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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폐암사망 친형과 끝내 화해 못해···조문 거절당해

이재명 성남시장. [중앙포토]

이재명 성남시장. [중앙포토]

이재명 경기도 성남시장은 '원수'처럼 척지고 지내온 친형과 끝내 화해하지 못했다.
 

이시장의 친형 재선씨 폐암으로 2일 숨져
평소 담배 즐기던 친형 폐암 앓아와
이 시장 대권반열 올랐을때 '박사모' 돼
서로 반대편 선 형제 끝내 화해 못해

2012년 노모 폭행사건으로 관계 악화
젊은 시절 성공신화 쓴 의좋은 형제
모친에 욕한 형에 격분해 형수에 심한 욕설 논란도

이재명 시장이 2일 숨진 친형 고(故) 이재선(58·공인회계사)씨의 빈소를 찾았지만, 유족들의 반발로 조문도 하지 못했다. 이 시장은 이날 오후 빈소가 마련된 수원시 영통구 아주대학교 병원 장례식장을 찾았지만, 결국 발길을 돌려야 했다. 
 
애연가인 고인은 이날 폐암으로 숨졌다. 반목해온 이 시장은 친형의 임종도 지키지 못했다고 한다.
고(故) 이재선씨의 생전 모습. [중앙포토]

고(故) 이재선씨의 생전 모습. [중앙포토]

 
형 재선 씨는 지난해 말 ‘박사모’(박근혜 대통령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 성남 지부장이 돼 주목받았다. 속 시원한 사이다 발언으로 이 시장이 대권 주자 반열에 떠오른 시기라 당시 궁금증을 더했다. 서로 반대편에 선 형제는 끝내 화해하지 못했다. 이 시장은 자신의 페이스북에 심경을 전하지는 않았다.
 
형제 관계가 본격적으로 틀어진 것은 2010년 이 시장이 처음 성남시장에 당선되고서다. 이 시장은 자신의 페이스북에 형의 부적절한 행동들이라고 주장하며 몇몇 사례를 공개했다. 
성남시청사. [사진 성남시]

성남시청사. [사진 성남시]

 
형이 노인 요양시설을 짓는 이권 사업에 개입했다는 소문이 퍼졌고, ‘시장 친형’임을 내세워 공무원들에게 부당한 업무지시를 한 것은 물론 성남 시내 모 대학교수 자리까지 청탁했다고 주장했다. 이에 이 시장은 시청 직원들에게 형과의 접촉을 금지했다고 한다.
 
이에 대해 형 재선씨는 지난해 말 중앙일보와의 만남에서 “(내가) 동생에 대해 질투심과 열등감을 갖고 있다고 생각하는 동생이 (나에 대해) 의도적이고 악의적인 주장을 하고 있다”고 반박했다. 대학교수 자리 청탁에 대해서 “모 대학 총장이 된 친한 선배가 ‘강의 한 번 나와봐야지’라는 가벼운 농담을 했고 ‘제 일하기에도 바쁘니 괜찮습니다’라고 거절했다”는 것이다. 
노모 폭행 논란과 관련해 성남시내에 내걸린 현수막. 이재선씨는 생전에 "나를 망신주기 위해 (이재명 시장 측근이) 내걸었다"고 주장했다. 사진을 흑백으로 출력한 종이를 촬영한 것. 김민욱 기자

노모 폭행 논란과 관련해 성남시내에 내걸린 현수막. 이재선씨는 생전에 "나를 망신주기 위해 (이재명 시장 측근이) 내걸었다"고 주장했다. 사진을 흑백으로 출력한 종이를 촬영한 것. 김민욱 기자

 
두 사람의 갈등이 폭발한 결정적 사건은 2012년 노모 폭행 논란이다. 이 시장은 형이 자신과 연락이 닿지 않자 노모 집에 찾아가 동생인 자신에게 전화 연락을 대신해 달라고 요구했고, 노모가 이를 거절하자 형이 모친에 대해 입에 담지 못할 패륜적 폭언과 폭행을 했다고 주장한다.
 
이에 대해 형 재선씨는 “노모 집에서 (시청 게시판 비판 글 문제로) 다른 막내 남동생(당시 45세)과 언쟁이 붙었고, 1~2분간 몸싸움이 일어난 것이 전부다. 노모는 자리를 피해 있었다”고 주장했다.
 

당시 현장에 동석한 형수(재선씨의 부인)가 형 재선씨의 폭언을 ‘고도의 철학적 표현’이라고 두둔해 이 시장 식구들을 능욕했다고 이 시장은 주장한다. 이후 이 시장은 당시 형수에게 전화해 따지는 과정에서 형수에게 심한 욕설한 적은 있다고 인정했다. 선거 때 터져 나왔던 형수 욕설 사건이다. 성적 표현이 들어간 이 시장의 심한 욕설 내용이 육성으로 고스란히 폭로돼 큰 논란이 됐다.
이재명 성남시장

이재명 성남시장

 
두 형제는 한때 둘도 없는 사이였다. 화전민이었던 가족은 겨울이면 방안에 둔 물그릇이 얼 정도로 찌들게 가난했다고 한다. 1976년 성남으로 이주한 뒤에도 마찬가지였다. 온 가족이 먹고살기 위한 생계 전선에 뛰어들어야 했다. 
 

이 시장은 어려운 가정환경 속에서도 중졸 및 고졸 검정고시를 거쳐 82년 중앙대 법대생이 됐다. 생활보조비(장학금)까지 받는 우수한 성적으로 대학에 들어갔다.
 
이 생활보조비는 다른 가족 구성원들의 생활비로 쓰였다고 한다. 특히 당시 정비공으로 일하던 형 재선씨에게 이 시장이 학업을 권유했고, 재선씨는 83년 건국대 경영학과에 진학했다. 형 재선씨는 86년 공인회계사 시험에 합격했고 이 시장도 같은 해에 사법시험에 나란히 합격했다. 형제가 동시에 ‘흙수저 성공 신화’를 썼다. 그런 의(誼) 좋은 형제는 이제 다시는 서로를 안지 못하게 됐다. 
 
수원·성남=김민욱 기자 kim.minwoo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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