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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버리기, 박근혜 배우기

김진국 칼럼
박근혜 전 대통령이 자유한국당에서도 쫓겨났다. 홍준표 한국당 대표의 결단이다. “한국당이 한국 보수 우파의 본당으로 거듭나기 위해 ‘박근혜당’이라는 멍에에서 벗어나지 않을 수 없다”는 명분이다.

'차떼기'로 바닥에 떨어졌을 때
다 버리고 천막당사로 재기 성공

버리지 않으면 다시 설 수 없어
왜 지지해야 하는지 보여줘야

 
홍 대표는 이미 지난 8월 16일 대구에서 이 문제를 처음 꺼냈다. 그는 박 전 대통령의 정치적 책임을 거론했다. “박 전 대통령은 법정에서 ‘정치적으로 내가 모든 책임을 지겠으니 내 새끼들을 풀어달라’고 해야 했다. 어떻게 대통령을 지낸 분이 장관·수석비서에게 ‘내가 시켰나요’라는 질문을 할 수 있나.”
 
보수 인사 중에는 그런 아쉬움을 토로하는 이가 많다. 특히 박 전 대통령이 밤새 진술 조서를 꼼꼼하게 검토하며 토씨까지 고쳤다는 소식에 적잖이 실망했다. 한국당을 자유롭게 풀어줄 기회도 있었다. 그러나 쫓겨나는 모양이 됐다. 자유한국당으로서는 잘된 일일 수도 있다. 당의 의지로 박 전 대통령과 관계를 끊을 수 있게 됐다. 스스로 고백하고, 거듭날 기회를 얻었다. 이 기회를 어떻게 살리느냐에 따라 새 출발할 시간이 달라질 수 있다.
 
전두환 전 대통령은 친구인 노태우 전 대통령에게 그런 기회를 만들어줬다. 자신을 밟고 지나가도록 무대를 만들어줬다. 그는 내각제 개헌에서 4·13 호헌조치로 이어가며 직선제를 요구하는 국민 여론과 부딪치고 있었다. 그러다 노 전 대통령이 직선제를 수용하는 6·29선언으로 반기를 드는 모양새를 만들어준 것이다.
 
3월 31일 구속된 박 전 대통령은  수감생활 220일째를 맞고 있다. 화장은커녕 머리핀조차 깨끗하게 꽂을 수 없는 망가진 모습으로 연일 카메라 앞에 서야 했다. 아직도 새로운 혐의, 망신스러운 내용이 흘러나온다. 그런 박 전 대통령에게 더 많은 것을 바란다는 게 지나친 욕심인지 모르겠다. 그래도 그는 대통령까지 지낸 정치 지도자가 아닌가.
 
박 전 대통령은 이미 출당됐다. 국제변호사를 동원해 인권 문제를 거론해봐야 기대할 게 별로 없다. 그래도 지나간 정치 지도자들을 보면 몇 가지 시사점은 얻을 수 있다.
 
김종필(JP) 전 자민련 총재는 끝까지 버텼다. 충청이라는 지분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3당 합당으로 집권당에 참가했으나 김영삼 전 대통령 당선 이후 나올 수밖에 없었다. 김대중(DJ) 전 대통령과 DJP 연합을 했지만, 또 깨졌다.
 
지지층에 중요한 건 집권 가능성이다. 그게 흔들릴수록 JP는 위기에 빠졌다. 연합정권에서 이인자가 된 것도, 내각제도 집권 가능성을 보여주는 하나의 장치였다. 그게 흔들리자 지지기반마저 무너졌다. 집권을 마친 박 전 대통령은 어떨까.
 
노무현 전 대통령은 모두 버렸다. 퇴임 후 가족과 가까운 기업인에 대한 수사가 시작되자 그는 인터넷에 ‘모든 것은 내 책임’이라고 올렸다. ‘더 이상 여러 사람을 괴롭히지 말아달라’고 썼다.
 
노 전 대통령은 ‘사람 사는 세상’을 닫으며 “저는 이미 헤어날 수 없는 수렁에 빠져 있습니다. 여러분은 이 수렁에 함께 빠져서는 안 됩니다. 여러분은 저를 버리셔야 합니다”라는 글을 올렸다. 자신을 버리고 정치세력은 살리라는 부탁이다. 끝내 그를 버리지 않는 지지자들을 스스로 목숨을 끊음으로써 풀어주었다. “더 이상 노무현은 여러분이 추구하는 가치의 상징이 될 수가 없습니다”라고 했지만, 그 세력이 집권에 성공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을 짓누르고 있는 단어는 ‘억울’이다. 탄핵 얼마 전 만난 한 청와대 한 고위인사는 “대통령께서 굉장히 억울해하신다”라고 말했다. 지금 그의 마음에도 억울함이 가득하다. 그러나 이런 사태를 만든 것은 바로 그다. 최순실의 존재, 국정 개입, 기업을 압박하고, 돈을 받고…. 그 모든 것이 박 전 대통령의 비호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오랜 믿음이 배신당한 것이라 해도 그것 역시 그의 책임이다.
 
박 전 대통령이 다시 정치할 수 있을까. 박정희 부녀를 애틋하게 여기는 사람은 상당하다. 하지만 정치는 어렵다. 일부 지역 선거에서는 영향력을 발휘할지 모른다. 그렇지만 다수가 될 수 있겠나. 이렇게 만신창이가 된 박 전 대통령을 또 이용하려는 사람들과 더불어민주당이나 좋아할 일이다.
 
김대중 전 대통령 퇴임 이후 새천년민주당은 내홍을 겪었다. 친노(친노무현)세력과 호남세력이다. 친노는 열린우리당을 만들어 나갔다. 노 전 대통령도 입당했다. 새천년민주당은 DJ의 지지를 기대했다. 그러나 DJ는 열린우리당 손을 들어줬다. 그의 지지세력들이 대거 열린우리당으로 옮겼다. 주도권은 친노로 넘어갔지만 하나의 당을 유지할 수 있었다. 버림으로써 살아났다.
 
결국 해원(解冤)이 필요한 박 전 대통령 지지자들과 당은 따로 갈 수밖에 없다. 그것은 출당으로 해결되지 않는다. 아직도 진정한 결별로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당내 파벌싸움으로 비칠 뿐이다.
 
무엇이 문제인가. 누가 무슨 잘못을 했는가. 탄핵에 찬성해준 ‘배신자’인가. 국정 농단을 방치하고, 엄호한 돌격대인가. 정책 노선은 옳았는가. 박 전 대통령은 ‘생애주기별 맞춤형 복지’로 집권했다. 진보정책으로 기선을 잡았다. 그러나 집권하자 버렸다. 비서실장까지 지낸 진영 복지부장관을 쫓아냈다. 이제 한국당의 방향은 어느 쪽인가.
 
한나라당은 2002년 대선 ‘차떼기 사건’으로 바닥에 떨어졌다. 재기불능 상태에서 박 전 대통령은 천막을 쳤다. 이회창 총재와 완전히 결별했다. ‘차떼기’ 비난을 ‘천막당사’에 대한 찬사로 바꿔놓았다. 이어진 선거에서 연전연승했다. 정권도 되찾았다.
 
지금 한국당은 방어하느라 급급하다. 언제까지 과거를 끌어안고 갈 것인가. 버리지 않으면 다시 시작할 수 없다. 단순히 누구를 쫓아내는 거로는 모자란다. 왜 지지할 가치가 있는지 보여줘야 하는 일이 더 남아 있다.
 
 
김진국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jinkook@joongang.co.kr

포함의 아픔을 아직도 그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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