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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권세력의 '내로남불' 경제 민주화…정도전과 홍종학

유성운의 역사정치⑥
“나 정도전은 스승님과 동문들 선배들을 탄핵하고 유배를 보냈소이다. 바로 이것들 때문이었소. 고려 전체의 토지대장이오. 정치란 복잡해 보이지만 실은 단순한 것이오. 결국 누구에게 거둬서 누구에게 주느냐, 누구에게 빼앗아 누구에게 채워주는가. 나 정도전 지금부터 정치를 하겠소. 불을 질러라. 이 토지대장이 다 타버리고 나면 토지를 다 나눌 수밖에 없다.” 
 
지난해 방영된 SBS 사극 ‘육룡이 나르샤’의 한 장면입니다. 드라마틱했던 조선의 건국과정과 급진적 토지개혁론자였던 정도전을 재조명하며 인기를 모았습니다. 
정도전이 활동했던 고려 후기에는 권문세족(權門勢族)으로 대표되는 특권층의 대토지 소유가 심각한 상황이었습니다. 당시 올라온 상소에는 그 심각성이 여실히 드러납니다.  
“근년에 이르러 겸병이 더욱 심하여, 간흉한 무리가 주군(州郡)과 산천(山川)을 경계로 삼아…누세에 걸쳐 심은 뽕나무와 집까지 모두 빼앗아 가고, 우리 무고한 백성들은 사방을 흩어져버립니다.” (『고려사』 권78, 식화지, 우왕) 
”재상으로 마땅히 전 300결을 받을 자가 송곳을 세울만한 땅도 없고, 녹봉 360석을 받을 자가 20석에도 차지 못한다.“ (『고려사』 권78, 식화지, 우왕)
드라마 '육룡이 나르샤'의 정도전 [사진 SBS]

드라마 '육룡이 나르샤'의 정도전 [사진 SBS]

  
이런 환경 속에 고려말 핵심 국정과제는 부의 재분배, 즉 경제민주화로 귀결됐습니다. 특히 농업이 산업의 근간이었던만큼 토지 개혁 없이는 경제 민주화도 불가능했습니다. 
따라서 민심을 잡아야했던 조선 건국세력이 토지 개혁인 ‘과전법(科田法)’을 들고 나온 것은 너무나 당연한 귀결이었습니다. 심지어 조선의 건국을 막았던 세력조차 토지 개혁이 필요하다는 데는 의견을 같이 했습니다.
 
여말선초의 경제민주화, 과전법(科田法)
다양한 토지 개혁안들이 나온 가운데 가장 급진적인 방식을 호소한 것은 정도전입니다. 그는 고대 중국의 정전제(井田制)에 기초해 모든 토지를 국유화하고 백성에게 고르게 나눠주자고 주장했습니다. 토지를 경작하던 가장(家長)이 사망하면 국가에 반환하는 방식으로 일종의 사회주의적 성격이 강했습니다.  
태조 이성계. [사진제공=문화유산국민신탁]

태조 이성계. [사진제공=문화유산국민신탁]

하지만 결국 채택된 것은 조준이 설계한 과전법입니다. 정도전의 계획보다는 현실 타협적이었습니다.  
권문세족 등 일부 특권층이 사유화했던 수조지(땅에서 생산된 곡식이나 세금에 대한 소유권만 인정하는 토지)를 몰수하고, 이를 양반 및 관료 등에게 분배하는 것이 골자입니다. 단지 토지 수급자가 사망하면 다시 국가가 환수한다는 점은 정도전의 구상과 같았습니다. 
하지만 민간이 소유한 사유지에 대한 권리를 인정하는 등 전면적인 토지 재분배와는 거리가 있었습니다. 
과전법은 당초 정도전 안보다는 약화됐지만 이를 통해 국가 재정은 숨통이 확 트였습니다. 그동안 권문세족 등이 탈법적으로 소유한 수조지가 워낙 막대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조차도 과격하다는 비판도 적지 않았고, 개혁 세력도 알력이 벌어집니다. 특히 신진사대부 계층의 정신적 지주이자, 정도전의 스승이었던 이색이 과전법에 반대하고 나서며 이성계 세력에게 큰 타격이 됐습니다. 토지 개혁은 이성계를 왕위에 오르게 하려는 사전작업이라고 의심했던 정몽주도 이색 진영에 동조하고 나섰습니다.
『고려사』 열전 정몽주 편.

『고려사』 열전 정몽주 편.

학자들은 당시 이성계가 왕위까지 넘봤는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합니다. 하지만 이 갈등이 왕조가 바뀌는 역성혁명(易性革命)의 직접적인 도화선이 됐다는 데는 이견이 없습니다. 
 
이성계 세력은 이색을 귀양보내고 정몽주를 타살하는 등 반대파를 숙청한 뒤 1391년(공양왕 3년)에 토지 개혁을 단행합니다. 앞서 소개한 ‘육룡이 나르샤’에서 정도전이 “스승님과 동문들 선배들을 탄핵하고 유배를 보냈소이다”라고 말한 것은 이 부분입니다. 
그리고 이색과 정몽주가 염려했던 것처럼 과전법을 단행한지 1년도 채 지나지 않아 이성계는 공양왕으로부터 왕위를 양위받아 새 왕조를 개창합니다.
 
[유성운의 역사정치]
개국공신들의‘내로남불’ 경제민주화
특권층에 집중된 토지를 고르게 분배해 경제 민주화를 실행하려던 과전법은 곧 한계에 부딪힙니다. 약 반세기만인 1457년 세조는 과전법을 폐지하고 관료들에게 주는 토지도 대폭 줄였습니다. 이마저도 어려워지자 1555년 명종은 관원들에게 토지 지급 대신 녹봉만 주게 됩니다.
 
상황이 악화된 결정적 요인은 공신전(功臣田)입니다.
공신전은 말 그대로 공을 세운 신하들에게 나눠주는 토지였는데, 대대손손 세습이 가능하고 세금 면제의 혜택을 줬습니다. 조선은 태조부터 세조까지 건국한 지 100년이 지나기도 전에 개국공신 외에도 제1ㆍ2차 왕자의 난 때 활약한 정사공신ㆍ좌명공신, 수양대군의 집권을 도운 정난공신ㆍ좌익공신 등 6차례에 걸쳐 261명의 공신을 책봉했습니다. 공신전의 규모도 확대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미 태종 대에 “경기도 토지 14만 9000여 결 가운데 공신전이 3만 1000여결에 달한다(『태종실록』)”는 우려가 나올 정도였습니다.
KBS 대하드라마 '정도전'의 하 장면. 권문세족의 대토지 소유를 신랄하게 비판했던 정도전과 조준도 집권 후에는 막대한 토지 소유를 소유했다. 물론 '공신전'이라는 법적 절차를 거친 토지였다. [사진제공=KBS]

KBS 대하드라마 '정도전'의 하 장면. 권문세족의 대토지 소유를 신랄하게 비판했던 정도전과 조준도 집권 후에는 막대한 토지 소유를 소유했다. 물론 '공신전'이라는 법적 절차를 거친 토지였다. [사진제공=KBS]

 
그렇다면 공신전은 어느 정도의 규모였을까요?  
개국 직후인 1392년 9월 발표된 논공행상은 이랬습니다.  
1등 공신은 배극렴, 조준, 정도전 등 17명으로 각각 150~220결의 공신전과 15~30명의 노비가 주어졌습니다.
 여기에 배극렴과 조준은 1000호(戶)의 식읍(해당 지역의 조세를 받을 수 있는 권리)도 받았습니다. 또, 2등공신 11명에게는 공신전 100결과 10명의 노비가, 3등공신 16명에게는 공신전 70결과 노비 7명이 각각 주어졌습니다. 
 
결(結)은 고려ㆍ조선 시대의 토지 단위인데 비옥도에 따라 책정됐기 때문에 정확하게 몇 ㎡라고 단정짓기가 어렵습니다. 같은 1결이라고 해도 더 비옥한 곳은 크기가 상대적으로 작았기 때문입니다. 단지 최근의 연구들을 종합하면 비옥한 땅의 1결은 대략 9800여㎡ 정도로 추정됩니다.  
이를 대입해보면 1등 공신인 조준 등이 받은 토지는 215만6000㎡, 약 65만3000평 정도입니다.  
서울 청담동 명품거리. 정도전, 조준 등이 받은 65만3000평은 약 2.15㎢로 청담동(2.33㎢) 면적에 근접한 크기다. [중앙포토]

서울 청담동 명품거리. 정도전, 조준 등이 받은 65만3000평은 약 2.15㎢로 청담동(2.33㎢) 면적에 근접한 크기다. [중앙포토]

수도권의 알짜배기 땅 65만3000평이라면 예나 지금이나 손꼽히는 부유층에 오르는데 손색이 없는 재산입니다. 다른 공신까지 합치면 공신전의 규모는 가히 천문학적인데, 이 막대한 토지에서 세금도 거두지 못하고, 특정 가문에만 세습됐으니 국가 재정이 악화될 것은 명약관화였습니다.
이 특권을 누린 계층이 고려 말 권문세족의 대토지 소유를 비판하고, 이를 몰수하는 개혁을 추진했던 인사들이라는 점은 역사의 아이러니라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과연 누구를 위한 개혁이었는가’라는 반문이 나올 법 했습니다.  
 
최근 홍종학 중소벤처기업부 장관 후보자의 ‘쪼개기 증여’ 등을 놓고 논란이 한창입니다. 홍 후보자가 그간 ‘과도한 부의 대물림’에 대해 비판했다는 전력을 들어 ‘내로남불’이라는 비판이 적지 않습니다.  
이 외에도 부인과 딸이 ‘2억 2000만원 계약서’를 쓰고 채무관계를 맺거나 장모에게 토지만 증여받고, 건물은 구입하는 등 각종 증여세 회피 의혹이 이어지고 있다.  
 
청와대 측이 “(도덕적 잣대가 아닌) 법적인 문제를 보도해 달라”거나 “합법적 절세”라고 옹호한 것도 논란을 부추겼습니다. 노회찬 정의당 의원은 ”이 정부가 어떤 철학과 가치로 무장하고 있는가 의문을 갖게 되는 지점“이라고 꼬집었습니다.  
그동안 재벌 가문의 미성년자나 대기업 공익재단의 주식 보유에 대해 ‘편법 증여’라며 비판해 온 더불어민주당도 속앓이를 하는 중이라고 합니다.  
홍종학 중소벤처기업부 장관 후보자가 3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에 마련된 청문회 준비 사무실로 출근하고 있다.[연합뉴스]

홍종학 중소벤처기업부 장관 후보자가 3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에 마련된 청문회 준비 사무실로 출근하고 있다.[연합뉴스]

권문세족 vs 신진사대부? 민주당=서민층, 한국당=부유층?  
한 가지만 더 짚고 가려고 합니다.
그간 역사 교과서에서는 조선 건국 과정을 '권문세족 vs 신진사대부'라는 대결구도로 설명해왔습니다. ‘친원파=수도권 부유층=고려 유지=권문세족’, ‘친명파=지방 중소지주=조선 건국=신진사대부’라는 구도입니다. 
 
하지만 최근 학계에서는 이같은 이분법에 대해 반박하는 연구도 적지 않습니다.
예를 들면 조선 건국 세력에도 대토지를 소유하고 친원파였던 소위 권문세족들이 다수 참여했다는 것입니다.  
과전법을 설계한 조준이 대표적인데, 그가 속한 평양(平壤) 조씨는 손꼽히는 권문세족 집안이었을 뿐 아니라 조일신 등 유명한 친원파가 나온 가문이기도 합니다. 또 과전법 시행 후 정권을 장악한 이성계의 주도로 단행된 인사를 보면 핵심인사 63명 중 26명이 권문세족 가문이라는 연구 결과도 있습니다. 
 
반대로 조선 건국에 반대한 정몽주ㆍ이색 세력에는 오히려 지방출신의 신진사대부 그룹도 적지 않았습니다.
과전법에 반대한 정몽주-이색 세력에 가담했던 이들 중 상당수가 지방으로 낙향해 학문 정진과 후진 양성에 전념합니다. 조선 성종대에 주요 공신 가문(훈구·勳舊)의 대토지 및 관직 세습에 대해 비판하며 사회개혁을 추진하는 사림(士林) 세력이 바로 이들의 후예입니다. 그리고 사림층과 훈구파의 갈등은 각종 사화(士禍)로 이어지며 조선에 피바람을 몰고 오게 됩니다.  
20대 국회의원 정당별 평균 재산. 전체 의원 평균 재산은 새누리당이 더불어민주당보다 많지만 20대 초선의원만으로 한정하면 민주당이 더 많다. 2016년 5월 기준.

20대 국회의원 정당별 평균 재산. 전체 의원 평균 재산은 새누리당이 더불어민주당보다 많지만 20대 초선의원만으로 한정하면 민주당이 더 많다. 2016년 5월 기준.

‘민주당=서민층’, ‘한국당=부유층’이라는 기존의 이분법적 구도에 대해서도 생각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20대 국회가 구성된 직후 재산등록신고에 따르면 민주당 소속 국회의원들의 평균 재산은 새누리당 42억627만원,더민주당 36억6080만원으로 새누리당이 다소 많았습니다. 하지만 20대 초선의원만 대상으로 했을 때는 달랐습니다. 민주당이 52억5000만원으로 새누리당(26억5000만원)보다 더 많았습니다.
국회의원 중 가장 많은 재산을 신고한 김병관 민주당 의원 [중앙포토]

국회의원 중 가장 많은 재산을 신고한 김병관 민주당 의원 [중앙포토]

게임업체 대표인 김병관 의원(20242억8983만원)이나 유명 어학원을 운영한 박정 의원(237억 9138만원) 등이 평균치를 올리기도 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운동권 일색이었던 과거와 달리 자수성가한 사업가나 전문직 인사들이 민주당에 참여한다는 반증이기도 합니다. 
그런 점에서 민주당 소속의 홍종학 장관 후보자의 각종 편법 증여 의혹은 문제삼을 수 있겠지만 ‘재산이 55억원이나 된다’는 따가운 시선은 과도한 비난이라는 목소리도 있습니다. 
유성운 기자 pirate@joongang.co.kr
[유성운의 역사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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