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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속으로] 미래를 위해 기록한 저항의 언어로 지금도 유효한 빅브라더를 말하다

책으로 읽는 연극 - 1984
1984년 표지

1984년 표지

1984년
조지 오웰 지음
권진아 옮김
을유문화사
 
좋은 공연을 “한 점의 자비도 없는 섬뜩한 공연”이라고 표현해도 될까. 인간의 악에 깊은 관심을 가진 연출가 한태숙과 미래를 디스토피아로 예견했던 조지 오웰의 소설 『1984』가 만났다. 비록 소설은 아무것도 숨길 수 없는 빛의 세계에서 가해지는 폭력이었고 한태숙은 자신이 선호하는 어둠을 부각했지만, 대단히 응집력 있게 『1984』를 무대 위에 풀어냈다(명동예술극장, 제작 국립극단, 공연은 11월 19일까지).
 
연극은 영국의 로버트 아이크와 던컨 맥밀런이 공동으로 각색한 대본을 바탕으로 했다. 영국과 브로드웨이의 공연을 거치며 주목받는 최신작이라니, 정작 1984년은 무사하게 지나갔건만 블랙리스트와 감청에 시달렸던 대한민국만이 아니라 세계 곳곳에서 이 시대를 『1984』로 인식하는 눈치다.
 
한태숙 연출로 국립극단이 공연중인 조지 오웰 원작의 ‘1984’. [사진 국립극단]

한태숙 연출로 국립극단이 공연중인 조지 오웰 원작의 ‘1984’. [사진 국립극단]

홀로코스트와 스탈린의 전체주의로 대변되는 광풍의 시대를 경험한 뒤 오웰은 인류의 미래를 경고하며 소설 『1984』에서 가상의 제국 오세아니아를 세웠다. 1984년의 오세아니아는 빅브라더를 숭배하고 텔레스크린으로 사람들을 감시하며 역사마저 왜곡한다. 욕망은 통제되고 언어까지 간소하게 만들어 사고를 위축시킨다. 그런데 언어의 축소라? 컴퓨터와 모바일 폰을 사용하면서 납작해진 우리 시대의 언어를 생각해보니 여기 또한 1984다. 깊이 사고할 언어 대신 무자비한 댓글과 유언비어가 유포되는 대한민국, 오세아니아.
 
소설 『1984』는 그 오세아니아의 전체주의에 저항하다 무자비하게 고문받고 순화되는 윈스턴 스미스의 이야기로, 저항의 출발은 일기를 쓰는 장면에서 시작한다. 말하자면 저항은 자신만의 언어로 사고하고 표현하면서 비롯한다는 것, 더군다나 일기라는 기록을 남기는 작업은 미래의 누군가를 위한 것이기도 하다.
 
연극은 그 점을 주목했다. 아이크와 맥밀런은 모바일 폰을 사용하는 미래의 독자들이 윈스턴의 일기에 바탕을 둔 작품을 읽는 것으로 연극을 열고 닫으며 『1984』의 동시대성을 확보했다(윤색 고연옥). 덕분에 연극의 흐름은 소설과 달리 파편적으로 전개되는데 시공간의 경계를 따르지 않는 그 복잡한 흐름은, 추측하기에 따라 미래의 독자들이 책을 읽는 부분이기도 할 것이고 고문 받는 윈스턴의 의식의 흐름이기도 할 것이다.
 
퍼즐을 풀듯 그 파편들을 짜 맞추며 고통 받았던 우리 시대의 모든 윈스턴 스미스들, 여전히 힘을 행사하는 과거의 빅브라더 시스템을 성찰해 보아도 좋을 것이다. 『1984』는 아직 작동 중이다.
 
김명화 극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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