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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추억 소환한 샤또 린슈 바즈

와인 이야기
샤또 린슈 바즈 1995. 구조가 견고해 오래 간직할 수 있는 와인이다.

샤또 린슈 바즈 1995. 구조가 견고해 오래 간직할 수 있는 와인이다.

“와! 단맛이 입안 전체에서 느껴진다.”
 
최근 개봉한 1995년산 샤또 린슈 바즈(Chateau Lynch Bages)를 마신 지인들의 감탄사다. 본래 묵직한 레드 와인인데, 20년 이상 세월이 흐르다 보니 맛이 아주 부드러워졌다. 특히 텁텁했던 타닌은 스위트한 뒷맛을 남긴다.
 
하지만 필자는 맛보다 시공간을 뛰어넘어 95년 프랑스 보르도 메독의 한 작은 마을로 이끌려 갔다. 계절은 늦가을, 너울처럼 출렁이는 넓은 대지 위엔 붉고 노란 포도잎 단풍들이 그림처럼 펼쳐져 있고, 바람을 가르며 그 사이를 달리고 있는 자전거가 보인다. 등에 커다란 렌즈가 달린 카메라를 메고 열심히 페달을 밟고 있는 남자도.
 
샤또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최고급 와인들(무통, 라피트, 라 뚜르)을 생산하는 포이악 마을에 있다. 보르도를 관통해 흐르는 지롱드강이 대서양과 만나는 마을 하구에는 오래된 항구가 있다. 이곳을 통해 메독 지방에서 생산된 와인들이 오래전 북유럽과 인도로 팔려나갔다.
 
샤또의 첫 상업적 거래는 1728년 ‘도멘바즈’란 이름으로 이뤄졌다. 최초 오너가 1749년 세상을 떠나자 딸이 상속받았는데, 남편 이름이 토마스 린슈였다. 샤또 린슈 바즈가 된 내력이다. 하지만 다시 샤또를 물려받은 장남은 와인 대신 정치에 많은 관심을 가졌기에 와인 가문을 결국 지키지 못했다. 1824년 스위스 와인 상에게 넘어간 샤또는 1855년 나폴레옹 3세의 칙령으로 결정된 보르도 그랑 크뤼 61개 샤또에 포함되며 큰 명성을 얻었다.
 
현 오너인 까즈(Caze) 가문은 본래 피레네 산맥에서 생활하던 산사람으로, 체구들이 좋고 건강했다. 이들이 보르도에 정착하게 된 이유는 19세기 말 창궐해 포도밭을 황폐하게 만든 피록세라(뿌리진디) 때문이다. 샤또들은 나무당 수십 ㎏의 농약을 살포할 건장한 일꾼들이 필요했고, 이 틈에 보르도에 입성한 까즈 가문은 포도밭에서 일들을 배우며 급기야 샤또까지 구입해 자신의 와인을 만들었다. 현 오너(장 미셀 까즈)의 할아버지인 장 샤을르 까즈는 34년 린슈 바즈를 관리 생산하다가 37년 완전히 인수했다. 산지기 가문이 메독 지방의 유명 와인 메이커로 변신하는 순간이었다. 장 미셀 까즈는 66년부터 여동생 실비 까즈 여사와 함께 샤또를 운영하고 있다.
 
장 미셀은 새로운 양조 시설을 도입해 더 높은 명성을 쌓았고 그 기술을 이웃과 공유하며 존경을 받았다. 그는 와인 메이커로서 뿐만 아니라 사업적으로도 큰 인물이었다. 세계적인 보험 그룹 악사(AXA)의 회장과 오랜 친구 관계를 유지하며 ‘악사 밀레지음’이란 회사를 설립하고 메독 지역의 와인 산업을 확장시켰다. 현재는 5개 이상의 중요 샤또를 소유관리하고 있다.
 
95년 처음 방문해서 만난 사람이 마케팅을 담당하던 실비 까즈 여사였다. 그는 샤또가 포이악에 소유한 최고급 미쉘린 레스토랑&호텔 ‘꼬르데이앙 바즈’의 경영도 동시에 하고 있었다. 당시 미쉘린 별 하나(1년 뒤 2개로)를 받았던 셰프가 지금 프랑스 TV에서 유명세를 떨치고 국내 유명 호텔에도 초대돼 요리를 선보였던 띠에르 막스다.
 
이 와인에는 한 가문이 프랑스 메독 지방에 뿌리를 내리고 정착하는 과정과 성공한 모든 이야기가 있다. 필자에겐 자전거로 포도밭을 누비며 한없이 행복했던 시절의 추억이 쌓여 있다.
 
95년산은 우아함보다 견고함이 더 느껴지는 와인이다. 그 때문인지 오래 간직했던 이 와인을 오픈하는 순간, 20여 년 전 기억들이 꽃망울처럼 피어났다. 깊어가는 가을, 추억이 깃든 와인으로 즐겨볼 일이다.
 
 
김혁 와인·문화·여행 컨설팅 전문가
www.kimhyuc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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