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Load Image preLoad Image
검색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주요 기사 바로가기
다른 기사, 광고영역 바로가기
중앙일보 사이트맵 바로가기
닫기
닫기

생체시계 관장하는 멜라토닌, 뉴런 만나면 스르르 꿈나라로

[이정모의 자연사 이야기] 잠의 역사=생명의 역사
참갯지렁이 유생. 밤에는 수면에서 먹이를 취하고 낮에는 바닥에서 지낸다. 참갯지렁이 유생의 생체시계는 사람과 마찬가지로 멜라토닌으로 조절된다.

참갯지렁이 유생. 밤에는 수면에서 먹이를 취하고 낮에는 바닥에서 지낸다. 참갯지렁이 유생의 생체시계는 사람과 마찬가지로 멜라토닌으로 조절된다.

잠은 왜 진화했을까? 언뜻 보면 멍청한 질문 같지만 사실 여기에 대해 명확하게 대답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밤낮 있는 지구의 모든 동물 잠자
에너지 보존과 위험 방지 위해
잠이 우연히 등장했을 가능성
기억통합과 쓰레기정보 청소도

자는 패턴과 시간은 각기 달라
작은 동물은 에너지 효율 낮아
짧게 자고 자주 깨어 있어야 해

 
뇌과학자들은 잠이 뇌에 좋기 때문에 진화했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잠을 자는 동안 망가진 뇌세포를 수리하고 뇌세포 사이에 새로운 연결을 형성하며, 중요하지 않은 기억은 지우고 중요한 정보는 단기 기억장소에서 장기 기억장소로 이동시킨다는 것이다. 그럴싸한 설명이다. 하지만 구체적인 실험증거는 없다.
 
잠이 진화했다고 하면 생존에 뭔가 분명한 이득이 있어야 한다. 그런데 오히려 반대다. 잠을 자는 동안에는 먹을 수 없다. 짝짓기할 수도 없고 포식자의 공격으로부터 무방비 상태가 된다. 생존 자체를 위협한다. 이것보다 더 큰 이득이 잠에 있을 것 같지는 않다.
 
게다가 동물마다 잠자는 시간이 다 다른 이유는 설명하지 못한다. 새나 작은 포유류는 하루에 불과 몇 시간밖에 자지 않지만 큰갈색박쥐(Eptesicus fuscus)는 스무 시간이나 자며, 범고래나 돌고래 새끼들은 일주일 동안 잠을 자지 않지만 곰 같은 동물은 몇 달 동안이나 겨울잠을 자기도 한다. 이렇게 잠의 형태가 다양한 현상을 진화는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육식동물이 초식동물보다 오래 자
큰갈색박쥐는 하루에 스무 시간을 잔다.

큰갈색박쥐는 하루에 스무 시간을 잔다.

모든 동물은 잠을 잔다. 그런데 잠을 자는 패턴과 잠자는 시간이 각기 다르다. 육식동물은 초식동물보다 오래 잔다. 고기를 먹는 포유동물은 조금만 먹어도 충분한 영양분을 공급받을 수 있는 반면 풀로 배를 채워야 하는 포유동물은 엄청나게 많이 먹어야 겨우 체온을 유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사자는 사냥감을 잡아 한 시간 정도 배불리 먹고 난 다음에는 2~3일 정도 지속적으로 잠을 잔다. 하지만 말은 하루에 네 시간도 자지 않는다. 사람 같은 잡식성 동물의 수면 시간은 그 중간쯤 된다.
 
작은 동물은 큰 동물보다 잠을 많이 잔다. 그런데 코끼리는 한 번에 두 시간씩 자지만 쥐는 한 번에 6분밖에 자지 못한다. 여기에 대한 일반적인 설명은 작은 동물은 자주 깨어서 포식자의 공격을 경계해야 하므로 여러 번에 나눠서 짧은 잠을 자야 한다는 것이다. 이 가설에 대한 의문은 끊이지 않았다.
 
정말로 잠을 자면 더 위험할까? 사람들의 생각과 달리 동물들은 잠을 자는 동안 포식자의 공격에 더 노출되지는 않는다. 아이들이 집에서 잠을 잘 때 다칠까, 아니면 나가서 놀 때 다칠까? 아이들은 깨어 있을 때 다친다. 자동차도 주차장에 서 있을 때가 아니라 도로에서 주행할 때 사고가 더 많이 난다. 동물들도 마찬가지다. 잠을 자고 있을 때가 아니라 깨어서 활동할 때 더 자주 포식자에 노출된다. 큰갈색박쥐는 저녁에 네 시간만 깨어서 곤충을 잡아먹으면 영양공급에 문제가 없다. 괜히 낮에 돌아다니면 새에게 잡아먹힐 위험만 더 커진다.
 
결국 이 가설은 틀린 것으로 밝혀졌다. 잡아먹힐 위험성과 잠의 짧은 주기 사이에는 아무런 상관관계가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정작 이유는 따로 있다. 작은 포유류는 에너지를 더 빨리 태우기 때문이다. 작은 동물들은 에너지 효율이 낮아서 자주 먹어야 하므로 짧게 자고 자주 깨어야 하는 것이다.
 
깨어 있으면 짝짓기도 할 수 있고 먹이를 찾으러 다닐 수도 있지만 이때 에너지를 소비하기도 한다. 잠은 동물을 안전한 곳에 머물게 함으로써 생존가능성을 높이고 잠을 자는 동안에 충분히 쉰 뇌가 깨어 있는 동안에 집중적으로 에너지를 소비하면서 활발히 활동할 수 있게 해 주는 역할을 한다.
 
진화과학자들은 잠이 선택적 진화 또는 굴절적응(exaptation)의 산물이라고 설명한다. 즉 진화 과정에서 다른 이유로 혹은 우연히 등장했다가 현재의 목적으로 전용되었다는 것이다. 잠은 아마도 에너지를 보존하고 괜히 돌아다니면서 위험에 빠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시작되었을 것이다. 수백만~수억 년을 지나면서 이 수면 주기에 다른 기능이 추가된 것이다. 예를 들어 의식적인 활동이 없는 시간에 기억을 통합하고 쓰레기 정보를 청소하는 식으로 말이다.
 
 
잠은 포유류 출현 이전에 등장
그렇다면 잠은 언제 진화했을까? 어떤 동물들이 잠을 자는지 알면 잠이 진화한 시점을 가늠할 수 있을 것이다. 잠은 포유류가 출현하기 훨씬 전에 지구에 등장했다.
 
지구가 자전하면서 생기는 낮과 밤은 지구에 살고 있는 모든 생명체들의 삶을 지배한다. 원시적인 생명체에서 사람에 이르기까지 거의 모든 생물들에게 24시간으로 구성된 생물학적 주기(circadian rhythm)가 있다. 즉 생체시계가 있어서 쉬는 시간과 활동하는 시간이 나뉘는 것이다.
 
해가 저물면 우리 눈에서 시작된 일련의 분자 반응이 뇌의 솔방울샘(松科腺)에 전달되어 멜라토닌(melatonin)을 분비시킨다. 멜라토닌은 인간의 생체시계를 관장하는 호르몬이다. 멜라토닌이 뉴런에 결합하면 전기신호의 리듬이 바뀌면서 뇌가 점차 잠에 빠져들게 된다. 새벽이 되어 태양 빛이 멜라토닌을 파괴하면 뇌는 다시 서서히 깨어난다. 한밤중에 책을 읽거나 스마트폰을 보면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하고 다음 날까지 영향을 받는 것도 멜라토닌의 역할이 억제되기 때문이다. 또한 우리가 비행기를 타고 대륙 사이를 이동하는 경우에는 우리의 생체시계도 거기에 맞추어야 하지만 멜라토닌에 의해 유도된 잠의 주기는 아직 거기에 따라 오지 못하기 때문에 시차적응에 애를 먹는 것이다.
 
멜라토닌은 사람뿐만 아니라 심지어 갯지렁이의 행동도 통제한다. 독일에 있는 유럽분자생물학연구소의 과학자들은 참갯지렁이(Platynereis dumerilii)의 유생에서 멜라토닌을 비롯한 잠 관련 분자들을 만드는 데 관여하는 유전자의 활성을 여러 해 동안 조사했다. 태어난 지 2일 된 참갯지렁이 유생은 공 모양이다. 이것들은 밤에는 바다표면에서 조류를 먹이로 섭취하고, 낮에는 포식자와 햇빛의 자외선을 피해 깊은 바다 속으로 들어가서 시간을 보낸다.
 
시간에 따른 갯지렁이 유생의 움직임은 어떻게 유발된 것일까? 참개지렁이 유생에는 가느다란 털이 달려 있는데 이것을 앞뒤로 저어서 움직인다. 단지 빛의 유무로 움직임이 결정되는 것은 아니다. 낮 시간에 유생을 캄캄한 곳에 두어도 유생은 낮 시간의 활동을 그대로 보여 주었다.
 
유생의 털의 움직임을 결정하는 것은 바로 멜라토닌이다. 유생의 등 쪽에 있는 일부 세포에는 빛을 포획하는 단백질이 있다. 이 단백질이 멜라토닌을 형성하는 데 필요한 유전자 스위치를 끈다. 우리 눈에도 같은 단백질이 있어서 멜라토닌 생성 스위치를 켜고 끄는 역할을 한다. 참갯지렁이 유생은 사람과 똑같은 방식으로 멜라토닌을 생성시키는 것이다. 연구자들은 참갯지렁이 유생에서 멜라토닌 형성 유전자의 활성을 24시간 내내 감시했다. 우리와 마찬가지로 멜라토닌은 밤에만 분비되었다. 그 결과 참갯지렁이 유생은 오로지 밤에만 바다 표면으로 떠오르는 것이다.
 
참갯지렁이 유생과 사람의 멜라토닌 작용이 똑같다는 것은 두 생명체의 멜라토닌이 같은 조상에서 기인했다는 것을 말한다. 이 사실은 잠의 진화는 적어도 갯지렁이까지는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는 것을 말한다.
 
 
뉴런만 있는 해파리도 수면
카시오페이아 해파리는 갓이 아래에 있는 뒤집힌 해파리다. 뇌가 없는 해파리도 잠을 잔다.

카시오페이아 해파리는 갓이 아래에 있는 뒤집힌 해파리다. 뇌가 없는 해파리도 잠을 잔다.

척추동물의 조상은 복잡한 뇌가 진화될 때 멜라토닌 유전자를 어떻게 받아들였을까? 빛을 받아들이고 낮-밤 사이클에 따라서 멜라토닌을 분비하는 어떤 다목적 세포가 있었다. 그 후 이 기능이 어떤 특정한 세포에 분산되었다. 눈 세포는 빛을 받아들이고 솔방울샘은 멜라토닌을 만드는 식으로 말이다.
 
해파리는 갯지렁이보다 더 하등한 동물이다. 해파리에는 뉴런은 있지만 중추신경은 없다. 과연 해파리도 잠을 잘까? 캘리포니아 공과대학의 과학자들은 카시오페아 해파리를 선택했다. 카시오페아 해파리는 갓을 아래로 한 채 촉수를 흔드는 뒤집힌 해파리다. 이 해파리는 거의 움직이지 않고 갓을 움직일 뿐이다. 낮에는 1분에 60번 정도 움직이는데 밤에는 39번으로 줄어든다. 바닥에 가라앉은 해파리를 뜰채로 퍼 올려 수면 위에 놓으면 바닥으로 헤엄쳐 내려가는 속도가 굼뜨지만, 30초 후에 다시 떠올리면 바닥으로 부리나케 내려간다. 잠을 자다 깨어난 것이다. 또 물을 계속 첨벙대서 잠자지 못하게 하면 다음날 비실비실했다. 하지만 숙면을 취하게 하면 다시 컨디션을 회복했다.
 
해파리 실험은 뇌만 자는 것이 아니라 뉴런도 잠을 자야 하며, 지구에 태어난 동물이라면 누구나 잠을 잔다는 것을 말한다. 잠의 역사는 생명의 역사와 그리 다르지 않다.
 
 
캄캄해도 바빠 잠 못 드는 현대인
올해 노벨 생리의학상은 잠에 관한 연구에 돌아갔다. 미국 의학자 세 명은 초파리에서 낮과 밤이라는 생물학적 리듬을 조절하고 통제하는 유전자를 찾아내서 생체시계 작동 원리를 밝혀냈다. 이들 연구에 따르면 세포 활동은 낮과 밤이 다르다. 밤에는 생체활동에 필요한 단백질을 세포 안에 쌓아 놓고, 낮에는 이것들을 분해하여 사용하는 일을 반복한다. 세포는 하루 일정에 따라 움직이는 기계이며, 세포가 모인 생명체 역시 생체 시계 활동에 따라 작동한다.
 
물론 잠, 혈압, 체온과 같은 신진대사를 통합적으로 조절하는 주체는 빛에 의해 유발되는 호르몬이다. 수억 년에 걸쳐서 햇빛 주기에 적응한 인체가 요즘은 해의 운행과는 다른 현대인의 생활양식에 적응하지 못하고 있다. 캄캄해져도 여전히 바쁘게 살아가고 침대에서도 스마트폰의 밝은 화면에 노출되어 있기 때문이다. 현대인의 생체시계가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는 것은 당연한 결과다. 우리는 아침에 일어나서 햇볕을 쬐고 밤이 되면 어둠 속에서 잠이 들어야 한다.
 
 
이정모 서울 시립과학관장
연세대 생화학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 독일 본 대학교에서 공부했다. 안양대 교수와 서대문자연사박물관장 역임. 『달력과 권력』『공생 멸종 진화』등을 썼다.

선데이 배너

AD
온라인 구독신청 지면 구독신청

PHOTO & VIDEO

shpping&life

많이 본 기사

댓글 많은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