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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장르 그 자체가 된 남자, 최민식의 진심

최민식 / 사진=전소윤(STUDIO 706)

최민식 / 사진=전소윤(STUDIO 706)

 [매거진M] 세상을 다 가졌지만 소중한 존재를 잃은 한 남자. 그가 발가벗겨진 채 언덕 위에 선 풍경. 최민식(55)은 ‘침묵’(11월 2일 개봉)을 이렇게 표현했다. 중국 스릴러 ‘침묵의 목격자’(2013, 비행 감독)를 리메이크한 이 영화는, ‘해피엔드’(1999)로 연을 맺은 최민식과 정지우 감독이 18년 만에 다시 뭉친 작품. 
 

'침묵' 최민식 인터뷰

부와 명예, 권력을 손에 쥔 거대 기업 회장 임태산(최민식)의 약혼녀 유나(이하늬)가 의문의 사고로 숨지고, 태산의 외동딸 미라(이수경)가 살인 용의자로 지목된다. 절망적 상황 속에서 태산은 변호사 최희정(박신혜)을 선임해 사건의 진상을 추적하지만, 결정적 증거를 가진 의문의 남자 김동명(류준열)이 나타나며 그는 점점 수렁으로 빠져든다. 
 
전작 ‘특별시민’(4월 26일 개봉, 박인제 감독)에서 3선에 도전하는 서울시장 변종구를 통해 정치의 어두운 민낯을 드러냈던 최민식. 그가 임태산의 굳은 표정 아래 켜켜이 숨겨놓은 감정의 격랑은 과연 무엇일까. 최민식을 만나 물었다. 그날의 진실을 알게 된 임태산, 그의 기나긴 침묵은 무엇을 의미하냐고. 
 
 최민식 / 사진=전소윤(STUDIO 706)

최민식 / 사진=전소윤(STUDIO 706)

━‘특별시민’에 이은, 올해 두 번째 주연작이다.
“그동안 작품을 무척 하고 싶어서, 올해는 그냥 한번 ‘미친 척 달려보자’고 생각했다. ‘침묵’은 제작사 용필름의 임승용 대표가 내게 중국 원작 영화(‘침묵의 목격자’)를 건네면서 시작된 영화다. 리메이크하면 재밌을 것 같아서 임 대표에게 ‘어떤 감독을 염두에 두고 있냐’고 물었더니, 나와 ‘해피엔드’를 작업한 정지우 감독을 고려 중이라고 하더라. 
정 감독의 최근작 ‘4등’(2016)을 참 좋게 본 터라, 오랜만에 다시 뭉칠 생각에 무척 들떴다. 정 감독이 원작 영화를 어떤 시선으로 각색하고,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낼지 궁금했다. 그래서 흔쾌히 참여하게 됐다.”
 
━각색한 시나리오는 마음에 들던가. 
“아예 각색 초기 단계부터 정 감독과 의논하면서 함께 만들어 갔다. 미스터리 법정물에 가까운 원작을 임태산의 심리에 이입할 수 있는 진중한 드라마로 손질하는 게, 이 작업의 핵심이었지.”
 
'침묵'

'침묵'

━‘범죄와의 전쟁:나쁜놈들 전성시대’(2012, 윤종빈 감독)의 최익현, ‘특별시민’의 변종구 등 권력을 좇는 캐릭터를 자주 맡았다. “돈이 진심입니다”라고 말하는 대기업 회장 임태산은 그들과 어떻게 다른가.
“임태산은 이미 모든 걸 이룬 사람이다. 무지막지할 정도로 용의주도하고 냉혹하게 자신의 이익을 추구해 온 인물이지. 그렇게 살았기에 부와 명예, 권력을 한꺼번에 쥐게 됐을 거라 생각하고 연기했다. 이처럼 오직 성공만을 위해 살아 온 그가 약혼녀의 죽음을 계기로 자신의 삶이 얼마나 황량한지 돌아보고, 오래 잊고 살았던 소중한 가치를 깨닫게 된다. 처절한 ‘참회’. 그게 이 영화의 핵심이다.”
 
━임태산의 약혼녀 유나가 사망하자, 사고 현장에 함께 있던 임태산의 외동딸 미라가 살인 용의자로 지목된다. 영화는 임태산이 사랑하는 두 사람 사이에 일어난 사건의 진실을 추적하며, 그가 어떤 선택을 할지 서늘하고 차분하게 관조한다.
“맞다. 임태산이 느낄 고통과 죄책감도 크지만, 한편 능수능란한 사업가인 그가 사건을 수습하기 위해 굉장히 이성적으로 움직일 거라고 봤다. 동물적인 촉으로 기업을 인수하고 주식을 매매했던 것처럼, 사태를 조용히 매듭지으려는 그 심리가 흥미로웠다.”
 
최민식 / 사진=전소윤(STUDIO 706)

최민식 / 사진=전소윤(STUDIO 706)

최민식 / 사진=전소윤(STUDIO 706)

최민식 / 사진=전소윤(STUDIO 706)

━정지우 감독과 ‘해피엔드’ 이후 18년 만에 재회했다. 옛날과 비교해 정 감독의 영화 세계나 연출 방식이 변한 지점은 없나.
“아니. 정 감독 고유의 색깔은 여전히 그대로다. 다만 좀 더 ‘업그레이드’됐다고 할까. 당시 ‘해피엔드’로 장편 데뷔한 정 감독도 어느덧 쉰 살이 넘은 중견 감독이 됐다. 그럼에도 그가 여전히 청년 같은 순수함과 날선 논리를 잃지 않고 치열하게 영화를 만드는 모습을 보니, 참 짠하면서도 좋더라. 
‘침묵’은 결국 정지우 감독이 세상을 보는 관점이다. 그의 인생관, 세계관이 이 영화에 녹아 있다. 영화는 감독의 예술이다. 설령 감독의 주관적 관점이 다소 과하거나 이견에 부딪힌다 해도, 감독의 생각이 이미 꽉 차 있으면 무척 든든하다. 그게 아니면 배우가 현장에서 누굴 믿고 연기하겠나. 정 감독처럼 의지할 수 있는 동료들이 있어서 참 다행이다.”
 
━‘특별시민’의 심은경에 이어 이번 작품에서도 박신혜, 이하늬 등 여성 후배 배우들과 협업했다.
“그들 각자가 가진 매력과 개성을 현장에서 직접 느낄 수 있어서 몹시 좋았다. (박)신혜는 배우로서 그만이 가진 오리지널리티가 대단하다고 느껴졌고, (이)하늬는 굉장히 영리하게 연기하는 모습이 참 인상적이었다. 
두 사람뿐만 아니라 류준열, 조한철, 박해준 등 여러 배우들이 서로 다른 에너지로 치열하게 부딪히는 그 모습이 어휴, 내가 다 무서울 정도였다. 그 ‘다름’에서 오는 기운이 무척 즐겁더라. 각자가 가진 장점과 색채가 서로 충돌해 깨지고, 반죽이 됐다 숙성이 됐으니, 꽤 괜찮은 결과물이 나온 것 같다.”
 
'침묵'

'침묵'

'침묵'

'침묵'

━제작보고회 당시 류준열에겐 ‘유연성이 뛰어나다’고 칭찬했다. 언제 그렇게 느꼈나.
“카메라 앞에서 서로 마주보고 연기할 때. 보통 긴장한 상태에선 눈동자가 이리저리 불안하게 흔들리는데, (류)준열이는 언제라도 연기할 준비가 된 것처럼 안정감이 느껴졌다. ‘어, 이 놈 봐라?’ 하게 되는, 그런 당돌한 여유가 있더라. 물론 걔가 눈이 쬐끄만해서 내가 잘못 본 건지도 몰라(웃음). 제 나름의 경험과 스타일을 철석같이 믿고 밀어 붙이는 모습이 멋졌다. 설령 조금 서투르다고 해도, 준열이처럼 명확하게 연기해야 상대 배우와 지간으로 소통할 수 있거든.”
 
━‘특별시민’에 이어 신인 배우 이수경과 두 번째 부녀 지간으로 출연했는데.
“‘특별시민’에 짤막하게 등장하기엔 이 친구의 재능이 너무 아까웠다. (이)수경이의 연기를 더 보고 싶었기에, 내가 정 감독에게 추천해 오디션을 보게 했다. 잘 해내리란 믿음이 있어서다. 감독의 의도를 간파하고 자신이 겪지 못한 감정을 정확하게 연기하는 건 결코 배워서 되는 게 아니다. 결국 감각적으로 캐치해야 하는 건데, 그런 재능을 굉장히 많이 가진 친구 같다. 더 많이 배우고, 자만하지 않으며 실력 발휘를 했으면 좋겠다. 이런 친구들이 대중과 소통할 기회를 갖는 건 무척 중요하다. 
두 편에 잇따라 부녀 관계로 출연했으니, 이제 그만 호적에서 파고 독립시켜야겠다. 차기작에서 이미 새로운 아빠를 만났더라고. 옛날 아빠 생각이나 나겠어(웃음)?”
 
최민식 / 사진=전소윤(STUDIO 706)

최민식 / 사진=전소윤(STUDIO 706)

최민식 / 사진=전소윤(STUDIO 706)

최민식 / 사진=전소윤(STUDIO 706)

━영화 제목처럼, 임태산이 깊은 생각에 잠긴 채 침묵하는 장면이 다수 등장한다. 배우가 대사와 표정, 몸짓으로 감정을 전하는 것만큼, 그 공백을 채우는 침묵 역시 엄연한 연기다. 그런 장면에선 주로 어떤 생각에 빠지나.
“아마 배우에게 가장 외로운 순간이 아닐까. 논리적으로 설명할 순 없다. 좀 낯간지럽지만, 내가 연기하는 인물과 영적인 교감을 시도하는 시간이다. 실체가 없는, 일종의 종교적 체험과 비슷하지. 시나리오에도 영혼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렇기 때문에 연기할 때 그저 가짜를 흉내내는 게 아니라, 그 인물이 실제로 어딘가에 존재한다고 믿는 거지. 어떻게든 그 역할을 내 안에 흡수하고 표현해야 하니까. 그러니 ‘악마를 보았다’(2010, 김지운 감독)의 장경철을 연기할 때 내 심정이 어땠겠나(웃음). 늘 캐릭터와 진한 교감을 하고 싶은 욕망이 있다. 하지만 누구도 도와줄 수 없는, 오롯이 배우 혼자 끌어안고 가야하는 영역이지.”
 
━정지우 감독은 ‘침묵’을 ‘모든 것을 다 가진 한 남자가 자기 삶에 뚫려 있는 커다란 구멍을 발견하게 되는 이야기’라고 표현했다. 배우 최민식에게도 그런 구멍이 있나.
“하…. 매일매일이 구멍이지. 구멍이 숭숭 나 있다(웃음). 하지만 세상에 구멍 없는 사람이, 진흙탕 안 밟고 사는 사람이 어디 있겠나. 다만 자기 허물을 잘 아느냐 모르느냐 차이겠지. 어차피 완벽한 사람이 될 순 없으니, 그저 죽을 때까지 이 일(배우)을 하면서 밥 먹고 살 수 있으면 행복할 것 같단 생각을 한다. 설령 계속 후회할 일을 만들게 되더라도, 삶에 커다란 오점만큼은 남기지 않게 노력하며 살아야겠지.”
 
최민식 / 사진=전소윤(STUDIO 706)

최민식 / 사진=전소윤(STUDIO 706)

━‘침묵’은 최민식에게 어떤 것을 남겼나.
“매 작품 많은 것을 배운다. 실화든 가상의 이야기든, 이야기를 통해 배우는 교훈이 있잖나. ‘침묵’이 얽히고 설킨 인물들을 통해 보여주고자 하는 건, 결국 인간의 업(業)이다. 뿌린 대로 거두는 것. ‘내가 행한 대로 내게 돌아온다’는 지극히 평범한 진리를, 이 작품을 만들며 새삼 되새기곤 했다. 꼭 남을 해치거나 끔찍한 범행을 저지르지 않더라도 구업(口業), 즉 말로 악행을 저지르는 경우는 주변에 수없이 많다. 내가 알게 모르게 뱉은 말에 누군가 고통 받았을 수 있다고 생각하면, 참 씁쓸해진다.”
 
━결과물은 만족스럽나.
“당연하지. 과정이 좋다면, 그 결과는 늘 만족스럽다. 결과는 관객이 판단하는 거고, 우리가 과정에 충실했다면 그걸로 족하다. 연극계에서 흔히 쓰는 말 중에 ‘무대 뒤가 보인다’는 표현이 있다. ‘무대 뒤편에서 알차고 열심히 연습한 게 보인다’는 칭찬이지. 영화도 마찬가지다. ‘침묵’처럼 모든 배우와 스태프가 하나의 목표를 바라보고 감성과 재능을 모은 작업이 생각보다 많지는 않다.”
 
━대선, 연휴 등에 앞서 개봉한 ‘특별시민’의 흥행 성적(관객 136만 명)이 조금 아쉽지는 않나.
“전혀. 그저 있는 그대로 결과를 바라보면 된다. 앞서 말했듯, 영화를 만드는 과정과 작업의 의미가 내게 자리매김하면 된다. 물론 내가 무엇이 부족했고 무엇을 간과했는지 찬찬히 되새기고 내실을 다지는 시간은 반드시 필요하다. 하지만 흥행이 잘됐다고 오두방정을 떨어서도 안 되고, 흥행에 실패했다고 종말이 닥친 것처럼 침울해할 필요도 없다. 그래서 배우의 길은 곧 수양인 듯하다. 나 역시 인간인지라 완전히 흥행 성적에 초연할 수는 없겠지. 다만 거기서 좀 더 자유로울 수 있게 나를 다잡곤 한다. 체념이 아닌, 있는 그대로 결과에 승복할 수 있게.”
 
 최민식 / 사진=전소윤(STUDIO 706)

최민식 / 사진=전소윤(STUDIO 706)

━차기작 계획은.
“없다. 놀 거다. 올해는 술 먹을 일 밖에 없다. 이제 곧 연말이니, 슬슬 송년회에 나갈 때다(웃음).”
 
━배우로서 남은 소망은 없나.
“물론 있지. 좋은 작품을 계속 하고 싶다는 소망. 하지만 중요한 건 결국 작업의 질인 것 같다. 대규모 블록버스터와 기획 영화도 좋지만, 내가 정말 하고 싶은 이야기에 가장 충실해야 한단 생각만큼은 아직 변함 없다. 매일 먹고 싶은 것만 먹으면서 살 수는 없겠지. 하지만 강렬하게 나를 잡아끄는, 그런 작품과 역할을 계속 만나고 싶다. 마음 맞는 동료들과 하고 싶은 이야기를 만들어 가는 재미, 그 재미에 취해 평생을 살고 싶다. 어차피 창작에는 정년이 없잖나. 서둘지 않고, 오래오래(웃음).”
 
 
 
고석희 기자 ko.seokhee@joongang.co.kr 사진=전소윤(STUDIO 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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