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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전문 통과해 이열종대로 앉는 회사

홍은택 칼럼
집 구경하듯, 사무실 구경하는 재미가 있다. 제휴할 일이 있어서 다른 회사를 찾아갈 때 사무실 내부를 들여다보게 된다. 사무하는 곳이 거기가 거기지 할 수도 있지만 분명 다르다. 공간의 구성과 집단적인 체취, 주고받는 목소리의 데시벨, 움직임의 속도, 실내 조도와 색감까지 오감으로 느껴진다.

개인 생각조차 말 못하는 분위기
네모진 공간에서 창의성 나올까

젊은 직원들과 섞여 일하는 환경
독방에 갇혀있는 것보다 나아

 
첫 인상은 개방성 정도에 좌우된다. 어떤 기업처럼 들어갈 때 몸 전체를 가로막아선 쇠막대 회전문을 통과할 경우 그 다음 나오는 공간이 아무리 넓어도 개방성을 느끼긴 어렵다. 세무조사든, 압수수색이든 불시에 요원들이 들이닥칠 때 시간을 벌기 위해 이런 회전문이 설치됐다는 설도 있지만 보안을 철저히 해서 나쁠 것 없잖아 하는 단순한 생각에서 설치했을 수도 있다. 그 회전문은 외부인뿐 아니라 직원들도 항상 통과해야 한다. 가슴 높이까지 올라온 철제 막대를 빙그르 밀고 문을 통과할 때마다 보안의식이 내면화될 수 있을 테다. 기업이 꼭 개방적일 필요는 없다. 다만 본인의 생각조차 발설하면 안 되겠다는 다짐까지 무의식에 각인된다면 활발한 토론은 쉽지 않겠다 싶다.
 
눈에 가장 먼저 들어오는 것은 책상들의 배열이다. 대부분의 사무실은 책상들을 이열종대로 배치하고 이열종대의 창가 쪽 끝 부분에는 이열의 책상들을 조망할 수 있는 책상을 가로로 놓는다. 행진곡만 안 틀었지, 소대 또는 분대가 행진하는 모습을 연상시킨다. 아마 이런 회사에서는 가로로 놓인 책상에게 이열 책상들은 복종하게 될 것이다. 이미 확고히 돈 버는 방법을 찾았고 실행이 중요한 회사라면 이런 구조가 맞을 것이다.
 
나는 이열종대든, 삼열횡대든 격자형 책상 배치가 불만이다. 네모진 획일성이 각진 사고로 이어진다고 믿는 편이다. 아직까지는 격자형에서 벗어난 사무실을 거의 보지 못했다. 그래서 새로 만든 회사에서는 원형이나 태극무늬로 책상을 배치해볼까 싶었지만 전선이 바닥에 격자형으로 깔려 있어 어쩔 수가 없었다. 사무실의 공간 풍경은 이미 건물을 지을 때부터 무심한 건축설계사에 의해 정해진 셈이다. 콘센트의 위치를 감안해 십여년 전 실행해본 작은 일탈은 바람개비형이었다. 네 개의 책상을 서로 반쯤 물리도록 엇갈리게 배치해서 누구도 서로를 정면으로 쳐다보지 않지만 서로가 다 보이는 구조다. 4명 1조로 일하는 구조에 적합하긴 했는데 공간효율성은 조금 떨어졌다.
 
어떤 회사에는 한쪽 벽면에 사물함들이 빼곡 들어차 있고 가운데에 좁은 책상들이 줄지어 있다. 변동좌석제를 시행하는 곳이다. 하루 전에 앉을 자리를 예약하고 자기 짐은 사물함에 넣는다. 다소 어수선해 보였다. 아마 외근이 많은 부서인 것 같다. 번호 붙은 사물함들을 보니 기분이 묘했다. 회사가 아니라 잠시 사우나에 들른 느낌이랄까? 어쩜 그것도 나쁘지 않다. 잠시 사우나 하듯 회사에서 땀 흘리고 나오면 업무를 다 잊어버리고 개운하게 저녁을 보낼 수 있을 것 같기도 하다.
 
공간의 분할도 흥미롭다. 지금 카카오메이커스가 세 낸 사무실은 전용면적 60평 밖에 안 되는데 대표이사 포함, 임원 3명이 각방을 쓰는 반면 십여 명의 직원들이 다닥다닥 앉아있던 곳이었다. 임원들이 차지하는 공간이 턱없이 넓은 걸 보니 3명의 역할이 굉장히 큰 회사였던 것 같다. 근데 회사가 잘 돼서 이사한 것 같지는 않다. 나도 그렇게 방이 있던 시절이 있다. 아마 샐러리맨의 꿈일지도 모른다. 낮잠도 한숨 자고…. 나는 긴 탁자에 다기 세트를 갖춰놓았다. 항상 차 끓이는 소리가 그치지 않아 다방이라는 소문이 났고 회사 매거진에 소개되기도 했다. 지금 생각해보니 내 근무평판에 좋은 영향을 주지는 않았을 것 같다.
 
카카오에 오면서 방은커녕 이열종대의 앞자리도 없다. 입사순서대로 자리를 앉다 보니 창가 쪽에 앉으리라는 보장도 없다. 가끔 손님들이 와서 사무실 구경시켜드리면 두 가지가 인상적이라고 한다. 하나는 마주보는 책상 간에 칸막이가 없다는 것. 다른 하나는 자리만 봐서는 누가 팀장이고 누가 팀원인지 알 수 없다는 것이다. 팀장이 창가가 아니라 통로 쪽에 앉는 경우도 많다. 나는 ‘독침 품고 내려온 남파간첩들로부터 회사의 주요인물들을 보호하기 위한 조치’라고 농담해도 그들은 협업과 커뮤니케이션을 위한 공간 구성이라고 한눈에 이해한다.
 
나는 속으로 ‘이게 얼마나 힘든데’ 하소연하고 싶을 때도 있다. 나란히 앉아서 일하다 보니 타이핑에서부터 전화 소리, 서로 얘기하는 소리까지 다 들려서 업무에 집중하기 어려웠다. 그리고 시도 때도 없이 나를 찾는다. 호칭도 부사장이나 대표가 아니라 영어이름이니 부르기도 쉽겠다, 사이먼, 사이먼, 불러제낀다. 자리배치가 그래서인지 내 말이 안 먹힐 때도 많아 속상할 때도 있지만 내가 잘못 결정할 일이 줄어들어 좋은 점도 있다. 공간을 보면 그 회사가 누구에게 최적화돼 있는지 느껴진다. 지향하는 가치나 사업방식에 따라 공간을 디자인했겠지만 습관적으로 또는 배선 때문에 이열종대로 구성하고 있는 건 아닌지 함 살펴볼 필요는 있겠다. 이것은 사옥을 근사하게 짓지 않아도 할 수 있는 일이다.
 
우리 회사는 조직의 장에게는 불편한 공간구성이라고 생각했지만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 분들도 힘들겠다는 것이다. 나이든 중년 아저씨와 마주 보고 또는 나란히 앉아있는 것만으로도…. 만약 내가 30대 초반일 때 내 앞에 그때 그 부장님이 앉아 있으면 코부터 킁킁거렸을 것이다. 아 중년 특유의 냄새…. 고기에 낮술까지 알딸딸하게 걸치고 들어오셔서 이빨을 쑤실 때마다 뽑혀져 나오던 그 생마늘 냄새…. 비단 냄새만 아닐 것이다. 말귀도 잘 못 알아먹을 테고. 만약 옆자리에 중년 아저씨가 앉을 수 있다는 위험을 취업 전에 알렸으면 지원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어쨌든 그건 그들 사정이고, 이제 나는 적응이 됐다. 독방에 갇혀있는 것보다는 젊은 사람들과 같이 앉아있는 게 손해 보는 장사는 아니다.
 
 
홍은택
카카오메이커스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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