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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중앙시조백일장 장원에 이정란씨

중앙시조백일장 10월 수상작
 
장원
뚜껑·냄비·받침
◇이정란=1968년 서울 출생. 대구카톨릭대학교 졸업. 대구성빈시조회원

◇이정란=1968년 서울 출생. 대구카톨릭대학교 졸업. 대구성빈시조회원

 
 이정란
 
1
혹여 넘칠까봐 꼭꼭 가둬두고  
꾹꾹 삼키다가 곧장 내리누르다  
 
단번에
뱉어 놓으면  
놀라잖아 화들짝 
 
 
2
모두 끌어안고 보듬고 견디나니
 
끓어오르다 내려앉고
내려앉다 사뭇 들끓고  
 
내 속이  
내 속 아니네  
불로 활활 타오르네
 
3
더는 쓰라리지 않게  
그예 가로막아 줄게
 
나만 참으면 되지  
나만 매양 오롯이
 
빛 부신  
너의 세상에  
아픔은 늘 나만이
 
 
차상
옷장 해부학
 
             이소현
 
때로는 채도 낮은 살갗의 외로움
부드럽게 발라진 침묵이 보인다
익숙한 얼굴들이나 초면의 모습들
 
괴로움에 내 육체가 눈물을 토해내고  
감당할 수 없는 뼈들과 근육이  
균열을 일으키면서 재조합 되는 순간
 
동요하는 연약한 영혼들 그 알맹이
웅성대는 하얀 입 술렁이는 목소리  
그것이 한껏 눌러 담겨진 상아빛 뼈대들
 
뜨거운 근육들을 감싸진 피부를  
마주할 수 없어 바라볼 수 없어  
사람을 견뎌내는 힘 그게 난 필요해
 
 
차하
매생이  
 
          최분현  
 
비단결 달비보다  
더 세세한 바다 속살  
 
어머니 시린 손이 푸른 물 다 걸러도
 
한평생  
눈물 씨만큼  
소쿠리에 담긴다
 
이달의 심사평
 
결실과 수확의 계절인 시월이다 보니 이 달의 응모작들은 한층 깊어진 시심으로 근래 보기 드물게 양과 질 모두 풍성한 역작들을 보여주었다.
 
그중에서도 장원에 오른 이정란의 '뚜껑·냄비·받침'은 주방의 단순한 일상적 소재인 ‘뚜껑’ ‘냄비’ ‘받침’의 본질을 꿰뚫어보고 이 각각의 사물을 생동감 넘치는 인간의 역할과 목소리로 육화해 내는 흥미진진한 극적인 발상이 단연 돋보였다. 구제척인 표제의 선명한 이미지들을 단시조 3수로 구성하면서도 여성화자 특유의 섬세한 감각과 어조로 작품전편의 통일성과 완성도를 능숙하게 고조시킨다. 특히, 절제된 시조가락의 묘미를 맛깔나게 잘 살린 직접화법의 친숙한 구어체를 통하여 생생히 전해지는 내면화된 인격의 모성적 인간애가 가슴 뭉클한 감동의 진폭을 넓혀주었다. 
 
차상으로는 이소현의 '옷장 해부학'을 올린다. 인간육체의 겉치레인 옷들만 모아놓은 인간부재의 옷장에서 ‘부드럽게 발라진 침묵’ ‘뼈들과 근육이 재조합 되는 순간’ ‘연약한 영혼들 눌러 담겨진 뼈대들’ ‘사람을 견뎌내는 힘’을 읽어내는 재기발랄한 신선한 착상과 ‘살갗’ ‘뼈’ ‘근육’ ‘피부’ ‘영혼’ ‘입’ ‘목소리’등의 해부적 상상력을 통하여 현대인이 직면한 사회적 인간관계의 고통과 허구성을 날카롭게 성찰한 수작이었다. 다만, 마지막 수 초장의 ‘감싸진’은 ‘발라진’ ‘담겨진’과 맥을 같이하여 쓰였다면 ‘근육들을’을 ‘근육들이’로 바꾸어야 할 것이다. 
 
차하에는 최분현의 '매생이'를 선한다. 해초인 ‘매생이’에 어머니의 눈물겨운 삶을 투영시킨 단시조이다. ‘바다 속살’ ‘푸른 물’ ‘소쿠리’와 ‘달비’ ‘시린 손’ ‘눈물 씨’가 아름답게 조응하면서 깔끔하고 군더더기 없는  시상전개가 호평을 받았다. 
이외에도 국외 응모작들이 참으로 고무적이었고, 이남희, 이금진 등의 작품이 심도 있게 논의되었다, 앞으로의 정진을 기대한다.
 
-심사위원: 박권숙, 염창권(대표집필: 박권숙)
 
 
초대시조 
단풍 왕조        
                   이서원 
◇이서원=경북 경주 출신. 2008년 부산일보 신춘문예 당선으로 등단. 시집 『달빛을 동이다』『뙤창』. 이호우시조문학상 신인상 수상.

◇이서원=경북 경주 출신. 2008년 부산일보 신춘문예 당선으로 등단. 시집 『달빛을 동이다』『뙤창』. 이호우시조문학상 신인상 수상.

 
견고한 철옹성을 삽시간에 제압하고 
앞서 간 척후병이 잠겼던 문을 열자 
거대한 군중의 함성이 골짜기를 뒤흔들다 
다 찢긴 깃발인 양 옹색한 쇠락 앞에 
세상은 일순간 홍위병 천지가 되고
가을은 무혈입성으로 새 왕조를 세우다 
 
 
 눈이 하얗게 쌓였던 자리에 풀잎 뾰족뾰족 돋아나더니, 맨발로 뛰어나온 온갖 꽃들이 나라 전체를 무대로 삼아 한바탕 광란의 축제를 벌이더니, 꽃 진 자리에 신록이 우지끈 다 들고 일어나더니, 바야흐로 이제 가을 기운이 온 천지간에 사무치고 있다. 이 모두가 어, 어, 어 하는 사이에 느닷없이 일어난 일들이다.
 이서원의 '단풍 왕조'는 실로 완강하게 버티던 여름이 어, 어, 어 하는 사이에 돌연 가을로 뒤바뀌는, 그 순식간의 돌변 상황을 왕조 교체의 전쟁 상황에 비유하여 표현한 가품(佳品)이다. 따라서 첫머리의 철옹성은 한 여름의 짙푸른 녹음 왕조의 철옹성이고, 척후병은 가을 단풍 왕조의 척후병이다. 절대로 열리지 않을 것 같던 난공불락 철옹성의 성문이 척후병 하나에 의하여 그만 스르르 열리는 순간, 와아~ 와아~ 그 무슨 거대한 해일처럼 성문으로 뛰어드는 단풍 왕조 선봉군의 함성이 산골짜기를 온통 뒤흔든다. 그와 동시에 녹음 왕조는 ‘다 찢긴 깃발인양’ 속수무책으로 무너져 내리고, 단풍 왕조의 홍위병들이 천산만산(千山萬山)에다 온 동네 된장과 고추장을 죄다 뒤범벅 해 처바르기 시작한다. 가을이 ‘무혈입성’의 혁명을 통해 새 왕조를 세우는 순간이다. 하지만 이 단풍 왕조도 어, 어, 어, 하는 사이에 싸락눈이 볼을 때리는 하얀 겨울 왕조에게 자리를 물려주고 말게 되리라. 그것이 자연의 법칙이니까.  
 시 창작에서 한자어의 남발은 독이 되는 경우가 훨씬 더 많다. 하지만 이 작품에서는 철옹성, 척후병, 홍위병, 무혈입성 등 도처에 등장하는 한자어들이 그 때 그 때 상황에 딱 맞아떨어져, 독이 오히려 독을 치료하는 약이 되고 있다는 점도 주목된다. 경우야 물론 다르지만, 제삿날 인절미에 드문드문 박혀 있는 곶감과 대추가 발휘하는 극적 효과와도 유사한 효과다. 
이종문, 시조시인
 
응모안내  
매달 20일 무렵까지 우편(서울시 중구 서소문로 100번지 중앙일보 문화부 중앙시조백일장 담당자 앞. 우편번호 100-814) 또는 e메일(choi.sohyeon@joongang.co.kr)로 접수할 수 있습니다. 02-751-53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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