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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죽는데, 이제는 담담 … 눈으로 쓴 병상일기

소설가 정태규씨의 손을 아내 백경옥씨가 마사지하고 있다. 정씨의 손은 고무장갑처럼 힘이 없어 보였다. 마사지를 거르면 손이 오그라든다. 인터뷰는 안구 마우스를 이용해 이뤄졌다. 정씨 침상 위에 설치된 컴퓨터 자판을 안구 움직임과 눈 깜빡임으로 선택해 문장을 만드는 방식이다. 시간이 오래 걸렸다. [신인섭 기자]

소설가 정태규씨의 손을 아내 백경옥씨가 마사지하고 있다. 정씨의 손은 고무장갑처럼 힘이 없어 보였다. 마사지를 거르면 손이 오그라든다. 인터뷰는 안구 마우스를 이용해 이뤄졌다. 정씨 침상 위에 설치된 컴퓨터 자판을 안구 움직임과 눈 깜빡임으로 선택해 문장을 만드는 방식이다. 시간이 오래 걸렸다. [신인섭 기자]

부산 출신의 소설가 정태규(59)씨는 작가가 으레 겪기 마련인 창작의 고통보다 더 끔찍한 고통에 시달린다. 루게릭병이다. 6년 전인 2011년 아무런 사전 예고도 없이 갑작스럽게 찾아온 루게릭은 고등학교 국어교사로, 소설가로, 한 아내의 남편이자 가장으로 누구보다 성실한 삶을 살아온 그의 일상을 순식간에 산산조각냈다. 그는 혼자서 먹을 수도 배설할 수도, 좋아하는 소설을 쓰기 위한 펜을 들 수도 없었다. 온몸의 근육이 소실돼 한겨울 얼음장 물에 뛰어든 것 같은 극심한 통증을 느끼는데도 정신은 말짱한 생지옥. 최소한의 인간적인 삶을 누릴 권리를 박탈당한 시간.
 

루게릭 투병 7년 소설가 정태규
『당신은 모를 것이다』 펴내
병상서 안구마우스로 인터뷰

“가장 큰 보람은 소설책 출간
다른 환자에 작은 위로 희망
죽음에 맞서고 긍정합시다”

정씨는 그 와중에 투병일기를 썼다. 안구의 움직임과 눈 깜빡임으로 컴퓨터 자판의 철자를 선택해 글을 쓰는 안구 마우스를 이용해서다. 발병 상황부터 요즘 심경까지 7년 세월을 실감 나게 그렸다. 역시 안구 마우스로 쓴 투병 소설 ‘갈증’ 등 단편 세 편을 보탠 책 『당신은 모를 것이다』(마음서재)를 최근 출간했다.
 
당신은 모를것이다 표지

당신은 모를것이다 표지

지난달 31일 오전 서울 백범로 자택으로 정씨를 찾아갔다. 육체의 감옥에 갇힌 그에게 글쓰기는 유일한 탈출구인 걸까. 그에게도 꿈이라는 게 있을까. 있다면 어떤 걸까.
 
두 시간 동안 그의 투병침상 곁에 머물며 한 시간 반가량 인터뷰했다. 손가락이 오그라들만큼 안타까운 인터뷰였다. 질문에 대한 정씨의 답은 그리 더뎠다. 모두 14개의 질문을 던졌고, 단어 두어 개로 이뤄진 그의 답을 모두 합하니 120자가 조금 넘었다.
 
차라리 “우리 집은 중환자실, 나는 24시간 대기 간호사”라고 말하는 부인 백경옥(55)씨로부터 정씨의 속마음에 대한 명쾌한 해석을 들을 수 있었다. 예상과 달리 정씨는 평온해 보였다. 그는 친구가 5000여 명인 페이스북 스타였다. 영화에 빠져 하루에 두세 편을 본다고 했다. 침상에는 그가 좋아하는 7080 가요가 흘렀다. 하지만 그는 주변의 도움 없이는 잠시도 버틸 수 없고, 언제라도 꺼질 수 있는 촛불이었다.
 
6번째 책이다. 소감은(문학박사인 정씨는 소설집 세 권, 평론집 한 권, 산문집 한 권을 낸 바 있다. 정씨의 안구 마우스 답변은 컴퓨터를 거쳐 특유의 기계음 섞인, 약간 높은 음정의 남성 목소리로 흘러나왔다).
“콩트집도 있다. 8번째. 기뻐요.”
 
몸은 마비됐지만 정신은 멀쩡한 상태라고.
“네.”
 
투병 과정을 책으로 낸 의미는.
“다른 환자 조그만 위로 희망.”
 
할 수 있다면 가장 해보고 싶은 일은.
“커피 호프 자두.”(정씨는 가장 먹고 싶은 음식을 말한 거였다. 정씨는 특히 수제 맥주를 좋아했다고 한다. 하지만 이제 먹기는커녕 맛볼 수조차 없다. 2015년 기관을 절개해 강제로 폐에 산소를 공급하는 산소호흡기를 부착한 후로 맛, 냄새를 감각하는 능력을 상실해서다.)
 
책에, 루게릭 환자는 평균 3~5년 정도 산다고 돼 있다. 7년째 투병 중인데, 영국의 물리학자 스티븐 호킹은 50년 넘게 생존하고 있다. 아직도 죽음의 공포를 느끼나.
“담담해요. 누구나 죽는데.”
 
책에 쓴 대로, 육체는 정신의 감옥인가.
“이제 그것도 별 의미 없어져.”
 
기쁠 때도 있나.
“영화 음악 페북.”
 
화날 때는(이 질문을 던지자 정씨의 안면근육이 눈에 띄게 수축됐다. 웃는 거였다).
“마눌 싸울 때.”(아내 백씨는 평생 싸우지 않고 살았는데 정씨의 발병 이후로 싸우는 일이 생긴다고 했다.)
 
글쓰기는 당신에게 어떤 의미가 있나.
“자료에.”
 
꿈이나 소망이 있나.
“남은 소설 완성.”
 
인생이 불행하다고 느끼나. 아니면 이제는 나름 행복한가.
“이제 그것도 별 의미 없어져.”
 
인생에서 가장 보람 있었던 일은.
“출간.”
 
다시 태어나도 지금 부인과 결혼하시겠나(이 질문을 던지자 정씨는 이날 가장 환한 미소를 보여줬다. 지루한 몇 분 후 다음과 같은 기계음 대답이 들렸다).
“넵!”
 
마지막으로 한 말씀 한다면.
“자료에.”
 
첫 번째 ‘자료에’에 대한 대답은 그의 책 74쪽에 나와 있다. “그런 질문(글쓰기란 과연 무슨 의미인가)을 받을 때마다 나는 좀 어눌하게 대답했다. 소설 쓰기는 제법 진지한 혼자 놀기이며 궁극적으로 나의 존재 증명이라고. ‘살아 있는 느낌’이며 아픔과 슬픔, 기쁨 등을 교감하는 일이라고. 이제 소원대로 난 전업 작가가 됐다. 하루 종일 집에 박혀 있는 내게 이제 남는 것은 시간뿐이다. 그러니 글쓰기에 매진할 수밖에.”
 
두 번째 ‘자료에’에 대한 대답은 지난해 가을 부산 국제신문과의 e메일 인터뷰에서 찾을 수 있다. 못다 한 말씀이 있는지 묻자 정씨는 답했다. “루게릭병 환자들이여, 우린 아직 죽은 게 아닙니다. 죽음에 저항하며 동시에 죽음을 긍정하며 우리의 삶을 영위합시다. 췌장암 투병 중인 후배 소설가에게 신의 가호가 있기를 기원합니다.”
 
‘산문+소설집’ 당신은 모를 것이다의 표지 아래쪽에는 다음 문장이 인쇄돼 있다. 책의 제목에 대한 답변 형식이다. ‘그토록 보잘것없는 순간들을 사무치게 그리워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카페 구석에 앉아 시시껄렁한 잡담을 나누거나 거실 전구를 갈아 끼우는 일, 자전거 페달을 신나게 밟는 사소한 일들이 정씨에게는 사무치도록 해보고 싶은 일들이라는 얘기다. 그런 욕망에 시달리면서도 정씨는 평온한 표정 짓는 법을 배워가는 중인 듯했다.
 
신준봉 기자 infor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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