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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업제한 풀린 성범죄자 4만 … 내 아이 주치의 돼도 모를 판

국립병원 부장급 의사 A씨는 2015년 1월 회식 자리에서 같은 병원 간호사 B씨를 추행했다. 사건 직후 A씨는 병원에서 보직 해임됐고 강제추행죄로 기소돼 지난해 9월 대법원에서 벌금 300만원 확정 판결을 받았다. 그는 곧 병원에 복귀해 진료를 재개했다. 사건 전과 동등한 부장급 지위도 회복했다. 그는 9월 다른 사유로 퇴직할 때까지 1년 동안 피해자 B씨와 같은 병원에서 근무했다.
 

일괄 취업제한 작년 위헌 판결
개정안은 국회 2년째 계류 중
벌금형 받은 의사, 병원 복귀도
“빨리 법 개정해 취업 막아야”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원래 아동·청소년성보호에 관한 법률(이하 아청법) 제56조에는 A씨 같은 성범죄자는 10년 동안 의료기관·어린이집·유치원·학교·학원·아동복지시설 등에 취업할 수 없게 돼 있었다. 그런데 이 조항이 지난해 3월 헌법재판소에서 위헌 결정이 났다. 헌재는 “범죄의 경중과 재범 위험성 등을 고려하지 않고 일괄적으로 취업을 막는 것은 기본권의 과도한 침해”라고 봤다. 56조는 바로 효력을 상실했다. 이 덕분에 A씨가 복직할 수 있었다.
 
위헌 결정 이후 아청법 56조를 보완하지 않아 법률 공백 상태가 1년8개월째 이어지고 있다. 여성가족부는 지난해 말 기준으로 취업 제한에서 풀린 성범죄자를 4만여 명으로 추정한다. 신상정보 등록 의무가 있는 성범죄자(4만6000여 명) 중 수감 중인 사람을 빼고 통신매체 음란범죄자(신상 등록 대상 아님) 등을 더해 산출했다. 이금순 여가부 아동청소년성보호과장은 “2010년 신상정보 등록제 시행 이전에 확정 판결을 받은 성범죄자가 빠져 있어 취업 제한을 안 받는 성범죄자가 훨씬 많을 것”이라고 말했다. 여가부는 4만 명 중 몇 명이 어디에 취업해 있는지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여가부는 지난해 11월 56조를 세분화한 법률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3년 이상 징역·금고형은 30년 이내, 3년 이하의 징역·금고형 또는 치료감호는 15년 이내, 벌금형은 6년 이내에서 재판부가 정하도록 했다. 국회 소관 상임위인 여성가족위원회를 통과해 올 2월 말 법제사법위원회로 넘어갔다. 법사위는 개정안을 제2법안심사소위원회로 넘겨만 놓고 한 번도 심의하지 않았다.
 
법사위 심의 과정도 난항이 예상된다. 양태건 한국법제연구원 부연구위원은 지난달 30일 관련 토론회에서 “개정안이 취업 제한기간에 차등을 두긴 했지만 예외 없이 취업을 제한하고 있어 헌재 위헌 결정 취지에 저촉된다”며 “재범 위험성 등을 구체적으로 따져 제한 여부를 결정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법률 공백 상태가 이어지면서 혼란이 지속되고 있다. 강원도의 한 지역아동센터 대표는 2012년 자신의 센터에 다니던 초등학생의 허리를 끌어안고 수차례 엉덩이를 만지는 등 강제추행했다가 기소됐다. 최근 2심에서 징역 2년6개월, 집행유예 3년 선고를 받았다. 대법원에서 유죄를 받을 경우 아동·청소년 관련 시설을 운영하거나 취업해도 막을 방법이 없다.
 
일선 현장도 성범죄에 느슨해지는 분위기다. 남인순 더불어민주당 의원 국감자료에 따르면 아동·청소년 관련 시설 운영자가 직원의 성범죄 경력 조회를 하지 않아 과태료 처분을 받은 경우는 2015년 276건에서 위헌 결정이 난 지난해 361건으로 늘었다. 올해는 1~8월 217건이 적발됐다.
 
법무법인 ‘소헌’ 천정아 변호사는 “취업제한 제도가 효력이 없기 때문에 구직자가 성범죄 이력을 숨겼어도 문제 삼지 못한다”며 “취업 과정에서 성범죄 경력이 알려진다면 채용이 쉽지는 않겠지만 본인이 직접 운영하면 막을 수 없다”고 지적했다.
 
아동·청소년 인권보호단체 ‘탁틴내일’ 이현숙 대표는 “아동 성범죄자는 아동·청소년에게 친근하게 접근해 범행을 쉽게 저지를 수 있는 환경을 만든다”며 “성범죄자들이 이렇게 ‘그루밍’(길들이기)을 할 수 없게 하루빨리 취업을 제한해야 한다”고 말했다. 
 
백수진 기자 peck.sooj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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