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Load Image preLoad Image
검색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주요 기사 바로가기
다른 기사, 광고영역 바로가기
중앙일보 사이트맵 바로가기
닫기
닫기

[촛불 1년]촛불집회 남녀사회자 " 참여하면 우리가 세상 바꿔"

지난해 11월 1일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에 분노한 대전시민들이 처음으로 거리에 모였다. 10월 29일 서울 청계광장 첫 촛불집회 사흘 뒤였다. 시민들은 매주 수요일과 토요일 대전 서구 타임월드 앞 도로에서 촛불을 들고 ‘박근혜 퇴진’을 외쳤다. 3월 11일까지 131일간의 대장정이었다.
지난해 11월 1일부터 올 3월 11일까지 61차례동안 진행된 대전 촛불집회에서 사회를 본 박희인 6.15공동선언실천 남측위원회 대전본부 집행위원장(왼쪽)과 김신일 성서대전 실행위원장. 두 사람이 지난 24일 중앙일보와 인터뷰에서 촛불을 들어보이고 있다. 프리랜서 김성태

지난해 11월 1일부터 올 3월 11일까지 61차례동안 진행된 대전 촛불집회에서 사회를 본 박희인 6.15공동선언실천 남측위원회 대전본부 집행위원장(왼쪽)과 김신일 성서대전 실행위원장. 두 사람이 지난 24일 중앙일보와 인터뷰에서 촛불을 들어보이고 있다. 프리랜서 김성태

 

김신일 목사 "찬바람 눈·비에도 광장에 모여준 시민들께 감사"
박희인 위원장 "구름처럼 모인 시민 보며 이게 민심이다 실감"

촛불 '대한민국 민주주의 국가' '국민이 주인' 다시 일깨워줘
'새누리당 해체' 구호 대전 촛불집회서 처음 외친뒤 전국 확산

131일간 61차례 열린 대전 촛불집회는 두 명의 사회자가 이끌었다. 김신일(47) 성서대전 실행위원장과 박희인(44·여) 6.15공동선언실천 남측위원회 대전본부 집행위원장이다. 눈과 비를 맞으며 한 번도 거르지 않고 광장에서 시민들과 만났다. 촛불집회 1년(10월 29일)을 앞두고 지난 24일 대전의 한 커피숍에서 두 사람을 만났다.
 
촛불집회 1년이 지났다. 감회가 남다를 것 같다.
(김신일)“1년이 금세 지났다. 촛불집회를 시작한 건 1년 전이지만 박근혜 전 대통령이 탄핵당하고 그 뒤에도 많은 일이 연속적으로 일어났다. 다시 시작이다.”
(박희인)“언제 1년이 지났는지 모를 정도로 바쁘게 지냈다. 새 정부가 출범하고 메시지를 전달하면서 ‘정말 바뀌었구나’라고 실감했다. 동료들이 촛불 혁명으로 새 정부가 출범했는데도 우리는 계속 바쁘다. 적폐청산이 얼마나 뿌리 깊은지 실감하는 과정이다. 이제 새로운 출발이다.”
대전 촛불집회에서 박희인 6.15공동선언실천 남측위원회 대전본부 집행위원장(오른쪽)과 김신일 성서대전 실행위원장이 촛불집회에서 사회를 보고 있다. [사진 박희인 위원장]

대전 촛불집회에서 박희인 6.15공동선언실천 남측위원회 대전본부 집행위원장(오른쪽)과 김신일 성서대전 실행위원장이 촛불집회에서 사회를 보고 있다. [사진 박희인 위원장]

 
어떤 계기로 촛불집회 사회를 맡게 됐나.
(김)“자연스럽게 정해졌다. 2012년 국정원 선거개입 사건, 세월호 참사 등을 거치면서 대전지역 시민사회단체가 ‘그냥 넘어가서는 안 된다’고 생각해 연대했다. 단체활동과 모임에서 마이크를 자주 잡았는데 그걸 계기로 촛불집회 사회도 보게 됐다. 처음엔 두 번 정도 혼자 사회를 봤는데 규모가 커지고 시민들의 참여가 확산하면서 동반 사회자의 필요성을 공감했다. 내부에서 박 위원장을 추천했다.”
 
첫 번째 집회부터 마지막까지 한 번도 거르지 않았다.
(박)“우리는 시민들 눈에 보이는 사회자였다. 하루 9시간이 넘도록 밖에서 준비했던 상황실 관계자와 무대 준비 담당, 자원봉사자에 비하면 우리는 힘든 게 아니었다. (나는)아이가 네명이다. 131일간 61차례 열린 집회에서 무대에 올랐다. 아이들과 있는 시간 적었고 주말에도 밤 11시까지 현장에 남아 있어야 했다. 아이들 곁에 있어주지 못해 늘 마음에 걸렸다. 아이들이 ‘엄마가 자랑스럽다’ 말했을 때는 정말 감동이었다.”
(김)“집회 준비와 정리 과정은 힘들지 않았다. 오히려 당시 상황이 오기까지가 더 힘들었다. 과거 국정원 대선개입 사건과 세월호 참사를 규명하기 위해 촛불을 들었지만 한 번도 승리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촛불집회 때는 국민이 한 마음으로 나서면서 오히려 힘이 났다.”
지난해 11월 1일부터 올 3월 11일까지 61차례동안 진행된 대전 촛불집회에서 사회를 본 박희인 6.15공동선언실천 남측위원회 대전본부 집행위원장(왼쪽)과 김신일 성서대전 실행위원장. 지난 24일 중앙일보와 인터뷰에서 촛불집회 당시 상황을 설명하고 있다. 프리랜서 김성태

지난해 11월 1일부터 올 3월 11일까지 61차례동안 진행된 대전 촛불집회에서 사회를 본 박희인 6.15공동선언실천 남측위원회 대전본부 집행위원장(왼쪽)과 김신일 성서대전 실행위원장. 지난 24일 중앙일보와 인터뷰에서 촛불집회 당시 상황을 설명하고 있다. 프리랜서 김성태

 
눈과 비가 내리고 찬 바람이 불어 집회 때마다 걱정이 많았을텐데.
(김)“다행히 많은 눈과 비가 자주 내리지는 않았다. 한 번은 무대 위의 눈을 계속 쓸어낼 정도로 눈이 많이 내린 날이 있었다. 모금함을 들고 시민들 속을 걸어다니던 자원봉사자 모자에 눈이 쌓이고 바람이 불었지만 시민들의 참여 열기는 더 뜨거웠다. 추운 날에 시민이 더 많았다. 날씨는 시민이 광장으로 나오는 데 걸림돌이 되지 않았다.”
(박)“대전 촛불집회는 서울 등 전국 다른 도시와 비교해도 동력이 떨어지지 않았다. 광화문 광장에 다녀오신 분들도 ‘대전이 항상 앞서간다’고 말할 정도였다. ‘새누리당 해체‘라는 구호는 대전에서 처음 외쳤고 전국으로 확산했다. ‘박근혜를 구속 수사하라’는 구호도 대전이 광화문보다 먼저 시작했다.”
 
가장 기억에 남는 집회는 언제인가.
(김)“대전 촛불집회는 도로 변에서 소규모로 시작했다. 규모가 커지면서 도로를 차단하고 새로운 장소에서 큰 무대를 만들었던 게 기억에 남는다. 당시 1000명 정도 참여할 것으로 기대했는데 도로를 가득 메을 정도로 시민들이 모여 놀랐다.”
(박)“매회 때마다 느낌이 달랐고 지금도 생생하다. 행진을 하면서 트럭 위에 올라가 집회를 이끌었던 게 기억에 남는다.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많은 시민들이 구호를 외치던 벅참 감동을 잊을 수 없다. ‘87년 6월 항쟁 알아?’라고 말하던 선배가 더 이상 그 말을 못할 정도로 시민들이 구름처럼 모여 들었다.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구호를 만들고 함께 외쳤던 감동적인 장면을 보면서 ‘이게 민심이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박희인 6.15공동선언실천 남측위원회 대전본부 집행위원장(오른쪽)과 김신일 성서대전 실행위원장이 대전에서 열린 마지막 촛불집회에서 사회를 보고 있다. [사진 박희인 위원장]

박희인 6.15공동선언실천 남측위원회 대전본부 집행위원장(오른쪽)과 김신일 성서대전 실행위원장이 대전에서 열린 마지막 촛불집회에서 사회를 보고 있다. [사진 박희인 위원장]

 
호흡이 중요했을텐데 파트너의 장점은.
(박)“사회를 보면서 항상 긴장했다. 김 목사님은 대중에 익숙하고 임기응변에 강하지만 나는 매번 원고를 준비했다. 리허설이 없이 진행하다보니 간혹 순서가 충돌하는 경우가 있었다. 시민들이 너그럽게 양해해준 것 같다. 다른 지역에선 사회자가 바뀌었지만 처음부터 끝까지 계속 한 곳은 우리가 유일하다. 호흡이 잘 맞았다. 눈빛만으로 무슨 말을 할지 알 정도였다.(웃음)”
(김)“박 위원장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 (나는)원고보다는 즉석에서 하는 편인데 계속 그렇게 했다면 실수도 많았을 것이다. 미리 만나 원고를 준비하고 시나리오도 논의했다. 그런 걸 박 팀장이 꼼꼼하게 잘 챙겨줬다.”
지난해 11월 1일부터 올 3월 11일까지 61차례동안 진행된 대전 촛불집회에서 사회를 본 박희인 6.15공동선언실천 남측위원회 대전본부 집행위원장(왼쪽)과 김신일 성서대전 실행위원장. 지난 24일 중앙일보와 인터뷰에서 촛불집회 당시 상황을 설명하고 있다. 프리랜서 김성태

지난해 11월 1일부터 올 3월 11일까지 61차례동안 진행된 대전 촛불집회에서 사회를 본 박희인 6.15공동선언실천 남측위원회 대전본부 집행위원장(왼쪽)과 김신일 성서대전 실행위원장. 지난 24일 중앙일보와 인터뷰에서 촛불집회 당시 상황을 설명하고 있다. 프리랜서 김성태

 
마지막 집회 때 감동이 남달랐을 것 같다.
(김)“감사의 뜻으로 시민들께 꽃 1000송이 나눠 드렸다. 촛불과 꽃을 함께 들고 박 전 대통령의 탄핵을 축하했다. 시민사회단체가 촛불집회를 준비하면서 ‘대전에서 나라를 바꾸는 데 힘이 되자’라고 뜻을 모았다. 마지막 집회를 끝내면서 국민의 힘으로 할 수 있는 게 많겠다고 생각했다.”
(박)“무대에 올라 시민들을 보면서 마음이 울컥했다. 이 감동을 시민들과 어떻게 공감할까 고민하다가 큰 절을 했다. 시민들이 맞절로 화답하는 모습을 보면서 감동이 밀려왔다. 간절한 마음이 모이면 역사의 줄기를 바꿀 수 있다는 생각이 다시 한 번 들었다. 그동안 세월호 참사 희생자 유가족에 대한 부채감이 적지 않았다. 세월호 참사 이후 촛불집회 전까지 수만을 활동을 했지만 좌절의 연속이었다. 마지막 집회를 끝내면서 희생자들 앞에서 고개를 들 수 있게 됐다.”
지난해 11월 1일부터 올 3월 11일까지 61차례동안 진행된 대전 촛불집회에서 사회를 본 박희인 6.15공동선언실천 남측위원회 대전본부 집행위원장(왼쪽)과 김신일 성서대전 실행위원장. 지난 24일 중앙일보와 인터뷰에서 촛불집회 당시 상황을 설명하며 환하게 웃고 있다. 프리랜서 김성태

지난해 11월 1일부터 올 3월 11일까지 61차례동안 진행된 대전 촛불집회에서 사회를 본 박희인 6.15공동선언실천 남측위원회 대전본부 집행위원장(왼쪽)과 김신일 성서대전 실행위원장. 지난 24일 중앙일보와 인터뷰에서 촛불집회 당시 상황을 설명하며 환하게 웃고 있다. 프리랜서 김성태

 
시민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은.
(박)“나라가 위기에 처할 때마다 나라를 구한 것은 국민들이었다. 촛불도 마찬가지였다. 국민 모두가 사회 곳곳에 쌓여 있는 적폐를 해소하고 개혁하기 위해 싸웠다. 진정한 민주주의를 우리가 일궈냈다. 참여하면 우리가 바라는 세상 이뤄낼 수 있다. 우리 국민은 자긍심, 자신감을 가져도 된다.”
(김)“대한민국이 민주주의 국가, 국민이 주인이라는 것을 촛불을 통해 절실하게 경험했다. 참여하고 한 목소리 내면 무엇이든 가능하다.”
 
대전=신진호 기자 shin.jinho@joongang.co.kr
 
AD
온라인 구독신청 지면 구독신청

PHOTO & VIDEO

shpping&life

많이 본 기사

댓글 많은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