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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터는 활자의 힘 꿰뚫은 미디어 전술 천재였다

루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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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개혁 500주년을 맞아 출판계에 루터와 종교개혁의 의미를 조명하는 책이 잇따라 출간되고 있다. 단지 종교적, 신학적 접근을 넘어 종합적 맥락에서 루터와 종교개혁의 의미를 짚는 책들이다.
 

종교개혁 500주년 관련 서적 잇따라
문명의 변방 출신 일개 수도사에서
부당한 권력에 맞선 민족 영웅으로
농민 현실 무시했던 한계까지 짚어

◆ 『루터:신의 제국을 무너트린 종교개혁의 정치학』(폴커 라인하르트 지음, 이미선 옮김, 제3의공간)
 
『루터:신의 제국을 무너트린 종교개혁의 정치학』

『루터:신의 제국을 무너트린 종교개혁의 정치학』

‘부패하고 무능한 교황 대 신실한 믿음의 수도사 루터’라는 기존 틀을 무너뜨린다는 점에서 단연 눈길을 끈다. 저자는 르네상스 시기 교황제도를 연구해온 역사학자로 바티칸 문서보관소의 여러 자료들을 토대로 종교개혁사를 재구성한다. 종교개혁을 권력자와 소외당한 그룹의 충돌로 본 것이다. 당시 교황의 위상은 급격히 약화되고 있었고, 메디치 가문은 교황제도에 금권정치와 족벌정치를 결합하고 있었다. 이같은 가톨릭 제국의 부당한 권력 배분과 약탈에 맞선 독일의 민족 영웅이 루터라는 해석이다.
 
루터를 ‘미디어 전술의 천재’로 규정한 것도 흥미롭다. 루터는 집요할 정도로 저술, 인쇄, 배급에 매달렸다. 유럽 기독교 문명의 변방인 독일 북동부 출신의 수도사가 권력의 모순을 신랄하게 파헤친 인쇄물로 당시 독일 민중과 소외받는 지식인, 성직자들의 분노를 끌어내며 개혁을 밀어붙였다는 분석이다. 반면 교황청 사람들은 루터의 미디어 전술을 얕잡아 봤고, 뒤늦게 인쇄물 제작에 뛰어들지만 라틴어를 고집해 독일 신자들 대부분을 독자에서 제외시켜 버리는 우를 범했다.
 
◆ 『1517 종교개혁』(디트마르 피이퍼, 에바-마리아 슈누어 엮음, 박지희 옮김, 21세기북스)
 
『1517 종교개혁』

『1517 종교개혁』

독일의 대표적인 시사지 ‘슈피겔’이 기획하고 펴낸 것으로, 집필자가 21명에 이르고 5명이 인터뷰이로 참여했다. 총 26편의 글을 통해 종교개혁의 과정부터 세계사에 가져온 변화까지를 다각적으로 분석했다. 박흥식 서울대 서양사학과 교수가 감수했다. 필자로 참여한 에바 마리아 슈누어는 ‘미래로의 방향 전환’이란 글에서 “(격변의 시기에) 루터는 새로운 방법을 고안한 것도, 혁명을 계획한 것도 아니었다”며 “종교개혁은 다양한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혀서 전혀 예상치 못한, 그 누구도 막을 수 없을 역동성을 만들어낸 사례”라고 했다. 루터 개인의 역사에서부터, 루터를 열렬히 지지했던 기사 지킹엔, 종교개혁 운동에 기여한 여성들 이야기 등 다양한 읽을거리를 담았다.
 
◆ 『루터와 종교개혁』(김덕영 지음, 도서출판 길)
 
 『루터와 종교개혁』

『루터와 종교개혁』

독일 카셀대 교수인 저자가 사회학자의 관점에서 종교개혁이 갖는 의미를 살폈다. 종교개혁이 서양 세계 전체에 ‘근대’를 어떻게 견인했는지를 ‘개인화’ ‘세속화’ ‘분화’ 등의 개념으로 분석했다. 저자에 따르면 루터는 전형적인 ‘중세인’ 이었고 종교적 구원이 최대 관심사였을 뿐 새로운 시대를 연다는 생각도, 근대라는 관념도 갖고 있지 않았다. 다만 루터는 ‘오직 성서’ ‘오직 은총’ ‘오직 믿음’ ‘오직 그리스도’를 내세워 신과 인간의 직접적인 관계를 설정해 개인이 교회의 통제와 지배로부터 해방될 수 있게 했다. 또 선행을 연출된 경건(그 극단적 형태가 수도원)과 동일시하는 가톨릭에 반대해 인간의 모든 행위가 선행이 될 수 있다는 논리를 폈다. 이는 모든 세속적 영역, 즉 결혼, 가족, 노동, 사회 등에서의 일상적 삶과 행위가 신학적 가치를 갖게 된다는 의미였다.
 
◆ 『미완의 개혁가, 마르틴 루터』(박흥식 지음, 21세기북스)
 
『미완의 개혁가, 마르틴 루터』

『미완의 개혁가, 마르틴 루터』

루터를 ‘헌신적인 개혁가’지만 ‘완벽한 영웅은 아니었다’고 본다. 특히 농민전쟁에 대한 루터의 입장은 루터의 한계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고 지적한다. 농민들은 루터가 불의에 대한 저항을 지지한다고 오해하고 그를 지지했지만, 루터는 제후나 귀족이 권력을 남용해 농민들을 피폐하게 만드는 현실에 무관심했다는 것이다.
 
저자는 “루터는 대다수의 농민을 배제한 채 제후들의 아량에 기대 가시적인 성과를 얻으려 노력했다. 그 결과로 후대에게 권위주의적 유산을 물려주게 되었다”고 말했다. 또 “수많은 업적에도 불구하고 루터는 결정적으로 시대정신에 소홀했으며 공동체가 중심이 되는 종교개혁을 배반해 자신에게 주어진 개혁의 과제를 완수하지 못했다”고 평가했다.
 
◆ 『종교개혁, 그리고 이후 500년』(라은성·이상규·양희송 지음, 을유문화사)
 
『종교개혁, 그리고 이후 500년』

『종교개혁, 그리고 이후 500년』

‘개혁정신’의 관점에서 한국 교회를 돌아본다. 기독교의 역사에서부터 광복 직후 친일 청산의 좌절, 군부독재 시절 정치권력과 유착한 교회, 1990년대 초 시한부 종말론의 대두, 오늘날 성장 만능주의 등 한국 기독교의 여러 문제점을 짚었다.
 
이 밖에 루터 사상의 핵심을 보여주는 3대 논문을, 정본으로 여겨지는 독일 바이마르 판본에서 번역한 『독일 민족의 그리스도인 귀족에게 고함 외』(마르틴 루터 지음, 황정욱 옮김, 도서출판 길), 루터를 영웅시한 기존 역사학계의 관점을 비판하며 종합적 관점에서 종교개혁사를 서술한 『종교개혁의 역사』(토마스 카우프만 지음, 황정욱 옮김, 도서출판 길) 등도 함께 출간됐다.
 
이은주 기자 jul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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