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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촛불 1년]운명 엇갈린 정치권 '키맨' 5인…협치는 이들에 달렸다

23번의 집회에서 1700만개의 촛불이 거리를 밝혔다. 2016년 10월29일 첫 집회에서 청와대앞 1.3㎞까지 행진했던 시민들의 행렬은 집회를 거듭하면서 청와대와의 거리를 900m, 500m로 좁힌 끝에 청와대 앞 100m까지 진출했다. 
 

정치권, 1년전 '촛불 정국'서 시민의 요구 수용한 '협치'
탄핵 이후 대선 거치며 '촛불혁명' 정신의 현실화 한계
"변화 요구 수용 못하면 언제든 '촛불'은 재점화 할 것"

지난해 12월 3일 6차 촛불집회에 참가한 시민들이 촛불을 들고 거대한 파도를 연출하는 모습. [연합뉴스]

지난해 12월 3일 6차 촛불집회에 참가한 시민들이 촛불을 들고 거대한 파도를 연출하는 모습. [연합뉴스]

그리고 헌정사상 초유의 대통령 탄핵(지난해 12월9일)과 헌법재판소 결정(지난 3월 10일), 최초의 봄철 대선(5월9일)이 쏜살같이 흘러갔다. 1년전 청와대에서 성난 함성을 듣던 대통령은 ‘영어(囹圄)의 몸’이 됐고, 촛불집회에 나섰던 여야 정치인들은 대통령, 정당 대표가 됐다. 그러나 촛불은 여전히 미완성이란 평가다.  
 
이정희 한국회대 정치학과 교수는 “촛불혁명에서 정치와 이념이 다른 시민들이 모순을 바꿔달라고 한 목소리로 요구한 직접 민주주의의 요체가 바로 협치(協治)였다”며 “그러나 이를 제도화 해야할 정치권은 촛불의 의미를 정치에 활용했을 뿐 요체가 됐던 진정한 의미의 협치를 구현할 노력을 한 적이 없다”고 말했다.
 
1년 전. 촛불정국에서는 정치권에도 협치가 있었다. 
 
당시 여론지지율 선두주자였던 문재인 대통령은 처음엔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과 조기대선에 반대했다. 그는 대통령 2선후퇴 후 ‘거국중립내각’을 구성해 대통령 파면을 막자고 주장했다. 그러다 지난해 11월12일 처음으로 100만명이 운집한 집회에서 “대통령은 이미 국민의 마음 속에서 탄핵 당했다”며 해법을 수정했다. 이때까지만 해도 문 대통령은 탄핵이 아닌 대통령의 자진 하야를 요구했다. 이른바 ‘질서 있는 퇴진론’에 동의한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후보 시절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대통령 탄핵촉구 촛불집회에 참석했다. 김성룡 기자

문재인 대통령이 후보 시절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대통령 탄핵촉구 촛불집회에 참석했다. 김성룡 기자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는 문 대통령과 달리 질서있는 3단계 퇴진론을 먼저 꺼냈고, 퇴진요구를 계속해왔다.
 
 그러나 민심은 이미 질서있는 퇴진이 아닌 ‘즉각퇴진’에 가 있었다. 박 전 대통령은 노무현 청와대 출신인 김병준 전 정책수석을 총리로 지명하면서 이선후퇴카드로 사태를 수습하려했으나 그 정도로 가라앉을 상황이 아니었다.
 
지난 3월 31일 경기도 의왕시 서울구치소로 구속수감되기 직전의 박근혜 전 대통령. 공동사진기자단

지난 3월 31일 경기도 의왕시 서울구치소로 구속수감되기 직전의 박근혜 전 대통령. 공동사진기자단

박 전 대통령과 정치권이 질서있는 퇴진일정을 마련하지 못하자 탄핵요구는 더 거세졌고, 문 대통령이나 안 대표도 나중에 탄핵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결정적으로 박 전 대통령을 탄핵한 건 당시 여당이던 현 바른정당의 김무성ㆍ유승민 의원이었다는 얘기가 정치권에선 정설이다.
 
의석이 부족했던 야권이 탄핵안 국회상정을 1주일(12월2일→9일) 미루자 12월3일 6차 촛불집회에는 사상 최대규모인 232만명(주최측 추산)이 모였다. 이 상황에서 김무성-유승민 의원이 영향력을 행사하던 비박 모임 ‘비상시국회의’가 촛불집회 바로 다음날인 12월4일 탄핵찬성쪽으로 사실상 입장을 정리했다.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안은 국회에서 가결됐을때 찬성이 234표(재적 299명)였다. 당시 야권 전체의석이 171석이었으니 새누리당(자유한국당 전신)에서 최소 62명의 이탈이 있었다는 뜻이다. 탄핵을 거치며 새누리당은 분열했다. 김무성ㆍ유승민 의원은 ‘개혁보수’를 기치로 탈당해 바른정당을 창당했다. 그 자리를 홍준표 현 자유한국당 대표가 채웠다.
 
하지만 정치가 시민의 협치 요구에 응답한 건 여기까지였다.
구속수감중인 박근혜 전 대통령이 허리 질환 치료차 지난 8월 30일 오전 서울 서초동 서울성모병원에서 진료를 받은 뒤 환자복을 입고 휠체어를 탄 채 병원을 빠져 나가고 있다. [연합뉴스]

구속수감중인 박근혜 전 대통령이 허리 질환 치료차 지난 8월 30일 오전 서울 서초동 서울성모병원에서 진료를 받은 뒤 환자복을 입고 휠체어를 탄 채 병원을 빠져 나가고 있다. [연합뉴스]

 
 곧 문재인-홍준표-안철수-유승민-심상정 후보의 대결이 펼쳐졌고, 승자는 문재인 대통령이었다. 
 
 박명호 동국대 정치학과 교수는 “탄핵 직후 조기대선을 거치면서 촛불이 요구한 혁신 대상이 뭔지에 대해 정치권은 진실한 토론이나 공감대를 형성하는 기회를 갖지 않았다”며 “촛불이 보여줬던 광장의 협치는 정파의 이해에 따라 정치권에서는 사라졌다”고 말했다. 그는 “촛불의 요구는 ‘정치교체’였는데, 현실은 정권교체에만 머물러버렸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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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 대통령 당선 이후 그의 대선 경쟁자들이 다시 속속 정치 전면에 등장하고 있다.
 
 홍 대표가 가장 먼저 제1야당 대표가 됐고, 안철수 대표도 8ㆍ27 전당대회에서 당선되며 조기복귀했다. 유승민 의원은 다음달 13일 바른정당 전당대회에서 대표선출이 유력하다. 김무성 의원은 보수야권 재편을 내세우며 물밑에서 한국당과의 통합을 추진하고 있다.
 
정치권 협치의 운명이 결국 탄핵 및 조기대선의 주역이었던 이들 5인에게 돌아갔다.
지난 대선에서 경쟁했던 5인의 정치인. 시민들이 촛불혁명에서 요구했던 '협치'의 실현은 이들에게 달려있다. [중앙포토]

지난 대선에서 경쟁했던 5인의 정치인. 시민들이 촛불혁명에서 요구했던 '협치'의 실현은 이들에게 달려있다. [중앙포토]

 
 그러나 현재로선 협치의 앞날이 밝진 못하다.
 
 문 대통령과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은 ‘적폐청산’ 드라이브를 걸고 있다. 이에 반발하는 야당과 대치가 거칠어지고 있다.1700만개의 촛불이 요구했던 협치는 사라졌다. 촛불의 의미를 되새겨야 했던 정치권의 계산기는 이미 내년 6월 지방선거 일정에 맞춰진 상태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선고 이틀째인 지난 3월11일 오후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마지막 촛불집회에서 참가자들이 '탄핵 환영' 폭죽을 쏘아 올리고 있다. 오종택 기자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선고 이틀째인 지난 3월11일 오후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마지막 촛불집회에서 참가자들이 '탄핵 환영' 폭죽을 쏘아 올리고 있다. 오종택 기자

박명호 교수는 “시민들이 광장에서 요구했던 근본적 변화에 대한 요구에 대해 정치권이 답하지 못한다면 광장의 요구는 언제라도 다시 불이 붙을 수 있다”고 말했다.
 
강태화ㆍ허진 기자 thka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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