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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의 당뇨폰' 안 되려면···KDI "혁신성장? 규제개혁이 먼저"


“규제개혁 없이는 ‘냄비 속 개구리’ 신세 못 면해”
 

대표 국책연구기관인 KDI도 규제개혁 촉구에 동참
“혁신성장 위해서는 규제개혁 선행돼야”
규제 개혁 없이는 제2 당뇨폰, 3D프린터 사태 못 면해
경제 전문가 설문조사서 88%가 “한국경제는 냄비 속 개구리 신세” 답변
“냄비 탈출할 시간도 얼마 안 남았다” 진단

#지난 2004년 벤처기업 인포피아가 LG전자와 손잡고 일명 '당뇨폰'으로 불리는 기기를 출시했다. 테스트 막대로 혈당 등을 측정해 혈액 정보를 휴대폰에 옮겨 담을 수 있는 세계 최초의 혁신적 제품이었다. 하지만 이 제품은 국내에서 고작 2000대를 팔고 생산이 중단됐다. 혈당 체크 기능 때문에 의료 기기로 분류되는 바람에 휴대전화 대리점에서 팔 수가 없게 됐기 때문이다. 비단 이 제품 뿐이 아니다. 헬스케어 산업은 의료 데이터 유통과 원격 의료가 허용돼야 성장할 수 있지만 제한적 원격의료를 허용하는 내용을 담은 의료법 개정안은 7년째 국회에 계류중이다.  
 
#2012년 화장품법이 개정됐다. 사용 가능한 원료 목록이 줄줄 나열돼 있던 법이 몇 가지 배합금지원료를 지정하는 형태로 변경됐다. 포지티브 방식의 규제가 네거티브 방식으로 전환된 셈이다. 이후 화장품 생산액은 27%, 업계 종사자수는 32%나 늘어났다.  
 
규제개혁이 왜 필요한지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들이다. 정부가 2일 혁신창업 정책 발표를 필두로 본격적인 혁신성장 드라이브를 걸기 시작했다. 하지만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제대로 된 성장을 위해서는 규제개혁이 급선무라는 지적이 속속 제기되고 있다. 대표적인 국책연구기관인 한국개발연구원(KDI)이 여기에 동참했다.  
 
이수일 KDI 규제연구센터 소장은 3일 기자 간담회를 열고 “최근 정부가 추진하는 혁신성장을 이루기 위해서는 규제개혁이 선행돼야 한다”고 밝혔다. 이 소장은 “규제개혁은 끊없는 혁신을 통해 생산성이 낮은 부문에서 생산성이 높은 부문으로 자원 재배치를 촉진하기 때문에 양질의 일자리를 창출할 수 있다”며 “하지만 칸막이 규제, 포지티브 규제 시스템 등의 현행 규제체계와 경쟁을 제한하는 진입·영업 규제는 활발한 혁신활동과 창업을 저해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 소장은 규제개혁을 위해 ‘증거에 기반한 정책수립(evidence-based policy making) 문화’를 형성해 규제정책에 대한 신뢰를 회복하는 것이 급선무라고 강조했다. 이런 문화 부족의 대표적인 사례로 살충제 계란 사태를 꼽았다. 살충제 함량에 따라 차별적인 달걀 처리를 권고한 유럽과 달리 한국은 살충제 검출 농장에서 생산된 달걀은 잔류농약 허용기준치와 상관없이 전량 폐기 처분해 지나친 공포심을 유발하면서 농가의 불필요한 피해를 초래했다는 것이다. 규제를 효율적으로 하려면 과학적 사실, 시장의 현황 추이, 정책대상자의 행동방식 등의 ‘증거’를 다각도로 수집 활용해야 한다는 게 이 소장의 주장이다.  
 
2018년 예산안에는 '살충제 계란' 등 농식품 안전에 대한 예산도 늘었다. 사진은 지난 23일 오전 살충제 성분인 비펜트린이 초과 검출된 경기도 광주시 곤지암읍의 한 산란계 농가 계란의 모습. 부적합 판정을 알리는 압류 확인서가 붙어 있다. [광주=연합뉴스]

2018년 예산안에는 '살충제 계란' 등 농식품 안전에 대한 예산도 늘었다. 사진은 지난 23일 오전 살충제 성분인 비펜트린이 초과 검출된 경기도 광주시 곤지암읍의 한 산란계 농가 계란의 모습. 부적합 판정을 알리는 압류 확인서가 붙어 있다. [광주=연합뉴스]

 
증거 기반 정책수립 문화가 부족한 근본 원인으로 정부에 의한 일방적 정책수립 관행을 꼽았다. 이 과정에서 증거에 기반하지 않는 정책수립 문화가 만연했고, 이는 비판과 처벌에 민감한 공무원 의식과 결합돼 정보공개를 극히 꺼리는 왜곡된 구조로 연결됐다는 얘기다.  
 
이 소장은 “정부와 민간의 권한과 책임이 조정돼 명령통제 방식에서 신뢰 기반 공동규제로, 규정·절차 중심에서 목표·성과 중심으로 전환해야 효과적·효율적 규제가 가능하다”고 “이를 위해서는 현장의 피규제자들과의 협업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서로 다른 산업 및 기술의 융복합이 이뤄지는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맞아  혁신활동과 창업을 촉진하기 위해서는 칸막이 행정과 규제를 극복하고 네거티브 규제로의 전환 등 ‘혁신에 친화적인 규제체계’ 마련 필요성이 있다고 지적됐다. 칸막이 행정의 대표 사례로 당뇨폰과 자동차와 건설기계 사이에 놓여 승인까지 4년을 허비한 트럭지게차가 지목됐다. 네거티브 규제로의 전환 후 대표적 성공사례로 지목된 것이 화장품 산업이다.  
 
트럭지게차

트럭지게차

 
 이 소장은 “국내에서는 3D 프린터처럼 혁신적인 기술을 개발하고도 기존 제품·서비스 분류체계에 해당 품목이 없어 정부조달시장에 접근하지 못하고 생존에 어려움을 겪는 사례가 다수 존재한다”며 “반면, EU는 혁신 카테고리를 따로 만들어 기존 분류방식에 적합하지 않은 혁신적인 제품·서비스를 분류체계에 포섭했다”고 소개했다. 실제 EU는 기존의 자동차 분류체계인 L1~L6로 분류되기 어려운 혁신제품을 새로운 카테고리인 L7에 넣어 시장에서 수용할 수 있게 했다.  
 
이 소장은 “혁신친화적 규제체계를 확산하려면 로드맵 수립과 같은 경로의존적 인식을 탈피하고, 실패를 성과로 인정하는 문화와 실패를 통해 배울 수 있다는 전향적 자세가 요구된다“며 “기존 규제가 기득권으로 작용하는 현실에서 탈피해 ‘경쟁을 제한하는 진입·영업규제의 개선’을 위한 실천적인 전략을 마련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한편 KDI 규제연구센터가 경제전문가 489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한 결과 “한국경제의 상황이 ‘서서히 끓는 냄비 속 개구리’와 같다는 주장에 공감하느냐”는 질문에 88.1%가 그렇다고 답했다. “한국경제가 냄비 속을 탈출할 시간이 얼마나 남았다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에는 63.3%가 1~3년, 27.1%가 4~5년이라도 답했다. “이미 시간이 만료됐다”는 답변도 5.6%였다. 규제개혁 성과가 일본에 비해 저조하다는 답변도 77.9%에 달했다. 
 
저조한 규제개혁 성과의 근본원인으로 ‘규제개혁 정책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 부족’(24.7%), ‘정부의 규제개혁 추진의지 부족(21.0%)’, ‘정치권의 규제개혁 추진의지 부족(19.4%)’, ‘기득권 세력의 반발(19.4%)’ 등의 답변이 나왔다. 
세종= 박진석 기자 kailas@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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