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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 배제' 일반화 지나쳐

독자 옴부즈맨 코너
중앙SUNDAY 10월 22일자에서는 1·4·5면의 특별기획 ‘한국학 120주년, 러시아 상트대학을 가다’가 눈에 띄었다. 1897년 상트페테르부르크 국립대학에서 조선인 통역관 김병옥이 한국어 강의를 시작했다는 것부터 유럽 첫 춘향전 한국어 강의에 이르기까지 그동안 잘 알려지지 않은 러시아에서의 한국학 연구에 대한 내용이 무척 신선했다. 더불어 상트대 총장과의 인터뷰를 통해 한국과 러시아 간의 교류와 협력 과제도 잘 소개했다. 다만 한국학 교육 120주년 기념 ‘한국학 학술대회’에 대해 간단히 언급한 데다 참석한 주요 인사를 소개하는 데 그친 점이 아쉽다. 기념 학술대회에서 다루어진 주제나 구체적인 논의 내용을 소개했더라면 좀 더 현장감 있고 유익했을 것 같다.
 
3면의 ‘잇단 초·중생 대상 범죄에 대한 부모들 자구책’ 기사는 초등생 아들을 둔 엄마로서 특히나 관심 있게 읽었다. 최근 일련의 사건·사고 때문에 부모가 자녀의 교우관계를 간섭·통제함으로써 자녀의 사회화를 왜곡하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잘 아는 친구들만 사귄다는 것은 결국 폐쇄적이고 사회성을 잃게 만들어 또 다른 사회문제를 야기하게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이러한 부모들의 태도가 당장의 문제만 회피하려는 태도는 아닌지 되돌아보게 된다. 그런데 이 기사에서 최근 범죄사고에 대한 자구책으로 부모가 ‘믿을 만한 집’의 아이들만 사귀게 한다거나 SNS 등을 통해 다른 아이나 그 가정에 대한 정보를 얻는다는 등의 사례를 들고 있는데 이는 현상을 지나치게 일반화한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어릴 때부터 친구들을 가려 만나게 하는 조기배제 메커니즘이 심화한 것은 여러 가지 요인이 복합적으로 나타나는데 이에 대한 원인을 최근의 범죄 때문인 것처럼 제시한 사례는 적절치 못한 것 같다.
 
8면 ‘에너지 빅뱅 저자 이종헌 특파원 인터뷰’는 시의적절했다. 마침 탈원전 공론화위원회의 권고가 나온 뒤여서 이 문제에 대해 관심이 고조되고 있던 차였다. 4차 산업혁명에서 에너지의 패권을 가진 자가 승자가 될 것이라는 전망과 변화되는 사회에 적합하게 에너지를 이해해야 할 필요가 있다는 내용이 흥미로웠다. 에너지를 수입에 의존해야 하는 우리나라로서 에너지 문제해결도 국제정치학적 접근과 고민이 매우 필요하다는 것에 동의한다.
 
26면 ‘공공미술의 명암’기사는 일상 속 시민과의 소통예술로서의 공공미술 작품에 대한 내용을 소개했다. 얼마 전 서울역 광장에 설치됐던 ‘슈즈트리’에 대한 작품성과 공공성 논란을 돌이켜보면서 국내외에서의 공공미술 사례들을 제시했다. 특히 예술가와 주민이 지역사회의 이슈를 공유하고 공공미술을 함께 만들어가는 관계가 중요하다는 것에 공감한다. 이 기사를 통해 도시 설치미술과 관련한 국내외의 여러 사례와 장단점을 살펴보는 기회가 됐다. 또 대중과의 소통예술로서의 의미를 생각해 볼 수 있었다.
 
 
홍승연
전 정보통신 정책연구원 전문연구원 정보통신정책 부문 국제개발협력(ODA) 프리랜서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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