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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호의 사람 풍경] 사료·볏짚 먹인 쇠똥 악취 심해, 목초로 키우면 안 그래요

전남 장흥 풀로만목장 조영현 대표 
소는 색을 구분하지 못하나 냄새에는 민감하다. 자기 침이 묻은 풀을 먹지 않는다. 조영현 대표가 삼시세끼 풀을 챙기는 이유다. ’소가 커가는 소리를 들으면 하루가 금방 간다“고 했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소는 색을 구분하지 못하나 냄새에는 민감하다. 자기 침이 묻은 풀을 먹지 않는다. 조영현 대표가 삼시세끼 풀을 챙기는 이유다. ’소가 커가는 소리를 들으면 하루가 금방 간다“고 했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소를 보면 김기택 시인의 ‘소’가 가장 먼저 생각난다. 시인은 소의 커다란 눈을 응시한다. ‘오, 저렇게도 순하고 동그란 감옥이여’라고 했다. 그리고 이렇게 맺었다. ‘어찌해볼 도리가 없어서/소는 여러 번 씹었던 풀줄기를 배에서 꺼내어/다시 씹어 짓이기고 삼켰다간 또 꺼내어 짓이긴다.’
 

소도 사람도 행복한 축산
땅 넓지 않아 방목은 못하지만
풀 먹이고 마음껏 뛰놀게 해야

옛날도 볏짚으로 키웠는데
겨울에만 잘게 썰어 푹 삶아 먹여
요샌 통째로 줘 소의 위 깎아버려

2등급 소고기가 목표
예로부터 한우는 씹어야 제맛
지방 많은 고기 만드는 건 미친 짓

옷가게 하던 서울 토박이가 왜
사료 장사 30년, 풀이 좋다 외쳤지만
아무 반응 없어 7년 전 뛰어들어

지난 17일 찾아간 전남 장흥군 월정마을 풀로만목장. 억새로 유명한 천관산을 마주 보고 소 60여 마리가 천천히 풀을 씹고 있다. 아기소·어미소·아비소가 칸칸이 나눠진 축사에서 한가로운 오후를 누리고 있다. 조영현(63) 대표가 반갑게 손님을 맞았다. “한국형 한우 사육 모델이 익어가는 곳입니다. 제가 가는 길이 잘못되지 않았다는 걸 보여 주려 합니다.”
 
풀로만목장은 이름 그대로다. 오직 풀로만 소를 키운다. 배합사료와 볏짚을 먹이는 다른 축산농가와 차별화된 지점이다. 조 대표는 “소는 풀을 먹어 소화시키는 데 최적화된 몸”이라고 말했다. 그가 갑자기 ‘행복’ 두 글자를 꺼내 들었다. “소가 행복해지고, 농부가 행복해지고, 또 고객이 행복해지는 게 목표”라고 했다.
 
조씨의 풀로만목장 가옥. 집앞에 소들이 뛰노는 운동장이 있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조씨의 풀로만목장 가옥. 집앞에 소들이 뛰노는 운동장이 있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한국형 사육 모델, 그게 정확히 뭘까.
“소를 가두고 키우는 계류식과 초지에 풀어놓는 방목형의 장점을 살린다는 뜻이다. 우리는 땅이 넓은 미국이나 호주처럼 소를 방목할 수 없다. 그렇다고 비좁고 냄새 나는 우리에 가둬 둘 수도 없다. 저는 1650㎡(약 500평)의 축사에서 풀을 먹인 다음 그 10배 되는 운동장에서 마음껏 뛰어놀 수 있게 한다. 스트레스를 최소화하자는 것이다.”
 
소나 사람이나 먹는 게 중요하다.
“두 종류의 풀을 먹인다. 인근 장흥 농가와 계약 재배한 유기농 라이그래스(ryegrass)와 미국에서 수입한 최고급 알팔파(alfalfa)다. 라이그래스는 섬유질이 풍부하고 ‘목초의 여왕’ 알팔파는 단백질·칼슘 함량이 높다. 소의 성장 정도에 따라 둘을 먹이는 비율이 다르다. 뼈가 한창 크는 송아지에게는 알팔파를 많이 준다. 신안 천일염, 미네랄·비타민제 등으로 부족한 영양소를 보충한다.”
 
배합사료를 먹이는 것과 뭐가 다른가.
“많이, 빨리 먹여서 내다 파는, 즉 경제적 효율성만 따지는 관행을 바꿔 보려고 한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명품을 만들고 싶다. 예컨대 소는 똥으로 말한다. 사료나 볏짚을 먹은 소의 똥에는 옥수수 알갱이나 볏짚 조각이 들어 있다. 그것들이 썩으면서 악취가 난다. 반면 목초로 키운 소의 똥은 그런 게 없다. 마르면 가루 형태가 된다. 바로 논밭 거름으로 쓸 수 있다. 축사도 쾌적하다. 지붕 자동 개폐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소위 동물 복지를 내세우는 건가.
“‘사람은 사람답게, 소는 소답게’라는 초심을 잃지 않으려 한다. 공장식 축산에 대한 반성이다. 일례로 출하 직전의 다른 소들은 죽기 일보 직전이다. 볏짚이 얼마나 억센지 아는가. 소의 위를 깎아 버린다. 융모(絨毛) 대부분이 손상된다. 소가 더 이상 먹지를 못한다. 농가에선 ‘입을 닫는다’고 표현한다.”
 
옛날에도 주로 볏짚으로 키웠다.
“아니다. 봄부터 가을까지 들판의 풀을 먹였다. 겨울에는 짚을 잘게 썰어 푹 삶아 먹였다. 콩깻묵·등겨 등을 함께 넣고 쇠죽을 끓였다. 소화를 돕기 위해서다. 그런데 요즘에는 볏짚을 삶기는커녕 통째로 준다. 또 지방 함량을 높이기 위해 비타민A가 결핍된 사료를 준다. 그걸 기술이라고 부른다. 우리가 50~60년 전에 먹었던 쇠고기 맛이 아니다.”
 
조 대표는 새벽 5시 일과를 시작한다. 소에게 풀을 먹이느라 하루 수천 번 빗자루질을 한다. 왼손 엄지와 검지사이에 굳은살이 박였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조 대표는 새벽 5시 일과를 시작한다. 소에게 풀을 먹이느라 하루 수천 번 빗자루질을 한다. 왼손 엄지와 검지사이에 굳은살이 박였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이날 풀로만목장에선 작은 품평회가 열렸다. 축산 전문가 30여 명이 모여 조 대표의 도전을 놓고 토론을 벌였다. 주선태 경상대 교수는 “풀로만 쇠고기를 성분 분석한 결과 혈관 건강에 좋은 오메가3 지방산 비율이 여타 쇠고기보다 서너 배 높았다”고 발표했다. 최경주 전 전남농업기술원장은 “배합사료를 먹이지 않는 곳은 국내에서 이곳이 유일하다. 이제 우리도 올바른 먹거리, 스토리텔링이 있는 먹거리를 제공해야 한다”고 말했다. 기자도 시식에 참여했다. 기름기가 적었고 맛과 향이 깊었다. 일부 육질이 질기다는 의견도 나왔다.
 
송아지 12마리로 시작했다.
“7년 전이다. 2010년 10월 장흥에 자리를 잡았다. 두 달 지난 송아지를 구입해 저만의 방식을 실험했다. 4년 전부터 두 달에 한 마리씩을 잡아 소비자에게 공급했다. 지금까지는 투자 단계다. 5년 내 200~300마리가 목표다. 목장 뒤에 임야 4만㎡(약 1만2000평)도 공동 구매했다. 뜻을 함께하는 농가와 협동농장을 만들 계획이다.”
 
그 전에는 무슨 일을 했나.
“서울 토박이다. 광화문에서 태어났다. 동대문에서 옷장사를 크게 했다. 산에 미쳐 히말라야에도 세 번 다녀왔다. 1990년부터 사료 관련 일을 해 왔다. 2004년부터 5년 동안 미국 최대 건초가공회사 ACX의 한국법인장을 맡았다. 미국·캐나다·중국 등을 수없이 다녔다. 15년 전부터 한우를 잘 키우려면 목초를 먹여야 한다고 외쳐 왔으나 모두 묵묵부답이었다. 그래서 직접 나섰다. 아무도 하지 않았기에 제게 기회가 됐다.”
 
추진력이 강한 모양이다.
“스스로 과격한 사람이라고 한다. 에둘러 가는 스타일이 아니다. 하고 싶은 일을 하기 때문이다. 7년 전 17만에 달했던 한우 농가가 지금은 7만으로 줄어들었다. 그때나 지금이나 오직 풀을 붙들고 있는 사람은 저 하나뿐이다. 소비자에 대한 약속을 지키려 한다. 축산업도 신뢰와 가치가 생명이다.”
 
쇠고기 2등급이 목표라고 말해 왔다.
“현재의 등급제 기준을 따르면 그렇다는 말이다. 이른바 마블링, 즉 고기 조직 사이의 기름기가 많을수록 높은 등급을 받는다. 그래야 연하고 살살 녹는다고 한다. 한우 또한 일본 와규(和牛)에 영향을 받았기 때문이다. 대부분 한우를 와규로 만들려고 한다. 하지만 그게 건강에 좋을까. 저는 ‘미쳤다’고 말한다. 한우는 예부터 ‘씹어야 맛’이라고 했다.”
 
다른 쇠고기보다 엄청 비싸다.
“부위에 따라 ㎏당 10만~20만원이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로 직거래한다. 값이 비싸도 가치를 알아주는 사람에게 제값을 받는다. 이유식·치유식 등으로 알맞다. 그런 시장이 있다. 한우는 이미 대중화된 고기가 아니다. 수입육 때문에 30% 중반대인 한우 점유율이 앞으로 20%까지 떨어질 수 있다. 문제는 차별화다. 그게 경쟁력이다.”
 
모든 농가가 똑같이 할 수는 없지 않나.
“지금까지 900명 가까운 사람이 목장을 다녀갔다. 모든 방법을 공개한다. 물론 저를 그대로 따라 하라는 말은 아니다. 단단한 각오와 공부가 필요하다. 하지만 최소한 송아지 때까지 풀을 먹였으면 한다. 그래야 소가, 사람이 건강해진다.”
 
[S BOX] 반세기 함께한 요들송, 24시간 소들에게 들려줘
알프혼을 부는 조 대표(오른쪽)와 부인 이은경씨.

알프혼을 부는 조 대표(오른쪽)와 부인 이은경씨.

“벌써 50년 가까이 됐습니다. 산이 좋아 시작한 요들이 소를 키우는 데까지 이어졌네요.” 조영현 대표는 스위스 요들 전문가다. 애호가 수준을 뛰어넘었다. 스위스 현지 요들 대회에도 참가했다. 알프스 목동이 부는, 소위 세상에서 가장 긴 악기로 불리는 알프혼(Alphorn)도 틈틈이 연주한다. 장흥 목장에서 1년에 세 차례 알프혼 워크숍도 열고 있다. 소들에게도 하루 종일 음악을 들려준다. 목장에 설치한 스피커 4개에서 24시간 요들송이 흘러나온다.
 
조 대표는 중2 때부터 산을 누볐다. 누나를 따라 전문 산악회에 들어갔다. 그가 요들을 처음 접한 건 1970년 북한산 백운대 백운산장에서다. 프랑스등산학교를 다녀온 다른 산악회 선배의 영향을 받았다. “알피니스트(산악인)라면 알프스 노래를 하나 정도 할 줄 알아야 한다고 믿던 때”였다. 그는 당장 한국 요들송의 대부로 꼽히는 김홍철(70)씨를 찾아갔다. 김씨가 만든 한국에델바이스요델클럽에 가입해 현재까지 활동하고 있다. 스위스 요들의 대부로 꼽히는 프란츠 스타델만에게 배우기도 했다.
 
“요들을 알게 되고, 또 깊게 공부하다 보니 이제는 일상이 됐습니다. 요들송과 소가 자연스럽게 어울린다고 할까요. 요들 모임에서 아내까지 만났으니 제겐 더할 수 없는 인연이죠. 하하하.”
 
박정호 문화전문기자·논설위원 jhlogos@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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