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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근길에 자녀 등교시키다, 일용품 사러 갔다 다쳐도 ‘산재’

근로자 A씨가 회사 업무를 마치고 평소 퇴근하던 길이 아닌 다른 길로 갔다. 여자친구의 선물을 사기 위해서다. 그는 대형 매장에서 선물을 고르다 계단에서 미끄러져 발목과 허리를 다쳤다.
 

내년 적용 산재보험법 시행령 논란
출퇴근길 일상생활 행위 모두 인정
진술에만 의존, 사업주 날인 폐지

토요일에 등산하다 다친 근로자
“월요일 출근 중 부상” 주장해도 몰라
부정수급 늘고 기업 부담 증가 우려

이 경우 산업재해로 인정돼 보상을 받을 수 있을까. 올해 말까지는 안 된다. 출퇴근하다 다치는 경우 소송과 같은 과정을 거쳐 업무상 연관성을 인정받지 않으면 산재로 보상받기 어렵다. 통근버스와 같은 회사가 제공한 교통수단을 이용했을 경우에만 산재로 본다.
 
그러나 내년부터는 달라진다. A씨는 산재 보상을 받을 수도, 못 받을 수도 있다. 그가 “내가 쓸 생활용품을 사러 갔다가 다쳤다”고 진술하면 산재로 인정된다. 그가 “여자친구 선물을 사기 위해 매장에 들렀다”고 솔직하게 말하면 산재 보상 대상에서 제외된다. 근로자 A씨의 양심에 따라 산재 판정 여부가 결정되는 셈이다. 물론 회사나 근로복지공단이 진실을 밝혀 내면 달라지겠지만 개인의 사생활까지 증명하기란 쉽지 않다.
 
출퇴근 재해 인정에 필요한 추가 재원

출퇴근 재해 인정에 필요한 추가 재원

고용노동부가 25일 입법예고한 ‘고용보험 및 산업재해보상 보험의 보험료 징수 등에 관한 법률’의 시행령 및 시행규칙 개정안이 낳을 논란 중 하나다. 산재보험법 시행령과 시행규칙 개정안에는 ▶출퇴근 재해 인정 범위 ▶1인 이상 모든 사업장으로 산재보험 적용범위 확대 ▶산재 요양급여를 신청할 경우 사업주 날인 폐지 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 법률이 아니기 때문에 국회 의결이 필요없다. 시행령 및 시행규칙 개정안은 12월 3일까지 입법 예고 기간을 거쳐 내년 1월 1일부터 적용된다.
 
정부는 통상적인 출퇴근 경로에서 벗어나 사고가 발생했을 경우 벗어난 이유가 일상생활에 필요한 행위일 때는 산재로 인정키로 했다. 일용품 구입이나 직무 관련 교육·훈련 수강, 선거권 행사, 자녀 등·하교, 진료, 가족 간병과 같은 사유가 이에 해당한다. 다만 적용 범위가 모호하고, 일부는 근로자의 자의적 진술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통상적 경로를 일탈한 거리나 방향과 같은 세부기준이 있는 것도 아니다.
 
그래서 부정수급이 급증할 우려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예컨대 토요일 등산하다 다친 근로자가 월요일 아침 출근하다 다쳤다고 주장하면 확인할 방법이 마땅찮다.
 
더욱이 이번 개정안에는 산재보험 요양급여를 신청할 때 사업주 날인을 받아야 한다는 관련 조항을 없앴다. 사업주의 재해 경위 확인절차가 폐지됐다는 뜻이다. 근로자의 진술에만 의존해 산재신청을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물론 근로복지공단에서 사실 확인 조사를 진행한다. 그러나 개인의 사생활과 관련된 사안을 한정된 인력으로 파헤치기란 쉽지 않다.
 
한국경영자총협회는 “산재보상법 시행령과 시행규칙 개정안이 적용되면 산재 신청이 급증하는 것은 물론 부정수급 발생 빈도가 높아지고, 이를 적발하거나 방지할 장치도 미흡해 왜곡될 가능성이 크다”고 우려했다.
 
더욱이 강력한 노조가 버틴 대기업은 이중의 부담을 질 수 있다. 자동차나 조선·기계·금융·전기·의료 업종의 대기업 중 상당수는 업무상 재해가 발생하면 법에 정한 산재보상 이외에 단체협약으로 사업주가 추가 보상토록 해놓았다. 산재 발생에 따른 위로 차원이다. 그동안 단체협약에 이런 조항이 있어도 큰 문제가 되지 않았던 것은 사업주의 관리 하에 사업장 내에서 발생하는 재해에 국한됐기 때문이다. 사업장 내 재해 예방조치만 제대로 취하면 방지할 수 있었다는 의미다. 그러나 근로자의 출퇴근에 대해서는 사업주가 뚜렷한 재해 예방조치를 취하기 어렵다. 사용자에게 예기치 못한 지출부담이 가중될 수 있는 셈이다.
 
교통사고가 났을 경우 산재보험과 민간보험인 자동차 보험의 보험금 지급을 둘러싼 논란도 정리해야 할 과제다.
 
김기찬 고용노동선임기자 wols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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