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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소득 55만원···단기 계약근로 '긱이코노미' 시대 명암

 '긱 이코노미' 대표 업체로 꼽히는 음식배달업체 딜리버루의 단기 계약직 배달원이 음식을 나르고 있다. [파리 로이터=연합뉴스]

'긱 이코노미' 대표 업체로 꼽히는 음식배달업체 딜리버루의 단기 계약직 배달원이 음식을 나르고 있다. [파리 로이터=연합뉴스]

[인사이트] 우버·딜리버루 … 자유로운 근무 좋은데 왜 살기 팍팍해질까
 
영국 남부 도시 브라이턴에 사는 키런 휴즈(27)는 2015년부터 음식 배달업체 딜리버루의 배달원으로 일하고 있다. 스마트폰 앱을 켜놓고 있다가 근처에서 주문이 들어오면 자전거를 타고 식당에서 음식을 픽업해 고객에게 배달한다. 기본수당 없이 배달 건수로 보수를 받는데, 한 건당 3.75~4.25파운드(약 4400~6300원)다. 휴즈는 드럼을 잘 쳐 틈틈이 돈을 받고 드럼을 가르친다. 주거는 빈집을 지키는 관리인으로 일하며 해결한다.
 
런던 왕립예술학교 석사 과정에서 성악을 공부하는 윌 디글(22)은 일주일에 아홉 시간 딜리버루에서 일한다. 시간당 7파운드(약 1만400원)에 배달 건당 1파운드(약 1500원)를 받는 조건이다. 이렇게 번 돈 몇십만원은 한 달 식비로 쓴다. 짬짬이 바리스타 일도 한다.
 
영국 가디언은 최근 두 사람을 ‘긱 이코노미(gig economy)’ 시대의 근로자로 소개했다. 긱 이코노미는 그때그때 발생하는 필요에 따라 계약직 혹은 임시직으로 사람을 고용하는 행태를 일컫는 신조어다. 긱은 ‘임시적인 일’ 또는 ‘공연’이란 뜻이 있다. 1920년대 미국 재즈클럽에서 단기로 섭외한 연주자들이 하는 공연을 긱이라고 불렀다. 긱을 하고 사례비를 받은 데서 긱 이코노미가 유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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긱 이코노미는 조직에 속하지 않고 단기 계약을 맺으며 일하는 근로 형태다. 가사 도우미부터 과외 아르바이트까지 이런 일자리는 과거에도 있었다. 일용직·파트타임·아르바이트와 긱 이코노미가 다른 점은 노동력을 중개하는 방식이 스마트폰 앱 같은 디지털 플랫폼 기반이라는 점이다. 글로벌 컨설팅 업체 매킨지는 2015년 긱을 “디지털 장터에서 거래되는 기간제 근로”라고 정의했다.
 
디지털 플랫폼을 활용하면 일감과 노동력을 손쉽게 연결할 수 있다. 클릭 몇 번으로 노동력이 필요한 사람과 노동력을 제공하려는 사람을 빠르고 정확하게 연결한다. 기업 입장에서는 정규 근로자를 고용할 경우 건강보험·연금 등 복지 혜택을 제공해야 한다. 반면에 단기 근로자를 쓰면 이런 비용을 줄일 수 있다. 단기 근로를 제공하려는 공급자와 싼 비용으로 쓰겠다는 수요 기업의 이해가 맞아떨어지면서 긱 이코노미가 폭발적으로 성장했다.
 
런던에서 우버 앱에 접속한 장면. 스마트폰 화면 뒤로 런던 택시가 지나고 있다. [런던 로이터=연합뉴스]

런던에서 우버 앱에 접속한 장면. 스마트폰 화면 뒤로 런던 택시가 지나고 있다. [런던 로이터=연합뉴스]

 
긱 이코노미를 구성하는 대표적인 기술 기업으로 우버(차량 공유), 에어비앤비(숙박 공유), 딜리버루(음식 배달), 태스크래빗(잡일·심부름) 등이 꼽힌다. 긱 이코노미의 시작은 이 기업들이 잇따라 창업한 2008~2009년으로 볼 수 있다. 초기에는 조직에 얽매이기 싫어하는 젊은층이 단기 노동력 제공자로 적극 참여했다.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자유롭게 일하면서 유휴 차량이나 주택, 손재주를 활용해 소득을 올릴 수 있었기 때문이다.
 
가디언은 “청년 세대는 조직에 속하지 않고 자기주도적으로 일하려는 성향이 강해 긱 이코노미의 중심이 됐다”고 전했다.
 
8~9년이 지난 지금은 양상이 달라졌다. 좋은 일자리를 잡지 못해 단기직을 전전하는 이들이 긱 이코노미를 채우는 경향이 있다. 세계 경제가 회복세에 접어들었지만 일자리 수 자체가 줄고 있다. 하버드비즈니스리뷰에 따르면 과거 미국에선 해마다 새로운 민간 부문 일자리가 2~3%씩 증가했다. 2000년 닷컴 버블이 붕괴하면서 그 비율이 2% 이하로 떨어지더니 2008년 금융위기 이후에는 1% 아래로 떨어졌다. 좋은 일자리에서 내몰린 이들이 생계를 위해 단기 일자리로 나오면서 이제 긱 이코노미는 비정규직의 상징처럼 돼버렸다.
 
 
긱 이코노미가 작동하는 방식은 이렇다.
 
최근 창업한 반려견 산책 도우미 앱인 왜그(Wag!)를 예로 들어 보자. 반려견 주인은 개를 직접 산책시킬 수 없을 때 앱에서 산책 도우미를 신청한다. 앱은 30분 이내의 가까운 거리에 있는 도우미를 찾아 연결해 준다. 개 산책은 30분~1시간 이뤄지는데, 이용료는 평균 30분당 20달러 수준이다.
 
태스크래빗은 가구 조립, 잔디 깎기, 페인트칠, 줄 서기, 심부름 등을 대신할 사람을 시간당 비용을 지불하고 구할 수 있는 앱이다. 프리랜서 근로자 6만 명이 등록돼 있다. 최근 스웨덴 가구업체 이케아가 이 회사를 인수해 화제가 됐다. 이케아의 가구 조립 유료 서비스가 태스크래빗의 서비스보다 경쟁력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이케아의 유료 가구 조립 서비스는 89달러(299달러 이하인 가구)인데 태스크래빗을 통하면 시간당 30달러에 이용할 수 있다.
 
퓨리서치센터 조사에 따르면 미국인 4명 중 한 명(24%)은 지난 1년간 긱 이코노미에 참여해 돈을 번 경험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연령별로는 18~29세가 가장 많다. 매킨지에 따르면 영국 긱 이코노미 근로자는 500만 명으로 추산된다. 전체 노동인구(3200만 명)의 15.6%다. 링크드인은 2020년엔 미국 내 근로자 가운데 43%가 프리랜서로 일할 것으로 예측했다.
 
다이앤 멀케이 뱁슨칼리지 교수는 “기업이 고용을 통해 일자리를 제공하는 대신 점점 일자리(job)와 일(work)을 분리하는 추세”라고 말했다. 예컨대 언론사에 소속된 풀타임 저널리스트 일자리는 많지 않지만 저널리스트 일을 할 수 있는 프리랜서 자리는 오히려 늘어난다.
 
긱 이코노미에 대한 시각은 두 갈래로 나뉜다. 자유롭고 유연하게 일할 수 있다는 게 장점으로 꼽힌다. 일하는 시간을 스스로 정할 수 있고, 공간의 제약을 받지 않기 때문에 유연한 근무시간이 필요한 근로자에게는 도움이 된다. 육아와 일, 학업과 일을 병행하는 사람들이 주로 선택한다. 하지만 소득이 일정하지 않고 비교적 낮은 편이어서 경제적으로 불안할 수밖에 없다.
 
배달업체는 '긱 이코노미' 대표 업종이다. 프랑스 파리에서 단기 계약직 배달원이 물건을 나르고 있다. [파리 로이터=연합뉴스]

배달업체는 '긱 이코노미' 대표 업종이다. 프랑스 파리에서 단기 계약직 배달원이 물건을 나르고 있다. [파리 로이터=연합뉴스]

 
온라인 매체 언스트에 따르면 긱 이코노미 근로자의 85%는 소득이 월 500달러(약 55만7000원) 이하다. 이러다 보니 생계를 위해 일하는 시간을 늘리게 된다. 정작 자유는 얻지 못하고 직장이 제공하는 복지 혜택만 사라질 수 있다. 키런 휴즈는 “시간을 유연하게 쓸 수 있고 상사의 지시를 듣지 않아도 되는 것은 좋지만 생활할 수 있을 만큼 돈을 벌기 위해선 주문이 몰리는 금·토·일요일에 배달 일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긱 이코노미 근로자는 정기휴가·병가·출산휴가·육아휴직·건강보험 같은 복지 혜택이 없다. 퇴직금·연금도 없어 노후 대책도 스스로 챙겨야 한다. 경제전문매체 비즈니스인사이더는 “긱 이코노미 확산은 개인 재정위기 사태로 이어질 수 있다”고 전했다.
 
지난달 국제통화기금(IMF)은 긱 이코노미 확산으로 기존 사회보장체제가 위협받고 있다고 경고했다. IMF는 “파트타임 근로자와 임시 계약직의 증가는 풀타임이냐 실업 상태냐만을 염두에 두고 설계된 지금의 사회보장체제와 맞지 않는다”며 “안정성이 떨어지는 프리랜서 일자리가 확산하는 글로벌 전환기를 맞아 사회보장제도를 개편할 때가 됐다”고 밝혔다.
 
긱 이코노미와 임금
1967년 경제학자 밀턴 프리드먼은 실업률이 낮으면 임금이 오르고, 임금이 오르면 인플레이션을 끌어올린다고 주장했다. 인플레이션은 다시 임금 인상을 이끌었다. 50년이 지난 지금, 그의 학설이 현재의 경제 상황을 설명하지 못한다는 주장이 있다.
 
미국·영국의 실업률은 완전고용에 가까운 4%대지만 물가는 수년째 목표치 2%를 밑돈다. 그 이유 중 하나가 긱 이코노미의 등장이다. 우버·딜리버루 같은 긱 이코노미 기업은 정규 직원을 고용하지 않고 노동력을 분 단위로 끊어 쓴다. 서비스를 찾는 수요가 많으면 요금이 올라간다. 요금이 비싸지면 고객은 다른 선택을 하게 되고 요금은 다시 내려간다. 단기 계약직 직원의 임금이 오르기 어려운 이유다.
 
박현영 기자 hypar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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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