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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촛불1년] 참여자들 "잘못을 심판, 누구를 지지한 촛불 아냐"


 [촛불1년] 4개의 시각-①참여자들 "내 인생 180도 바꿔"
 
지난 2월 25일 저녁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촛불집회 때의 모습. [중앙포토]

지난 2월 25일 저녁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촛불집회 때의 모습. [중앙포토]

 
지난 1년간 한국 사회에서 '촛불'은 사전적 의미를 뛰어넘는 함의를 갖게 됐다. 누군가는 촛불을 '시민들의 직접 민주주의'와 연결시켰고, 다른 누군가는 '평화'라 말했다. 또 혹자는 '특정 세력의 정치적 도구'라 폄하했다. 계기는 지난해 10월 29일부터 올해 4월 29일까지 매 주말마다 계속된 촛불집회였다. 총 23회 열린 집회에는 주최 측 추산 1700만 명의 시민이 참여했다. 목표는 박근혜 정권 퇴진이었다. 결국 지난 3월10일 박근혜(65·구속) 전 대통령은 탄핵됐고 법의 심판대에 올랐다.
 
29일은 첫 촛불집회가 열린 지 1년째 되는 날이다. 촛불은 어느 한 사람, 한 세력 만의 전유물이 아니었다. 촛불을 든 사람과 그들을 관찰해온 사람, 촛불 가까이에서 질서를 유지한 사람, 조금은 비판적으로 촛불을 대한 사람 등 각자의 시선에 따라 촛불, 그리고 그 후의 1년은 다르게 기록됐다.
 
촛불집회 당시 자원봉사단으로 참여했던 이지현씨와 경찰차벽에 꽃스티커를 붙였던 이강훈 작가.

촛불집회 당시 자원봉사단으로 참여했던 이지현씨와 경찰차벽에 꽃스티커를 붙였던 이강훈 작가.

 
주부 이지연(45)씨가 기억하는 그해 광화문 광장은 영하의 날씨였지만 따뜻했다. 이씨는 지난해 11월 26일 5차 촛불집회 때 생애 처음으로 집회에 나간 뒤 올해 4월 29일까지 매주 집회 자원봉사자로 참여했다. 그는 "처음 집회에 갔을 때 현장에 있던 인파와 어마어마한 차벽을 보며 '도와줘야 할 사람이 있어야겠다' 싶어 자원봉사까지 하게 됐다"고 말했다.
 
183일간 매주 평화롭게 촛불집회가 이어질 수 있었던 데는 시민 자원봉사자들의 힘이 컸다. 고생한다며 핫팩과 간식을 나눠주던 사람, 용돈까지 쥐어주려 했던 어르신 등이 지금도 이씨는 기억에 남는다고 했다. 1년 후 많은 것이 달라졌지만 지금도 이씨는 그때 함께 한 사람들과 연락을 주고 받는다. 그는 "촛불집회 이후 정치·사회 뉴스를 챙겨보고 도움이 필요한 곳에 봉사활동도 다니며 더 적극적으로 삶을 살게 됐다. 촛불은 그렇게 내 인생을 180도 바꿔놨다"고 말했다.
 
지난해 11월 경찰차벽에 평화를 상징하는 '꽃 스티커'를 붙여 화제가 됐던 이강훈(44) 작가는 "폭력을 덜어낸 저항을 해보고 싶어 '꽃'을 떠올렸다"고 회상했다. 촛불집회 이전까지 별다른 사회 참여 활동을 하지 않았던 이 작가는 촛불을 계기로 예술가의 역할에 대해 다시금 생각하게 됐다고 한다.
 
촛불정국 이후 한국 사회 모습에 대해 이 작가는 내심 우려를 드러내기도 했다. 그는 "새 정부가 잘하고 있지만 이를 열렬히 지지하는 대중들 사이에서 '대의와 생각이 다른' 소수 의견이나 집단에 대한 혐오 발언들이 아무렇지 않게 나올 때마다 '이것이 과연 정의일까'란 생각을 한다. 촛불은 잘못을 한 누군가에 대해 국민들이 심판을 한 거지, 다른 누군가를 지지하기 위한 행동이 아니었다"고 지적했다.
 
촛불집회 당시 중고생 집회를 이끌었던 중고생연대 전 대표 최준호씨와 청소년 참가자였던 이현민양.

촛불집회 당시 중고생 집회를 이끌었던 중고생연대 전 대표 최준호씨와 청소년 참가자였던 이현민양.

 
청소년들은 지난 촛불집회 때 지속적으로 동력을 제공한 주역이었다. 당시 청소년들의 참여를 이끌었던 중고생연대 전 대표 최준호(19)씨는 "학교에서 늘 경쟁하는 것만 배워오다 '다 같이 목소리를 내면 세상이 바뀔 수 있다'는 걸 촛불집회를 통해 처음 알게 됐다"고 말했다. 올해 성인이 된 최씨는 "촛불집회 이후 단순히 먹고 사는 것에 대한 고민을 넘어 사회적으로 의미있는 일을 하고 싶다는 꿈이 생겼다"고 했다.

 
하지만 아쉬움을 토로하는 목소리도 있었다. 청소년 참가자 이현민(18)양은 "청년들은 집회에서 그 누구보다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냈지만 이후 투표권도 갖지 못했고, 일상도 촛불 이전과 크게 달라진 게 없다"고 말했다.
 
촛불집회 때 청각장애인들을 위한 수화 통역 봉사를 한 황선희씨.

촛불집회 때 청각장애인들을 위한 수화 통역 봉사를 한 황선희씨.

 
황선희(34)씨는 영하 10도까지 내려간 지난 겨울, 집회 현장에서 청각장애인들을 위한 수화 통역 봉사를 했다. 늘 장갑을 끼지 않은 맨손이었다. 그는 "다른 봉사자들과 덜덜 떨며 20~30분씩 돌아가면서 수화를 했다. 그래도 그때 무대 위에서 본 촛불 파도는 잊혀지질 않는다"고 기억했다. 그는 "장애인 문제 등에 대해 계속 소통하려는 정부의 모습을 보며 지난 1년은 그래도 긍정적인 면이 많았다고 느낀다"고 했다.

 
촛불집회 참가 시민들을 분석한 책 『탄핵 광장의 안과 밖』을 펴낸 서강대 현대정치연구소 소속 서복경 연구원은 "세계사를 돌아보면 프랑스 68혁명처럼 무언가를 향한 집단적 열정이 폭발하는 시기가 있다. 현재 우리 사회는 그 타이밍을 막 지나온 것이다"고 설명했다. 그는 벨기에 출신 정치학자 아리스티드 졸버그가 말한 '모멘텀 매드니스(momentum madness·광기의 순간)'를 언급했다. 그러면서 "이 시기가 지나면 사람들은 자신이 이전에 이전에 살았던 세상에 대한 기억의 일부를 지운다. 그렇게 생각의 도약이 이뤄진다"고 덧붙였다.
 
홍상지·하준호 기자 hongsa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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