난 저 멀고 먼 나라의 트럼프가 바로 옆집에 산다면 어땠을까 상상해 보았어. 나직한 돌담이 아니라 높이 9m에 이르는 장벽을 쌓는다면! 그 장벽 끝에 아무도 넘어오지 못하도록 뾰족뾰족한 쇠붙이까지 달아 놓는다면! 아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앞으로 미국과 멕시코 사이에 벌어질 일이란다.
 
미국은 예수의 정신이 큰 영향을 끼친 나라로 알려져 있지. 이젠 그게 아닌 모양이다. 그 알량한 국익이란 것이 성스런 예수의 가르침보다 앞서는 모양이다. 살아생전 예수는 사람과 사람 사이의 모든 장벽을 허물었던 분이 아닌가. 종교의 벽, 민족이라는 벽, 피부색의 벽, 남녀의 벽, 빈부의 벽, 계급과 신분의 벽 등의 모든 장벽을 다 허물고 싶어 했지. 저 푸른 하늘엔 차별과 분리의 울타리가 존재하지 않음을 인류에게 알려 주기 위해 끝내 고통과 희생의 십자가까지 졌지. 그런데 저 아름다울 미(美)자 미국이란 나라는 스스로 이웃들과의 어울림을 내팽개쳐 버렸구나. 아름다움은 어울림에서 비롯된다는 것을 망각한 것인가. 돌담을 사이에 두고 으밀아밀 속삭이는 이웃 사이의 어울림이 아름다움의 모태(母胎)임을 잊어버리면 세상은 곧 지옥으로 변한다는 걸 왜 모를까.
 
 
고진하 목사
1987년 『세계의 문학』으로 등단. 김달진 문학상과 영랑시문학상을 수상했다. 현재 원주 한살림 교회를 섬기고 있다.

포함의 아픔을 아직도 그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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