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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소문 포럼] 진짜 개혁인지, 공신 챙기기인지 1년 뒤엔 드러난다

김수정 외교안보 선임기자

김수정 외교안보 선임기자

‘대사들(The Ambassadors)’이란 그림이 있다. 영국 헨리 8세와 로마 가톨릭의 대립이 유럽 최대 이슈이던 1533년 프랑스 왕의 사절로 런던에 온 장 드 당트빌과 주교 조르주 드 셀브를 한스 홀바인이 그린 대작이다. 그림 속 천구의(天球儀) 같은 소품들은 시대상과 함께 외교관이 당대 최고의 지성임을, 커튼 귀퉁이의 예수 수난상과 맨 아래 해골은 외교의 막중함과 외교 실패가 초래할 재앙을 뜻한다고 일부 미술사가들은 해석한다. 해골이 ‘인간은 필멸의 존재(Memento mori)’라는 예술 모티브이기도 하지만, 어쨌든 두 대사는 원조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격인 헨리 8세의 로마 가톨릭 결별 시도를 막아야 했기에 그 심정은 비장했을 것이다.
 

특임 공관장 보내기 ‘개혁’ 이름으로 반복
국제질서 대전환기 외교관의 꿈과 실력은

고금을 막론하고 외교의 승패는 나라의 운명을 가른다. 협약 하나로 국민 자존심과 자원·영토까지 빼앗길 수 있다. 거란과의 담판으로 강동 6주를 되찾은 고려의 서희도, 남한산성에서 청의 용골대에게 ‘(나라) 삶의 길’을 위해 머리를 조아린 최명길도 총성 없는 전쟁터에서 목숨을 건 외교관들이었다. 돌아가는 세상을 제대로 판단하지 못하고 듣기 좋은 소리만 조정에 올리다 당한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은 결국 외교 실패가 초래한 국난이다.
 
그 당위에 외교부가 부응을 못한 때문일까. 역대 정권은 예외 없이 집권 초 외교부를 우선 개혁 대상으로 삼았다. 핵심 어젠다는 해외 대사(공관장)의 외부 인사 충원(특임)이었다. 임기가 얼마 남았든 거의 전체 대사들의 사직서를 일단 받았다. 전 정권의 특임대사들을 솎아내고 정치 철학을 함께하는 인물을 꽂는 작업이었다. 흔히들 ‘코드 인사’라고 한다.
 
문재인 정부의 경우 직업 외교관을 불신하는 기류가 역대 정권보다 큰 듯하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 심판 과정에서 전직 대사 50여 명이 ‘법치주의 수호’ 성명을 낸 것,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이 대선 후보로 맞선 탓일지 모른다. “노무현 정부 때의 자주파·동맹파 갈등의 뒤끝”이란 얘기도 있다. 문 대통령은 미국과 중국·일본·러시아 등 한반도 주변 네 강대국 주재 대사를 모두 민주당과 대선캠프 인사로 채웠다. 공관 성추행 등 ‘적폐 부처’로 낙인 찍혀도 할 말 없을 사건들이 줄줄이 터지다 보니 힘 빠진 외교부 수뇌부는 묵묵히 따를 뿐이다. 사람을 고르느라 6개월 걸린 청와대는 전체 163개 자리 중 교체 대상 70여 개 가운데 독일 등 20개 안팎의 주요 공관장 내정자를 주말 사이 외교부에 통보할 예정이다. 그나마 외교부에 주어진 자리마저 “청와대가 결정하고 있다”는 게 관가에 파다하다.
 
직업 외교관은 소견을 피력하되 매번 바뀌는 정권의 지침을 따르게 마련이다. “상관에 대한 충성과 진실성을 기본으로 (방향이 다르면) 징징거리지 말고 그만둬야 하는 게 외교관의 덕목”(로버트 블랙윌)이다. 특임대사가 전략적 사고와 노련함, 기존 외교 관료가 근접하지 못하는 주재국의 핵심 인사들과의 인맥으로 우리 외교 지평을 넓힐 수 있는 인물이라면 적극 환영할 일이다. 하지만 성공 사례는 손에 꼽힌다. 힘센 사람이 머물다 간 자리라 평가도 제대로 받지 않았다.
 
국력과 외교역량은 일치한다. 핵심은 외교관의 실력이다. 대부분의 강국은 전문 외교관을 존중하고 역량 있는 인물을 키워 낸다. 우리는 정권이 바뀔 때마다 청소하듯 그들을 지워 낸다. 옥석도 가리지 않는다. 90년대 이후 과로 등으로 순직한 외교관만 20명이 넘는다. 험지의 풍토병으로 아내나 자녀를 잃는 경우도 있다. 드러난 비위로 외교관 전체를 매도해선 안 된다. 젊은 외교관들이 꿈을 갖고 실력을 쌓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런 점에서 지금 외교부의 분위기는 절망 수준이다.
 
한반도를 중심으로 시진핑의 신중국과 트럼프의 미국 우선주의가 거대 게임을 벌이려 한다. 1년쯤 지나면 국익을 위한 개혁을 제대로 한 것인지, 외교를 개국공신 밥그릇 챙겨 주는 데 썼는지 판가름 날 것이다.
 
김수정 외교안보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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