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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가을 여행

일상 프리즘
지난달 중순 이전에 다녔던 직장의 선후배 5명과 강원도 여행을 다녀 왔다. 물론 주중여행이다. 주말은 현역에서 바쁘신 분들을 위한 시간으로 남겨드린다는 핑계를 대고. 영동고속도로에는 벌써 단풍이 제대로 들어 붉고, 노랗고, 갈색인 잎들이 앞다퉈 바람을 타고 손을 흔들듯이 움직인다.
 
오랜 지인들이다보니 가장 젊은 62세 친구가 막내가 되어 운전을 한다. 왕고참 선배는 70대 후반이다. 다들 오랫만이라 이야기가 끝이 없이 이어진다. 같은 회사, 같은 부서에서 20년 넘도록 동고동락을 했으니 학교 반창회하는 기분이다. 처음에는 가볍게 가족 근황에서 시작해 손자·손녀 얘기에 도달하면 다들 얼굴에 미소가 저절로 떠오른다. 회사일 한다고 자식들 얼굴도 거의 못보고 지나갔다는 말이 나오니 모두 고개를 끄덕인다. 예전에는 집사람이 아이들을 도맡아 키웠는데 요즘 젊은이들이 아이 키우는 것을 보면 집사람에게 미안한 생각이 든다는 얘기에도 동감한다.
 
한참 수다를 떨다보니 동해안에 도착했다. 바닷가를 산책할 예정이었지만 비가 내려 취소하고 숙소에 들어간다. 커피를 마시면서 저녁 시간을 기다리는데 이야기가 끝이 없이 이어진다. 남자들의 수다도 결코 여자들에게 지지 않겠구나 하는 생각이 절로 든다. 왕고참이 들려주는 막내의 신입사원 시절 에피소드에서부터 해외 주재원 시절의 생활, 성공했던 프로젝트, 실패 이야기 등등 다채롭다. 그때는 이사님이면 엄청 높은 분인줄 알았는데 이제 같이 늙어간다는 막내의 이야기가 나오자 고참은 사회 10년지기 운운하며 친구같이 지내자고 말을 받는다. 후배는 그때는 한살차이가 얼마나 큰지 아느냐고 그렇게 닥달을 하더니 이제는 친구냐며 절대로 안 된단다. 끝까지 영감님으로 모신다는 농담에 모두 크게 웃어버렸다.
 
저녁 식사에 반주까지 곁들이니 더더욱 이야기가 풍성해진다. 하기는 20년 넘는 종합상사 생활에 축적된 정보들이 오죽하겠나. 게다가 이런 이야기를 집에서 식구들에게 해도 시큰둥하고, 학교 동창들에게 해도 딴나라 이야기처럼 호응도 별로일 것이다. 같은 회사, 같은 분야에서 수십년을 매일같이 보던 사람들이라면 공감할 주제가 많을 수밖에 없다. 이번 여행을 통해 느낀 것은 서로가 외로운 거고, 대화상대가 없는 거라는 사실이다. 요즈음은 다들 자기 말하기만 좋아하고 남의 말을 잘 들어주지 않는다. 특히 나이가 들수록, 전문가 집단이 될수록 소위 다른 사람과 말이 안 통한다고 느끼는 경우가 많다. 친구는 술을 같이 마시거나 밥을 같이 먹는 사람이 아니라 이해해 주고, 말을 들어주고, 공감해 주는 사람이다.
 
오랫만에 하고 싶은 이야기를 다하고 호응도 좋았으니 정신 건강에 엄청 도움이 됐을 터다. 다음에 다시 여행하자는 얘기가 절로 나온다. 법륜스님은 곱게 물든 단풍이 봄꽃보다 아름답다고 했다. 이제 우리는 곱게 단풍물이 들도록 노력하는 수밖에 없겠다. 그러려면 다른 사람과도 잘 어울려야 하고, 잘 어울리려면 다른 사람 입장도 헤아려 줘야 할 것이다. 그래, 조신하게 살도록 하고 또 한번 선후배와 함께 여행을 떠나고 싶다.
 
 
안규문
전 밀레코리아 대표

포함의 아픔을 아직도 그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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