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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리카와 아야의 서울 산책] 부산영화제서 만난 석면 피해자 다큐, 어두운 시대 상쾌한 빛을 보다

나리카와 아야 일본인 저널리스트

나리카와 아야 일본인 저널리스트

지난 12일부터 21일까지 부산국제영화제가 열렸다. 몇몇의 일본 감독들을 맡아 상영 후 관객과의 질의응답을 통역하는 일을 맡았다. 또 영화제 공식 인터뷰를 진행하는 등 새로운 경험을 많이 했다. 신문사를 그만뒀으니 이제 맘 편하게 좋아하는 영화를 실컷 보러 다닐 수 있겠군, 기대했지만 올해는 특히 일본영화가 많아 결국 영화제 운영을 돕기로 했다.
 
제일 신경 썼던 작품은 하라 가즈오 감독의 다큐멘터리 ‘센난 석면 피해 배상소송’이다. 하라 감독은 ‘가자 가자 신군’ ‘극사적(極私的) 에로스’ 등으로 알려진 거장이다. 더구나 이번 작품은 러닝타임이 215분이나 되는 대작이라 질의응답도 1시간씩이나 진행됐다. 하라 감독의 과거 작품들을 보고, 석면 피해에 관한 각종 글을 찾아 읽으며 20시간 넘게 통역 준비를 했다. 영화제 스태프들이 눈에 안 보이는 곳에서 더 많은 노력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직접 실감한 셈이다.
 
석면은 폐암이나 악성 중피종 같은 치명적인 병을 일으키는 위험 물질이다. 센난은 오사카 남쪽의 석면공장이 밀집했던 지역이다. 일본 정부는 그 위험성을 알면서도 경제발전을 우선으로 생각해 규제가 늦었다. 2006년 센난 피해자들이 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고 2014년 최고재판소가 처음으로 정부의 책임을 인정했다. 하라 감독은 그 과정을 10년 이상 좇으며 현장을 기록했다. 센난 피해자, 즉 소송의 원고들은 이 지역 특유의 기질 때문인지 피해자이면서도 얼굴 표정이 밝았다. 변호사·지원자들과 함께 운동을 즐기는 것처럼 보일 정도다. 하지만 영화가 진행되는 동안 밝은 얼굴로 출연했던 원고들은 잇따라 병을 앓다 죽어갔다.
 
상영 당일 극장엔 한국·일본의 석면 피해자들이 많이 모였다. 영화 상영 후 한국인 한 명이 “일본에서 규제되면서 석면공장이 한국으로 건너와 똑같은 피해를 줬다는 사실이 영화에선 안 나왔다”고 지적했다. 하라 감독은 “이미 한국에서도 석면공장은 규제가 되면서 사라진 상태라 찍을 것이 없었다”고 답했다. 이어 감독이 “또 다른 나라로 건너갔다고 들었다”고 말하자 그 한국인은 “인도네시아로 건너갔다”고 답했다.
 
나는 통역을 하면서 믿을 수가 없었다. 위험성을 뻔히 알면서 다른 나라로 가져가다니. 일본이나 한국이나 다른 나라에선 피해를 줘도 상관없다는 건가. 정부만 비판할 게 아니라 민간기업도 나 같은 일반사람도 같이 생각해야 할 문제인 것 같다. 영화를 넘어 국제적인 석면 피해에 대해 의논하는 밀도 있는 시간이었다.
 
석면공장과 한국의 관련은 이뿐만이 아니다. 센난 석면공장 노동자 중에는 재일한국인도 있었다. 재일한국인 3세라는 여성이 이번에 하라 감독과 함께 부산을 찾았다. 영화 상영 후 인사를 하며 “일본에선 한국 국적을 숨기고 살아왔는데 석면 피해자들의 한·일 교류를 통해 한국에 올 기회가 생기고 조금씩 조국에 대한 애착을 느끼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하라 감독이 영화에서 재일한국인 노동자가 많았다고 강조한 이유는 경제적 약자를 언급하기 위해서인 것 같다. 한국 국적으로는 취직이 어려웠던 시기, 석면공장에서만큼은 일할 수 있었다고 한다. 일본 노동자들도 시골에서 오사카로 일하러 왔거나, 혼자 자식을 키워야 했던 여성 또는 경제적으로 취약한 사람들이 대부분인 듯했다.
 
지금까지 내용만 봐도 심각한 문제를 다룬 영화인데 보고 나서의 기분은 이상하게 무겁지 않았다. 하라 감독의 말처럼 “현대의 기적”을 그린 영화이기 때문이리라. 뭐가 기적인가 하면, 원고측 변호사들의 열정적인 모습이다. 1심에서 이겼지만 2심에서 지고 원고들과 함께 우는 모습이 너무나 순수해 보였다. 마지막 3심에서 다시 승소한 순간은 어느 극영화보다 감동적이었다. 매일 어두운 뉴스가 넘치는 세상에서 오랜만에 상쾌한 빛을 본 느낌이었다.
 
나리카와 아야 일본인 저널리스트(동국대 대학원 재학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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