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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 퇴진서 적폐청산으로 구호 바뀐 촛불

28일 오후 서울 광화문광장과 여의도를 비롯해 전국적으로 촛불이 다시 타올랐다. 정확하게 1년 전 구호는 “박근혜 대통령은 퇴진하라”였다면 이날 광장에 울려 퍼진 구호는 “적폐를 청산하라”였다. 지난해 10월 29일 촛불집회를 주최한 ‘박근혜정권퇴진 비상국민행동’(퇴진행동)은 이날 오후 6시 광화문광장에서 ‘촛불항쟁 1주년 대회’를 열었다. 오후 8시쯤 참석자 수는 5000여 명을 넘었다. 박석운 퇴진행동 기록기념위원회 공동위원장은 “박근혜·이명박 정권이 특권과 반칙으로 민주주의를 파괴했던 적폐가 여전히 남아있다. 적폐청산을 계속하라는 것이 촛불의 요구”라고 주장했다. 참가자들 손에는 ‘이명박을 구속하라’ ‘국정원을 개혁하라’ ‘사드 배치 결사반대’ 등의 구호가 적힌 인쇄물이 보였다. 발언대에 선 김지은(15)양은 “1년 전 평범한 학생이었는데 다양한 시민이 모여 촛불로 하나 되는 걸 보고 반했다. 적폐청산이 될 때까지 계속하겠다”고 발언했다. ‘촛불시민혁명 승리 1주년’이라고 쓰인 노란 망토를 두른 전상훈(50)씨는 “정권 교체는 계기일 뿐이다. 다양한 사회 개혁 과제가 남았는데 여소야대 상황에서 대의 권력만 믿을 게 아니라 촛불을 계속 들어 시민들이 원하는 것을 표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광화문·여의도 1주년 기념 집회
“정권교체 후에도 개혁 과제 여전”
“시선 미래로 향해야 촛불 성공”

같은 시간 영등포구 여의도에서는 문재인 대통령 지지자들이 주축이 된 ‘촛불파티 2017’이 열렸다. 참가자들은 ‘자유없당·받은정당·국민없당’이라고 적힌 피켓을 들고 현 정부와 대립하는 야당을 비판했다. 이들은 밤늦게 자유한국당 당사 방향으로 진출하기도 했다.
 
1년 전과 달리 정치적 요구와 구호가 늘어난 데 대해 불편해하는 사람도 일부 있었다. 자영업자 배모(32)씨는 “촛불은 그대로인데 촛불정신이 그대로인지 모르겠다. 1주년 축하 자리로 생각하고 왔는데 온갖 단체가 나와 공감할 수 없는 정치구호를 외쳐대는 통에 자리를 일찍 떴다”고 말했다. 광화문광장 곳곳에선 내란음모 사건으로 징역형을 살고 있는 이석기 전 의원에 대한 사면을 요구하는 서명운동이 진행됐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방한을 반대하는 단체들도 목소리를 높였다.
 
실제 지난해 하반기부터 올해 초까지 이어진 23차례의 촛불집회는 ‘박근혜 정권 퇴진’이라는 목소리가 두드러지면서 다른 정치적 구호가 부각되지 않았다. 또 주최 측이 있었지만 대부분의 시민은 자발적으로 모였다. 1회 촛불집회 당시를 보도한 중앙SUNDAY 1면 기사는 “투쟁본부의 지휘 아래 청계광장에 모인 이들은 3000명 안팎에 불과했고 2만여 명의 시민 다수는 자유의지로 시위현장을 찾았다”고 전했다. 이후 이어진 촛불집회는 ‘자발적’ ‘평화적’이라는 새로운 집회 모델을 제시하며 시민들의 지지를 얻었다. 1회 3만 명이었던 집회 참가자는 한 달여 뒤인 12월 3일 232만 명으로 급증했다.
촛불집회 1주년을 기념하는 행사가 28일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열렸다. 김경록 기자

촛불집회 1주년을 기념하는 행사가 28일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열렸다. 김경록 기자

 
이러한 현상에 대해 김민전 경희대 정치학과 교수는 “촛불집회에 참여했던 이들은 대의민주주의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기 때문에 목소리를 낸 것이다. 다만 박근혜 퇴진이라는 공통분모가 사라졌기 때문에 이제는 너무 다양한 목소리가 나와 하나로 모으는 것은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1년 전엔 없었던 촛불 맞불집회도 이날 어김없이 열렸다. 중구 대한문 앞에선 박근혜 전 대통령 지지자들이 태극기와 성조기를 들고 박 전 대통령의 석방을 요구하며 남대문까지 시위를 벌였다.
 
촛불 1년은 우리 사회에 어떤 변화를 남겼을까. 윤평중 한신대 교수는 “촛불은 위에서 내리꽂는 ‘박정희 패러다임’을 아래에서 위로 향하는 ‘공화정 패러다임’으로 변화시키는 명예시민혁명이라고 본다”고 말했다. 하지만 진영으로 나뉜 우리 사회의 미래를 걱정하는 목소리도 분명 있다. 최항섭 국민대 사회학과 교수는 “한쪽만의 목소리로는 사회통합을 이룰 수 없다. 촛불집회 1년이 지난 만큼 상대방에 대한 생각을 포용하려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고 말했다. 윤평중 교수도 “적폐청산도 필요하지만 과거보다 더 중요한 것은 현재와 미래다. 문재인 정부의 성공, 촛불정신의 성공을 위해선 지금보다 시선을 조금 더 미래로 향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박민제·이유정 기자 letme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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