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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들의 장래 희망은 퇴사입니까

영화 ‘잠깐만 회사 좀 관두고 올게'

영화 ‘잠깐만 회사 좀 관두고 올게'

“연애란 어른들의 장래 희망 같은 것”이라는, 드라마(‘연애시대’)의 명대사가 마음을 후벼 파던 시절이 있었건만, 이제 어른들의 장래 희망은 ‘퇴사’인 시대가 온 것 같다. 일본에서 70만부 넘게 팔린 베스트셀러를 원작으로 한 영화 ‘잠깐만 회사 좀 관두고 올게(사진)’를 보러 갔더니, 관객들 반응이 무섭게 열광적이다. 업무 시작 전 직원들이 다 같이 외치는 구호, “휴가는 필요 없다! 몸만 둔해진다!”에 “에이C” 험한 말이 터져 나오고, 부장에게 혼나는 주인공의 모습에는 한숨 푹푹이다. 옆에 앉은 관객은 그렇게 슬픈 내용도 아닌데 내내 훌쩍인다. 

영화 ‘잠깐만 회사 좀 관두고 올게’가 묻는 것

 
영화는 최악의 취업난을 뚫고 한 회사 영업직으로 입사한 다카시(구도 아스카)가 주인공이다. 실적에 대한 압박과 과도한 야근으로 번 아웃(burn out) 상태지만, 어렵게 들어간 직장이니 그만둘 수 없다. 어느 날 직업은 없지만 늘 싱글벙글한 얼굴로 살아가는 초등학교 동창 야마모토(후쿠시 소우타)를 만나면서 조금씩 변해간다는 이야기. 
 
영화를 본 관객들이 SNS에 올린 감상은 ‘웃프다’. 제목 적힌 영화 포스터를 프로필 사진으로 했더니 팀장님이 “내가 뭐 잘못했냐”며 밥을 사주더라는 얘기, 매표소 앞에서 긴 영화 제목이 생각 안 나 “사표 한 장 주세요” 했는데, 찰떡같이 알아듣더라는 에피소드 등등.
 
서점에는 퇴사를 다룬 책도 넘쳐 난다. 아사히 신문 기자였던 이나가키 에미코의 『퇴사하겠습니다』는 또래 친구들 사이에서 한동안 화제였다. ‘월간 퇴사’라는 잡지가 생겨났고, 『퇴사의 추억』 『직장인 퇴사 공부법』 『퇴사준비생의 도쿄』 등이 연이어 나왔다. 퇴사 후의 삶을 함께 고민하는 오프라인 모임 ‘퇴사학교’에는 매월 수백 명의 직장인이 방문한다고 한다. 평생 직장이 사라지고, 일단 ‘닥치고 취업’한 후 이직을 준비하는 ‘취업 반수생’이 늘어나는 요즘 현실을 반영한 트렌드다. 
 
한국의 5~10년 후 미래를 살고 있는 것 같은 일본에선 불안한 시대, 일에 대한 철학을 연구하는 ‘시고토학(仕事學)’이 인기라고 한다. 최근 한국에도 출간된 강상중 전 도쿄대 교수의 『나를 지키며 일하는 법』이 대표적이다. 그는 이 책에서 일이란 사회로 들어가는 ‘입장권’이자 ‘나다움’의 표현이 되어야 한다고 말하면서, 불확실한 시대를 살아가는 방법으로 “하나를 위해 전부를 바치지 말라”고 말한다. 효율이나 성과에 대한 요구가 점점 높아지는 분위기 속에서 중압감에 억눌리지 않기 위해서는 하나의 영역에 자신의 100%를 맡기지 않겠다는 태도가 필요하다. 그래야 스스로를 궁지로 몰아넣지 않을 수 있다. 음,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이런 질문을 잠재울 수 없다. 하나도 낑낑대며 하고 있는데 플랜B, C를 위한 에너지는 어디서 끌어오란 말인가요, 교수님.
 
어쩌면 ‘퇴사’ 관련 콘텐트에 공감하며, 때론 웃으며 즐길 수 있다는 건 아직 버틸 힘이 남아있다는 이야기인지도 모른다. 단, 극단적인 사례를 보여주는 영화 ‘잠깐만…’은 하나의 메시지 만큼은 확실하게 전한다. 주인공 다카시처럼 ‘나는 왜 일하는 걸까. 살기 위해 일하는 거라면 나는 살아 있다고 말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든다면, 이대로 삶이 지속될 바엔 끝내는 게 낫다는 지경에 이른다면 용기를 내야 한다고. 언뜻 무책임해 보이는 이런 말에라도 기대보면서. “인생이란 살아 있으면 어떻게든 풀리게 돼 있어.” 
 
사족인데, 퇴사를 다룬 이야기에 늘 나오는 장면이 있다. 어렵사리 “그만두겠다”고 말을 꺼낸 이에게 선배나 동료가 저주를 퍼붓는 신이다. “정신 차리라”거나, “두고두고 후회할 것”이라거나. ‘잠깐만…’의 부장은 이렇게 말한다. “어차피 너 같은 놈은 평생 패배자로 끝나는 거야!” 이 장면을 보며 오래 전 들었던 비슷한 말이 떠올랐다. “네가 어디 가서 잘 되나 보자”였던가. 다카시처럼 이렇게 대답해 줬어야 했는데. “내 인생을 댁이 이러쿵저러쿵 하지 마!!” 하긴 지금도 가끔씩 그 악담을 떠올리며 없는 투지를 짜내곤 하니 감사해야 할 일일지도 모르겠으나.
 
 
글 이영희 기자 misquick@joongang.co.kr 사진 미디어소프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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