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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법 경마 프로그램 개발자 급습하니…침대 밑에 1억원 수표

사설 경마조직 '판도라' 사무실의 침대 밑에서 발견된 수표 다발. [사진 경기남부지방경찰청]

사설 경마조직 '판도라' 사무실의 침대 밑에서 발견된 수표 다발. [사진 경기남부지방경찰청]

 
지난 4월 30일 경기도 용인시 수지구 한 아파트의 펜트하우스. 문을 억지로 열고 들어간 경기남부지방경찰청 광역수사대 소속 형사들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사무실처럼 꾸며진 방에선 사설 경마 프로그램이 설치된 컴퓨터 10여 대가 쉼 없이 돌아가고 있었고, 옆에는 5400만원 상당의 롤렉스 시계 등 고가의 물품이 방치되어 있었다. 침대 매트리스 밑에선 1억4400만원 상당의 수표 다발이 발견됐다. 

경기남부청, 마사회법 위반 12명 구속, 16명 입건
사설 경마 프로그램 개발해 전국 110곳 유포
1조2000억원대 도박 프로그램 운영 75억원 챙겨
유명 대학 졸업한 프로그래머와 조폭 등도 가담

 
아파트 지하 주차장에서도 2억~3억원 상당의 벤츠 차량 3대가 주차돼 있었다. 당시 현장에 출동했던 한 경찰관은 "사무실로 사용하는 곳인데도 너무 호화스럽게 꾸며져 있어 순간 당황했다"고 말했다.
[자료 경기남부지방경찰청]

[자료 경기남부지방경찰청]

 
불법 사설 경마 프로그램을 개발해 업자들에게 배포한 이들이 경찰에 적발됐다. 조직폭력배를 비롯해 서울 유명 대학을 졸업한 프로그래머 등도 범행에 가담했다.
 
경기남부지방청 광역수사대는 26일 한국마사회법 위반 혐의로 사설 경마 프로그램 운영자 A씨(49)와 프로그램 개발자 B씨(44), 대전지역 폭력 조직의 부두목 C씨(44) 등 12명을 구속했다. 또 같은 혐의로 이들에게 프로그램을 받아 도박장 등을 운영한 D씨(41) 등 16명을 불구속 입건했다.
 
A씨 등은 2014년 12월부터 올해 4월까지 불법 사설 경마 프로그램인 '판도라(PANDOR)'를 개발, 유통해 75억원을 챙긴 혐의를 받고 있다. 
경찰이 불법 사설 경마 조직에게 압수한 프로그램 하드디스크를 정리하고 있다.[사진 경기남부지방경찰청]

경찰이 불법 사설 경마 조직에게 압수한 프로그램 하드디스크를 정리하고 있다.[사진 경기남부지방경찰청]

 
판도라는 개발사인 본사가 회원들의 당첨금을 직접 지급하지 않고 회원들의 베팅 금액으로만 배당률이 자동 정산되는 4세대 사설 경마 프로그램이다. 인터넷 사이트에서 회원가입을 받지 않고, 개인 이메일을 통해 인증해야만 프로그램에 접속할 수 있다. 
 
이들은 본사는 서버 이용료만 받고 프로그램을 배포·관리하면 하위 사설 경마 운영자들이 회원들을 관리하면서 배팅·정산하는 방식으로 운영해 왔다. 구글이나 네이버 등 검색엔진으로 검색되지 않는 '다크넷(다크웹)'을 활용해 경찰 등의 단속을 피해 온 것으로 조사됐다. 
 
다크웹은 IP를 여러 차례 바꾸고 통신 내용을 암호화하는 특수 프로그램으로 접속하기 때문에 추적이 어렵다. 익명성이 보장돼 마약·무기·아동 음란물·해킹 툴·개인정보 등의 매매가 빈번히 이뤄지는 '인터넷 암시장'으로도 활용되고 있다.  
 
A씨 등은 프로그래머 B씨를 고용해 2011년부터 1년간 이 프로그램을 개발하도록 했다. 서울의 유명 대학교를 졸업한 B씨는 과거 인터넷 '리니지' 게임의 등급을 올리고 희귀 아이템을 찾기 위해 홀로 '오토(자동) 실행 프로그램'을 개발했을 정도의 실력자다. 그는 이렇게 모은 희귀 아이템 등을 판매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런 사실이 게임회사에 알려질까봐 프로그램을 사용 중지를 시켰다고 한다.
A씨 등이 사무실로 사용한 경기 용인시의 한 아파트. [사진 경기남부지방경찰청]

A씨 등이 사무실로 사용한 경기 용인시의 한 아파트. [사진 경기남부지방경찰청]

 
B씨를 고용해 불법 사설 경마 프로그램인 판도라를 만든 이들은 자신들을 '본사'라고 칭한 뒤 D씨 등 전국110명의 사설 경마 운영자들에게 보증금 1000만원과 매주 서버 사용료 100만원씩을 받는 조건으로 프로그램을 개설·관리해 줬다. 
 
D씨 등 사설 경마 운영자들은 20~50명의 회원을 관리하면서 베팅 금액의 5~7%를 수수료로 챙겼다. 판도라는 수 천명의 사람들이 동시에 경마에 참여할 수 있고, 회원 당 하루 평균 3000만원까지 걸 수 있다. 이런 특성 탓에 이들이 운영한 불법 사설 경마 프로그램에서만 연간 1조2000억원의 돈이 오간 것으로 확인됐다고 경찰은 밝혔다.  
경찰이 A씨 등에게서 빼앗은 압수물품 [사진 경기남부지방경찰청]

경찰이 A씨 등에게서 빼앗은 압수물품 [사진 경기남부지방경찰청]

 
A씨 등은 판도라 프로그램 1개의 서버를 사설 경마운영자 1명이 관리하도록 하는 방식으로 운영했다. 하위 사설 경마 운영자 서버가 단속을 당해도 다른 곳에는 문제가 없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안정적 전원공급과 디도스 공격 등을 대비하기 위해 서울 서초동에 있는 유명 대기업의 인터넷 데이터 센터에 서버 설치·관리를 맡기기도 했다. 
 
이들은 경찰 등의 단속을 피하기 위해 용인지역 6곳의 고급 아파트를 빌린 뒤 2~3일 단위로 사무실을 옮기는 치밀함을 보이기도 했다.
 
조폭들도 개입했다. 대전지역 폭력조직의 부두목인 C씨는 프로그램 개발에 돈을 댔고, 행동대원 E씨(45·구속)는 본사에서 프로그램 운영을 관리했다. 경찰은 프로그램 개발과 운용 등에 조직폭력배들이 가담했는지도 계속 확인하고 있다.    
조직원들이 A씨와 조직폭력배 C씨 등에게 90도로 인사하는 모습. [사진 경기남부지방경찰청]

조직원들이 A씨와 조직폭력배 C씨 등에게 90도로 인사하는 모습. [사진 경기남부지방경찰청]

 
이들은 이렇게 번 돈으로 132~198㎡ 규모의 고급 아파트를 구입하고 해외여행을 가거나 벤츠 등 고가의 차량을 구입하는 등 호화생활을 했다. 경찰은 이들에게 압수한 컴퓨터 30대와 대포폰 61대, 현금, 아파트 보증금, 고급 차량 등 총 6억4727만원을 기소전몰수보전조치 했다. 
 
이들에게 고용돼 프로그램을 만든 B씨는 경찰 조사에서 "불법 도박 프로그램인 것을 알면서도 가담한 데다 비슷한 프로그램을 개발하자고 찾아오는 이들이 많아 그 동안 마음이 편치 않았다. 잡히고 나니 오히려 잘됐다는 생각이 든다"고 진술했다고 한다.
 
경찰 관계자는 "사설 경마 조직을 적발한 사례는 많았지만 최상위 운영자와 프로그램 개발자, 실시간 배당판 제공자 등 조직원을 일망타진하고 원본 프로그램 서버 129개까지 압수한 사례는 이번이 처음"이라며 "앞으로도 불법 사설 경마 조직을 지속적으로 단속하겠다"고 말했다.
 
수원=최모란 기자 mor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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