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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넘긴 한·중 작가 교류 지속돼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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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옛말에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 것이 있다. 그만큼 세월이 지나면 모든 은원(恩怨)을 넘어서 마음을 풀 때가 되었다는 뜻을 포함한다. 그런가 하면 중국 속담에 ‘군자가 원수를 갚는 데 10년이 늦지 않다(君子報讐 十年不晩)’는 표현이 있다. 멀리 보고 길게 기다리며 모든 일을 실리적으로 처리하려는 중국인의 성향을 엿보게 한다. 이 두 언사를 같은 자리에 놓고 수평적 비교를 할 수는 없으나, ‘10년 세월’을 통해 본 두 민족의 의식이 어떻게 서로 다른 방향성을 갖고 있는가를 알아볼 수 있는 측면이 있다.

한·중 문인 40여 명 모여 문화교류
사드 갈등과 문화적 차이는 부차적

가슴을 여는 이해와 연대의 자리
당장 성과 없어도 꾸준히 밀고 가야

 
이렇게 생각의 모양이 다르고 결이 다른 양국의 사람들이 만나 공통의 관심사를 발굴하고 육성하는 길을 찾으려 한다면, 그와 같은 노력이 곧 한·중 문화교류의 바람직한 사례다. 지난 16일부터 한 주일간 중국 지린성의 창춘(長春)에서는 ‘제11차 한중작가회의’가 열려 두 나라의 문인 40여 명이 상상과 현실 속의 시간을 공유하며 ‘생각’의 접촉 면적을 넓혔다. 한국에서는 시인·소설가·평론가 17명이, 중국에서는 시인·소설가·수필가 20여 명이 참석하여 작품 발표 및 토론을 진행했다. 필자는 소설 토론의 좌장을 맡아 내내 그 현장에 있었다. 중국 측 실무를 맡은 추진 주체는 ‘지린성작가협회’였다. 동시에 각 성(省)의 작가협회 주석 또는 부주석을 맡고 있는 문인들이 참석했다.
 
이들은 진지하고 우호적이었다. 그동안 양국 사이를 휩쓴 ‘사드’ 갈등이나 문화적 차이는 부차적인 것이 되었다. 아마도 그것이 얼굴을 맞대고 가슴을 여는 문화교류의 미덕이 아닐까 싶었다. 장웨이민 지린성작가협회 주석은 환영사에서, 두만강과 압록강에 갈 때마다 한국의 옛 노래 ‘공무도하가’와 민요 ‘아리랑’을 생각한다고 했다. 300여 편의 시가 수록된 중국 최초의 시가집 ‘시경(詩經)’이 그러한 것처럼, 이 시들도 민초(民草)들에 의해 시작되고 전승되었으니 그 공통의 특성을 논의해 볼 만하다는 의견이었다. 문예잡지 ‘강남’의 발행인인 소설가 중츄우스는 기조발제에서, 한강의 소설 ‘채식주의자’를 읽고 병든 세계와 맞서는 문학에 공감했다고 말했다.
 
중국의 문인들이 한국문학에 대해 이처럼 수준 있는 이해를 보이고 있는 것은 놀라운 일이었다. 그것은 한국 문인들의 중국문학 이해보다 훨씬 윗길이었고 또 구체적이었다. 11회에 이른 이 회의의 성과가 거기에 잠복해 있는 셈이다. 10년이 넘도록 한중작가회의를 이끌어온 공적은 거의 문학평론가 홍정선 인하대 교수의 몫이다. 그의 동분서주가 일구어낸 이 민간차원의 내실 있는 교류는 오히려 정부의 문예정책 당국에서 적극적으로 지원하고 격려해야 옳다. 그러나 예산을 확보하는 일이 너무 힘들어서 올해로 10년 사업을 마감하려 한다니 안타깝기 그지없는 상황에 이르렀다. 문예 당국의 보다 전환적인 사고가 필요한 대목이다. 이처럼 뜻있는 민간교류의 방식은 한 단계씩 쌓아가기는 어려워도 허물기는 순식간이다.
 
‘문화에 대한 이해가 그 정부 수준의 척도’라는 말을 되새겨 보아야 한다. 더욱이 오늘날과 같이 양국이 북한핵 문제와 사드 갈등으로 마찰음을 내고 있을 때, 이와 같은 문인들의 교류가 살아있음을 보여주는 것은 매우 큰 의미가 있다. 역사성을 가진 시가로서 ‘공무도하가’나 ‘아리랑’이 백성들의 것이었듯, 국민들 속에 소통되는 문화적 이해와 연대는 장기적인 관계성의 초석이 되는 까닭에서다. 여러 부문에서 중국의 실리주의에 대응하는 한 차원 높은 지혜가 필요한 시점이다.
 
돌이켜보면 중국이 한국과 ‘형제국’의 외양을 보인 것은 임진왜란 때의 출병과 일제강점 하에서의 공조밖에 없다. 나머지 기간은 언제나 종주국으로서의 억압과 요구가 있었을 뿐이다. 여전히 그 오랜 관습적 의식을 버리지 못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동북공정’에서 고구려를 중국의 지방정부 가운데 하나였다고 주장하는 것도 그와 같은 맥락이다. 심지어 이번 작가회의에서도 문학세계에 있어서 그처럼 따뜻하고 열린 우호의 정신을 보여준 문인들이 대다수인 반면, 고답적인 선험적 의식을 붙들고 있는 문인도 보였다.
 
이러한 현실적인 그리고 의식상의 여러 간극을 넘어서서, 중국 소설가 주르량의 표현처럼 ‘산천을 맞대고 있는 이웃’으로서의 상식과 교양을 회복하는 길은 문화교류가 그 첩경이다. 이 상호 교통의 모형은 남북 관계나 한·일 관계에 있어서도 매한가지다. ‘사람이 빵만으로는 살 수 없다’고 할 때, 그 빵의 맞은편에 있는 대체재가 곧 정신활동의 집적인 문화의 영역이다. 이는 당장 눈앞에 보이는 성과가 없다 할지라도 꾸준히 밀고 가야만 하는 장거리 경주다.
 
 
김종회
문학평론가·경희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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