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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시평]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아

박명림 연세대 교수·정치학

박명림 연세대 교수·정치학

종교개혁 500주년이다. 종교개혁이야말로 근대세계를 만든 결정적 변곡점이기에 500주년을 맞아 시발점인 비텐베르크를 거듭 방문하여 그 의미를 반추해 본다. 영향과 의미의 크기만큼이나 세계 각지로부터 밀려온 방문객들의 표정도 인간 세사의 만상(萬象)을 떠올리게 한다.
 

종교개혁은 총체적 사회혁명이자
사유혁명이며 인간혁명이었다
한국 교회의 파벌·교회판매·세습 …
이제 인간화·영성화·품격화 위해
매우 통렬한 종교개혁 필요하다

태풍을 불러일으킨 마르틴 루터의 극적인 삶도 빛과 어둠의 테두리를 함께 돌아보게 된다. 특히 농민 탄압과 유대인 학살에 대한 그의 가공할 언명들은 훗날 나치의 추앙과 더불어 일련의 급진적 근본주의와 사상의 역할에 대해 끝없는 반성적 성찰을 촉구한다.
 
우리가 ‘종교개혁’이라고 부르는 말은 종교가 전부였던 시대에 ‘개혁(reformatio)’ 자체를 뜻한다는 점에서, ‘종교의 개혁’으로부터 비롯된 전면적 사유개혁이자 인간개혁이고 세계개혁이자 사회개혁이었다. 당시엔 아직 사회의 근본적 방향전환을 의미하는 혁명이라는 말이 없었기에-우주천문 영역에서 이제 막 쓰이기 시작-‘개혁’은 인간과 세계의 총체적 변혁을 함의하였다. 즉 종교혁명이자 사회혁명이고 사유혁명이자 인간혁명이었다. 실제로 그것이 끼친 영향은 어떤 혁명보다 컸다.
 
종교개혁은 단일 보편종교와 개별 영토정치의 계속되는 충돌을 방지하기 위해 정치와 종교의 경계선을 일치시키면서-종교의 영토화-근대 영토국가=국민국가를 등장시킨 가장 중대한 전환점의 하나였다. 종교개혁 이후 독일·영국·프랑스·이탈리아…의 종교는 더 이상 통일된 보편준거가 아니었다. 명목상 단일한 종교 우위의 정교일치가 사실상 분할된 정치 우위의 정교공존으로 전환되는 대역전이었다.
 
박명림칼럼

박명림칼럼

또한 종교개혁은 1세기 후 같은 종교 내의 대전쟁이 온 유럽을 휩쓺으로써 그때까지의 소규모 왕조 간, 또는 문명 간, 종교 간 대결이던 인류전쟁을 문명 내 대결로 전환시킨, 그럼으로써 인류의 전쟁 양상을 결정적으로 바꿔버린 유럽내전·유럽전쟁의 대두 계기였다. 이전의 종족 간, 언어 간, 종교 간 전쟁은 이후 ‘보편’ 대 ‘보편’ 간의 ‘문명 내 전쟁’이 추가되며 문명내전·세계내전으로 급변하였다. 그리하여 문명 내 전쟁으로서의 유럽내전·유럽전쟁은 근대국가를 탄생시킨 동시에 근대(성)·근대주의의 짝인 식민지(성)·식민주의와 맞물린 채 세계화함으로써 전 세계를 근대화=식민화 전쟁의 대상으로 전변시켰다. 유럽 밖의 근대화가 식민화인 까닭이었다.
 
나아가 주지하듯 종교개혁은 인간에게 노동과 부의 관념을 바꿔버림으로써 인간사회의 근대 경쟁질서와 합리주의, 소명의식, 자본주의 등장의 뚜렷한 계기였다. 그러나 더욱 거시적으로 보면 종교개혁은, 그 바탕에서는 자본주의적 경쟁질서가 아니라 오히려 분배와 공동체 중심의 복지사회 건설에 크게 기여하였다.
 
특히 덴마크·스웨덴·노르웨이·핀란드·아이슬란드·(독일…) 등 루터교의 직접적인 자장에 놓여 있던 국가들이 보여주는 오늘날 최고 수준의 복지국가 모습은, 유럽에서 개신교 교세의 약화를 우려하는 한국교회의 해석과는 달리, 이미 사회 자체가 사랑·관용·평등이라는 기독교 원리에 의해 운영됨으로써, 종교 본래의 기능에 대한 재성찰을 불러일으킨다. 즉 하느님과의 개인적 교통, 내면적 구원과 기도행위를 넘으면 기독교 원리의 공동체화와 사회화로 인해 더 이상 사회로부터 분리된 교회만의 독자적인 종교적 역할이 거의 필요하지 않은 것이다.
 
세상에 태어난 모든 삶은 (은총이자 축복이고) 고난이자 역경이다. 삶의 내외 안온을 위한 위무가 절실한 이유다. 종교는 교회를 성장시키려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과 세상을 (구원하기) 위해 존재한다. 즉 사람과 세상을 자신들의 믿음대로 ‘선하게’ 변화시키기 위해 존재한다. 종교가 먼저 ‘선하게’ 변해야 하는 이유다. 즉 하느님과 세상 ‘앞에서 증거한다’(Protesto)는 종교개혁의 참뜻처럼 교회 안을 넘어 반드시 ‘세상 앞에서’ 선함을 증거해야 한다.
 
세계적 대형교회들이 집중돼 있음에도 전체 사회가 전혀 기독교적 사랑과 분배, 복지와 평등에 의해 운영되지 않고 있는 한국사회는 교회와 사회의 재연계를 위해 종교개혁에 버금가는 일대 혁명을 요구한다. 모든 부문이 부와 재화를 향해 질주하는 오늘, 우리 시대는 인간화·영성화·품격화를 위해 500년 전보다 더 통렬한 종교개혁이 필요하다. 한국교회의 저 끔찍한 파벌·교회판매·세습·대출·부채·불평등·이념화·양극화는 종교혁명이 화급하다는 점을 증거한다.
 
박명림 연세대 교수·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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