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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욱의 모스다] (35) '외유내강' 자동차의 안전 책임지는 크럼플존과 세이프티존

지난 2015년, 여러 방송사의 메인뉴스에서 모처럼 국내 모터스포츠 소식이 잇따라 보도된 일이 있었다. 누군가의 우승 소식이나 은퇴 소식은 아니었다. 2015 슈퍼레이스의 개막전에서 발생했던 대형 사고 소식이다. 모터스포츠에 관심이 전혀 없는 사람도 숨죽이며 바라볼 수밖에 없을 정도로 레이스카는 충돌과 구르기를 반복했다.  
 
지난 2015 슈퍼레이스 개막전에서 발생한 김진표(엑스타 레이싱) 선수의 사고 장면. [사진 엑스타 레이싱팀]

지난 2015 슈퍼레이스 개막전에서 발생한 김진표(엑스타 레이싱) 선수의 사고 장면. [사진 엑스타 레이싱팀]

하지만 이는 역으로 모터스포츠의 안전을 대중에게 알리는 계기가 됐다. 해당 레이스카의 드라이버는 엑스타 레이싱팀의 감독 겸 드라이버인 김진표 선수. 몇 바퀴를 구르고 나서야 멈춰선 레이스카는 그야말로 처참한 모습이었다. 하지만 드라이버는 다행히 가벼운 타박상을 입었다. 가수로서 대중에게 많은 사랑을 받은 인물의 대형 사고는 모터스포츠에 대한 관심 여하를 떠나 많은 이들이 놀라고 가슴을 쓸어내리게 했다.
 
그가 대형 사고에도 불구하고 대중 앞에 다시금 건강한 모습으로 나타날 수 있었던 데엔 '외유내강'의 레이스카가 있다.
 
[외유내강(外柔內剛) : 겉은 부드러우나 안은 굳세다]
크럼플존과 세이프티존. '패신저 셀'이라고도 불리는 세이프티존은 절대 타협할 수 없는, 어떠한 순간에도 형태가 보존되어야 하는 공간이다. [사진 Car Safety Design Features]

크럼플존과 세이프티존. '패신저 셀'이라고도 불리는 세이프티존은 절대 타협할 수 없는, 어떠한 순간에도 형태가 보존되어야 하는 공간이다. [사진 Car Safety Design Features]

레이스카뿐 아니라 일반적인 자동차들은 모두 '외유내강'을 추구한다. 탑승자의 안전을 최대한 확보하기 위함이다. 흔히들 "차가 부서져야 탑승자가 안 다친다"고 말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부드러움을 담당하는 부분은 '크럼플존(Crumple zone)'이라고 부른다. 구겨지다, 일그러지다 등을 의미하는 'Crumple' 단어 뜻 그대로, 크럼플존은 외부의 충격을 흡수하는 구역을 뜻한다. 엔진룸이나 트렁크 등 탑승자 공간의 앞뒤가 이러한 크럼플존이 되는 것. 외부에서 일정한 충격량이 가해졌을 때, 탑승자에게 전해지는 힘(충격력)을 줄이려면 충돌 시간을 늘려야 한다. 충격력은 충격량과 비례하는 반면 충돌 시간과는 반비례하기 때문이다. 골프를 예로 들어보면, 클럽에 따라 왜 비거리에 차이가 발행하는지에 대한 답도 여기에 있다. 퍼터-아이언-드라이버 순으로 공과의 접촉 시간, 즉 '충돌 시간'이 짧다. 즉, 같은 충격량을 가했을 때, 퍼터-아이언-드라이버 순으로 그 힘이 세지는 것이다.
 
크럼플존의 개념을 처음으로 도입한 벨라 바레니, 그리고 크럼플존의 개념이 처음 도입된 자동차, 메르세데스 벤츠 W120. [사진 메르세데스 벤츠]

크럼플존의 개념을 처음으로 도입한 벨라 바레니, 그리고 크럼플존의 개념이 처음 도입된 자동차, 메르세데스 벤츠 W120. [사진 메르세데스 벤츠]

자동차의 크럼플존은 외부 충격에 구부러지며 전체적인 충격 시간을 늘리는 역할을 한다. 크럼플존이 구부러지며 시간을 버는 만큼 탑승자에게 전해지는 힘(충격력)은 줄어들게 된다. 이같은 크럼플존의 개념을 자동차에 처음 도입한 브랜드는 메르세데스 벤츠다. 벤츠의 엔지니어 벨라 바레니는 입사 전인 1937년 처음 이 개념을 만들어냈고, 그가 입사한 이후인 1953년, '폰튼(Ponton)'이라는 별칭으로 불린 벤츠의 W120은 그의 아이디어가 반영된 첫 자동차가 됐다.
 
[어떠한 상황에서도 지켜져야 할 곳, 세이프티존]
필러는 세이프티존의 핵심 구조물이다. 말 그대로, 차체의 '기둥'인 것이다. [사진 페즈케임닷컴]

필러는 세이프티존의 핵심 구조물이다. 말 그대로, 차체의 '기둥'인 것이다. [사진 페즈케임닷컴]

크럼플존만으로 탑승자의 안전이 보장될 수 있을까. 크럼플존만 있는 자동차라면 그야말로 '쿠킹호일'이라고 불릴만 할 것이다. 자동차도, 탑승자도, 모두를 지킬 수 없는 자동차 말이다. 이같은 크럼플존에 둘러싸인 세이프티존은 어떠한 상황에서도 지켜져야만 하는 구역이다. 일체의 타협도 없어야 하는 곳이다. 세이프티존은 탑승자 공간이라는 의미에서 '패신저셀(Passenger Cell)'이라고도 불린다.
 
세이프티존의 강성확보를 위해 각 브랜드들은 앞다퉈 주요 부위에 고장력강·초고장력강 비중을 높이고 있다. 이같은 세이프티존의 강성 확보는 어떻게 눈으로 확인될까. 말 그대로 자동차의 기둥인 필러(Pillar)들의 상태를 통해서 가능하다. A필러는 차량의 전면부 기둥, B필러는 앞좌석과 뒷좌석 사이의 기둥, C필러는 뒷좌석의 기둥을 일컫는다. 차량의 형태에 따라 D필러 혹은 그 이상까지 존재할 수 있다. 외부의 충격에 이들 필러가 구부러지는 것은 곧 탑승자의 안전에 대한 직접적인 위협을 의미한다.  
 
현대의 차량(위)과 과거의 차량이 동일한 환경에서 충돌 테스트에 나섰다. 세이프티존의 중요성이 여실히 드러난다. [사진 Euro NCAP]

현대의 차량(위)과 과거의 차량이 동일한 환경에서 충돌 테스트에 나섰다. 세이프티존의 중요성이 여실히 드러난다. [사진 Euro NCAP]

과거의 차량들은 크럼플존과 세이프티존의 구분과 그 중요성을 크게 인식하지 못했다. 또, 이론적으로는 인식했다고 하더라도 구조적·기술적으로 이를 구현하지 못했다. 이는 현대의 차량과 과거의 차량을 동일한 환경에서 테스트함으로써 명확히 드러난다.
 
위 사진은 Euro NCAP이 실시한 정면 충돌 테스트 모습이다. 현대의 차량은 차량의 앞부분이 흔적도 없이 사라졌지만, 탑승 공간인 A, B, C, D필러 사이 세이프티존은 온전한 모습을 유지하고 있다. 반면 과거의 차량은 충격력이 고스란히 탑승자 공간까지 전달된 모습이다. A필러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졌고, B필러 역시 충격 여파로 뒤틀어졌다.
 
[더 단단한 세이프티존을 위하여…롤케이지]
차량이 수차례 구르고 전복되더라도 탑승자의 안전을 지켜주는 롤케이지. [사진 WRC]

차량이 수차례 구르고 전복되더라도 탑승자의 안전을 지켜주는 롤케이지. [사진 WRC]

레이스카는 일반 차량들에 비해 더 많은 위험에 처하게 된다. 보다 빠른 속도로, 다른 드라이버보다 더 빠르게 결승선을 통과하기 위해 경쟁하는 과정에서 크고 작은 사고들이 잇따르기 때문이다. 때문에 어떤 사고에도 드라이버를 보호할 수 있는 세이프티존을 확보하기 위해 안전 규정들은 시간이 지날수록 발전해왔다.
 
레이스카의 세이프티존을 담보하는 주요 요소 중 하나는 바로 롤케이지(Roll Cage)다. 파이프를 엮어 만들어 롤바(Roll Bar)라고도 불린다. 국제자동차연맹(FIA)은 이러한 롤케이지의 재질로 냉간 탄소강(Cold drawn seamless carbon steel)을 사용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냉간 탄소강으로 만든 파이프는 최소 직경 38mm에 두께 2.5mm 이상이거나 직경 40mm에 두께 2mm 이상이어야 한다(2017 FIA APPENDIX J - ARTICLE 253. Safety Equipment). 롤케이지에 사용되는 냉간 탕소강의 최소 인장력은 350N/㎟이다.
빠른 속도로 달리다 수차례 구르기를 반복한 차량. 드라이버들은 무사히 자력으로 차에서 빠져나왔다. [사진 WRC]

빠른 속도로 달리다 수차례 구르기를 반복한 차량. 드라이버들은 무사히 자력으로 차에서 빠져나왔다. [사진 WRC]

 
이같은 기준이 적용된 월드랠리챔피언십(WRC) 경기에선 비포장도로인 '오프로드'와 포장도로인 '온로드'를 오가며 밤낮없이 경기가 진행되다 보니 사고가 끊이지 않는다. 다시 말해, 롤케이지가 제 역할을 해내는 상황이 끊임없이 발생한다. 좁은 시골길을 빠른 속도로 질주하는 WRC는 조금의 예상 밖 움직임에도 큰 사고가 발생한다.  
 
빠른 속도로 내달리다 갑작스럽게 돌기둥과 부딪히거나 중심을 잃고 수차례 회전과 전복을 거듭하지만 대부분의 사고에서 드라이버와 코드라이버(Co-driver)는 아무렇지 않게 차에서 내리곤 한다. 레이스카는 더 이상 주행을 할 수 없을 정도로 파손됐지만 탑승자는 자력으로 탈출이 가능할 만큼 온전한 몸상태를 보이는 것이다.
 
[사진 유튜브 캡처]

[사진 유튜브 캡처]

'녹색 지옥'으로 불리는 독일의 뉘르부르크링 노르트슐라이페를 달리는 VLN 대회에서도 각종 크고작은 사고가 발생한다. 보는 이를 깜짝 놀라게 하는 큰 사고에도 마찬가지로 운전자는 안전한 구역까지 스스로 몸을 움직인다. 이는 드라이버의 안전을 확보하기 위해 많은 인력이 연구·개발에 매진한 결과이자 그간 있었던 모터스포츠의 안타까운 인명피해를 통해 얻은 교훈의 산물이다.
 
[크럼플존·세이프티존보다 더 중요한…안전벨트]
안전벨트는 자동차 안전의 가장 기본이다. [사진 유튜브 캡처]

안전벨트는 자동차 안전의 가장 기본이다. [사진 유튜브 캡처]

제아무리 충분한 크럼플존을 확보하고, 세상에서 가장 견고한 세이프티존을 구축했다고 한들 탑승자가 안전벨트를 단단히 매고 있지 않는다면 아무런 소용이 없다. 탑승자가 시트에 고정되어 있지 않으면 그는 충돌 상황에서 관성에 따라 이리저리 움직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안전벨트가 앞좌석뿐 아니라 뒷좌석에서도 의무이자 필수라는 것은 이미 다수의 충돌 테스트를 통해 드러난 사실이기도 하다.
 
앞좌석 탑승자가 안전벨트를 착용했다고 하더라도 뒷좌석 탑승자가 그렇지 않다면 사고시 처참한 결과를 부른다. [사진 IIHS]

앞좌석 탑승자가 안전벨트를 착용했다고 하더라도 뒷좌석 탑승자가 그렇지 않다면 사고시 처참한 결과를 부른다. [사진 IIHS]

모터스포츠의 경우, 일반적인 2·3점식 벨트가 아닌 4~6점식 벨트를 사용한다. 몸 곳곳을 시트에 고정시키는 만큼, 안전벨트 또는 시트벨트라는 표현보다 하네스(Harness)라는 표현이 주로 쓰인다. 하네스는 드라이버가 충돌 또는 전복 등의 상황에서 어느 방향으로도 흐트러지지 않고 시트에 단단히 고정될 수 있도록 하는 역할을 한다.  
 
[안전, 모터스포츠가 스포츠일 수 있는 이유]
3차례 F1 월드챔피언 자리에 오른 '살아있는 전설' 니키 라우다. [사진 F1]

3차례 F1 월드챔피언 자리에 오른 '살아있는 전설' 니키 라우다. [사진 F1]

1975년과 1977년, 그리고 1984년 세 차례에 걸쳐 F1 월드 챔피언 타이틀을 거머쥔 '살아있는 전설' 니키 라우다는 전성기를 구가하던 시절, 위험하다는 이유로 월드 챔피언 타이틀을 스스로 포기한 바 있다. 바로, 1976년 시즌 마지막 경기였던 일본 그랑프리에서였다.  
 
이 시즌, 라우다는 앞선 독일 그랑프리에서 대형 사고로 생사를 오가는 고비를 겪었지만 6주 만에 복귀해 시즌 종합 1위를 되찾았었다. 사고를 당했던 독일 그랑프리에서도 라우다는 경기 전 비상회의를 소집하고 "빗길의 서킷은 위험하다"며 경기 중단을 호소하기도 했다. 시즌 마지막 경기인 일본 그랑프리를 앞두고, 시즌 종합순위 1위였던 라우다와 2위인 제임스 헌트의 포인트 차이는 불과 3점. 라우다에게 일본 그랑프리는 '2년 연속 월드 챔피언'이라는 타이틀을 위해선 헌트를 꺾어야만 했던 경기다.
 
트랙 곳곳에 물웅덩이가 생길 만큼 서킷엔 폭우가 쏟아졌고, 라우다는 결국 두 랩만을 소화한 채 피트로 돌아왔다. 안전을 이유로 스스로 경기를 포기한 것이다. 헌트는 이 경기에서 3위를 차지하며 그해 F1 월드 챔피언이 됐다.  
 
라우다가 그저 '겁쟁이'였던 것일까. 당시 라우다의 소속팀이었던 페라리의 수장 엔초 페라리는 그렇게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라우다는 누구보다도 모터스포츠를 모터스포츠답게 즐겼던 '실력파'였다. 그는 1979년 은퇴 후 3년만인 1982년에 재복귀했고, 1984년 세 번째 월드 챔피언 타이틀을 따냈다. 라우다가 세 번째로 세계 최고의 자리에 올랐던 당시, 그의 팀메이트였던 알랭 프로스트는 "내게 무언가를 가르쳐줬던 유일한 사람"이라며 라우다를 치켜세웠다. "라우다를 만나 많은 것을 배웠다"는 것이다.  
니키 라우다(오른쪽)와 알랭 프로스트(가운데). 두 전설은 과거 한솥밥을 먹던 팀메이트였다. [사진 네덜란드 내셔널 아카이브]

니키 라우다(오른쪽)와 알랭 프로스트(가운데). 두 전설은 과거 한솥밥을 먹던 팀메이트였다. [사진 네덜란드 내셔널 아카이브]

 
일반 공도에선 상상할 수 없는 속도로 달리며 다른 차량과 경쟁하는 모터스포츠. 안전에 대한 고민 없이, 또 안전에 대한 보장 없이는 결코 스포츠일 수 없다. 물론, 이는 시중에 판매되고 있는 모든 자동차에도 마찬가지인 부분이다. 안전에 대한 고민이 없다면, 안전에 대한 보장이 없다면 자동차는 그저 엄청난 속도와 질량, 그로 인한 에너지로 '움직이는 흉기'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박상욱 기자 park.lepremie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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