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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수활동비 흑역사…국정원 예산 대통령에 유입 혐의는 처음

이재만(51) 전 청와대 총무비서관과 안봉근(51) 전 부속비서관이 국가정보원 특수활동비를 상납받은 혐의(뇌물수수 및 국고손실)로 구속되면서 검찰의 수사는 박근혜 전 대통령으로 향하고 있다. 박 전 대통령은 이·안 전 비서관의 구속영장에 공범으로 적시됐다.
 

과거에는 국고 손실·횡령 혐의 적용
이·안 전 비서관 직무 성격 고려 '뇌물'로
박 전 대통령 '공범' 적시도 전례 없어

정보기관의 특활비를 빼돌려 횡령이나 국고손실 혐의가 적용된 사례는 과거 정부에서도 있었지만, 이번 사건처럼 뇌물죄로 의율된 것은 처음이다. 대통령이 공범으로 지목된 것도 전례없는 일이다. 서울 서초동의 한 변호사는 “두 비서관의 직무를 고려해 뇌물죄를 적용한 것으로 보이며 따라서 박 전 대통령이 혐의에서 자유로울 수 없을 것 같다”고 말했다.

 
 
국정원으로부터 돈을 받은 혐의로 구속된 안봉근 전 청와대 국정홍보비서관과 이재만 전 청와대 총무비서관(오른쪽) [연합뉴스]

국정원으로부터 돈을 받은 혐의로 구속된 안봉근 전 청와대 국정홍보비서관과 이재만 전 청와대 총무비서관(오른쪽) [연합뉴스]

 
터졌다 하면 정권 핵심으로 향해
 
국가정보원을 비롯한 국가기관의 특수활동비를 ‘건드린’ 사람과 사건의 실체는 꼬투리가 잡히는 순간 정권의 위기로 이어졌다. 김영삼 정부 때 안기부 자금이 정치권으로 흘러 들어간 이른바 '안풍(安風) 사건'이 그랬고,노무현 정부 때 정상문 청와대 총무비서관의 뇌물 및 대통령 특수활동비 횡령 사건 등이 그랬다.
 
김대중 정부 때인 2001년 검찰은 YS 정부 시절의 민주자유당과 그 후신인 신한국당이 1197억원의 국가안전기획부(국정원 전신) 예산을 빼돌려 1996년 총선 등에 사용했다고 발표했다. 민자당과 신한국당 사무총장을 지낸 강삼재 전 의원과 김기섭 전 안기부 기획조정실장이 주범으로 지목됐다. 이들에게는 안기부 예산을 횡령한 혐의(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국고손실)가 적용됐다.
 
강 전 의원은 차명계좌(위장계좌)로 관리되던 안기부 특수활동비를 현찰로 받아 측근 명의의 계좌에 넣어두고 제15대 국회의원 선거자금 등에 사용한 혐의를 받았다. 검찰은 모두 940억원의 안기부 예산이 이런 방법으로 강 전 의원에게 전달됐다고 봤다.
 
안풍사건의 주역 강삼재 한나라당 의원이 재판정으로 가는 도중 기자들의 질문을 받고 있다. [중앙포토]

안풍사건의 주역 강삼재 한나라당 의원이 재판정으로 가는 도중 기자들의 질문을 받고 있다. [중앙포토]

 
안기부 예산인지 불분명하다는 판결도
 
그러나 법원은 강 전 의원과 김 전 실장이 안기부 예산을 일부 빼돌린 사실을 인정했지만, 국고 손실 혐의는 무죄(2004년 항소심)로 판단했다. 강 전 사무총장이 받아 쓴 돈이 안기부 위장계좌에서 일부 나온 점이 인정되지만, 이 계좌의 돈을 안기부 예산이라고 볼 증거가 부족하다는 게 이유였다. 결국 강 전 의원은 증재 혐의에 대해서만 벌금 1000만원을, 김 전 실장은 무죄가 확정됐다.
 
2009년에는 노무현 정부 때 청와대 총무비서관을 지낸 정상문씨가 대통령 특수활동비를 빼돌린 혐의로 구속됐다. 정 전 비서관은 박연차 태광실업 회장으로부터 3억원의 뇌물을 수수하고, 대통령 특수활동비 12억5000만원을 횡령한 혐의를 받았다. 검찰은 그에게 뇌물과 국고 손실 혐의를 적용했다. 법원이 혐의를 모두 인정하면서 정 전 비서관은 징역 6년형을 선고받았다.

 
부장검사 출신의 중견 변호사는 "안풍 사건 때에는 국정원 돈이란 명백한 증거가 부족했지만 이번에는 국정원 관계자의 구체적인 진술 등으로 국정원 예산이 청와대로 간 게 확인된 첫 사례여서 입증 과정이 다를 것 같다"고 말했다.
 
강 전 의원은 자신이 받은 돈이 안기부 예산인 줄 몰랐다는 주장을 폈다. 또 안기부가 관리하던 위장계좌에 있던 돈이 안기부 예산인지도 불명확해 국고 횡령이 성립하지 않는다고도 주장했다. 이 주장은 법원의 무죄 판단의 이유로 받아들여졌다.
 
정상문 전 비서관은 특수활동비 빼돌린 혐의
 
정 전 비서관의 경우 국정원이 아닌 대통령의 특수활동비가 문제가 됐다. 정 전 비서관은 “대통령의 특활비는 대통령에게 지급되는 순간 집행 행위가 종료돼 국고로서의 성격이 상실된다”고 주장했다. 대통령에게 특활비가 전달되고 나면 개인의 것으로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정 전 비서관은 “특활비와 관련해 노 전 대통령이 ‘나에게 가져오지 말고 총무비서관이 직접 관리하면서 알아서 쓰고, 필요하면 별도로 연락하겠다’고 보관과 사용을 위임했다”고도 했다.
 
대통령 특수활동비를 빼돌린 혐의로 징역 6년을 선고받은 정상문 전 청와대 총무비서관. [중앙포토]

대통령 특수활동비를 빼돌린 혐의로 징역 6년을 선고받은 정상문 전 청와대 총무비서관. [중앙포토]

 
하지만 이런 주장은 법원에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당시 서울중앙지법 형사22부(부장 이규진)는 “특활비는 업무상 정당하게 집행될 때까지 국고로서 성격이 소멸되지 않고 계속 유지된다”며 “따라서 정 전 비서관이 대통령의 명에 따라 이를 집행한 후 남은 금액을 따로 보관한 것은 국고의 횡령으로 보아야 한다”고 밝혔다.
 
뇌물 혐의에 대해서도 법원은 정 전 비서관의 직무에 주목했다. 법원은 “뇌물죄에서 말하는 ‘직무’에는 법령에 정해진 직무뿐만 아니라 결정권자를 보좌하거나 영향을 줄 수 있는 직무 등도 포함된다”고 설명했다. 또 “뇌물성을 인정하는 데 특별한 청탁이 있어야만 하는 것도 아니다”고 덧붙였다.
 
법원이 밝힌 정 전 비서관의 직무는 ▶청와대 인사추천위원회 참석 ▶대통령 보좌와 소통 업무(대통령 면담 일정 등) 담당 ▶대통령의 지시사항 해당 비서관에 전달 ▶청와대 수석보좌관 회의 및 비서실장 주재 직속실 회의 참석 등이었다.
 
정 전 비서관과 같은 청와대 총무비서관이었던 이재만 전 비서관의 직무도 동일하게 적용될 수 있다는 게 법조계의 시각이다.
 
한국당 “DJ 정부 국정원 자금도 전용돼”
 
정치권에서는 국정원 특수활동비 전용은 과거 관행이었다는 주장도 나온다. 자유한국당은 과거 민주당 정권에서도 국정원 특활비가 전용된 적이 있다며 김대중 정부 때 사례를 꺼내들었다. 장제원 한국당 대변인은 지난 2일 “DJ(김대중)·노무현 정부를 비롯한 역대 정부의 모든 국정원 특수활동비에 대해 투명하게 낱낱이 공개하라”고 압박했다. 그러면서 DJ 정부 때 국정원 자금이 정치권에 전해진 사례가 있다고 주장했다. 장 대변인은 “2001년 대검 중수부가 김대중 전 대통령 차남 홍업씨를 수사할 때 임동원·신건 전 국정원장이 3500만원을 준 것을 밝혀냈다”고 말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차남 홍업씨도 국정원 자금을 받았다는 의혹을 산 적이 있다. [중앙포토]

김대중 전 대통령의 차남 홍업씨도 국정원 자금을 받았다는 의혹을 산 적이 있다. [중앙포토]

 
이 내용은 강 전 신한국당 사무총장의 안풍 사건 판결문에도 들어 있다.
 
판결문 기록에 따르면 1999년과 2001년 5월경 임동원·신건 전 국정원장이 국정원 관리 계좌에서 인출된 수표를 홍업씨에게 떡값 명목으로 교부하고 자신들의 돈으로 그 돈을 계좌에 입금해 보충했다고 한다. 2002년 7월 대검 중수부가 수사 결과를 발표했을 때 두 사람은 돈을 건넨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공금이 아닌 개인 돈”이라고 해명했다.
 
당시 법원은 이 사례를 강 전 사무총장에 대한 국고 손실 혐의를 무죄로 판단한 근거로 삼기도 했다. 국정원 관리계좌에 들어있는 돈의 출처와 목적을 고려할 때 여러 가지 성격의 자금들이 모여 있어 이를 국정원 예산으로만 한정하긴 어렵다는 게 당시 법원의 판단이었다.
 
유길용 기자 yu.gily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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