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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판이 된 얼굴, 쌓기 블록이 된 몸뚱이

앞은 백남준이 ‘머리를 위한 선’ 퍼포먼스에서 그린 평면작품 중 하나. 뒤 영상은 오노 요코의 ‘컷 피스’. [이후남 기자]

앞은 백남준이 ‘머리를 위한 선’ 퍼포먼스에서 그린 평면작품 중 하나. 뒤 영상은 오노 요코의 ‘컷 피스’. [이후남 기자]

예술가는 종종 몸으로 말한다. 젊은 시절 백남준은 독일 미술관에서 잉크 등이 담긴 통에 머리·넥타이·손을 담근 뒤 그림이라도 그리듯 유쾌하게 긴 종이 위를 기어 다녔고(‘머리를 위한 선’, 1961) 그와 비슷한 연배인 오노 요코는 미국 카네기홀 무대에 긴장된 표정으로 무릎 꿇은 채 관객들이 가위를 들고 자신의 옷을 조각조각 자르게 했다(‘컷 피스’, 1965). 한국의 한강 다리 아래에선 강국진, 정강자, 정찬승 같은 젊은이가 기성 문화에 반발하며 몸을 흙구덩이에 파묻거나 몸에 둘렀던 ‘문화 사기꾼’ ‘문화 부정축재자’ 등의 문구를 불태우는 퍼포먼스(‘한강변의 타살’, 1968)를 벌였다.
 

국립현대미술관 ‘ … 몸으로 쓰다’
몸과 몸짓은 어떻게 예술이 됐나
국내외 38개팀 영상·사진 70여 점
아이웨이웨이가 마오 어록 풍자
‘한나라 도자기 떨어뜨리기’ 눈길

장후안, 가계도, 2000, 크로모제닉 컬러 프린트, 127×102㎝. [사진 국립현대미술관]

장후안, 가계도, 2000, 크로모제닉 컬러 프린트, 127×102㎝. [사진 국립현대미술관]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의 ‘역사를 몸으로 쓰다’는 이런 1960년대의 장면부터 새로 만든 신작까지 국내외 작가 38팀의 70여점을 영상·사진으로 보여주는 대규모 기획전이다. 예술적 수단으로서 신체와 몸짓을 어떻게 활용했는지, 여기에 어떤 사회적·역사적·문화적 맥락을 담아냈는지가 초점이다. 미술사에 손꼽히는 퍼포먼스, 지금 시대 이름난 작가가 여럿인 데다 작품마다 의미와 시도가 다양해 볼거리가 푸짐하다.
 
아이웨이웨이, 한나라 도자기 떨어뜨리기, 1995, 젤라틴 실버 프린트, 각 148×121㎝. [사진 국립현대미술관]

아이웨이웨이, 한나라 도자기 떨어뜨리기, 1995, 젤라틴 실버 프린트, 각 148×121㎝. [사진 국립현대미술관]

아이웨이웨이, 한나라 도자기 떨어뜨리기, 1995, 젤라틴 실버 프린트, 각 148×121㎝. [사진 국립현대미술관]

아이웨이웨이, 한나라 도자기 떨어뜨리기, 1995, 젤라틴 실버 프린트, 각 148×121㎝. [사진 국립현대미술관]

아이웨이웨이, 한나라 도자기 떨어뜨리기, 1995, 젤라틴 실버 프린트, 각 148×121㎝. [사진 국립현대미술관]

아이웨이웨이, 한나라 도자기 떨어뜨리기, 1995, 젤라틴 실버 프린트, 각 148×121㎝. [사진 국립현대미술관]

두드러지는 몸짓은 시대적 상황에 대한 비판과 저항이다. 얼어붙은 세상을 숨결로 녹이려는 듯 한밤중의 천안문 광장에 엎드린 중국 작가 송동의 모습(‘호흡, 천안문 광장’, 1996), 검열이 횡행한 시대에 면도날로 기사를 오려 너덜너덜한 신문을 만들어가는 성능경 작가의 모습(‘신문:1974.6.1.이후’, 1974)이 그 예다. 세계적 유명세로는 아이웨이웨이의 ‘한나라 도자기 떨어뜨리기’(1995)를 빼놓을 수 없다. 그가 인용한 마오쩌둥의 말은 ‘오래된 것을 파괴해야 새로운 세상을 만들 수 있다’는 것. 2000년 전쯤 만들어졌다는 도자기를 담담히 깨는 작가의 모습에 도발적인 의미가 한결 더해진다.
 
풍자도 있다. 일본의 이름난 전위예술그룹 하이레드센터가 짐짓 진지하게 펼치는 퍼포먼스는 슬그머니 웃음을 부른다. 1인용 방공호를 만든다며 호텔방으로 사람들을 불러 신체치수를 재는가 하면(‘셸터 플랜’, 1964), 도쿄 올림픽 당시 도시 미화에 혈안이 된 분위기에서 관공서에서 나온 것인양 흰 가운에 마스크까지 쓰고 거리 청소를 벌인다(‘청소 이벤트’, 1964).
 
빌리 도르너, ‘도시 공간 속 신체들’ 2010년대, 디지털 프린트, 가변크기. [사진 국립현대미술관]

빌리 도르너, ‘도시 공간 속 신체들’ 2010년대, 디지털 프린트, 가변크기. [사진 국립현대미술관]

몸의 활용은 극적인 장치가 되거나 때로는 슬랩스틱 코미디가 되기도 한다. 군국주의에 대한 비판이 엿보이는 고이즈미 메이로의 ‘이것이 희극이다’(2012)는 책 한 권을 읽어 보려는 남자를 누군가의 손들이 별별 방법으로 방해하는 모습이, 대만의 상징적 제복을 등장시킨 우치엥창의 ‘잊을 수 없는 연인’(2013)은 키치적 음악과 장식을 배경으로 순식간에 옷차림이 바뀌는 모습이 짧은 공연처럼 인상적이다. 도시의 각종 건축 틈새에 몸을 끼워넣거나(빌리 도르너, ‘도시 공간 속 신체들’, 2010년대), 체조선수의 숙련된 기술을 인간 깃발처럼 활용하는(알로라&칼자디야, ‘하프 마스트, 풀 마스트’, 2010) 시도는 시각적 효과부터 눈길을 끌어 그 함의를 궁금하게 만든다.
 
시각적 충격이라면 대담한 퍼포먼스로 이름난 마리나 아브라보비치의 ‘발칸 연애 서사시’(2005)가 으뜸일 것 같다. 청소년관람불가로 전시중인 이 작품은 성기를 드러낸 사람들을 대형 화면에 연출해 발칸반도에 전해지는 오랜 민속적 믿음을 재현한다. 성기 접촉을 통해 풍작을 부르거나 병을 막을 수 있다는 등의 주술적 믿음이다.
 
전시는 세 파트로 나뉜다. 정치사회적 맥락이 비교적 뚜렷한 60~70년대 작품, 평범한 일상의 동작에 사회적·예술적 의미를 부여하거나 집단적 참여로 퍼포먼스의 공동체 기능을 부각하는 작품, 그리고 김성환·덤 타입·히토 슈타이얼 등 카테고리로 묶기 쉽지 않은 작품도 곳곳에 자리했다. 남화연·박찬경·임민욱 등 한국 작가에 의뢰해 새로 만든 작품도 각기 다른 미덕이 뚜렷하다. 배명지 학예연구사는 “신체는 나와 타자가 관계를 맺는 최전선의 장소이며 세계의 다양한 상황들과 만나는 접촉 지대”이자 “기억의 장소” “사회적 장소”라고 풀이했다. 내년 1월 21일까지.
 
이후남 기자 hoona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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