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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보균의 현장 속으로] 아베의 미·일 동맹, 100년 전 대륙세력 꺾은 영·일 동맹 복사판

리더십의 결정적 순간들 │ 일본 동맹외교의 명암 
1902년 영·일 동맹의 협상 장소였던 런던의 랜스다운 하우스 내부. ‘크러시 홀’에 걸린 협상 주역인 랜스다운 외무장관의 초상화가 동맹 체결의 흔적으로 존재한다.

1902년 영·일 동맹의 협상 장소였던 런던의 랜스다운 하우스 내부. ‘크러시 홀’에 걸린 협상 주역인 랜스다운 외무장관의 초상화가 동맹 체결의 흔적으로 존재한다.

일본 외교는 영리하다. 영·일 동맹(Anglo-Japanese Alliance) 시절에 그랬다. 그 동맹은 국제정치의 화려한 전설이다. 해양세력의 결속이다. 상대는 대륙세력 러시아. 그 조합은 러·일 전쟁 승리의 발판이었다. 일본 외교는 어리석다. 나치 독일과의 동맹이다. 그것은 일본의 패망(제2차 세계대전)으로 이어졌다.
 
2017년 한반도의 지정학은 그대로다. 해양과 대륙세력의 결전장이다. 대륙세력은 시진핑의 중국. 해양세력은 도널드 트럼프의 미국과 아베 신조(安倍晋三)의 일본이다. 미·일 동맹의 결속력은 단단하다. 한·미 동맹은 추월당했다. 동맹은 섬나라 일본의 본능이다. 나는 역사 현장을 추적했다.
 
왼쪽 사진은 하야시 다다스 공사, 오른쪽은 확대한 초상화.

왼쪽 사진은 하야시 다다스 공사, 오른쪽은 확대한 초상화.

1902년 1월 30일 영국 런던-. 영·일 동맹이 체결됐다. 세계는 놀랐다. 러시아는 충격에 빠졌다. 최강 영국은 ‘영광스러운 고립’을 포기했다. 신흥국 일본의 외교 승리다. 동맹 드라마의 시작은 청·일 전쟁이다. 일본은 압승했다(1895년). 중국의 영향력이 붕괴했다. 중국은 한반도 종주권을 내놓았다. 그 혁명적인 변화는 사상 처음이다.
 
마쓰오카 일본 외상(왼쪽)이 베를린에서 히틀러를 만나고 있다. [중앙포토]

마쓰오카 일본 외상(왼쪽)이 베를린에서 히틀러를 만나고 있다. [중앙포토]

전쟁은 일본 군부와 외교의 합작이다. 외무대신 무쓰 무네미쓰(陸奧宗光)의 개전 이유는 정의(情誼)와 자위. “이웃 조선과의 우호와 일본 방위를 위한 것이다.” 위선과 오만이 넘친다. 종전 장소는 시모노세키. 그곳은 유적지다. 총리대신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와 무쓰의 흉상이 나란히 세워져 있다. 무쓰의 비망록(『건건록(蹇蹇錄)』)은 일본 외교력의 원천이다. 드라마는 반전한다. 러시아 주도의 삼국간섭(프랑스+독일)이다. 일본은 전리품 랴오둥 반도를 포기했다. 조선은 러시아로 기울었다. 일본은 잔혹한 야만 행위로 응수했다. 명성황후 시해 사건이다. 일본은 담판외교로 전환했다. 로바노프-야마가타 비밀 의정서, 니시-로젠 협정, 만한(滿韓)교환론, 한반도 분할론이 등장했다. 러시아는 거부했다.
 
하야시 다다스(林董)는 영·일 동맹의 주연이다. 1900년 7월 그는 주영 공사로 부임한다. 그의 영어는 16세 때 영국 유학으로 연마됐다. 협상 상대는 영국 외무장관 랜스다운(Lansdowne). 가문의 5대 후작이다. 무대는 랜스다운 하우스. 런던 버클리 광장 근처다(지금은 멤버십 클럽). 나는 그곳을 찾았다. 건물의 외관은 수려하다. 안내인은 “250년쯤 된 건물인데 일부가 재건축됐다”며 “한 세기 전 동맹의 흔적은 랜스다운 초상화가 걸린 방에서 유추할 수 있다”고 했다. ‘크러시 홀’에 초상화가 걸려 있다. 원색의 화풍은 귀족의 체취를 쏟아낸다. 그 속에 치열하면서 노련한 협상 장면이 담긴 듯하다. 나는 건물 역사서를 펼쳤다. “하야시 공사는 이곳을 자주 방문한 교양 있는 신사다. 랜스다운 후작은 그에게 ‘일본인은 예의 바르고, 질서 있고, 믿을 만하다’는 평판을 전했다. 이는 중국에 대한 영국의 인식과 뚜렷이 대비된다.” “1900년 의화단 사건 때 러시아의 만주 점령은 중국에서 영국의 이익을, 조선에서 일본의 권익을 위협했다.” 러시아의 야심과 질주는 거셌다.
 
1901년 4월 본격 협상이 시작됐다. 랜스다운= “영국은 조선에 대하여 아주 미미한 관심밖에 없다. 그러나 영국은 조선이 러시아 손아귀에 들어가는 것을 보고 싶지 않다.” 하야시=“조선에 대한 중립 유지는 쓸데없다. 조선인들은 자치 능력이 전혀 없다. ···조선에 대한 일본의 이해관계를 보호하는 것이 처음이자 마지막이다.” 그는 조선을 폄하했다. (『하야시 다다스 비밀회고록』(A.M. 풀리, 신복룡·나홍주 번역)
 
시모노세키 청·일 조약 유적지에 있는 이토 히로부미(왼쪽)와 무쓰 무네미쓰 흉상.

시모노세키 청·일 조약 유적지에 있는 이토 히로부미(왼쪽)와 무쓰 무네미쓰 흉상.

1901년 11월 이토가 러시아를 방문했다. 하야시는 “이중 플레이는 신용 상실을 초래한다”고 했다. 그 움직임은 영국을 초조하게 했다. 가쓰라 다로(桂太郞) 내각은 혼선을 정리했다. 이토의 친러시아 구상은 폐기됐다. 신복룡(전 건국대 교수) 박사는 “이토의 다음 세대 외교 리더십인 고무라 주타로 외상과 하야시의 국익을 낚아채는 안목과 열정이 외교 쾌거를 이룩했다”고 했다.
 
영·일 동맹은 노골적이다. “영국의 권익은 중국과 연관돼 있다. 일본은 중국에서의 권익과 더불어 조선에 대해 특별한 이익을 갖는다.” 그 역사책은 단정한다. “조약은 일본의 조선 지배를 암묵적으로 인정하는 것이다.” 서명 장소는 랜스다운 하우스. 그때 런던에 대한제국 공사(민영돈)가 있었다. 그는 정세 변화를 몰랐다. ‘코리아 패싱’은 쇠락하는 나라의 징조였다.
 
2년 뒤 러·일 전쟁이 터졌다. 동맹의 비밀 각서는 위력을 과시했다. 일본의 해전 승리로 전쟁은 마감했다. 그 무렵 2차 영·일 동맹이 논의됐다. 주역은 랜스다운과 하야시 그대로다. 2차 동맹은 일본의 한반도 독점을 보장했다. 일본은 강대국 반열에 진입했다. 1921년 워싱턴 체제가 형성됐다. 영·일 동맹은 폐기됐다. 21년의 외교 동행이었다. 1931년 만주사변이 터졌다. 일본 체제는 군부 우위다. 그 풍광 속에 마쓰오카 요스케(松岡洋右)가 등장했다. 그는 제네바 대사 시절 국제연맹 탈퇴를 주도했다. 그의 강단 있는 영어 연설은 강렬했다(그는 미국 오리건대학 출신). 1940년 7월 외상이 된다.
 
250년 된 랜스다운 하우스 건물과 그 앞은 박보균 대기자.

250년 된 랜스다운 하우스 건물과 그 앞은 박보균 대기자.

마쓰오카 외교는 소용돌이다. 두 달 뒤 독일·이탈리아와 3국 추축 동맹을 맺었다. 미국과의 적대 상황은 굳어졌다. 1941년 4월 일·소 중립 조약이 체결됐다. 그는 삼국동맹을 과신했다. 미·영 압박의 방파제로 기대했다. 치명적 오판이었다. 원로 사이온지 긴모치(西園寺公望)는 “영·미를 적으로 돌리는 것은 외교의 대실패다. 독일이 이길 것 같지만 최종 승자는 미·영이 될 것”이라고 했다. 삼국동맹은 일본을 파멸로 이끌었다. 마쓰오카 외교는 돌출과 파격이다. 그는 신의를 우선하지 않았다. 하야시의 회고는 핵심을 찌른다. “우호적 열강과의 신의 유지가 국제관계에서 가장 중요하다.” 한·미 동맹의 신뢰 기반이 흔들린다. 트럼프 대통령의 11월 방한 반대 시위는 거칠다. 동맹이 취약하면 나라는 얕잡아 보인다.
 
동북아는 스트롱맨들의 각축장이다. 북한의 핵무장은 긴장 요소다. 시진핑 주석의 ‘중국몽(夢)’은 대담하다. 외교의 꿈은 19세기 말에 꽂혀 있다. 청·일 전쟁 이전 질서로의 복원이다. 아베 총리는 동맹의 역사적 묘미를 안다. 아베는 미·일 동맹을 다듬는다. 그 방식은 영·일 동맹의 복제라는 느낌이다. “일본이 대중국 포위망에 앞장서겠다. 미국은 일본을 지원해 달라”는 것이다. 아베와 트럼프의 밀월은 깊어진다.
 
[S BOX] 112년 전 러시아와 일본의 포츠머스 담판 … 비테의 여론동원 대 고무라의 절제외교
미국 뉴햄프셔주 포츠머스의 해군기지 안에 있는 조약 장소. 기념동판이 붙어 있다.

미국 뉴햄프셔주 포츠머스의 해군기지 안에 있는 조약 장소. 기념동판이 붙어 있다.

포츠머스(Portsmouth) 회담은 불편하다. 그것으로 대한제국의 미래가 암담해졌다. 포츠머스 강화조약은 외교의 학습 창고다. 외교의 본질과 기량에 대한 기억과 교훈이 담겨 있다. 강성학 고려대 명예교수의 시각은 흥미롭다. “1904년 러·일 전쟁 전후의 국제관계는 동북아시아 국제정치의 역사적 원형이다.”
 
포츠머스는 미국의 뉴햄프셔주 항구다. 보스턴에서 북쪽으로 80㎞. 그곳에 거대한 해군기지가 있다. 그 안에 한 세기 전 회담장이 남아 있다. ‘빌딩 86’, 애칭은 평화빌딩. 3층 벽돌 건물 앞쪽에 대형 동판이 붙어 있다. “여기서 시어도어 루스벨트 미국 대통령 초청에 의해 러시아와 일본 외교사절 간 평화회담이 열렸다. 1905년 9월 5일 오후 3시47분 전쟁을 끝내는 포츠머스 조약이 체결됐다.” 그곳에서 ‘평화’는 불쾌하다. 이중성과 울분으로 다가온다. 고무라의 평화는 일본의 조선 지배다.
 
1905년 5월 러시아 발틱 함대는 쓰시마 해협에서 궤멸됐다. 도고 헤이하치로(東鄕平八郞)의 역사적 승리다. 그것은 영·일 동맹의 효과다. 발틱 함대는 리예파야 항구(현재 라트비아)를 출발했다. 영국의 동맹 이행은 충실했다. 식민지 항구에 발틱 함대의 기항 거절, 석탄 공급 거부다. 7개월 항해의 함대는 기력을 잃었다. 루스벨트의 태도가 달라졌다. 친(親)일본에서 동북아의 세력 균형이다. 그는 종전 협상을 중재했다. 그해 8월 러시아·일본 대표가 테이블에 앉았다. 세르게이 비테 전 재상과 고무라 주타로(小村壽太郞) 외상이다. 고무라는 영·일 동맹의 주창자다. 그의 작은 키(1m56㎝)는 장신의 비테와 대비됐다.
 
비테(오른쪽)와 고무라.

비테(오른쪽)와 고무라.

고무라는 12개의 강화 조건을 내걸었다. 한국에 대한 일본의 보호, 러시아군의 만주 철수 등이다. 러시아 측은 대체로 수긍했다. 하지만 배상금 지불은 거부했다. 비테의 비밀 병기는 여론 동원이다. 그는 언어로 반격했다. “이곳엔 승자가 없다.”- 그는 “일본이 돈 때문에 전쟁을 계속한다”고 주장했다. 중재국 미국의 언론은 러시아편으로 기울었다. 고무라는 하버드대학 출신. 하지만 미국식 여론전에 익숙하지 못했다. 비테는 그 시대 최고의 협상가다. 러시아는 배상금을 내지 않았다.
 
고무라는 거기서 멈췄다. 일본의 전력도 바닥이 났다. 일본의 숙원은 이뤄졌다. 조약(2조)은 이렇게 보장했다. “러시아 정부는 일본 정부가 조선에서 채택할 필요가 있다고 인정하는 지도·보호·감리 조치를 취하는 데 방해·간섭하지 않는다.” 그것은 을사늑약의 초대장이다. 그 무렵 제2차 영·일 동맹(8월 12일), 태프트(미국 육군장관) -가쓰라 밀약(7월 29일)이 있었다. 그 조약문도 비슷하다.
 
일본 규슈 남동부 미야자키의 니치난. 고무라의 고향이다. 그의 기념관이 있다. 전시물 대부분은 포츠머스 조약과 관련됐다. ‘혼(魂)의 외교관’이란 안내문이 있다. 혼은 외교의 절제다. 요시다 시게루(吉田茂) 전 총리의 인물평이 눈길을 끈다. “고무라는 어떻게 하면 일본 외교가 발전할 것인가를 대국적 견지에서 생각했다.”
 
런던(영국)·포츠머스(미국)·미야자키(일본)=글·사진 박보균 대기자 bgpar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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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방연구원 전력발전연구부ㆍ군비통제센터를 거쳐 1994년 중앙일보에 입사한 국내 첫 군사전문기자다. 국방부를 출입한 뒤 최장수 국방부 대변인(2010~2016년)으로 활동했다. 현재는 군사안보전문기자 겸 논설위원으로 한반도 군사와 안보문제를 깊게 파헤치는 글을 쓰고 있다.

박용한 연구위원 : park.yonghan@joongang.co.kr (02-751-5516)
‘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