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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수대] 여의도 벙커

박정호 논설위원

박정호 논설위원

“야! 신기하다.” 지난 주말 서울 여의도 벙커를 찾았을 때 엿들은 말이다. 50대 부부와 20대 커플이 똑같은 감탄사를 터뜨렸다. 그런데 뉘앙스는 달랐다. 중년 부부는 “여의도에 이런 비밀스러운 곳이 있었네”라며 궁금해했고, 청춘 남녀는 “여의도에 비행장도 있었네”라며 즐거워했다. 말은 같았지만 세상을, 시대를 보는 눈에서 작은 차이가 났다.
 
여의도 벙커가 서울시립미술관 분관 ‘SeMA 벙커’로 최근 다시 태어났다. 현재 개관 기념전 ‘여의도 모더니티’가 열리고 있다. 한국 현대사에서 여의도가 차지해 온 위치를 돌아본 설치·사진·영상 등이 두루 나왔다. 한국 정치 중심지이자 금융 허브로 성장해 온 여의도의 지난 세월을 반추하고 있다. 박정희 시대에 대한 성찰이 주조(主調)를 이루고 있다.
 
여의도 벙커는 2005년 여의도 버스환승센터를 만드는 과정에서 처음 발견됐다. 항공사진 분석 결과 1976년 말에서 77년 초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당시 국군의 날 행사 때 대통령 사열대와 벙커의 위치가 일치해 유사시 요인 대피용 방공호로 쓰인 것으로 보인다. 남북 대치의 또 다른 목격자인 셈이다. 12년 전 이곳에서 나왔던 소파·세면대·열쇠 등도 새로 정비·복원했다.
 
지하 2.2m, 두께 50㎝ 콘크리트로 만든 벙커는 한눈에도 튼튼했다. 그런데 전시장을 둘러본 느낌은 뭔가 야릇했다. 4년 전 서울시 미래유산으로 지정됐다지만 만든 지 40년밖에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문화재청 근대문화유산 지정 기준 연수도 통산 50년이다. 지난 짧은 시간이 대단한 격동기였음을 일러 준다.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오래된 동네를 여행하는 듯했다.
 
전시장 들머리에 놓인 박정근·조인철의 설치작품 ‘교차점’이 생각난다. ‘신발 벗고 들어가 주세요’ 안내문을 따라 붉은 카펫에 발을 디뎠다. 작품 복판에 야전침대가 놓여 있다. 침대에 누워도 된다. 침대 사방으로 얼굴을 반쯤 가린 정치인 사진이 보인다. 벙커 가까이 있는 국회가 연상된다. 사실 여의도는 한국 광장정치의 상징물. 70년대 군사 퍼레이드, 80년대 대선 유세, 90년대 노동자 대회 등이 잇따랐다. 그런 유산을 한 몸에 이어받은 한국 정치가 요즘 과거와의 싸움에 빠져 있다. 여의도 벙커가 어제가 아닌 오늘 일인 모양이다.
 
박정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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