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깡촌서 토굴생활하던 시진핑 1인자로 만든 '측근 지도'

[절대권력 시진핑의 신시대⑤]시진핑의 인맥지도와 용인술 
 
중국 공산당에 새로운 계파가 탄생했다.

親시진핑 세력, 공산당 제4계파 '시자쥔' 형성
새로 선출된 정치국 25명 중 14명이 시자쥔
시진핑 측근인 리잔수는 당 내 서열 3위 등극

 
당의 요직을 분점해 온 전통의 공청단파와 상하이방(幇) 및 태자당에 이은 제4의 계파라 부를만 하다. 수적으론 열세지만 파워는 나머지 파벌을 합친 것보다 세다.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의 친위군단을 일컫는 ‘시자쥔(習家軍)’얘기다. 최근엔 ‘시파이(習派)’라 부르기도 한다.  
시진핑 집권 2기를 이끌 중국 공산당 정치국 상무위원 7명이 25일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열린 기자회견에 참석했다. [신화=연합뉴스]

시진핑 집권 2기를 이끌 중국 공산당 정치국 상무위원 7명이 25일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열린 기자회견에 참석했다. [신화=연합뉴스]

 
2012년 공산당 1인자가 될 때만 해도 시 주석은 당내 인맥이 두텁지 않았다. 젊은 시절부터 줄곧 지방에서만 근무한 데다 후야오방(胡耀邦)-후진타오(胡錦濤)-리커창(李克强)로 이어져 온 공청단(공산주의 청년단) 출신이나 장쩌민 (江澤民)이후 중앙에 큰 세력을 형성한 상하이방처럼 든든한 정치적 배경이 없었던 탓이다. 대신 시 주석은 지방 근무시절 끈끈한 관계를 맺었던 옛 부하들을 차례로 발탁해 올렸다. 이들이 당ㆍ정ㆍ군ㆍ지방의 요직을 차지하면서 새로운 세력을 형성하기 시작했다. 25일 선출된 정치국 25명 가운데 14명이 시자쥔으로 분류된다.  
그래픽=심정보 shim.jeongbo@joongang.co.kr

그래픽=심정보 shim.jeongbo@joongang.co.kr

시진핑 이력과 인맥

시진핑 이력과 인맥

 
 
시자쥔의 형성은 시진핑의 인생 역정이나 정치 행로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 시 주석은 청소년 시절을 산시성 량자허(梁家河)의 깡촌에서 토굴 생활을 하며 보냈다. 문화대혁명기 베이징의 지식청년들을 농촌으로 내려보낸 ‘상산하향(上山下鄕)’운동에 합류한 것이다. 반(反)부패 사정을 주도하며 시진핑 1기 체제를 떠받친 왕치산(王岐山) 전 기율위 서기와의 반세기 인연은 이 때 시작됐다. 시 주석은 이웃 마을에 배치된 왕의 토굴을 찾아가 책을 빌려보고 밤새워 인생상담을 했다.
왕치산 전 중앙기율위 서기

왕치산 전 중앙기율위 서기

 
 
대학졸업후 중앙군사위 판공실에서 잠깐 일한 뒤 지방근무를 자청한 시 주석은 허베이성 정딩(正定)현 부서기로 내려갔다. 서열 3위의 상무위원에 오른 리잔수(栗戰書) 중앙판공청 주임과는 여기서 만났다. 지방 근무가 처음인 시 주석은 이웃 현 서기인 리에게 많은 조언을 구했다.    
리잔수(栗戰書·67) 상무위원

리잔수(栗戰書·67) 상무위원

 
시 주석은 3년 뒤 푸젠성으로 내려가 17년을 일하는 동안 차이치(蔡奇)베이징 서기, 황쿤밍(黃坤明)선전부 부부장, 허리펑(何立峰) 국가발전개혁위 주임 등 시자쥔의 주축 인물들과 인연을 맺었다. 쉬치량(許其亮) 중앙군사위 부주석 등 군내 인맥도 이 때 넓혔다.
 
이 가운데 차이치와 황쿤밍의 운명은 특히 흥미롭다. 공직 입문이래 줄곧 푸젠에서만 근무하던 두 사람은 1999년 저장(浙江)성으로 옮겨갔다. 과성(跨省)교류, 즉 지방간 인사교류를 권장한 중앙의 방침에 따라 푸젠성과 저장성이 지방 간부를 두 명씩 맞바꿨기 때문이다. 그들은 3년뒤인 2002년 저장 서기로 승진해 온 시 주석과 재회했다. 시 주석과의 친밀도는 갑절로 깊어졌다. 재미있는 사실은 저장으로 옮긴 두 사람은 시 주석 집권 이후 출세가도를 달려 이번에 정치국원이 됐지만, 반대로 저장에서 푸젠으로 옮겨간 두 사람의 공직생활은 평범했다.
 
천민얼 충칭 서기

천민얼 충칭 서기

시 주석은 저장에서 또한번 측근 인맥을 넓혔다. 천민얼(陳敏爾) 충칭 서기, 리창(李强) 장쑤 서기, 잉융(應勇) 상하이 시장, 중산(鐘山) 상무부장, 멍칭펑(盟慶豊) 공안부 부부장 등 열거하기 힘들 정도다. 이중 천 서기는 새로 부임해 온 시 주석 명의로 4년간 232편의 신문 칼럼 연재를 기획하고 책임졌다.
 
시 주석은 2007년 상하이로 당서기로 재직한 7개월의 짧은 기간에도 측근 부하를 만들었다. 이번에 정치국원이 된 딩쉐샹(丁薛祥) 중앙판공청 부주임과 양샤오두(楊曉渡) 기율위 부서기가 대표적이다.  
딩쉐샹 중앙판공청 부주임

딩쉐샹 중앙판공청 부주임

 
시진핑은 10년전의 17차 당대회에서 상무위원으로 발탁되면서 25년간의 지방 근무를 마치고 베이징으로 올라왔다. 차기 지도자로 낙점된 그에게 국가부주석겸 중앙당교 교장 보직이 주어지자 당교 평교수이던 리수레이(李書磊)를 놓치지 않고 연설문 담당으로 발탁했다. 리는 14살 나이에 베이징 대에 합격해 신동으로 유명했지만 당의 엘리트 코스와는 거리가 먼 상태였다. 리는 이후 푸젠성 선전부장, 베이징 부서기를 거쳐 이번에 기율위 부서기로 발탁됐다. 시 주석의 배려가 있었음은 물론이다.
 
절대권력 시진핑의 신시대
이런 과정을 따라가 보면 시 주석의 용인술을 읽을 수 있다. 개인적 신뢰를 대단히 중시하고 한 번 맺은 관계를 끝까지 유지하는 보스 기질이 강하다는 점이다. ‘내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과의 구별도 뚜렷한 것으로 평가된다. 또한 시 주석의 측근으로 발탁된 인물은 ‘주군(主君)’에 대한 충성도가 대단히 높은 것이 특징이다. 지난해 시 주석에게 ‘핵심’칭호를 부여하거나 올 해 ‘시진핑 사상’의 당장 명기를 실현시키기 위한 사전 정지 작업과 분위기 조성용 발언을 맡은 사람들은 대부분 시자쥔이었다.   
 
베이징=예영준·신경진 특파원 yyjun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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