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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향기] 지하철 공감 실종

송인한 연세대 교수·사회참여센터장

송인한 연세대 교수·사회참여센터장

지하철은 열린 공간입니다. 누구나 타고 내릴 수 있습니다. 수많은 모르는 사람과 마주치고 헤어지며 옛 친구와 우연히 조우하기도 합니다. 익명의 공간인 동시에 모두에게 드러나는 공간입니다. 타인의 삶을 관찰하는 현실의 공간이며 타인에게 자신을 비춰보는 성찰의 공간이기도 합니다. 이곳에서 우리 시대의 민낯을 통해 때론 세상의 에너지를, 때론 딜레마를 발견하곤 합니다. 지하철의 어려운 딜레마 중 하나는 교통약자석, 특히 임산부 배려석이 아닐까요. 마치 우리 시대 갈등의 축소판 같기도 합니다.
 

공감은 인간의 본성이며 사람 사이의 연결장치
지하철 배려석이 공감을 되새기는 상징 되기를

교통약자석은 세계 많은 국가에서 보편적으로 우선석(優先席, Priority Seating)으로 설치돼 있는데 임산부 배려석을 별도로 지정한 것은 2013년 우리나라가 세계 최초입니다. 법률 제13978호 교통약자의 이동 편의 증진법은 교통약자를 “장애인, 고령자, 임산부, 영유아를 동반한 사람, 어린이 등 일상생활에서 이동에 불편을 느끼는 사람”으로 정의하고 인간 존엄과 가치,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위해 지하철 공간의 10% 이상을 교통약자 전용 구역으로 배정하도록 정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객차 한 칸의 대략 54좌석 중 노약자석 12석과 임산부 배려석 2석을 합쳐 25% 이상의 좌석이 만들어져 있습니다. 그러나 전체의 3.7%에 불과한 임산부 배려석은 실제로 임산부를 배려하는 데 어려움이 있는 실정입니다.
 
교통약자를 위한 노약자석은 전통적인 경로사상 위에서 어르신을 위한 좌석으로 자리 잡았으나 임산부 배려석은 ‘배려와 양보’에 대한 주관적 모호성으로 인해 여전히 합의가 이뤄지지 않고 있습니다. 빈자리를 놔두고 남성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경우도 흔합니다. 왜 교통약자 중 임산부석만 별도로 만드냐는 항의도 있습니다. 임산부를 위해 자리를 비워두는 게 맞느냐, 앉아 있다가 양보하는 게 맞느냐의 논쟁도 있는데 이미 앉아 있는 사람에게 당사자가 직접 자리 양보를 요청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입니다. 임산부석과 일반석을 분리함으로써 일반석은 양보하지 않아도 되는 듯 합리화하는 역효과도 있습니다. 앞사람의 무거운 가방을 빼앗듯이 들어주고 양보가 일상이던, 그리 오래지도 않은 추억이 생생하건만.
 
마틴 노왁이 설명한 협력의 다섯 가지 법칙도 지하철의 배려에는 잘 적용되지 않습니다. 혈연 관계나 협력 집단도 아니며, 같은 공간에 있다기엔 휘발적입니다. 양보가 자신에게 직접 돌아오는 것도 아니고, 익명 공간에서 평판이 높아지는 것도 아닙니다. 그러므로 타인의 어려움에 대한 공감에서 자발적으로 나오는 배려가 중요한 역할을 해야 합니다.
 
공감은 인간의 본성입니다. 거울뉴런(mirror neurons)은 인간을 포함한 영장류에게 타인의 생각과 느낌을 자신의 것으로 느끼는 본능이 있음을 제시했습니다. 영장류 학자 프란스 데발은 공감이 언어보다 앞선 인간 간의 연결장치라고 설명합니다. 최근의 연구들이 공감을 본격적으로 강조하기 2000년 전 이미 맹자는 인간은 누구든 타인의 괴로움을 견디지 못하는 성품을 가졌음에 공감을 본성으로 파악했습니다.
 
이러한 공감 본성이 희박해 진 것은 경쟁 상황에 놓일 때 타인에게 느끼는 반공감(anti-empathy) 역시 인간의 본성이기 때문입니다. 과열된 경쟁 사회 속 이기심이 본성의 스위치를 꺼 버린 것이겠지요.
 
타인의 마음을 느끼는 공감 위에서 상식이 형성되고 그 상식 위에서 제도가 만들어져야 합니다. 공감과 상식 없는 규칙은 사람을 진심으로 움직이게 할 순 없지만 배려라는 안전장치를 통해 타인에 대한 공감이 인간 본성임을 되새겨야 할 것입니다. 배려석이라는 별도의 단어가 없는 세상, 배려가 자연스러운 상식인 세상이 되기를 바랍니다.
 
익명 공간의 휘발성 관계가 늘어나고 누구나 약자가 되기 쉬운 세상에서 함께 살아가기 위해 공감의 중요성은 더해질 것입니다.
 
송인한 연세대 교수·사회참여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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