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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江南人流]조용히 뜨는 동네, 한남동

서울 한남동 지하철 6호선 한강진역 인근의 ‘꼼데가르송’ 매장. 2010년 8월 이 건물이 들어서면서 한남동은 패션·라이프스타일 소비 상권으로 변모하는 계기가 됐다. [사진 삼성물산 패션부문]

서울 한남동 지하철 6호선 한강진역 인근의 ‘꼼데가르송’ 매장. 2010년 8월 이 건물이 들어서면서 한남동은 패션·라이프스타일 소비 상권으로 변모하는 계기가 됐다. [사진 삼성물산 패션부문]

세 겹 주름바지와 니트, 주윤발 코트, 장군의 아들 중절모, 목걸이 등의 의류 액세서리 등을 구비할 것 / 그다음 미장원과 강력 무쓰를 이용한 소방차나 맥가이버 헤어스타일로 무장할 것/ … / 그 국화빵 통과 제의를 거쳐야만 비로소 압구정동 통조림통 속으로 풍덩 편입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 이곳 어디를 둘러보라 차림새의 빈부 격차가 있는지 /압구정동 현대아파트는 욕망의 평등 사회이다 패션의 사회주의 낙원이다  
1991년 발표된 유하의 시 '바람부는 날이면 압구정동에 가야한다2'는 최신 패션을 자랑한다면서 국화빵 기계처럼 그저 유행을 따라 했던 사람들을 비꼰다. '패션의 사회주의'라면서. 요즘 뜬다는 동네는 이와는 정반대다. '굳이 잘난 척하지 않아도 있어 보이고 남들이 모르기에 더 좋은' 소비에 열광한다. 서울 한남동은 그런 니즈를 충족시켜주는 동네다. 압구정 로데오 거리와 청담동 명품 거리, 신사동 가로수길을 다 거친 트렌드 세터들은 이제 북적대지도 않고 대단한 핫플레이스도 없는 이 동네를 더 좋아한다. 보여주지 않지만 드러나길 바라고, 사지 않지만 무언가를 소비하는 최신 소비 트렌드가 이곳에 숨어 있다. 이도은·윤경희 기자 dangdol@joongang.co.kr

‘바람부는 날’엔 압구정동? 이젠 한남동 간다
트렌드 세터들 모이는 ‘취향 소비 새 메카’

 
깐깐한 브랜드들이 낙점한 동네
제일기획 본사부터 지하철 6호선 한강진역에 이르는 이른바 '꼼데길'은 요즘 한남동 안에서도 가장 변화가 크다. 2017년 9~10월만 해도 스웨덴 SPA 브랜드 코스(COS)와 여성복 브랜드 구호가 단독 매장을 열었다. 코스가 '서울 첫 강북 매장', 구호는 '론칭 20년 만의 첫 플래그십'이라는 의미를 두며 낙점했다는 점에서 한남동이 업계의 주목을 받았다. 구호 맞은편에는 지금 동서식품이 새로 건물을 짓고 있다. 맥심 플래그십으로 소문이 났지만 동서식품 측은 "다양한 각도에서 활용 방안을 고려 중"이라고만 밝혔다.
돌이켜 보면 '꼼데길'이라는 이름이 붙을 정도로 꼼데가르송의 역할이 컸다. 2010년 8월 꼼데가르송이 들어서면서 비로소 인적 드문 한남동이 패션 지구로 거듭나게 됐기 때문이다. 이듬해 제일기획 뒤편 주택가에 디자이너 브랜드 '스티브J&요니P'가 매장을 내면서 패션 피플들이 오가는 또 다른 한 축을 만들었다.  
남성 편집매장 '란스미어'의 한남동 부티크. 옷뿐 아니라 꽃도 판다. [사진 란스미어]

남성 편집매장 '란스미어'의 한남동 부티크. 옷뿐 아니라 꽃도 판다. [사진 란스미어]

그 뒤로 길은 계속 달라졌다. 삼성물산 패션부문의 첫 편집매장 '비이커', 코오롱 FnC 캐주얼 브랜드 '시리즈', 디자이너 송자인의 컨셉트 스토어 ‘모 제인송’ 외에도 영국 캐주얼 브랜드 YMC, 수입 남성복 편집숍 란스미어 등이 속속 들어 왔다. 패션 만이 아니다. 에이솝·조말론·르라보·꼬달리 등 뷰티·향수 브랜드의 단독 매장에서부터 현대카드 뮤직라이브러리, 리빙편집숍 디&디파트먼트와 모어댄레스(MTL) 등이 잇따라 생겨나면서 '얘기되는 세련된 동네'라는 이미지를 구축했다. SM 컨텐츠앤커뮤니케이션즈 설문조사 플랫폼 '틸리언 프로'에 의뢰한 조사(성인 남녀 529명 대상) 에서도 사람들은 '한남동'이라고 하면 '고급스럽다'(32.7%)와 '트렌디하다'(11.5%), '감성적이다'(8,7%)라는 단어를 떠올렸다.  
구호·띠어리·YMC·코스 등 패션 브랜드 매장이 나란히 자리하고 있는 서울 한남동 ‘꼼데길’ 전경. 김경록 기자

구호·띠어리·YMC·코스 등 패션 브랜드 매장이 나란히 자리하고 있는 서울 한남동 ‘꼼데길’ 전경. 김경록 기자

한남동이 뜨면서 다른 상권에서 속속 이전해오기도 했다. 카페 겸 라이스프타일 셀렉트숍 MTL은 2016년 연남동에서는 편집숍으로만 운영되다 독일 보난자 커피를 국내 유통하면서 매장을 옮겼다. 우상규 사장은 "한남동이 연남동보다 트렌디한 공간이라는 생각에 이전을 결심했다"고 말했다. 스트리트 패션 남성복 브랜드 '헤리티지플러스'는 9월 압구정 로데오거리에서 제일기획 뒷골목으로 매장을 옮겼다. "압구정보다 감각이 떨어지지 않는 데다 주택을 개조한 건물이라 남다른 인테리어 감각을 뽐낼 수 있기 때문"이라는 게 안윤근 MD의 설명이다.
뜨는 동네가 그러하듯 상권이 본격 형성되면서 임대료 역시 대폭 상승했다. 부동산 114에 따르면 2015년 3.3㎡(평)당 9만원이었지만 2017년에는 18만8000원까지 치솟았다. 같은 기간 임대료가 소폭 상승하거나 오히려 하락한 신사·청담·홍대 등에 비해 3.3㎡당 2만~6만원이나 비싼 가격이다.
 
소비 트렌드에 부응하는 동네  

"왜 지금 한남동인가. "

이 질문의 답은 브랜드 측이나 소비자, 트렌드 전문가들 사이에서 크게 다르지 않다. 다들 최신 소비 트렌드에 충실히 부응한다는 점을 꼽는다. 실제로 라이프스타일에 대한 대중의 관심을 일찌감치 간파한 상점들이 한남동에 다 모여 있다.  
1990년대 외모 가꾸기에 치중했던 소비 문화는 2000년대를 지나면서 인테리어·여행·미식 등으로 확장하며 변화했다. 패션 브랜드들은 여기에 맞춰 제품군과 매장 구성을 달리해왔다. 한남동은 이런 변화를 반영한 초기 상권이다. 이게 가능했던 건 꼼데가르송과 시리즈 등 선구안 좋은 몇몇 브랜드가 한남동에 일찌감치 자리잡은 덕분이다. 꼼데가르송은 오픈 때부터 갤러리와 카페를 갖췄고, 시리즈는 신상품 외에도 업사이클링 패션과 향수·디퓨저 등을 함께 판매했다. 시리즈 마케팅팀 송경호 과장은 "2013년 한 공간에서 라이프스타일을 보여주는 플래그십을 열 때 한적하고 여유로운 분위기를 내는 동네를 찾았는데 그게 한남동이었다"면서 "꼼데가르송과 비이커 말고는 패션 관련 매장이 전무했을 때인데도 사람들이 알아서 찾아왔다"고 말했다.  
의류·카페·화장품·문구 등을 함께 취급하는 이곳 패션 매장들처럼 새로 문 연 구호 플래그십도 '한남동 스타일'로 변신을 꾀했다. 매장을 거실, 욕실, 다이닝룸 등으로 나눠 꾸미면서 그에 맞는 의류와 소품을 구비해 뒀다. 다이닝룸에는 발뮤다 토스터기와 디자이너 식기, 욕실에는 디퓨저와 보디 제품 등을 같이 두는 식이다. 1층에서는 고급 티 브랜드 떼오도르를 판매한다. 구호의 김현정 디자인 실장은 "지상과 지하1층 매장을 '구호라는 여자가 사는 집'이라는 컨셉트로 꾸몄다"고 말했다.
집을 콘셉트로 삼은 구호 플레그십 매장 내부. 거실·욕실·다이닝룸 등으로 공간을 꾸몄다. [사진 구호]

집을 콘셉트로 삼은 구호 플레그십 매장 내부. 거실·욕실·다이닝룸 등으로 공간을 꾸몄다. [사진 구호]

덕분에 '취향 소비'를 충분히 만족시켜주는 동네가 됐고, 이 점은 한남동의 매력으로 통한다. '어떤 가방을 드느냐보다 그 가방을 들고 어디에 갔느냐가 더 중요해졌다' (『라이프트렌드 2017 적당한 불편』)는 분석처럼 이제는 경제적 능력 못지않게 무엇을 경험했고 얼마나 괜찮은 안목을 지녔느냐가 대접받는 시대다. 성신여대 이향은 교수(서비스디자인공학)는 "남들은 몰라도 나만 아는 디자이너 브랜드 등을 발견하는 쇼핑 공간으로서 한남동은 충분히 매력적"이라고 말한다. 명품처럼 구입 자체가 과시가 되는 것과 달리, 자꾸 경험하고 투자하면서 안목을 키워야 하는 취향 소비로의 전환은 기존 상권이 쉽게 줄 수 없는 부분이다. 한남동은 다르다. 화물차 커버를 재활용해 만든 가방(프라이탁), 해외 디자인·예술 전문 서적(포스트 포에틱스), 턴테이블·LP(현대카드 바이닐 & 플라스틱) 매장이 골목마다 자리하며 새로운 라이프스타일 수요를 창출해 낸다.
연남동에서 라이프스타일 편집숍으로 이름을 알린 MTL(모어댄레스)도 독일 보난자 커피를 수입·유통하기 시작하면서 2016년 말 한남동으로 이전했다. 윤경희 기자

연남동에서 라이프스타일 편집숍으로 이름을 알린 MTL(모어댄레스)도 독일 보난자 커피를 수입·유통하기 시작하면서 2016년 말 한남동으로 이전했다. 윤경희 기자

삼성물산 상권분석팀 황윤정 과장은 "소비자를 오래 잡아두기 위한 대형 쇼핑몰의 강점을 한남동이 고스란히 지니고 있다"고 말한다. 맛집 투어는 물론 미술(리움)·공연(블루스퀘어)·음악(현대카드 뮤직 라이브러리) 등으로 시간을 보내면서 쇼핑도 즐길 수 있는 문화 인프라가 깔려있기 때문이다. 더구나 한남오거리의 주상복합 리첸시아에서 디뮤지엄으로 이어지는 독서당길, 옛 육군중앙경리단에서 서울 하얏트 호텔로 연결되는 경리단길, 그 맞은편 해방촌까지 동선의 확장이 가능하다는 점도 장점이다.
 
지리적 이점 커 확장 가능성
2017년 9월 한남동 꼼데길에 문을 연 코스 매장.

2017년 9월 한남동 꼼데길에 문을 연 코스 매장.

부암동·서촌·망원동·연남동·성수동·상수동…. 서울 시내에는 한남동 말고도 새로 뜨는 상권이 끊임없이 존재해왔다. 앞서 언급한 취향 소비, 시공간의 향유 등 한남동의 강점을 이미 지닌 곳도 여럿이었다.  
그렇다면 '신 유행 특구'로서 한남동이 다른 점은 무엇일까. 김민영 부동산114리서치센터 매니저는 "강북과 강남의 중간이라는 입지가 가장 큰 차이점"이라고 분석했다. 대기업 혹은 수입 브랜드들의 선점으로 어쩌면 뻔해진 강남 상권을 벗어나면서도 주차 같은 편이성을 포기하기 힘든 이들에게 대안이 된다는 얘기다. 또 고즈넉하고 세련된 분위기는 트렌드 특구로서의 조건을 완성한다. 김 매니저는 "다른 상권처럼 점포가 밀집돼 있지 않아 고즈넉하다"며 "망원동·연남동만 해도 대형 브랜드가 들어갈 면적이 나오지 않아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한남동이 기존 상권을 대체하는 역할을 하는 건 아니다. 트렌드 분석가인 '날카로운 상상력 연구소' 김용섭 소장은 '상권 갈아타기'와는 다르다고 선을 긋는다. "소비 자체가 하나의 문화·놀이로 확장되기 때문에 그만큼 상권이 계속 개발되는 것"이라는 설명이다.
어찌됐든 늘 새로운 것을 찾아 떠나는 소비자를 잡으려면 지속적인 컨텐트 공급이 필요하다. 유행에 따라 치고 빠지는 카페나 어디서나 살 수 있는 브랜드가 아니라 꼭 그곳에 가야만 하는 시그너처 아이템을 끊임없이 개발해야 한다는 이야기다. 지금 한남동은 그런 스토리텔링을 써나가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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