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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사회 목소리 낼 곳 없어 … 현 정부는 촛불정신 잘못 해석”

송호근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
’촛불은 시민사회로 주권을 넘기라는 요구였다“고 말하는 송호근 교수.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촛불은 시민사회로 주권을 넘기라는 요구였다“고 말하는 송호근 교수.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서울대 사회학과 송호근(61) 교수는 지난해 가을 시작된 ‘촛불 정국’을 누구보다 열심히 들여다봤다. 그에 관한 신문칼럼 등을 모아 올 초 『촛불의 시간』이라는 단행본을 내기도 했다. 시민·복지·노동 전문가인 그는 촛불 이후를 어떻게 보고 있을까. 25일 그의 서울대 연구실을 찾았다.

‘촛불’은 국가주의 탈피하라는 명령
이념지향만 바뀌고 통치양식 그대로

적폐청산, 통치 한계 넘어설 가능성
촛불이 밀어붙이기 원한 건 아니다

주민자치·시민활동 등 활성화 해야
이런 장치 없으니 광장에 나오는 것

 
1년 전 촛불집회, 어떤 의미를 부여할 수 있나.
“나도 몇 차례 집회에 참가했지만 그처럼 거대한 에너지가 쏟아져 나올 줄은 몰랐다. 87년 6월 항쟁과 비슷한 정도의 충격을 한국사회에 안겼다. 87년 항쟁이 국민이라는 이름으로 정권에 동원되는 중압감으로부터 벗어나고자 하는 시민적 욕망이 표출된 결과였다면 촛불집회는 보통명사로서 시민이 한국사회에 등장한 계기가 됐다. 서울 시민, 전주 시민이라 할 때의 시민이 아니라 보통명사 시민 말이다.”
 
시민은 국민과 어떻게 다른가.
“국민이 나와 가정, 나와 직장이나 국가가 종적으로 연결되는 개념이라면 시민은 나와 타인, 개인과 공동체, 개인이 속한 단체와의 관계가 수평적인 존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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촛불이 한창 타올랐을 때 세상이 크게 바뀔 것 같았다.
“시민들이 깃발을 들긴 했는데, 그 깃발의 의미가 뭔지 모르는 상태였다고 생각한다. 누구나 촛불을 들고 뭔가 염원을 실었지만 그게 무슨 의미였는지 몰랐다. 누가 나서서 정의해 주는 사람도 없었고 정부나 언론이라도 그 작업을 했어야 했지만 대선 일정 등으로 쉽지 않았다. 다들 집에 돌아가 내가 들었던 깃발이 과연 뭐였을까, 생각을 많이 하지 않았을까 싶다.”
 
광화문 촛불집회. [뉴시스]

광화문 촛불집회. [뉴시스]

결국 깃발의 내용은 뭔가.
“깃발은 촛불집회가 한국사회에 던진 화두, 촛불의 핵심 개념이라고 할 수 있을 텐데, 나는 그게 국가가 주도하는 통치양식을 바꾸라는 시민들의 명령이었다고 생각한다. 국가주의에서 시민사회로 주권을 넘기라는 요구였다. 국가주의는 정권이 곧 국가라고 여긴다. 국가의 이름으로 정책을 수행하는데 실제로는 명령을 내리는 식이다. 권위주의 정권 시절은 물론 87년 민주화 이후에도 마찬가지였다. 지난 30년간 국가의 이름으로 자신들의 정책을 정당화했고, 그게 곧 통치양식이었다. 민주주의라고 하더라도 국가가 끌고 가는 민주주의였다. 그러면서 보수와 진보 사이에서 이념적으로만 왔다갔다한 거다. 그걸 끝내달라는 게 촛불의 핵심이었다.”
 
현 정부도 국가주의에서 벗어나지 못했나.
“신고리 원전 처리 문제의 경우 변화된 모습을 보여주긴 했지만 순서가 틀렸다. 원전을 끝낸다고 선언했다가 비판을 받으니까 뒤늦게 공론화에 붙였다. 순서가 거꾸로 된 것이다. 최저임금제나 비정규직 문제 처리 방식은 예전 그대로다. 역시 공론화에 붙이면 좋았을 텐데 효율성이 떨어지니까 정권이 자신들의 정당성, 높은 지지율을 등에 업고 밀어붙였다. 그건 촛불에서 원했던 게 아니다. 적폐청산도 하기로 한다면 한도 끝도 없는 문제다. 하려면 아예 1987년까지 거슬러 올라가야지 하필 10년인가. 5년 단임정권에서 10년 적폐를 없앤다는 게 통치력의 한계를 넘어설 가능성도 있다. 밑바닥에 쌓인 걸 전부 끄집어내 청소하겠다는 사고방식에서, 정권이 곧 국가라는 등식을 여전히 품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지지율은 널뛰듯 하는 거다. 그걸 통해 촛불정신을 구현한다, 그러다 5년 뒤 또 뒤집힌다면 과연 발전이 있을까 그런 생각이 든다. 정권의 이념적 지향만 바뀌었을 뿐 통치양식이 바뀌지 않다 보니 정치를 잘하느니 못하느니, 취향에 맞느니 틀리느니 시시비비에 빠져 예전으로 돌아간 듯한 기시감이 든다.”
 
 
모든 사안을 공론화에 붙인다면 효율성이 떨어질 텐데.
“시간과 비용은 들겠지만 그렇게 해서 합의에 도달하면 단단해진다. 신고리 원전의 경우 조용하지 않나.”
 
시민사회로 주권을 넘기려면.
“시간이 많이 걸리더라도 시민정치를 활성화해야 한다. 시민정치는 사회의 불균형 상태를 균형 상태로 회복해내는 자율적인 기제다. 현 정부는 온라인 정책제안 공간인 ‘광화문 1번지’ 참가자가 100만 명이 넘었다고 내세우는데 그런 개별적인 참여는 라디오 음악프로 참가와 비슷한 거다. 그런 개인 참가자들을 조직해 스스로 이해를 대변하는 장을 만들어줘야 하는데, 그게 바로 민주주의의 미시적 기초를 마련하는 일이다. 그런 미시적 기초 없이 과거는 적폐고, 내가 척결한다, 이런 식이면 과거와 뭐가 다른가. 그런 면에서 현 정부는 촛불을 잘못 해석하고 있다. 촛불이 바다에 빠져 표류하고 있다.”
 
민주주의의 미시적 기초 마련은 어떻게.
“시민들이 가정에서 광장으로 나왔다가 다시 가정으로 돌아가는 중간에 거쳐야 할 여러 단계를 만들고 그 단계들을 정치적으로 활성화해야 한다. 그 단계들은 주민자치일 수도 있고, 시민단체 활동이나 소비자 단체 캠페인일 수도 있다. 중간 단계에서 이해가 상충하는 집단들이 충분히 토의해 해소할 수 있는 건 해소해야 한다. 광장은 시민정치가 할 수 있는 가장 높은 수준의 행동이라고 본다. 미시적 제도에서 걸러지지 않으니까 사람들이 광장에 나오는 거다.”
 
결국 시민의식의 성숙이 답이다.
“독일처럼 정치교육을 강제하는 것도 방법이다. 독일은 1956년 시민교육법을 만들어 한 곳 이상 시민단체에 의무적으로 가입하도록 한다. 성인의 경우 1년에 2주간 유급휴가를 받아 자신이 원하는 시민단체의 토론 프로그램에도 참가해야 한다.”
 
북핵 위기가 심각한데 시민사회가 할 수 있는 역할이 있나.
“시민 누구나 북핵에 대한 의견이 있을 텐데, 가령 경륜 있는 100명 정도를 공론장에 불러모아 한두 달 논의하게 하면 뭔가 나오지 않겠나.”
 
◆송호근
서울 출생. 서울대 사회학과, 하버드대 사회학 박사. 현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 『한국의 노동정치와 시장』 『인민의 탄생』 『시민의 탄생』 『이분법 사회를 넘어』 등. 

 
신준봉 기자 infor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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