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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속으로] 1993년 북핵 위기 때 클린턴, 황영조 금메달 언급해 기립박수

역대 미 대통령 한국 국회 연설
11월 7일 방한 예정인 트럼프 미국 대통령.

11월 7일 방한 예정인 트럼프 미국 대통령.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방한이 사흘 앞으로 다가왔다. 7∼8일 방문하는 트럼프 대통령은 8일 오전 10시 국회에서 연설에 나선다. 일본(5~7일), 중국(8~10일) 방문에선 없는 일정이다. 우리도 오랜만인데 정확하겐 24년 만이다. 1993년 빌 클린턴 대통령이 마지막이었다. 조지 W 부시 대통령과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2000년부터 2016년까지 각각 세 차례, 네 차례 방한했지만 국회 연설은 하지 않았다.
 
트럼프 대통령이 국회 연설을 통해 한·미 동맹을 강조하면서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을 막기 위한 강력한 제재와 압박 필요성을 강조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허버트 맥매스터 미국 국가안보회의(NSC) 보좌관은 2일(현지시간) 백악관에서 “대통령은 오래되고 유익하며 호혜적인 한·미 동맹과 한국의 엄청난 성공 기록에 대해 말할 것”이라고 했다.
 
여기에 더해 ‘아메리카 퍼스트’를 주창해 온 만큼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재협상 등 통상 문제를 거론할 것이란 분석도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한국 등 아시아 순방 목적을 “미국 경제와 국가 안보의 우선 순위를 진전시키기 위해서”라고 밝힌 일도 있다.
 
그렇다면 이전 미국 대통령의 국회 연설은 어떠했을까. 지금까지 드와이트 아이젠하워, 린든 존슨, 로널드 레이건, 조지 H W 부시(아버지 부시), 빌 클린턴 대통령 등 5명이 했다. 아버지 부시 대통령의 경우 두 차례였다. 미 대통령들의 연설은 대북 관계가 파행으로 치달은 시점에 주로 이뤄졌다. 화두는 단연 ‘북한’이었다.
 
1960년 6월 김포공항에 도착한 아이젠하워 대통령을 허정 국무총리 등 3부 요인이 맞았다.

1960년 6월 김포공항에 도착한 아이젠하워 대통령을 허정 국무총리 등 3부 요인이 맞았다.

◆드와이트 아이젠하워 대통령(1960년 6월 20일)=아이젠하워 대통령이 한국을 찾은 건 6·25 전쟁 발발 10주년이 되던 해였다. 그는 휴전 후 미 대통령으로선 첫 방한이었다.
 
그해 한국에선 4·19 혁명이 있었다. 6일 뒤인 25일 이승만 대통령이 하야했다. 아이젠하워 대통령이 김포공항에 내렸을 때 그를 맞은 건 당시 허정 국무총리였다. 그는 “지난 몇 달간 한국의 사태를 보니 한국민들이 자유에 대한 권리와 의무를 잘 알고 있는 것을 표출했다”며 “공산국 침략 10주년을 앞두고 평화와 자유로운 친선을 위해 우리의 마음을 바치자”고 말했다.
 
존슨 대통령은 66년 11월 국회 연설을 통해 ’공산주의자와 단호히 싸워야 한다“고 말했다.

존슨 대통령은 66년 11월 국회 연설을 통해 ’공산주의자와 단호히 싸워야 한다“고 말했다.

◆린든 존슨 대통령(1966년 11월 2일)=6년 뒤인 66년 11월 2일 린든 존슨 대통령이 두 번째 국회 연설자로 나섰다. 10월 31일 2박3일 일정으로 한국에 온 존슨 대통령을 김포공항에서 맞은 건 박정희 대통령 부부였다. 당시 존슨의 현안은 베트남전쟁이었다. “미국만의 외로운 전쟁을 하고 있다”는 미국 내 반발을 누그러뜨리기 위해 아시아 참전국들을 순방하는 길이었고 한국은 마지막 기착지였다. 두 정상은 주한미군을 감축하지 않는 대신 한국이 베트남에서 군사적 노력을 계속하기로 합의했다. 존슨은 35분간 국회 연설을 했다. 그는 한국의 베트남전 참전에 감사했고 한국이 한 세대도 안 돼 새로운 나라로 재탄생했다고 찬사를 보냈다.
 
83년 11월 레이건 대통령이 국회에서 한·미 상호방위조약을 강조하는 등 25분간 연설했다.

83년 11월 레이건 대통령이 국회에서 한·미 상호방위조약을 강조하는 등 25분간 연설했다.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1983년 11월 12일)=미국 대통령이 다시 한국 국회에서 연설한 건 17년 후였다. 83년은 한·미가 상호방위조약을 맺은 지 30년 되는 해였다. 그해 9월 1일 대한항공(KAL) 007편 여객기를 소련(현 러시아)이 피격했다. 10월 9일엔 북한의 버마(미얀마) 아웅산 폭탄 테러 사건으로 서석준 부총리와 이범석 외무부 장관 등 17명이 숨졌다. 미·소 간 대립이 극심한 시기였다. 레이건 대통령의 당시 한·일 방문은 “자유세계의 최전방을 간 것”이란 평가를 받았다.
 
레이건 대통령은 11월 12일 도착, ‘꽉 찬’ 48시간을 체류했다. 그는 국회 연설에서 KAL기 피격 사건 등을 거론하며 북한과 소련 등 공산국가들의 테러를 비판했다. 그러면서 “유명을 달리한 희생자들을 위해 잠시 묵념을 드리자”고 말하기도 했다. 과거와 달랐던 건 레이건 대통령이 “한국은 우리들의 아홉 번째로 큰 무역 상대국”이라며 “한국이 규제적 행동(관세)으로 발전이 위태롭게 되는 일이 없게 해 달라”고 요청했다는 사실이다. 경제성장에 따라 한국의 위상이 올라갔음을 반영한 발언이었다.
 
아버지 부시 대통령은 89년 2월 국회 본회의장을 찾아 주한미군 감축은 없다고 밝혔다.

아버지 부시 대통령은 89년 2월 국회 본회의장을 찾아 주한미군 감축은 없다고 밝혔다.

◆조지 H W 부시 대통령(1989년 2월 27일, 1992년 1월 6일)=아버지 부시 대통령은 재임 중 두 차례 한국에서 국회 연설을 했다. 첫 방한인 89년, 국내에선 노태우 대통령의 7·7 선언(남북 동포의 상호 교류, 이산가족 생사 확인 추진 등 민족 자존과 통일 번영을 위한 대통령 특별선언)으로 남북 대립은 상대적으로 누그러진 상황이었다. 반면 대학생을 중심으로 한 반미 데모로 서울 거리는 최루탄 연기로 얼룩지곤 했다. 당시 방한은 ‘한나절’(5시간) 체류였다. 그는 국회에서 주한미군 철수 불가와 안보적 협력 강화를 재차 약속하면서 “한국은 중요한 무역 강국이고 1급 경쟁자가 됐다. 솔직하게 말해 우리 양국 관계가 더 튼튼해지기 위해서는 아직 해야 할 일이 많다”고 했다. 시장 개방을 요구한 것이다.
 
3년 만에 방한한 부시 대통령이 국회 연설을 마친 뒤 박준규 당시 국회의장과 악수를 했다.

3년 만에 방한한 부시 대통령이 국회 연설을 마친 뒤 박준규 당시 국회의장과 악수를 했다.

부시 대통령은 3년 뒤 다시 방한했다. 안보를 주고 경제를 얻는 부시 대통령의 기조는 두 번째 국회 연설에서 더욱 뚜렷해졌다. 그는 주한미군 감축 계획을 보류했다고 알리며 “군사동맹으로 시작한 한·미 관계는 이제 경제 이익을 공유하는 동반자 관계로 성장했다. 한국이 국제 무역제도로부터 받은 혜택에는 심오한 책임감이 수반돼야 한다”고 말했다. 이날 연설 때 노무현·이철·박영숙 의원 등 야권 의원 12명은 대등한 한·미 관계를 요구하며 불참했다.
 
부시 대통령으로선 한 번 더 국회 연설을 한 적이 있는데 한·미 동맹 100주년이던 82년 부통령 신분으로다.
 
1993년 7월10일 클린턴 대통령이 연설 후 국회 본회의장을 나서며 의원들과 악수를 나눴다.

1993년 7월10일 클린턴 대통령이 연설 후 국회 본회의장을 나서며 의원들과 악수를 나눴다.

◆빌 클린턴 대통령(1993년 7월 10일)=클린턴 대통령의 국회 연설은 93년 7월 10일 이뤄졌다. 북한이 핵확산금지조약(NPT)에서 탈퇴(93년 3월 12일)한 지 4개월이 지난 시점으로 북핵 위기가 극도로 고조됐던 시점이다. 그는 “북한이 핵무기를 개발하고 대량 파괴 무기를 판매하는 것은 국제사회의 책임 있는 일원이 아님을 말해 주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날 연설 말미에 황영조 선수가 올림픽에서 마라톤 금메달을 딴 것을 언급하며 “한국인의 정열과 인내를 높이 평가한다”고 하자 의원들이 기립박수를 보내기도 했다.
 
[S BOX] 나토·사우디 방문 때처럼 … 트럼프 돌출 연설 주의보
존 켈리 백악관 비서실장이 지난 9월 19일 미국 뉴욕 유엔총회장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연설을 듣던 도중 얼굴을 감싸쥐고 있다. [AP=연합뉴스]

존 켈리 백악관 비서실장이 지난 9월 19일 미국 뉴욕 유엔총회장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연설을 듣던 도중 얼굴을 감싸쥐고 있다. [AP=연합뉴스]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Make America great again)’.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후보 시절 내세운 캠프 슬로건이다. 그는 타국을 찾을 때마다 미국 우선주의를 앞세운 돌출 발언을 해왔다. 8일 트럼프 대통령의 국회 연설을 앞두고 한국 정치권이 긴장하는 이유다.
 
지난 5월 25일 트럼프 대통령은 벨기에 브뤼셀의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정상회의 연설을 통해 “28개 회원국 중 23곳이 방위비를 여전히 내지 않고 있다. 이들은 엄청난 돈을 미국과 나토에 빚지고 있다”고 말했다. 나토 회원국들이 국내총생산(GDP)의 2%를 국방비로 지출하기로 약속했지만 미국과 영국·폴란드·그리스·에스토니아 등 5개국만 이를 지킨다는 데 대한 지적이다. 현장에 있던 나토 정상들은 불편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이날 트럼프 대통령은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과 ‘쥐어짜기 악수’를 해 눈길을 끌기도 했다.
 
같은 달 22일 사우디아라비아 리야드에서 열린 ‘이슬람 아랍·미국 정상회담’ 기조연설에선 “이란은 대량 학살을 공개적으로 이야기하는 정부”라며 “모든 양심적인 나라는 이란을 고립시키는 데 협력해야 한다”고 했다. 중동 패권을 놓고 경쟁을 벌이는 두 국가 중 사우디는 품고 이란은 내친 것이다.
 
김록환 기자 rokany@joongang.co.kr
 
박성훈 기자 park.seongh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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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