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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형이 후궁에게 ‘스스로’ 윙크 … 인공지능의 위험성 경고

[4차 산업혁명 시대의 상상력, 동양 신화] 『열자』 속 어릿광대 인형
화가 정지영

화가 정지영

인공지능(AI), 빅데이터, 사물인터넷, 증강현실 등 4차 산업혁명을 리드하는 여러 과학 기술 중에서 가장 기대와 우려를 자아내는 분야는 아마 인공지능일 것이다. 이미 알파고와 인간 고수와의 대국을 통해 인공지능의 가공할 능력을 톡톡히 실감한 탓도 있겠으나 향후 더욱 발전된 인공지능이 그간 인간이 누려온 독보적 지위를 위협할 것이라는 생각은 성급한 억측이라는 견해도 있지만 나름의 근거가 없는 것도 아니다. 일설에 의하면 1950, 60년대의 공상과학 소설에 처음 등장했던 신기한 발명품들의 대부분이 현재 이미 실현되었다고 한다. 확인해보지 않았지만 우리의 경우도 70,80세대의 어린 시절 이목을 사로잡았던 산호 화백의 『라이파이』, 고우영 화백의 『짱구박사』 등 고전적 만화에 등장했던 현란한 과학 기기들이 지금은 거의 구현되었을 것이다.

인간이 시키는대로만 하지 않고
통제 벗어날 수 있다는 메시지

“처음 인형 만든 자, 후손 없을 것”
공자도 인조인간 제작 강력 경고

날개로 날다 추락한 이카로스도
테크놀로지 위험성 경계 메시지

 
이렇게 보면 과학이 앞서가는 것이 아니라 상상력이 앞서가면 과학이 그것을 뒤쫓아 가는 형국임을 알 수 있다. 수십 년 전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인간과 인공지능 간의 투쟁을 주제로 한 공상과학 소설이 끊이지 않고 생산되는 것을 보면 인공지능에 대한 우려를 억측으로만 볼 수 없는 이유가 존재하는 것이 아닐까? 신화는 우리의 온갖 상상력의 원천이다. 이는 과학은 물론 우리의 모든 행위를 촉발하는 상상력의 근원을 신화에서 찾아볼 수 있다는 말에 다름 아니다. 과연 가장 오래된 이야기인 신화는 미래의 인간, 이른바 포스트휴먼인 인공지능에 대해 어떻게 말하고 있는가?
 
『노자』『장자』와 더불어 대표적 도가 문헌의 하나인 『열자(列子)』에는 다음과 같은 신화가 실려 있다. 주목왕(周穆王)이 긴 여행을 떠나 불사의 여신 서왕모(西王母)를 뵙고 돌아오는 길에 언사(偃師)라는 뛰어난 장인을 만났다. 주목왕이 솜씨를 보여 달라고 하자 이튿날 언사가 자신이 제작한 어릿광대 한 명을 데리고 왔는데 진짜 사람과 똑같았다. 어릿광대는 주목왕이 시키는 대로 걷고 뛸 뿐만 아니라 음악에 맞춰 노래를 부르고 장단에 맞춰 춤을 추었다. 그런데 연기가 끝날 무렵 어릿광대가 임금 곁에서 관람하던 예쁜 후궁에게 윙크를 하는 것이 아닌가? 속았다고 생각한 주목왕은 대노하여 장인 언사를 죽이려 하였다. 놀란 언사는 황급히 어릿광대를 잡아다 해체해 보였다. 그것은 가죽, 나무, 아교, 물감 등으로 만들어진 인형이었는데 내장은 사람과 똑같이 오장육부가 있었다. 장인의 솜씨에 감탄한 주목왕은 그에게 큰 상을 내렸다.
 
진시황 병마용

진시황 병마용

이 신화의 메시지는 장인의 솜씨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인형이 후궁에게 윙크를 했다는 데에 있다. 왜 작자는 인형이 인간이 시키는 대로만 행동하지 않고 스스로의 의지로 딴짓을 할 수 있다고 생각했을까? 더구나 인형은 딴짓을 함으로써 주인의 생명을 위험에 빠뜨렸다. 『열자』에 담긴 신화가 인조인간에 대해 말하고자 하는 바는 이것이었다. 테크놀로지는 믿을 수 없다는 것, 그것은 인간의 통제를 벗어날 수도 있다는 것이다. 동양 인문주의의 개조 공자는 인조인간의 제작에 대해 더욱 강력히 경고한다. “처음 인형을 만든 자는 아마 후손이 없을 것이다(始作俑者, 其無後乎).” 인형은 인간의 이미지를 본뜬 것인데 공자는 이미지가 실재를 대신하는 힘을 지녔음을 간파하고 그 위험성에 대해 후손이 없어질 것이라는 무시무시한 발언을 한 것이다. 오늘날 우리가 인공지능에 대해 갖고 있는 두려움의 배후에는 아마도 이와 같은 신화적 상상력이 깔려있는지도 모른다.
 
 
인형 주인, 왕에게 재주 자랑하다 죽을 뻔
이카로스

이카로스

테크놀로지에 대한 불신은 그리스로마신화의 경우도 예외는 아니었다. 언사만큼이나 뛰어난 장인인 다이달로스는 아들 이카로스와 함께 미노스의 왕궁을 탈출하기 위해 정교한 날개를 제작한다. 마침내 다이달로스 부자는 날개를 부착한 후 힘차게 날아올라 왕궁을 탈출하였다. 그러나 이카로스는 비행의 기쁨에 도취되어 아버지의 경고를 무시하였다. 그는 한껏 높이 날다가 날개를 접착한 밀랍이 태양열에 녹아 추락사하고 말았다. 몸에 날개를 달고 비상한 다이달로스 부자는 인간과 기계 장치의 결합체라는 점에서 사이보그의 원조인 셈이고 넓게 보아 인공지능과 같은 포스트휴먼의 범주에 속한다 하겠다. 그런데 이 신화 역시 테크놀로지의 위험성을 경고한다. 이른바 이카로스 패러독스가 그것으로 테크놀로지는 적당히 사용하면 인간에게 득이 되지만 그것이 도를 넘으면 해가 된다는 교훈을 담고 있다.
 
다시 동양권으로 돌아가서 공자의 경고 이후 위험한 인조인간 대신 동물로봇을 제작한 사람이 『삼국연의』의 제갈량이다. 그는 사람을 죽여 만두소를 만들던 풍습을 소나 양고기로 대체하여 오늘날의 만두를 창시한 장본인으로 알려져 있다. 그 역시 공자의 뒤를 잇는 인문주의자인 셈이다. 제갈량은 라이벌 사마의(司馬懿)와 전쟁을 할 때 군량을 운반하기 위해 목우(木牛)와 유마(流馬)라는 동물로봇을 제작한다. 그의 목우, 유마는 나무로 만들어졌는데 동력이 무엇이었는지는 알 수 없으나 완연히 살아있는 동물처럼 산악을 오르락내리락하면서 군량과 짐을 날랐다고 한다. 그러나 공자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인조인간 제작에 대한 욕망이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사람들은 여전히 죽은 자신을 지키기 위해 인형을 만들어 부장(副葬)하였다. 진시황 역시 이 때문에 수많은 군대 인형을 만들었는데 이것이 그 유명한 병마용(兵馬俑)이다.
 
그런데 인형보다 더 생동적인 인조인간을 향한 꿈은 도교 전통에서 자신을 완벽한 인간으로 개조하려는 노력으로 통합된다. 도교의 연단술(鍊丹術)은 초기에는 외부에서 합성한 약물 즉 단약(丹藥)을 복용하여 시공을 초월한 능력자인 신선으로 자신을 변모시키고자 하였다. 이것을 외단법(外丹法)이라고 한다. 외단법은 당나라 이후 약물 중독 등의 폐해가 드러나면서 신체 내부에서 호흡수련과 명상으로 완벽한 자아를 만들어내는 내단법(內丹法)으로 전환된다.
 
여기서 다시 서양을 살펴보면 그리스로마신화 이후 기독교가 지배하면서 인조인간 제작에 대한 인식은 변화를 맞는다. 우리는 ‘창세기’의 다음과 같은 언급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하나님이 가라사대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공자의 말씀과 정면으로 배치되는 이러한 발언은 생육하고 번성하여 자연의 주인이 된 인간이 마치 하나님처럼 자신의 형상을 따라 인조인간을 만들어낼 긍정적 소지를 제공한 듯하다. 중세 이후 서양 역시 동양의 연단술과 흡사한 연금술을 통하여 평범한 사람을 완벽한 인간으로 개조하고자 노력한다. 그러나 서양에서는 도교의 단약에 해당되는 엘릭시르(Elixir)를 합성하는 데에 몰두했을 뿐 동양의 내단법처럼 관점을 신체 내부로 돌리지 않았다. 그 결과 약물 합성 작업에 치중했던 서양 연금술이 과학의 발달로 연계되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동양의 내단법으로의 전환과 서양 연금술의 외단적 경향은 근대 과학으로의 방향 설정을 가름 짓는 중요한 분기점이었던 것이다.
 
 
로봇시대 인간을 구원하는 건 정신의 힘
매트릭스

매트릭스

동양의 내단법이 신체 내부에서 완전한 자아를 만들어내는 데에 집중하는 동안 서양에서는 근대 이후 급속도로 발달한 과학이 신체 외부에 “우리의 모양대로” 인조인간을 만들어낼 단계에 이르렀다. 유발 하라리는 인간 자신도 기술에 힘입어 신적인 인간 곧 호모데우스가 될 것이라고 추측한다. 오늘의 과학기술을 대부분 예견한 공상과학의 상상력은 여전히 인공지능의 예후를 불길하게 진단한다. 아닌 게 아니라 대다수의 낙관론에도 불구하고 로봇이 등장하면 인간 의미에 대한 집단 정체성의 위기가 올 것이라는 인문학적 견해도 만만치 않다. 인공지능의 발전이 피할 수 없는 대세라면 인간이 여전히 정체성을 지키면서 로봇과 사이좋게 공존 혹은 제어할 수 있는 대안은 무엇인가?
 
정신과 물질의 이원구분, 그 구분의 한 쪽을 극단으로까지 밀어붙여온 오늘의 과학, 그것이 낳은 문제를 극복하고자 한다면 그동안 소홀히 했던 신체 내부에 대한 집중 곧 정신의 고양이 필요한데 그 궁극적 모습은 과학과 내면세계의 유기적 결합으로 나타날 것이다. 공상과학의 상상력은 이러한 경지까지도 예측한다. 영화 ‘매트릭스’에서 주인공 네오는 명상, 기공 등의 내면 수행에 의해 업그레이드된 정신을 기계장치와 결합하여 극강한 인공지능 집단을 궤멸시킨다. ‘스타워즈’의 경우도 그러했듯이 물질이 지배하는 시대에 우리를 구원하는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정신의 힘인 것이다.
 
아마도 우리는 이처럼 영혼과 물질이 통합된 이상적 사회의 풍경을 근대 여명기 중국의 유토피아 사상에서 재발견하게 될 지도 모른다. 청말(淸末)의 거유(巨儒) 강유위(康有爲)의 『대동서(大同書)』에서는 미래에 도래할 이상사회를 다음과 같이 그리고 있다. “대동세에는 사람들이 걱정하는 바가 없어서 편안함과 즐거움이 극에 달해 오직 오래 살기만을 생각한다…. 마지막 단계에서는 빛과 전기를 타고 기(氣)를 조절해서 지구를 벗어나 다른 별로 가게도 된다. 이것은 대동세의 극치이며 인류의 지혜가 또 한 번 새로워지는 때이다.”  
 
과연 우리는 다가오는 초과학의 시대에 갱신된 지혜의 소유자로 거듭날 수 있을 것인가?
 
 
정재서 이화여대 명예교수
서울대 중문과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하고 하버드-옌칭 연구소와 국제일본문화연구센터에서 연구생활을 했다. 중국어문학회 회장, 비교문학회 회장 등을 역임했다. 저서로 『산해경 역주』『이야기 동양신화』『사라진 신들과의 교신을 위하여』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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