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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은 나의 인생학교, 울고 웃고 놀며 마셨네

[정재숙의 공간탐색] 배우 이호재의 분장실
서울 서초동 예술의전당 CJ토월극장 분장실. ‘뜨거운 양철지붕 위의 고양이’에 출연하는 배우들이 공연 시작 1시간 전에 도착해 극 중 인물로 변신하고 있다. 안충기 기자·화가

서울 서초동 예술의전당 CJ토월극장 분장실. ‘뜨거운 양철지붕 위의 고양이’에 출연하는 배우들이 공연 시작 1시간 전에 도착해 극 중 인물로 변신하고 있다. 안충기 기자·화가

창작의 산실은 내밀한 처소다. 한국 문화계 최전선에서 뛰는 이들이 어떤 공간에서 작업하는지 엿보는 일은 예술가의 비밀을 훔치듯 유쾌했다. 창조의 순간을 존중하고 그 생산 현장을 깊게 드러내려 사진기 대신 펜을 들었다. 화가인 안충기 기자는 짧은 시간 재빠른 스케치로 작가들의 아지트 풍경을 압축했다.

극 중 마누라들 덕에 무대서 장수
연기가 일상이고 일상이 연기
연극이란 관객과 대화하는 것
술 먹을 힘 있는 한 무대에 설 것

 
이 연재물의 열다섯 번째 주인공은 배우 이호재(76)다. 한국 연극의 위기를 55년 배우 인생으로 버텨 온 그는 오늘도 여일하게 무대 위에 서 있다. 원로 배우이기를 거부하는 영원한 청년 배우 이호재에게 극장은 인생학교다. 거기서 그는 무수한 인간으로 변신하며 삶에 대한 호기심과 열정을 놀이로 만든다.

 
서울 서초동 700번지 예술의전당 CJ토월극장 분장실. 오늘은 여기가 그의 작업실이다. 배우 이호재(76)씨는 거울 앞에서 ‘빅 대디’로 변신 중이다. 빅 대디는 미국 남부 미시시피 평야의 거대한 목화 농장주로 평생을 땅과 가족을 위해 살아온 고집불통 영감이다. 분장사가 재바른 손놀림으로 몇 번 얼굴을 두드리자 위엄을 풍기며 대가족을 이끄는 65세 할아버지가 나타난다. 미국 극작가 테너시 윌리엄스의 희곡 ‘뜨거운 양철지붕 위의 고양이’(11월 5일까지) 속으로 들어갈 채비가 끝났다. 연극 시작 1시간 전, 무대가 지척인 분장실 공기가 팽팽하게 차오른다.
 
“이 극장 분장실에서 저 극장 분장실로, 저 극장 무대에서 이 극장 무대로 여행하는 게 배우 인생이죠. 연극이 올라가기 전 몇 달씩 연습실에서 살다가 두어 시간 맡은 역에 몸뚱이를 던지고 나면 또 한철이 갑니다. 인생유전이죠.”
 
봄·여름·가을·겨울 철 따라 4편 연극을 하고 나니 올해도 설핏 진다. 이번 작품만 끝나면 놀아야지, 몇 번이고 다짐하지만 관객이 부르면 구르듯 달려간다. ‘대학로 연극은 위기’라고 떠드는 소리를 그는 귓등으로 헐친다. 여름 한철을 땀 흘리며 구른 연극 제목처럼 ‘언덕을 넘어서 가자’고 그는 무대로 외친다.
 
“옛날에는 배우들이 직접 분장을 했어요. 전문 분장사도 없었거니와 제작비가 부족하니 궁여지책으로 모두 발명가가 됐죠. 가슴팍에 털을 붙여야 하는 역을 맡았는데 그때는 사람 머리카락을 쓸 때라 돈이 없는 우리로선 대안이 필요했어요. 외국인이니 노란색이 좋겠다고 해서 누런 잎담배인 봉초를 장판에 칠하는 니스로 붙였어요. 시간이 흐르면서 니스가 말라 가슴이 오그라들던 걸 생각하면 지금도 웃음이 납니다. 눈썹은 성냥을 태워 그 검댕으로 칠했다니까요.”
 
그의 분장실은 휑뎅그렁했다. 붙박이 거울, 잠시 쉴 수 있는 간이침대 하나로 단출하다. 지난 6월 타계한 윤소정(1944~ 2017) 같은 이는 분장실을 아기자기하게 꾸미는 정감 넘치는 배우였다. 최고의 파트너이자 친구였던 고인과 부부로 자주 호흡을 맞췄다며 회상에 잠기던 그는 “내가 이렇게 오래도록 건강하게 무대에 설 수 있었던 일등 공신은 극 중 마누라들 덕분”이라고 했다.
 
“꿀이며 인삼이며 몸에 좋다는 걸 바리바리 싸 와서 먹이며 보살펴 주니 연극할 때가 더 건강하다니까요. 그 긴 대본을 어떻게 다 외우느냐고 묻는 분들이 있는데 이렇게 좋은 사람들과 매일 만나 자꾸 하다 보면 저절로 입에 착 붙게 됩니다. 그래서 오랜 시간을 잡아 여러 번 연습하는 걸 좋아하죠. 인생도 마찬가지 아닌가요?”
 
그는 연극 일 외엔 약속이 없다. 연습장이건 분장실이건 두어 시간 전에 도착해 식물처럼 묵언에 든다. 긴 침묵 끝에 무대에 서면 ‘대사의 달인’이 된다. 연기가 일상이고, 일상이 연기다. 목청이 높아지는 여느 배우들과 달리 그는 바로 옆자리서 두런두런 잡담하던 바로 그 목소리로 이야기를 건다. 연극이 끝나면 사흘도 못 돼 지루해서 다시 극장을 찾아든다. 사는 집도 연극 동네인 대학로다. 반백년 그를 무대에 세운 힘은 무엇일까.
 
“관객이죠. 연극이라는 게 상대방 배우와 짐짓 꾸며내 대사를 주고받는 것 같지만 사실은 관객이랑 대화하는 거거든요. 관객과 호흡하는 그 맛, 묻고 답하는 생생함에 매일 또 다른 시간과 공간에서 놀 수 있는 겁니다.” 
 
그는 “술 먹을 힘이 있는 한 연극 무대에 설 것이고, 연극을 할 수 있는 힘이 있는 한 술을 마시겠다”고 했다. 이호재 연극을 보면서 함께 나이 들어가는 이들이 바라는 희망 또한 이것이 아닌지.
 
2시간45분에 걸친 연극이 끝났다. 거짓말쟁이 인간들의 허위의식에 진저리를 치며 진실과 관용을 찾아 헤매던 빅 대디는 암으로 죽어가지만, 그의 사랑으로 마음이 열린 아들은 새 생명을 틔울 결심을 한다. 객석에서 터진 박수 소리에 인사하는 배우들 얼굴 위로 어둠이 내린다. 자리를 뜨는 관객들 얼굴 위로 빛이 환하다.
 
출연자와 스태프 30여 명은 분장을 지우자마자 식당으로 달려가 잔을 들었다. 이호재씨는 연극 속 빅 대디의 대사를 외친다. “자, 마셔!”
 
추종자 모임 ‘빨간 소주 클럽’
이호재 표 연극 직접 만들어
이호재(사진 오른쪽) 선생은 그만을 위한 기획사를 둔 전무후무한 배우다. 20여 년 전 그의 연기를 사랑하는 추종자들이 결성한 ‘빨간 소주 클럽’이 모태가 됐다. 이름하여 ‘빨소주 클럽’. 빨간색 병뚜껑 소주만 마신다고 해서 붙은 명칭이다. 1996년 무렵부터 연극 보고 술 마시는 재미로 모이던 이호재 연기 애호가들이 정모(정기모임)와 번개팅(사전 약속 없는 즉석 만남)을 하다 결성했다. 5년여 끈끈한 인연을 이어가던 이들은 아예 극단 컬티즌을 만들어 지금은 자신들이 좋아하는 ‘이호재 표’ 연극을 직접 제작한다.
 
대표인 정혜영(사진 왼쪽) 기획자와 의상디자이너 이승무씨 등 20여 명은 이호재 선생의 음주법(飮酒法)을 따른다. 술자리의 법칙은 단순하다. 빨간색 병뚜껑(녹색 뚜껑 소주보다 도수가 높은) 소주를 각자 딱 1병(못 마시는 이의 것은 잘 마시는 이가 감사한 마음으로 대리 음주)만 마신다.
 
음주 순서는 이렇다. 초대 손님 자리 앞에 빨소주 1병씩이 놓인다. 작은 소주잔 대신 큰 맥주 컵이 나온다. 각기 술잔에 가득 소주를 따른다. 즐겁게 마신다. 연극 시작하는 날 주로 하는 ‘시(始) 파티’, 막공(마지막 공연) 끝나고 여는 ‘종(終) 파티’가 기본이다.
 

 
이호재
1941년 서울생. 
 
63년 명동국립극장에서 ‘생쥐와 인간’으로 데뷔한 이래 150여 편의 연극에 출연하며 한국 연극계의 버팀목이 돼 준 55년 차 배우. 
 
선배·동료들이 TV와 영화판으로 떠나 버리는 현실에서 후배 배우들의 형님이자 아버지가 되어 무대를 지켰다. 
 
‘드라마센터 연극 아카데미’ 1기생으로 출발해 서울예술대학을 졸업한 뒤 국립극단 등을 거쳤다. 
 
‘잉여부부’ ‘쇠뚝이 놀이’ ‘페르귄트’ ‘초분’ ‘태’ ‘채권자들’ ‘언덕을 넘어서 가자’ 등에서 보여 준 관객과의 호흡으로 ‘연기의 교과서’라 불린다. 
 
2002년 서울시문화상, 2011년 보관문화훈장을 받았다.

 
 
정재숙 문화전문기자
johanal@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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