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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작과 무능으로 망가진 20세기 최대의 체제 실험

[비주얼 경제사] 러시아혁명
 
두 장의 사진이 있다. 얼핏 보면 비슷하지만 서로 다른 부분이 있다. 우선 공통된 영역을 보자. 나무로 만든 단상에 올라 군중들에게 연설을 하는 인물이 있다. 러시아혁명을 이끈 블라디미르 레닌이다. 이제 차이점을 찾아보자. 자세히보면 단상의 오른쪽에 위치한 계단 부분이 다르다. 그림1 ⓐ에서는 그 부분이막혀 있는데, 그림ⓑ에서는 그곳에 몇명의 사람들이 보인다. 어느 사진이 원본일까? 원본이 아닌 사진은 왜 그렇게 변형이 되었을까?

레닌 사후 권력투쟁 겪은 스탈린
트로츠키의 공식기록 모두 삭제

현실 왜곡과 과거 조작 바탕으로
통계조차 믿을 수 없는 계획경제
스스로의 모순 탓에 결국 무너져

 
그림1 1920년 모스크바에서 연설하는 레닌을 찍은 사진의 원본ⓑ와 트로츠키가 삭제된 수정본ⓐ.

그림1 1920년 모스크바에서 연설하는 레닌을 찍은 사진의 원본ⓑ와 트로츠키가 삭제된 수정본ⓐ.

 
지금으로부터 정확히 100년 전인 1917년 11월 러시아에서 20세기 최대의 체제 실험이라고 부를 수 있는 대사건이 발생했다. 바로 러시아혁명이다. 이 사건을 통상 10월혁명이라고 부르는데, 혁명일이 오늘날 달력으로는 11월 초에 해당하지만 당시 러시아가 사용하던 구력으로 10월이기 때문이다. 볼셰비키의 붉은 군대가 임시정부를 공격해 무너뜨리고 노동자·농민·군인의 대표자로 구성된 소비에트 정권이 수립되었음을 선언했다. 혁명의 여파는 어마어마했다. 전 세계가 자본주의 진영과 공산주의 진영으로 나뉘는 세계사적인 변화가 발생했다. 소련이 붕괴되는 1991년까지 이어지게 될 ‘극단의 시대’가 개막한 것이다.
 
러시아혁명은 어떻게 시작되었을까? 1904~1905년 러일전쟁에서 러시아는 신흥 강국 일본에 쓰디쓴 참패를 맛봤다. 전쟁 이전에 이미 경기 침체, 실업, 임금 저하 등으로 불만이 가득했던 러시아 사회는 패전을 계기로 균열을 일으켰다. 1905년 초 상트페테르부르크의 노동자들이 시위를 벌이자 군대가 발포를 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노동자의 파업은 더욱 거세졌고 군인들도 반란을 일으켰다. 로마노프 왕조의 차르 니콜라이 2세가 무마에 나서고 혁명세력의 분열로 봉기는 일단 기세가 꺾였지만 제국의 운명은 이미 돌이키기 어려운 상황에 접어들고 있었다.
 
포스터로 사회주의혁명을 선전
1914년 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곧 러시아는 군사력과 경제력의 한계를 여지없이 드러내고 말았다. 전시동원령으로 농촌에서는 가축이 징발되고 도시에서는 생필품의 부족해지며 주민들의 삶이 궁핍해졌다. 식량과 연료 부족은 일상사가 됐고 파업과 시위는 날로 규모가 커졌다. 이렇게 사회가 폭발 직전인데도 차르는 개혁 요구를 무시했고 요승 라스푸틴의 전횡도 계속됐다. 결국 노동자들의 시위와 군부의 반란이 확산돼 걷잡을 수 없는 수준의 대중봉기로 이어졌다. 이 2월혁명(3월 초)의 결과로 니콜라이 2세가 퇴위하게 되면서 로마노프 왕조는 300년 역사의 막을 내렸다. 대신 보수적 인사들이 주축이 된 임시정부가 권력을 차지했다.
드미트리 무어, ‘세계 제국주의에 죽음을’, 1919년.

드미트리 무어, ‘세계 제국주의에 죽음을’, 1919년.

 
임시정부는 독일을 공격하려다가 오히려 참패했고 그에 따라 반정부 분위기가 고조됐다. 이때 망명생활에서 돌아온 레닌이 혁명 지도자로서 두각을 나타냈다. 볼셰비키는 군인들과 노동자들을 중심으로 무장시위조직을 결성했다. 11월 6일 트로츠키의 지휘 하에 10월혁명이 시작됐다. 혁명군은 곧 임시정부의 거점인 겨울궁전을 함락하고 권력을 장악하는 데 성공했다. 레닌과 볼셰비키의 혁명세력은 전국을 차례로 지배권 하에 두게 됐다.
 
레닌은 어떤 인물일까? 그는 칼 마르크스로부터 깊은 영향을 받은 혁명 운동가이자 사상가였다. 그는 19세기 말 열강의 제국주의 정책을 마르크스주의의 연장선상에서 분석했다. 자본주의 세계에서 기업 간의 경쟁은 격화하기 마련이다. 대중의 구매력은 생산물의 수요를 충족시키기에 점차 부족해지므로 이윤율이 저하하게 된다. 이에 따라 자본가는 금융가와 결합해 생산물을 판매하고 잉여자본을 투자할 대상을 찾아 나서게 된다. 이것이 제국주의 식민지 쟁탈전의 본질이라는 게 레닌의 주장이다. 그가 보기에 19세기 말 서구 자본주의는 누적된 내부적 모순이 폭발하기 직전이었고 제국주의는 이런 폭발사태를 지연시키기 위해 자본가들이 고안해 낸 장치였다. 제국주의는 최후의 단계를 맞은 자본주의가 드러낸 결사적 몸부림이라는 것이다.
 
제국주의에 대한 레닌의 이런 시각은 사회주의혁명을 선전하는 포스터에 반영되곤 했다. 이 분야에서 발군의 솜씨를 발휘한 화가로 드미트리 무어가 있다. 그는 양차 세계대전 참전과 러시아혁명을 지지하는 프로파간다 포스터를 많이 제작했다. 그림2를 보자. 시커먼 연기를 내뿜는 커다란 공장들과 웅장한 건물들이 한 몸체를 이루고 있다. 이 몸체를 감싼 이무기 모양의 거대 괴수가 두 눈을 부릅뜬 채 아가리를 벌리고 사람들을 공격한다. 서구의 열강들이 키운 자본주의가 제국주의라는 무시무시한 괴수로 진화해 민중들의 삶을 위협하고 있는 것이다.  
드미트리 무어, ‘경계하라!’, 1921년.

드미트리 무어, ‘경계하라!’, 1921년.

 
이 괴수를 상대로 용감하게 싸우는 사람들은 노동자·농민·군인과 같은 민중들이다. 주위의 붉은 깃발들은 러시아혁명이 저항세력들을 한데 묶는 힘임을 강조한다. 포스터 아래쪽에 ‘세계 제국주의에 죽음을’이라는 표어가 적혀 있다. 무어는 비주얼한 프로파간다 포스터가 지닌 선전효과를 누구보다 잘 이해하고 있었다.
 
무어가 제작한 또 다른 포스터를 보자. 그림3은 러시아 지도를 배경으로 볼셰비키 ‘적군’ 병사가 총검을 들고서 침략을 시도하는 ‘백군’을 압도하는 모습을 묘사한다. 그림이 제작된 해인 1921년, 출범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소련이 여러 위협에 직면했던 해였다. 기근과 소요사태도 문제였지만 혁명 움직임을 무너뜨리려는 세력이 더욱 직접적인 위협이었다. 무어는 볼셰비키 병사의 당당한 발 앞에서 반혁명 세력들이 굴복하는 장면을 강렬하게 표현했다. 결국 볼셰비키는 반혁명 세력을 몰아내고 1922년 소비에트 연방을 결성하게 된다.
 
 
레닌이 세계화와 빅데이터를 접한다면
그런데 자세히 보니 이 병사의 얼굴이 낯익다. 그림1ⓑ의 계단에 서 있는 인물과 동일하다. 바로 10월혁명 당시 무장조직을 이끈 혁명가 트로츠키다. 원본사진ⓑ에 등장했던 그가 훗날 사진ⓐ에서는 사라진 것이다. 도대체 무슨 일이 발생한 것일까? 수수께끼의 발단은 레닌의 죽음이었다. 1924년 레닌이 사망하자 후계자 지위를 놓고 스탈린과 트로츠키가 치열하게 싸웠다. 권력투쟁에서 승리한 스탈린은 트로츠키를 숙청하고 국외로 추방했다. 이것으로 부족했던지 스탈린은 모든 기록에서 트로츠키의 흔적을 삭제하라고 명령했다.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과거의 경쟁자가 되살아날 가능성을 미연에 차단하려는 조치였다. 사진ⓐ는 바로 이 역사지우기를 보여 주는 증거물이다.
 
이후 소련의 역사는 우리가 익히 아는 바대로 흘러갔다. 소련은 계획경제체제를 만들고 정부의 강력한 통제 하에 공업화와 경제발전을 추진했다. 그러나 통치자가 바뀌어도 정치는 늘 강압적이었고 국민들의 인권은 늘 무시됐다. 개인 인센티브의 결여라는 계획경제의 근본적 취약점도 극복하기 어려웠다. 각지에서 올라오는 통계가 현실과 다르게 조작되었으므로 계획 자체가 제대로 짜일 수도 없었다. 결국 소련 경제는 발전의 동력을 상실했고, 해결책을 찾는 데에 권력층은 한결같이 무능했다. 마침내 1980년대 후반부터 소련 사회는 무너져 내렸고 1991년 거대한 체제실험은 종말을 맞았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현실을 왜곡하고 과거를 조작하는 체제가 오래 유지될 수는 없는 법이다. 레닌이 오늘날 살아 있다면 변화한 세상을 보고 어떤 생각을 할지 문득 궁금해진다. 제국주의를 자본주의의 최후단계로 여겼던 그가 세계화된 오늘날의 국제적 분업시스템을 어떻게 받아들일까? 세계화를 제국주의가 더욱 교묘하게 진화한 모습이라고 여기지 않을까? 그리고 사회주의를 표방하는 중국이 세계적 분업의 중요 부분을 구성한다는 점에 배신감을 느낄 듯하다. 빅데이터가 수집되고 활용되는 모습에서는 어떤 인상을 받을까? 이제서야 자신이 꿈꿨던 계획경제체제를 현실화할 수 있는 기술적 기반이 마련됐다고 손뼉을 칠지도 모르겠다. 마지막으로, 가짜뉴스가 범람하는 미디어 상황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할까? 다른 것은 다 바뀌어도 정보를 조작하고 정보의 흐름을 통제하려는 권력의 속성만은 불변한다고 결론 짓지 않을까?
 
 
송병건 성균관대 경제학과 교수 bks21@skku.edu
서울대 경제학과에서 학·석사 학위를 마친 뒤 영국 옥스퍼드대에서 경제사 전공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성균관대 경제학과 교수. 『세계화의 풍경들』『비주얼 경제사』『세계경제사 들어서기』 등 다수 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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