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Load Image preLoad Image
검색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주요 기사 바로가기
다른 기사, 광고영역 바로가기
중앙일보 사이트맵 바로가기
닫기
닫기

[강찬호의 시시각각] 문, 압승 아베와 ‘쿨’하게 가라

강찬호 논설위원

강찬호 논설위원

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압승은 문재인 정부로선 속이 쓰릴 수밖에 없는 일이다. 문 대통령은 집권 반년도 안 되는 기간에 아베 총리를 네 번이나 만났다. 그중 두 번은 한·미·일 정상회의를 통해서였다. 여권 소식통에 따르면 아베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앞에서 한국의 ‘염장을 지르는’ 말을 많이 했다고 한다. “한국이 (대북 억지나 미·일과의 공조에) 소극적”이란 식으로 고자질하기 일쑤였다는 것이다. 이에 문 대통령이 얼른 트럼프에게 “실은 그런 게 아니고 한국은 할 일을 이렇게 이렇게 잘하고 있다”고 반박하면서 제재와 대화를 병행할 필요성을 설명하는 구도가 이어졌다는 것이다. 여권 관계자는 “문 대통령의 설명을 듣고 나면 트럼프도 ‘한국 말이 맞네’라며 생각을 돌리더라”고 했다.
 

아베의 ‘고자질 외교’ 밉더라도
‘국익 위한 친일’ 기조 이어가길

이 관계자를 비롯해 여당 주변에선 아베를 놓고 “얄밉기 그지없다”는 말이 쉽게 튀어나온다. 그럼에도 문 대통령은 아베 총리와 네 번 만나고, 통화는 여덟 번이나 했다. 보름 뒤인 다음 달 10일엔 베트남에서 열릴 아태경제협력체(APEC) 정상회담에서 다섯 번째 만남을 이어갈 예정이다. 속마음이야 어쨌든 외양은 ‘근래 가장 좋은 관계’(청와대 관계자 표현)다. 집권 뒤 3년 내내 아베를 만나지 않은 박근혜와 천양지차다.
 
원래 진보 정권일수록 집권 전엔 ‘반일’을 외치다 집권 뒤엔 친일로 돌아서게 마련이다. 북한에 햇볕정책을 펴려면 미국과 다소의 갈등이 불가피한데 일본마저 적으로 돌리면 뒷감당이 어렵기 때문이다. 김대중 전 대통령과 오부치 게이조 전 총리는 찰떡궁합을 자랑했고 노무현 전 대통령도 임기 초반에는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총리와 괜찮은 ‘케미’를 구축했다.
 
문 대통령도 이런 ‘진보 정권=친일’ 공식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그가 집권 전 대선 공약으로 내건 ‘12·18 위안부 합의’ 재협상은 사실상 물 건너갔다는 게 중론이다. 당장 현 정부 국정기획자문위가 밝힌 외교분야 과제에서 사라졌다. 문 대통령 본인도 아베와의 회담에서 재협상을 우회적으로 요구하고 지나가는 데 그쳤다.
 
왜 정부는 양치기 소년이 됐을까. 우선 북핵 위기가 가중되는 상황에서 위안부 문제로 일본과 싸울 여력이 없다. 게다가 미국은 일본을 1중대, 한국을 2중대 삼아 중국을 억지한다는 의지가 확고하다. 대놓고 거부하기 어렵다. "우린 중국 눈치도 봐야 하니 따라가기만 하겠다”면서도 최소한의 동참 시늉은 해야 한다. 문 대통령이 한·미 정상회담 성명에 ‘한·미·일 협력 강화’ 문구가 들어가는 걸 동의한 이유다.
 
그러나 반일·반미 시민단체들은 정부의 이런 ‘친일’ 행보에 별 목소리를 내지 않는다. 보수 정부였다면 벌써 ‘친일파 정권 몰아내자’며 난리를 치고도 남았을 것이다. 진보 정권만 누리는 ‘친일 특혜’다. 문재인 정부는 이런 프리미엄을 잘 활용해야 한다. 일본과는 ‘쿨 외교’가 정답이다. 일례로 현안인 한·일 군수지원협정 체결 문제는 중국을 자극하지 않는 선에서 단계적, 제한적으로 추진하는 것이 맞다. 일본이 원하는 한·미·일 공동 군사훈련까지는 갈 수도, 가서도 안 된다. 중국을 직접 겨냥한 군사훈련은 우리에게 이로울 게 없기 때문이다.
 
내년은 김대중-오부치의 ‘신한·일선언’ 20주년이다. 일부 지식인, 정치인들 사이에서 이를 성대하게 기념해 한·일 관계 회복을 앞당기자는 소리가 나온다. 그러나 별로 친하지도 않은 관계를 과대 포장하면 역풍만 부를 것이다. 중국이 별 볼일 없어 한·일 관계에서 큰 이슈가 되지 않았던 20년 전으로 시간이 돌아가지는 않는다. 그런 허울뿐인 이벤트는 내려놓고 중국의 부상을 직시하면서 실리를 챙기고 상황을 관리하는 한·일 관계 구축이 현명한 선택이다. 
 
강찬호 논설위원
AD
온라인 구독신청 지면 구독신청

PHOTO & VIDEO

shpping&life

많이 본 기사

댓글 많은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