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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인의 뒤태 감싸는 아련한 첼로

영화 ‘화양연화’ OST LP. 왕가위 감독의 택동영화사 창립 25주년을 기념해 발매했다.

영화 ‘화양연화’ OST LP. 왕가위 감독의 택동영화사 창립 25주년을 기념해 발매했다.

홍콩영화는 나에게 이소룡과 동의어다. 1970년대 중학생 시절에 본 ‘당산대형’ ‘정무문’ ‘용쟁호투’는 내 영화보기 역사의 문을 연 판타지였다. 이지적 얼굴, 남자가 봐도 황홀한 역삼각형 상반신, 악당을 공격할 때 새가 우는 듯 지르는 신비한 기합 소리…. 이소룡은 나의 우상이었다. 미완성인 채 급사해 대역을 쓴 ‘사망유희’를 볼 때는 가슴이 먹먹했다. 

an die Musik: 영화 ‘화양연화’

 
이소룡에 이어 홍콩영화의 스타로 등장한 성룡은 내 취향은 아니었다. 취권은 재미있었으나 TV코미디와 다를 바 없었다. 80년대에 한국에서도 유행한 홍콩 느와르는 극장에 가서 본 적이 없다. 이소룡은 무기라고 해야 쌍절곤이었는데, 주윤발의 권총은 종일 쏴도 총알이 떨어지지 않았다.  
 
네 글자 한자제목 영화는 그렇게 나에게서 멀어졌는데, 최근에 멜로드라마 한 편과 우연히 마주쳤다. 칸영화제 남우주연상과 뉴욕비평가협회 촬영상을 받았다지만, 나는 장만옥이 남자인지 여자인지도 모른 채 DVD 플레이 버튼을 눌렀다. 별 기대 없이 보다가 정신없이 빠져들었고, 일주일 만에 다시 봤으며, 두 달 뒤 한 번을 더 봤다. 아름다운 영상, 화면과 절묘하게 어우러지는 음악, 최소한의 대사, 상징적 장치가 중독성이 있었다. 왕가위 감독의 ‘화양연화’ 이야기다. 
 
무대가 홍콩의 아파트지만 홍콩 거리도, 아파트 건물도 보여주지 않는다. 좁은 공간들, 어둡고 가파른 계단, 비 내리는 골목을 정지 카메라로 비춘다. 짙은 물감을 두텁게 바른 유화 같다고 할까. 영화 초입에서 시선을 사로잡는 것은 아파트 복도를 걷는 여인의 뒷모습이다. 몸매를 드러내는 치파오 차림의 여인이 화면 가득 슬로우 모션으로 걷는다. 잘록한 허리에서 풍만한 엉덩이로 흘러내리는 곡선이 좌우로 천천히 흔들리는 모습은 숨 막힌다. 옷을 입은 여인의 몸이 저렇게 섹시하다니. 이 장면에서 첼리스트 요요마가 연주하는 ‘유메지’의 테마가 4분의 3박자 느릿한 왈츠 풍으로 흐른다. 묵직한 첼로 선율은 원래 일본영화에 쓰였지만 화양연화를 위해 지어진 것처럼 화면에 녹아든다. 
 
스토리는 통속적이다. 남녀가 아내와 남편을 상대의 남편과 아내에게 빼앗긴다. 두 사람이 복도에서 스치면 숨결이 섞이는 곳이니 무슨 일이 생기지 않는다면 이상하다. 눈이 맞은 남녀는 도피행각을 벌이고 배우자들은 외롭게 남겨진다. 수리첸(장만옥)은 초모완(양조위)에게 묻는다. “두 사람은 어떻게 시작하게 되었을까요?” 그런데 그들 역시 시작하게 된다. 하지만 “우리는 그들과 다르다”고 말한다. 달라야 함은 강제된 도덕이고 그들에게 형벌이다. 감독은 두 사람의 섹스 신을 찍었으나 편집에서 잘라냈다. 때문에 장면이 바뀔 때마다 여자는 다른 치파오를 입고 나오지만 한 번도 벗지 않는다. 세상에서 가장 야한 옷이라는 치파오는 시간이 흐를수록 스스로 자물쇠를 채운 정조대처럼 느껴진다. 
 
사랑의 기쁨을 누려보지도 못한 남녀가 이별연습이라는 걸 한다. 남자가 “다신 전화하지 않을게요, 남편 잘 지켜요”하고 말한 뒤 잡은 손을 놓자 여자는 남자의 체온이 빠져나간 빈손으로 자신의 팔을 움켜쥐며 흐느낀다. 습관처럼 잡던 손을 더 이상 잡을 수 없게 되는 것이 이별이란 걸 실감한다. 그리고 둘은 헤어진다.
 
냇 킹 콜의 감미로운 스페인어 노래 세 곡이 영화에 사용된다. 콜은 왕 감독이 어린 시절 홍콩에 살 때 가장 인기 있는 가수였다고 한다. 그 시절 그 노래를 쓴 것이다. 멕시코 노래인 ‘키사스 키사스 키사스’는 세계적으로 히트한 덕분에 나도 어린 시절부터 들었다. 칠순을 바라보는 내 둘째 형님은 청년 시절 라디오에서 이 노래가 나오면 “티샤스, 와이샤스, 속샤스”하고 따라 불렀다.
 
가사를 확인해 보니 화양연화와 스토리가 맞아떨어지지는 않지만 애달픈 사랑 노래다. “항상 저는 그대에게 묻지요. 언제, 어떻게, 어디에? / 그대는 언제나 저에게 대답하지요. 아마도, 아마도, 아마도. / 많은 날들이 흘러가고 저는 절망 속으로 빠져들어도 / 그대는 언제나 대답하지요. 아마도, 아마도, 아마도.” 물론 영화에서는 묻지도 않고 ‘아마도’라는 대답조차 하지 않는다. 참깨죽을 끓여 주고, 접시에 겨자를 덜어 주고, 무협지 원고를 같이 쓸 뿐이다. 격정을 누른 채.
 
화양연화(花樣年華)는 ‘인생에서 가장 아름답고 행복한 시절’이라는 뜻이다. 그러나 두 남녀의 사랑은 고통스러워 보인다. 마지막에 남자는 앙코르와트 사원의 기둥 속에 그녀와의 사랑을 속삭이고 진흙으로 봉인한다. 영원한 비밀로 묻은 것이다. 허망하다. 화양연화는 앞으로도 가끔 보게 될 것 같다. 허망해 보이는 두 사람의 이별에 대해서는 생각이 바뀔지도 모르겠다. 감독이 잘라낸 화면을 봤는데 그리 아름답지 않았다. 슬픈 일이지만, 그들과 달라야 아름답다.
 
 
글 최정동 기자 choi.jeongd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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