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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속으로] 벤처 대표 무대 세우고 휘슬 불자 관객 200여 명 몰려나와 질문 공세

이스라엘 창업축제 ‘DLD 텔아비브’ 가보니
텔아비브에서 지난달 열린 세계 최대 창업축제 ‘DLD 페스티벌’에서 벤처기업 대표들이 참가자들의 질문을 받고 있다. [현일훈 기자]

텔아비브에서 지난달 열린 세계 최대 창업축제 ‘DLD 페스티벌’에서 벤처기업 대표들이 참가자들의 질문을 받고 있다. [현일훈 기자]

“자 이제 경기 시작입니다. 사자처럼 달려들어 보세요! 누가 살아남을지 볼까요?”

각국 기업·투자자 등 5000여 명
곳곳서 e메일·전화번호 교환도

가상현실·드론 등 최첨단 기술
현장서 체험하고 궁금증 해소

이스라엘, GDP의 4% R&D 투자
5000여 개 벤처 있는 창업 천국

 
지난달 6일 이스라엘 텔아비브의 한 행사장. 진행자가 말한 경기의 ‘선수’는 벤처기업인 대표들이다. 선수들을 무대 위로 불러세운 뒤 진행자가 휘슬을 불자 객석에 있던 200여 명이 우르르 무대로 달려들었다.
 
“원천기술이라는 게 사업성이 있습니까.” “경쟁업체보다 우위에 있는 게 뭡니까.”
 
사방에서 질문이 쏟아졌다. 몇몇 대표들은 말문이 막혔는지 난감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두 손을 들었다. 관객들은 환호했다.
 
세계 최대 스타트업(창업) 경진대회인 ‘DLD(디지털, 라이프&디자인) 텔아비브 페스티벌 2017’의 개막 순간이었다.
 
지중해를 마주한 텔아비브 행사장은 섭씨 30도가 넘는 더위에 선글라스 없이는 눈을 뜰 수 없을 정도로 눈부셨지만, 행사장 안은 세계 각국에서 온 5000여 명의 사람들로 북적였다.
 
행사 내용도 모인 인파만큼 다양했다. 여러 부스에선 도시별 대표가 모이는 정상회담(summit), 삼성전자를 비롯해 구글·페이스북·IBM 등 글로벌기업의 사업설명회, 국가별 스타트업 이벤트 등이 진행됐다.
 
사람들은 자유롭게 돌아다니며 가상현실(VR), 사물인터넷(IoT), 드론 등 첨단기술을 직접 체험하고 궁금한 점을 질문했다. 벤처 대표와 투자자, 취재진이 어울려 e메일과 연락처를 주고받는 모습도 눈에 띄었다.
 
‘인구 800만 명, 고작 70년의 역사, 적들에게 둘러싸인 분쟁 국가, 천연자원 전혀 없음. 이런 이스라엘이 어떻게 일본과 영국·중국·인도보다 더 많은 스타트업을 창출할 수 있었을까’.
 
미국 언론인 댄 세너와 솔 싱어가 공동 집필한 책 『스타트업 네이션(Startup Nation)』의 첫머리엔 이런 대목이 등장한다. 이 책이 출간된 이래 ‘스타트업 네이션’이 이스라엘의 별명이 됐다. 이스라엘 정부에 따르면 이스라엘에는 현재 5000여 개의 벤처기업이 활동하고 있다. 미국 나스닥에도 86개 회사를 상장해 미국·중국에 이어 세계 3위다. 보유한 기술 수준도 세계 정상급이다. 노벨상 수상자를 12명 배출했고, 인구 1만 명당 과학 기술자 수는 140명으로 미국(83명)을 크게 앞선다.
 
대체 비결이 뭘까. 현장에서 만난 한 행사 관계자는 “국내총생산(GDP) 대비 연구개발(R&D)비 지출 비율이 약 4%에 달해 세계 1위를 기록할 정도다. 새로운 먹거리를 찾기 위한 노력을 계속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실패를 용인하는 문화도 이스라엘을 창업 강국으로 만드는 힘이다. 이스라엘 정부 관계자는 “이스라엘 창업 중 80%는 ‘죽음의 계곡’을 넘지 못해 실패하지만, 정부가 지원을 해주기 때문에 다시 도전할 추진력을 갖게 된다”고 말했다.
 
죽음의 계곡은 통상 벤처 설립 후 3~7년간 원천기술을 사업화하는 과정에서 겪는 고비를 말한다. 이스라엘 정부는 이 계곡에서 사라지는 스타트업을 살리기 위해 국가 차원에서 인큐베이팅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이스라엘 정부와 글로벌 민간기업이 함께 운영하는 지원프로그램이다.
 
더불어 이스라엘 특유의 ‘후츠파 정신’도 이스라엘이 ‘창업 혁신’ 국가로 올라서는 기반이 된다. 후츠파란 히브리어로 ‘탈권위’와 ‘도전’을 뜻한다. 교육과 창업 현장에서 이스라엘 국민은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직설적인 질문과 토론을 통해 문제를 해결한다.
 
정부 차원에선 소모적인 시간으로 전락하기 쉬운 군(軍) 의무 복무 기간에 고급 수학·컴퓨터공학 등을 가르치는 영재 군사교육 과정을 만들어 하이테크 벤처기업가를 길러 낸다. 이런 노력들이 축적된 결과 구글·마이크로소프트(MS)·인텔 등 다국적기업뿐 아니라 글로벌 벤처 자금이 앞다퉈 이스라엘로 몰리고 있다.
 
지난 3월 세계 벤처업계에선 글로벌 반도체 기업 인텔이 이스라엘의 자동 센서 스타트업(창업 기업) ‘모빌 아이’를 153억 달러(약 17조5000억원)에 인수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DLD(Digital Life Design) 텔아비브
DLD 텔아비브는 매년 가을 이스라엘의 경제중심지 텔아비브(Tel Aviv)에서 열린다. 올해는 9월 6~7일 개최됐다. 이스라엘뿐 아니라 미국·유럽 등지에서 수백 개의 스타트업과 투자회사, 유명 글로벌 기업 관계자들이 한자리에 모여 기술력을 뽐내고 적당한 투자처를 물색하는 국제 행사다. 딱딱한 회의 형식이 아니라 축제 같은 분위기에서 진행되는 게 특징이다. 행사 내용도 회의뿐 아니라 전시회·문화공연 등 다양하다.

[S BOX] 이스라엘 청년 벤처, 처음부터 세계시장 겨냥
이제영 스트라티오 대표.

이제영 스트라티오 대표.

지난달 이스라엘 스타트업 경진대회(DLD 2017)에선 ‘스트라티오’가 한국 대표로 참가했다. 스트라티오는 ‘링크스퀘어’라는 이름의 휴대용 분광기를 개발·판매하는 국내 벤처회사다. 손바닥 크기의 카메라로 광선을 쏴 물질의 성분을 분석해 내는 원천기술을 보유하고 있다. 예를 들어 어느 게 진짜 비아그라 약이고, 가짜 혹은 복제 약인지 정확히 구분해 내는 식이다. 현재 독일과 스페인·스웨덴·호주 등과 판로를 협의 중이다.
 
텔아비브에서 만난 이제영(39·사진) 스트라티오 대표는 “누구나 ‘당신 아이디어는 무엇이 문제다’고 거리낌 없이 비판하는 이스라엘 토론 문화에 놀랐다”고 했다. 그는 “하지만 일단 의사 결정을 하고 나면 하나의 목표를 향해 돌진하는 모습이 그들의 힘인 것 같다”고 덧붙였다.
 
이 대표는 “우리나라 스타트업은 일단 국내에서 자리를 잡은 다음 해외 진출을 준비하려는 경향이 있는데 이스라엘은 처음부터 해외 시장을 겨냥해 철저히 준비한다”고 말했다. 그는 “한국도 벤처기업을 통해 세계를 누비려는 도전적인 젊은이가 많아졌으면 좋겠다”고 했다.
  
이스라엘 텔아비브=현일훈 기자 hyun.ilho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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