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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각예술 살아있는 최고의 선물, 평창은 무엇을 남길지 고민해야

[2017 스포츠 오디세이] 88 서울올림픽 유산, 올림픽조각공원
수비라치의 ‘하늘기둥’ 옆에서 사진을 찍고 있는 청소년들.

수비라치의 ‘하늘기둥’ 옆에서 사진을 찍고 있는 청소년들.

88 서울올림픽이 열린 1988년 9월에 나는 제대한 복학생이었다. 올림픽 개막이 마냥 반갑지만은 않았다. 당시 대학가에는 ‘군사독재 정권이 자신들의 정통성과 체제를 선전하기 위해 유치한 올림픽’이라는 정서가 퍼져 있었다. 그래도 ‘일생에 다시 보기 힘들 올림픽인데 한번 가 봐야지’ 하는 마음에 잠실올림픽주경기장에서 육상 경기를 봤고, 인근 올림픽공원에 들러 거대한 엄지손가락 모양의 조각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었던 기억이 난다.

백남준·발다치니 등 작품 222점
공원 곳곳 숨바꼭질하듯 흩어져
운반 힘든 재료 군 헬기로 공수
‘엄지손가락’ 20억에 구입 제안도
144만㎡ 규모 연 700만 명 찾아

 
비디오 아티스트 백남준의 작품 ‘쿠베르탱’

비디오 아티스트 백남준의 작품 ‘쿠베르탱’

내년이면 30주년이 되는 서울올림픽은 ‘가장 성공한 올림픽’으로 평가받고 있다. 서울올림픽이 남긴 많은 유산 가운데 가장 눈에 띄는 게 올림픽공원이다. 43만8000평(약 144만㎡)에 이르는 광대한 면적 중앙에 몽촌토성이 둥그렇게 앉아 있다. 키 높은 나무들과 철 따라 바뀌는 야생화들이 향기를 뿜어 내고, 강아지와 함께 산책 나온 사람들, 연인끼리 2인승 자전거를 타는 모습이 정겹다. 올림픽 체조장·역도장·펜싱장 등 서울올림픽의 명승부가 펼쳐졌던 올림픽공원 내 실내체육관들은 공연장을 겸할 수 있게 리모델링됐다. 이 곳에선 아이돌 스타들의 공연 때마다 소녀팬들의 비명 소리가 드높다.
 
올림픽공원은 자체로 거대한 조각공원이다. 세계 각국의 명장들이 빚어 낸 222점의 조각 작품들이 공원 곳곳에 숨바꼭질 하듯 흩어져 있다. 서울 올림픽이 끝나고 몇 년간은 “조각 작품의 무덤”이라는 혹평을 들을 정도로 관리가 제대로 안 되고 방치되다시피 했다. 그러다 2004년 올림픽공원 내에 소마(SOMA·Seoul Olympic Museum of Art)미술관이 개관하면서 체계적인 관리와 운영이 시작됐다. 소마미술관은 작품 140점을 미술관 주위에 모아 ‘올림픽조각공원’을 꾸몄다. 올림픽공원은 연 700만 명이 방문한다. 내년에 지하철 9호선이 완전 개통되면 지하철 역사에서 소마미술관으로 바로 연결된다. 소마미술관 초대 관장으로 올림픽조각공원의 역사를 꿰고 있는 최성근 자문위원과 올림픽공원을 거닐면서 30년 세월의 흐름을 더듬었다.
 
‘나이키상’은 학생들 약속장소로 인기
‘자화상’ 작품 앞에 선 최성근 소마미술관 초대 관장.

‘자화상’ 작품 앞에 선 최성근 소마미술관 초대 관장.

세자르 발다치니(프랑스)의 엄지손가락은 공원 동쪽 핸드볼경기장 옆에 있다. 높이 6m에 두께 2.5cm의 청동 합금으로 만들었다. 전 세계에 똑같은 모양의 작품이 7개 있는데 프랑스 파리에 있는 작품(12m) 다음으로 사이즈가 크다. 최 위원은 “엄지손가락은 커다란 청동 조각들을 이어 붙인 작품인데, 여기 있는 것도 1.5m 정도 높이에 가로로 보일 듯 말 듯한 선이 있다. 그게 용접 자국인데 국내 주물공장 사장들도 그걸 발견하지 못할 정도로 세자르의 용접 기술이 뛰어났다”고 소개하며 “SC제일은행에서 자신들의 심벌로 삼기 위해 20억원에 구입하겠다는 의사를 보였는데 성사되지는 않았다”고 설명했다.
 
체조경기장과 핸드볼경기장 사이에는 일명 ‘나이키상’이라고 불리는 거대한 작품이 있다. 아이돌 그룹 공연에 온 학생들의 약속장소로 널리 알려져 있다. 마우로 스타치올리(이탈리아)가 만들어 ‘88 서울올림픽’이라고 이름 붙인 이 작품은 폭 37m, 높이 27m의 콘크리트 구조물에 빨강색 페인트를 칠했다. 나이키 심벌(스워시)과 닮은 이 형상은 올림픽을 개최한 대한민국 국민들이 세계인을 두 팔 벌려 환영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고 한다.
 
스페인 작가 호세 마리아 수비라치의 ‘하늘기둥’은 15m 높이로 보는 사람들을 압도한다. 수비라치는 135년째 건축 중인 바르셀로나 파밀리아 대성당의 서편 파사드(정면 외관)를 담당한 건축가로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다.
 
아무래도 친근하고 인기가 있는 건 인체를 모티브로 한 작품들이다. 모한 아마라(알제리)의 ‘대화’는 눈과 귀가 없는 두 사람이 서로 기대고 있는 모습이다. ‘진정한 대화는 가슴으로 해야 한다’는 뜻을 담았다고 하는데, 초창기에는 “작품의 머리 부분을 누가 훼손했다”는 신고가 들어오기도 했다고 한다.
 
기존 작품 ‘열림’과 도수진 작가의 ‘스노우보더’가 결합한 콜라보 작품.

기존 작품 ‘열림’과 도수진 작가의 ‘스노우보더’가 결합한 콜라보 작품.

최 위원은 88 올림픽 개막 전 조각 작품을 만들 당시 풍경도 소개했다. “당시 권력자들이 ‘국가의 위신을 걸고 하는 올림픽이니 반드시 성공시켜야 한다’며 세계 각국의 유명 조각가들을 초청해 융숭한 대접을 했다. 돌·쇠·청동 등 소재는 대부분 국내에서 공수했고, 작가들이 작품을 세울 곳에서 직접 작업을 진행했다. 무게나 부피 때문에 운반이 힘든 재료는 군 헬기를 동원해 공수했을 정도였다.”
 
홍익대 조소과를 나온 최 위원은 올림픽공원 내 조각 작품들이 보존 상태, 작품의 다양성 등에서 세계 최고 수준이라고 강조했다. 고정현 소마미술관 큐레이터도 “현대 조각예술의 흐름을 한눈에 볼 수 있는 공간은 전 세계에 여기 밖에 없다. 미술 교과서에서 봤던 작가의 작품들을 만날 때마다 아이돌 스타를 만난 아이들처럼 가슴이 설렜다”고 말했다.
 
태풍 맞아 쓰러진 작품도
’작품이 훼손됐다“는 신고가 들어왔던 ‘대화’

’작품이 훼손됐다“는 신고가 들어왔던 ‘대화’

세계적인 비디오 아티스트 백남준 선생(1932∼2006)의 작품들을 만날 수 있다는 것도 보너스다. ‘쿠베르탱’은 여러 대의 모니터와 동그란 시계, 네온 등을 이용해 올림픽 운동의 선구자 쿠베르탱 남작을 형상화 했다. 올림픽공원 내 몽촌해자(호수)에서는 매주 금·토요일 해질 무렵 백남준 선생의 ‘올림픽 레이저 워터스크린 2001’을 공연한다. 해자 안의 분수에 부채꼴 모양 수막을 만들고 거기에 레이저를 쏘아 형상을 만든다. 고정현 큐레이터는 “백 선생의 레이저 작품 중 야외에 설치된 건 세계적으로 이게 유일하다”고 소개했다.
 
30년 풍상을 거치며 수명을 다하고 사라진 작품도 있다. 스폰지를 재료로 쓴 작품은 이미 퇴역했다. 캐나다 수입 소나무 수십 그루를 세워 만든 ‘빛의 진로’는 태풍에 쓰러진 적도 있었고, 일부는 중간중간 썩어 있다.
 
최 위원은 작품 때문에 징계를 받은 적도 있다고 했다. 소풍 온 아이들이 ‘원’이라는 작품에 화이트로 낙서를 했는데 이게 방송 뉴스에 나온 것이다. 최 위원은 “난 당시 멀리 떨어진 곳에서 프랑크 도른자이프 작품 ‘자화상’의 용접 보수 작업을 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그런데 관리 소홀로 내가 혼이 났으니 좀 억울했다”며 웃었다.
 
작품의 훼손·도난에 대비한 보험은 들지 않았다고 한다. 파손이나 도난 위험이 거의 없는데 큰 돈을 들여 보험에 들 필요가 없다는 게 올림픽공원을 관리하는 국민체육진흥공단 측 입장이다. 대신 관람객이 작품을 감상하다 다칠 경우에 적용하는 영업보상책임보험에 가입해 있다고 한다.
 
무료 개방에 조각투어도 진행
올림픽조각공원의 대표작인 발다치니의 ‘엄지손가락’ 정영재 기자, [사진 소마미술관]

올림픽조각공원의 대표작인 발다치니의 ‘엄지손가락’ 정영재 기자, [사진 소마미술관]

올림픽공원을 방문하는 연인원 700만 명 중 몇 명이 조각 작품을 감상하거나 조각공원을 찾았는지는 집계되지 않는다. 고 큐레이터는 “조각 작품이 모여 있는 곳 주위로 펜스를 치고 입장료 500원을 받은 적이 있었는데 지금은 무료 개방한다. 인터넷을 통해 조각투어 신청을 받아 매주 수·목요일 오전에 진행한다”고 소개했다. 참가 인원은 100명으로 한정하고, 인물·재료·스토리의 세 주제로 나눠 도슨트(해설사)가 인솔하며 작품에 얽힌 이야기를 들려준다.
 
세월의 흐름 속에 ‘작품’이 ‘유물’로 굳어지는 것을 막고 생동감을 불어넣기 위해 미술관 측에서는 다양한 프로젝트를 진행한다. 기존 작품에 신예 작가들의 새로운 해석을 곁들이는 ‘콜라보’도 그중 하나다. 대표적인 게 아기라 알렉산드루(루마니아)의 작품 ‘열림’에 도수진 작가가 ‘스노우보더’를 붙인 것이다. 땅을 파서 하늘로 솟구치게 해 ‘정상을 향한 도약’을 표현한 작품에 ‘스노우보더’가 경쾌한 속도감과 친근감을 더했다는 호평을 받고 있다. 내년 2월 개막하는 평창 겨울올림픽 이미지와도 딱 맞아 떨어진다.
 
황용필 국민체육진흥공단 본부장은 “평창 올림픽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올림픽 레거시(유산)’를 남겨야 한다고 IOC(국제올림픽위원회)가 권고했다. 올림픽공원과 그 안에 있는 조각 작품들은 서울 올림픽이 우리에게 남긴 가장 값진 선물이다”고 말했다.
 
평창 올림픽은 30년 후 어떤 유산을 남겨줄 수 있을까. 유난히 하늘이 높고 청명했던 날 올림픽공원을 떠나면서 든 생각이다.
 
 
정영재 스포츠선임기자
jerry@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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